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隨筆 / essay)에 대한 설명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3973

요약  

산문문학의 하나. 수필이란 형식의 제약도 없고, 내용에 있어서도 자연·인간·역사·사회에 관한 견문·비평·사색 또는 연구·고증 등 다방면에 걸쳐 붓이 가는 대로 적어나간 산문문학이며 필자의 개성·자질·재능의 단적인 표현도 된다.  

설명  

산문문학의 하나. 수필이란 형식의 제약도 없고, 내용에 있어서도 자연·인간·역사·사회에 관한 견문·비평·사색 또는 연구·고증 등 다방면에 걸쳐 붓이 가는 대로 적어나간 산문문학이며 필자의 개성·자질·재능의 단적인 표현도 된다. 또한 수필은 서정(抒情)과 서사(敍事)에 의한 정서적 감동이나 허구적 흥미를 주기도 하면서, 다른 문학양식과의 상호 견인작용을 적절하게 포용함으로써 수필의 영역은 광범위하게 확대되기도 한다.

서양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수필이 발달하여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하였다. 넓은뜻으로 J. 드라이든의 《극시론(劇詩論, 1668)》, T.S, 엘리엇의 《성림(聖林)-시와 비평에 관한 수필(1920)》 등과 같은 문예비평, J. 로크의 《인간오성론(人間悟性論, 1690)》, G. 버클리의 《신시각론(新視覺論)으로 향한 수필(1709)》과 같은 철학적 이론 또는 시론(試論)이 포함되며, 주로 산문으로 쓰여졌으나, 드물게는 A. 포프의 《비평론(1711)》 《인간론(1732∼34)》과 같이 시의 형식을 취한 것도 있다. 수필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사람은 프랑스의 M.E. 몽테뉴이며, 그의 《수상록(隨想錄, 1580∼88)》은 20년에 걸친 자기성찰의 집대성으로 프랑스 르네상스기의 모랄리스트 및 유머작가의 백미(白眉)로 되었다. F. 베이컨의 《수필집-생활과 도덕에 관한 충언(1597∼1625)》은 몽테뉴의 뒤를 이은 것으로서, 이 문학형식을 영국에 정착시켜 발달하게 하는 작품이 되었다. 프랑스에서도 J. 라 브뤼에르·C.A. 생트뵈브·T. 고티에·A. 프랑스와 같은 수필가가 나왔다. 한편 17세기에는 기지(機智)를 구사하여 인간성을 짧게 묘사한 등장인물이 나타났다. 18세기에는 저널리즘의 발흥에 수반하여 J. 애디슨·R. 스틸 등이 나타나 인기를 끌었으며 수필을 하나의 문학형식으로까지 올려놓았다. 19세기에는 L. 헌트·S. 스미스·W. 해즐릿 등의 수필가가 배출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C. 램의 《엘리아수필(1823∼33)》은 페이소스와 유머로 널리 읽혀졌다. 그 뒤 주지적인 M. 아놀드·W. 페이터의 수필이 나왔으며, 20세기에는 G.K. 체스터튼·M. 비어봄·R. 린드·A.A. 밀른 등의 경묘하고 소탈한 수필이 주류를 이루었고, J.B. 프리스틀리가 그 뒤를 이었다. 미국에서는 R.W. 에머슨·H.D. 소로·O.W. 홈스·W. 어빙·J.G. 서버가 우수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동양

중국에서는 특정한 내용이나 문체에 구애받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써나간 문장과 저술을 옛날에는 <필기소설(筆記小說)>이라고 총칭하였다. 주로 독서의 메모, 고사(故事)나 전고(典故)의 기록과 고증, 일상의 견문록 등 단편적인 메모와 같은 것이 <필기>이며, 사소한 일이나 민간전승 등을 기록해 둔 것이 <소설>이다. 일정한 내용과 그에 어울리는 문체(文體)가 필요하였던 정통적인 문학관에서 본다면 내용·문체 모두 잡다한 이들 저술은 <잡저(雜著)>라고도 하여 경시하였다. 필기소설류는 오로지 지적 흥미와 단순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으로 작가의 사상이나 인생관을 언급하는 일은 드물지만, 편안한 문체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위(魏)·진(晉)나라 시대에 유행하였으며 당대(唐代)를 거쳐 송대(宋代)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수필을 저서명으로 한 《용재수필(容齋隨筆)》 외에 필기·필록(筆錄)·만필(漫筆)·만록(漫錄)·잡기·잡지(雜識) 등의 명칭을 가진 많은 저술이 생겨났다. 이러한 유행은 명(明)·청(淸)나라 시대에도 이어졌으며, 중화민국 이후에는 서유럽의 수필이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이 수필을 쓰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사회풍자와 시사비평의 정치적 색채가 짙은 것이었는데, 그중에서 소품문(小品文)의 전통을 이어받고 독특한 문명비평과 인생의 통찰을 시도하여 성공한 사람은 저우쭤렌[周作人(주작인)]과 린위탕[林語堂(임어당)]이다. 일본에서는 헤이안시대[平安時代(평안시대)] 세이쇼나곤[淸少納言(청소납언)]이 쓴 《마쿠라노소시[枕草子(침초자)]》가 수필이라고 하기에 적합한 최초의 저술로 기록되고 있다. 이 작품은 날카롭고 섬세한 감성으로 포착한 자연과 인간의 갖가지 상(相)이 왕조귀족의 미의식의 극치를 나타냄과 동시에 후세에 대하여 규범적 의의를 계속 지녀왔다. 근세에 들어와서 바쿠후[幕府(막부)]의 문치정책과 서민의 지식욕구의 향상으로 초기의 계몽기를 거쳐 교토[京都(경도)]·에도[江戶(강호)] 각각의 문화가 융성함과 더불어 수필도 성행하였다. 메이지시대[明治時代(명치시대)] 이후에도 계속해서 수필은 유행하였으며, 잘 알려진 수필작가로는 사토 고세키[佐藤垢石(좌등구석)], 우치다 등을 들 수 있다. 1951년 일본에세이스트클럽이 설립되고, 매년 그해의 우수작품에 대하여 에세이스트클럽상을 수여해 오고 있다.

분류

일기·서간문·감상문·수상문·기행문 등을 수필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수필을 에세이와 미셀러니로 나누는 경우, 에세이에는 지적·객관적·사회적·논리적 성격을 가지는 소평론(小評論) 따위가 속하며, 미셀러니에는 감성적·주관적·개인적·정서적 특성을 가지는 신변잡기가 속한다. 또한 몽테뉴형의 경수필(輕隨筆)과 베이컨형의 중수필(重隨筆)로 나누는 경우, 경수필은 신변·사색·서간·기행수필 등이며 중수필은 과학·철학·종교 등의 객관적·사회적·경구적인 수필 등이다. 그 밖에 수필에는 사색적 수필·비평적 수필·스케치·개인수필·담화수필·연단수필·성격소묘수필·사설(社說) 수필 등으로 나뉜다.

특징

① 형식이 없는 자유로운 산문:수필은 소설이나 희곡과 같은 산문문학이면서도 구성상의 제약이 없이 자유롭게 씌어지는 산문이다. 내용면에서도 인간이나 자연의 어느 한 가지만 다룰 수도 있고 여러 가지를 생각나는 대로 토막토막 다룰 수도 있다.

② 개성적이고 고백적인 문학:시에서는 정서의 승화와 은유의 기법 속에 개성이 융합되고, 소설이나 희곡은 표현의 뒷면에 개성의 향취와 분위기가 있지만, 수필은 작가의 적나라한 심상(心像)과 개성이나 취미·인생관 등이 그대로 나타나는 고백적인 문학이다.

③ 제재가 다양한 문학:인생이나 사회·역사·자연 등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해 느낀 것과 생각한 것은 무엇이나 자유자재로 서술할 수 있으므로 그 제재의 선택에 있어 구속을 받지 않는다.

④ 해학과 기지와 비평정신의 문학:수필에는 서정의 감미로움과 입가에 스치는 미소와 비판정신이 있어야 한다. 특히 수필에서는 지적 작용을 할 수 있는 비평정신이 밑받침되어야 하며, 정서와 신비의 이미지를 그리기 위하여 해학과 기지가 있어야 한다.

근대이전의 수필

고려 이후의 방대한 한문학에서 수필적인 특성을 찾을 수 있고 조선시대 문학에서 국·한문 일기, 기행, 서간 등의 수필적인 형식을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근대 이전의 수필은 한문수필과 국문수필로 나누어진다.

① 한문수필
고려시대에는 이제현(李齊賢)의 《역옹패설》,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 이규보(李奎報)의 《백운소설(白雲小說)》 등의 문집이 있으며, 그 중 이규보의 《남행월일기(南杏月日記)》가 유명하다. 조선시대에는 한문수필이 크게 융성하여 서거정(徐居正)의 《필원잡기(筆苑雜記)》, 강희맹(姜希孟)의 《촌담해이》, 성현(成俔)의 《용재총화》, 김정(金淨)의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 유성룡(柳成龍)의 《징비록(懲毖錄)》,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등 여러 수필이 등장한다. 특히 《열하일기》는 박지원이 연행사(燕行使)의 수행원으로 중국에 들어가 여행하면서 견문한 것을 기록한 것으로 한문수필의 백미로 꼽힌다. 또한 김만중(金萬重)의 《서포만필(西浦漫筆)》, 보고 들은 것을 단편적으로 기록한 안정복(安鼎福)의 《잡동산이(雜同散異)》 등 여러 가지 양식의 수필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한문수필들은 관조(觀照)의 세계에 안주하려는 시인이나 묵객 등이 그들의 사상과 생활감정을 여러 형태로 담은 것으로서 비평적이면서도 해학과 풍자를 담고 있다.

② 국문수필
조선 초기에는 운문(韻文)이 성했으나 서민문학이 활발해진 이후에는 주로 여성들에 의해 기행문이나 일기문 형식의 국문수필이 많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수필은 궁정수필(宮廷隨筆)·기행수필·의인체수필(擬人體隨筆)로 나누어진다. 궁정수필로는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모함하여 인목대비를 유폐시키던 실상을 궁인들이 기록한 《계축일기(癸丑日記)》,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가 남편 사도세자의 죽음에서부터 정조가 등극하기까지의 궁중생활을 기록한 《한중록(恨中錄)》과 같은 것은 우아한 용어와 여성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섬세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기행수필로는 1776년(영조 52)에 박창수(朴昌壽)가 지은 《남정일기(南征日記)》, 정조 때 서유문(徐有聞)의 《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 등이 있다. 기행수필 중 뛰어난 것으로 《의유당관북유람일기(意幽堂關北遊覽日記)》이 있다. 이 작품은 함흥판관 신대손(申大孫)의 부인 의령남씨(宜寧南氏)가 쓴 것으로, 그 중 특히 일출광경과 월출광경이 묘사되어 있는 <동명일기(東溟日記)>가 뛰어나서 국문으로 씌어진 기행수필의 백미로 꼽힌다. 한편 의인체수필로는 순조 때 유씨부인(兪氏夫人)이 바늘을 부러뜨리고 애도하는 심정을 제문형식으로 쓴 《조침문(弔針文)》과 7가지 침선도구(針線道具)를 희화적인 대화로 쓴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이 유명하다. 이 밖에도 숙종 때 박두세(朴斗世)의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 승려와 양반의 유희적 문답을 쓴 《양인문답(兩人問答)》 등이 있다.

근대수필
최초의 근대수필은 기행적 수필인 유길준(兪吉濬)의 《서유견문(西遊見聞, 1895)》이라 할 수 있다. 기행적 수필로 출발한 근대수필은 수상적(隨想的) 수필과 병행하다가 1930년대에 산문문학의 한 양식으로 형성되었는데, 주로 고전수필의 기행적 성격을 계승하고 서구수필의 개성적인 시각을 수용하였다.

⑴ 1930년 이전
1910년대의 수필은 시나 소설에 비해 장르가 확고하게 형성되지 못하였으나, 《학지광(學之光)》에 실린 최승구(崔承九)의 《남조선의 신부》, 나혜석(羅蕙錫)의 《이상적 부인》 등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였다. 이 시기의 기행적 수필로는 최남선(崔南善)의 《반순성기(半巡城記)》 《평양행(平壤行)》 등이다. 또한 수상적 수필로는 전영택(田榮澤)의 《독어록(獨語錄)》, 나혜석의 《잡감(雜感)》, 이광수(李光洙)의 《천재야 천재야》, 이일(李一)의 《만추(晩秋)의 적막》 《고독의 비애》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수필은 기행의 소감과 거기에 서린 역사적 시각, 또는 내성적인 성찰이 많아 문인들의 자아각성에 의한 새로운 문화의식이 엿보인다. 20년대 초기의 수필류는 내용에 따라 여러가지로 불렸는데, 이때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김환(金煥)의 《고향의 길》, 남궁 벽(南宮璧)의 《자연》, 박종화(朴鍾和)의 《영원의 승방대(僧房臺)》, 이광수의 《감사와 사죄》, 홍명희(洪命熹)의 《학창산화(學窓散華)》, 박태원(朴泰遠)의 《병상잡설(病上雜說)》, 주요한(朱耀翰)의 《어렸을 때 본 책》 등이 있다. 20년대 후반에 <수필>이라는 명칭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동광(東光)》에 이르러 정착되었다. 또한 《조선문단》의 <수필감상>란에 주요한·방인근(方仁根)·김억(金億)·최상덕(崔象德) 등 11명의 수필이 실려 있음은 그와 같은 정착의 모습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이같이 20년대 수필양식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잡지는 《조선문단》과 《동광》이었다. 한편 초기 작품인 오상순(吳相淳)의 《시대고(時代苦)와 그 희생》에서는 시대상황을 내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염상섭(廉想涉)은 《국화(菊花)와 앵화(櫻花)》에서 꽃의 의미로써 망국의 심경을 담는 등 수상수필도 20년대 수필의 한 경향을 이루었다. 20년대 수필의 또 하나의 경향은 최남선과 이광수에 의한 기행수필이다. 《서유견문》과 맥락이 이어지는 기행수필은 산수를 즐기며, 그곳에 묻힌 역사와 민족혼을 찾으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이광수의 《금강산유기(金剛山遊記)》, 최남선의 《심춘순례(尋春巡禮)》 《백두산근참기(白頭山覲參記)》 등은 기행수필의 3대걸작이다.

⑵ 1930년대 이후
1930년대는 수필의 이론적 추구, 개인적 수필과 사회적 수필이라는 본격적인 수필유형의 형성, 그리고 발표무대의 확장 등과 더불어 근대수필이 형성되는 시기였다. 수필론의 정립은 외국문학을 전공한 문인들에 의해 추구되었다. 김기림(金起林)은 《수필을 위하여》에서 수필의 문학성과 그 영역을 추구하였고, 김광섭(金珖燮)은 《수필문학소고》에서 수필의 형식과 그 표현에 대한 이론을 모색하였는데, 김진섭(金晉燮)의 《수필의 문학적 영역》에 이르면서 문학양식으로서의 수필론이 정립되었다. 이와 같이 30년대에는 수필론이 정립됨으로써 1000여 편에 이르는 수필이 발표되는 성숙기를 이루었다. 직관적·관조적으로 자연과 인생을 음미한 개인적 수필로는 이양하(李敭河)의 《신록예찬》 《조그만 기쁨》, 이효석(李孝石)의 《사온일(四溫日)》 《화초》, 피천득(皮千得)의 《금아문선(琴兒文選)》, 노자영(盧子泳)의 《산사일기(山寺日記)》, 김유정(金裕貞)의 《그믐달》 등이 있고, 또한 깊은 성찰이나 진리의 추구를 담은 사회적 수필로는 김진섭의 《인생철학》 《주부송(主婦頌)》, 이상(李箱)의 《권태》, 고유섭(高裕燮)의 《고려청자》 등이 있다. 그 밖에 이 시기에 발표된 뛰어난 수필로는 김억의 《사상산필(沙上散筆)》, 이광수의 《산거기(山居記)》, 이희승(李熙昇)의 《청추수제(淸秋數題)》, 이효석의 《청포도의 사상》, 임화(林和)의 《현해탄 상의 일야(一夜)》, 박영희(朴英熙)의 《전선기행(戰線紀行)》, 이북명(李北嗚)의 《해변만담(海邊漫談)》 최명익(崔明翊)의 《조망문단기(眺望文壇記)》 등이 있다. 그러나 40년대 초기에는 일제의 국어말살정책으로 인해 신문·잡지 등이 폐간되면서 시나 소설처럼 수필도 침체현상을 보이게 되었으나 광복 직후에는 남북의 대립과 민족문학 모색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게 되었다. 40년대에 발표된 수필로는 이태준(李泰俊)의 《무서록(無序錄)》, 박종화의 《청태집(靑苔集)》, 오장환(吳章煥)의 《팔등잡문(八等雜文)》 《삼단론법》, 김진섭의 《인생예찬》, 이광수의 《돌베개》, 마해송(馬海松)의 《편편상》, 현진건(玄鎭健)의 《단군성적순례(檀君聖蹟巡禮)》, 김기림의 《바다와 육체》 등이 있다.

현대 수필
현대수필은 50년대 이후의 수필을 총칭하는 말이며, 특히 1930년대의 수필이 이룩한 성과를 밑거름으로 해서 전개되었다. 또한 6·25 이후의 격동하는 시대에 상응하는 다양한 제재의 수용과 수필인의 확대는 수필문학의 새로운 변모를 가져왔다. 이에 따라 역사적 의미를 집약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도 생겨나게 되었다. 50년대와 60년대의 수필로는 이희승의 《벙어리 냉가슴》, 조지훈(趙芝薰)의 《지조론(志操論)》, 조연현(趙演鉉)의 《문학상과 비밀투표》, 계용묵(桂鎔默)의 《꿈을 새긴다》, 피천득의 《잠》, 김기진(金基鎭)의 《지행일치(知行一致)》, 김동리(金東里)의 《자연과 인생》, 김동명(金東嗚)의 《모래 위에 쓴 낙서》 《세대의 삽화》, 김말봉(金末峰)의 《대망(待望)의 노트》, 마해송의 《오후의 좌석》, 김정한(金廷漢)의 《석류일기(石榴日記)》 등이 있다. 그 뒤 70∼80년대에 들어서는 김동리의 《사색과 인생》을 비롯하여 박두진(朴斗鎭)의 《생각하는 갈대》, 박목월(朴木月)의 《밤하늘의 산책길》, 정비석(鄭飛石)의 《노변정담(爐邊情談)》 등이 있다. 오늘날에는 수필인의 확대와 독자층이 매우 넓어졌으며, 그에 따른 경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적 변모에 따른 변화와 취미 등의 확산으로 수필에 수용된 제재가 다양해지고 있다. 둘째 소설이나 시 등의 새롭고 다양한 기법을 도입하여 구사하고 있다. 셋째 여러 기법을 구사함으로써 수필문학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수필의 문학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넷째 수필인이 증대되었고 발표무대도 확대되었다. 수필이 누구나 쓸 수 있는 양식이 됨에 따라 문인·비문인 모두 쓰게 되었는데, 《수필문학》 《한국수필》 등의 수필전문지와 수많은 잡지는 확대된 무대를 말해준다. 그러나 현대수필은 수필문학의 문학성 향상과 산업사회에서의 수필문학의 정립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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