[수원/원주] 조건 없는 용서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424

[수원] 조건 없는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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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하고 충만한 어떤 것을 암시하는 숫자이다. 베드로가 예수께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할지를 예수님께 물으면서 스스로는 속으로 일곱 번 용서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 랍비들은 "사람은 잘못한 이웃을 세 번까지 용서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마 베드로는 예수님께 말씀드리면서 칭찬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일 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시면서 일만 달란트 이야기를 하신다. 이 비유의 뜻은 잘못한 이웃을 용서함에 있어 한정이 없다는 뜻이다. 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의 차이는 육십 만 분의 일이다. 그 백 데나리온을 받으려고 동료를 탕감해주지 않은 종이 크게 벌을 받았다는 비유를 말씀하신다.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 용서받기 위해서는 이웃을 용서해야 한다는 이 가르침은 신약성서 전반에 걸쳐서 나오는 주님의 뜻이며 가르침이다. 즉 이웃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태 5,7에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하였고, 6,14-15에는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했다. 또 야고 2,13에는 "무자비한 사람은 무자비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하였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용서는 사람의 용서와 나란히 가는 것이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가슴을 치며 고백의 기도를 하고 `천주의 어린양`을 부르며 자비를 구하고, 서로 평화의 인사와 축복을 나누고 한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고 자신의 집과 일터로 나아간다. 그러나 진정 우리들 마음 안에는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하나의 지식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용서와 화해의 마음을 참으로 갖고 있는지, 형제와 이웃에 대하여 과거에 그에게 이런 잘못이 있었고 또 어떤 때는 저런 허물이 있었으니까 하면서 그것을 되새기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하고 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내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표지는 잘못한 이웃을 얼마만큼 마음속 깊이 용서하느냐 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용서`가 있는 곳에서만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며 용서가 없는 곳에는 미움과 증오 그리고 죽음만이 남는 것이다. "무자비한 종"의 모습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모든 인간 관계에서도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우리 또한 한 사람의 무자비한 종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께로부터 많은 죄를 용서받으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도 나의 이웃을 용서하며 함께 주님께 나아가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그러한 은총을 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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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