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톤즈
작성자 : 수잔나 조회수 : 2089



[한겨레]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삶 다룬 영화 ‘울지마 톤즈’ 감동의 물결
의사 포기하고 사제서품…한센인등 고통받는 이들 섬기다 대장암 선종


“울음으로 울음을 달래는 영화. 별점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죄송스럽다.” 한 누리꾼이 포털사이트에 남긴 영화 평이다.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린 고 이태석 신부. 의사를 포기하고 신부가 되어 내전의 땅 아프리카 수단에서 그곳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헌신한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가 눈물 바람과 입소문을 타고 관객들을 모으고 있다.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9월 개봉한 지 1달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했고 상영관은 개봉 때의 4배가 넘는 54개 곳으로 늘었다.

영화는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시내를 행진하는 브라스 밴드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앞에선 소년들은 환하게 웃고 있는 한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이들은 눈물을 수치로 여기는 딩카족. 하지만, 그들은 사진을 보자마자 그 사진에 입을 맞추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아이들이 이태석 신부를 그리며 부르는 노래는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신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이태석 신부가 수단으로 간 것은 2001년. 1987년 인제대 의대를 졸업한 뒤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광주 가톨릭대를 거쳐 살레시오회에 입회한 그는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수단으로 가 2008년 11월까지 8년 넘게 섭씨 45도가 넘는 남부 수단의 톤즈 마을에서 전쟁, 가난, 질병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섬겼다.

그는 병원을 지어 한센병을 비롯하여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돌봤고 학교와 기숙사를 지어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특히 한센인을 돕는 것은 그의 어릴 적 결심이기도 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성당에서 본 ‘다미안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보고 그와 같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다미안 신부’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살던 하와이 근처 ‘몰로카’ 섬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다가 자신도 같은 병에 걸려 48세에 선종한 이다. 이태석 신부는 톤즈 중심가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한센인 마을을 찾아 집을 짓고 펌프 시설을 설치했다. 이 신부에게 그들은 여느 사람과 똑같았다.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고름을 직접 짜내고 붕대를 감아주며 발의 상처가 심한 이들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신발을 신겼다. 이태석 신부가 없는 지금, 그들은 그의 사진을 보자마자 애통한 눈물을 쏟아냈다. 그들은 이태석 신부를 ‘영원한 아버지’라고 불렀다.

이태석 신부는 20년 동안 200만 명이 사망한 내전을 겪으며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받은 어린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남부 수단 최초의 브라스 밴드도 만들었다. 이를 위해 그는 모든 악기를 자신이 직접 배워야 했다. 총 대신 악기를 든 톤즈의 아이들은 곧 남수단의 유명인이 됐다. 브라스 밴드는 정부 행사에도 초청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그에게 병마가 찾아왔다. 그는 대장암 투병중에도 자신의 마지막 남은 삶의 불꽃을 수단의 가난한 동네를 휘감은 어둠을 밝히는 데 썼다. 의사 대신 신부가 된 사람.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은 이에게 해 준 것이 곧 자신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한 사람. 마흔 여덟의 짧은 생을 사랑으로 불사른 이태석 신부의 삶을 다룬 휴먼 다큐멘터리가 가을 극장가에 감동의 물결을 불러오고 있다.

신부가 아니어도 의술로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데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의사직을 포기하고 아프리카까지 갔느냐는 질문에 이태석 신부는 생전에 이렇게 답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다만, 내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습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 박사, 10남매를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어머니의 고귀한 살. 이것이 내 마음을 움직인 아름다운 향기입니다.” e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