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New York, 그 화려한 도시에 머물다.
작성자 : 봄 길 조회수 : 2176

4. New York, 그 화려한 도시에 머물다.

미국 날짜로 오늘이 22일이다.
구경 할 곳이 많아 서둘러 나가야 한다는데 난 영 몸이 무겁다.
그러나 끙끙 거리며 따라 나설 수 밖에...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하고 기후가 같아 그래도 쉽게 적응이 됐다.
“오늘은 51도예요.” 우리는 섭씨를 사용하는데 미국은 화씨를 사용했다.
미리 인터넷 조회를 해서 기온을 알아보고 옷을 가볍게 입고 나가도 된다고 알려준다.

혜성이는 계획해 둔 일정대로 우리를 안내했다.
“오늘은 엄마가 좋아하는 성당도 갈거예요.”
느그적거리는 나에게 기분 좋은 말을 할 줄 아는 아들,
어제 꼼꼼하게 설명해준 카드를 쭈~욱 긁으며 맨하탄으로 가기 위해 전철을 탔다.

온통 빌딩 숲에 자리한 영화 ‘나홀로 집’ 촬영지인 록펠러센터의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와 그 아래 펼쳐진 아이스링크는 멋과 여유를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유행이 시작되는 곳, 타임스 스퀘어와 쇼핑 중심지 5번가를 찾았다.
모든 매장이 세일에 들어간 탓에 사람은 오늘도 물결을 이룬다.



뉴욕의 하늘은 온통 빌딩 숲이다. 맨하탄의 패션 5번가

우리는 국립 뉴욕도서관을 둘러보고 성당을 찾았다.
성 페트릭 성당(St. Patrick's Cathedral).
맨하탄의 명물인 이 성당은 1879년에 세워진 미국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유엔본부만큼 유명하다.
성 페트릭 성당은 중세 유럽풍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온통 빌딩 숲인 딱딱한 고층 건물 사이에 멋스런 모습이 맨하탄의 풍경을 부드럽게 유화시켜주는 듯 했다.
성당 문이 활짝 열려 있어 사진을 찍고 한바퀴 돌며 조목조목 구경을 했다.
마침 성탄 시기인지라 구유 경배도 할 수 있었다.
성물을 사기 위해 갔으나 관광객들로 빠꼼한 자리가 없어 돌아 나왔다.
‘이곳에서 미사 드리고 싶다.’
“내일 또 올거예요 그 때 묵주도 사고 미사도 드리세요.”
몇번씩 돌아보는 나에게 사진을 찍어주며 내일도 성당은 꼭 들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뒷날은 미사 시간인 관계로 문을 모두 닫아 들어 갈 수가 없었다.
미사 시작하기 전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성탄으로 지친 성당 문은 열리지 않아 그 앞을 또 지나쳐야 했다.
뉴욕의 가장 멋진 성당에서 성탄 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마음이 영 서글펐다.
시간을 알아올걸, 뭉그적거리다가 미사 시간을 놓치다니...
뉴욕 여행 중 성 페트릭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제일 크다.
‘다음에 가면 꼭 미사에 참석하리라.’



성 페트릭 성당(St. Patrick's Cathedral 내부 모습

어느새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화려한 5번가에서 정통 피자와 각가지 음식들을 시켰다.
서로 먹여 주고 정겹게 나누는 이야기들이 무르익어 이곳이 뉴욕이란 사실을 깜박 잊게 했다.
밤이 되니 따뜻했던 날씨가 으시시 떨렸으나 코트 깃을 올리고
먹다만 사과 모양이 상표인 매킨토시 빌딩을 구경했다.
컴퓨터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전시 판매되고 있었는데 그곳 또한 세일이라 매장 안은 북적거렸다.

다시 5번가를 들어서니 거리 곳곳이 빨간 리본으로 화려하다.
건물 전체를 눈송이처럼 라이트로 장식하고 뮤직에 맞춰 라이트쇼를 펼치는가 하면
하늘에 높게 걸린 스와르브스키 눈송이 라이트가 마치 별이 땅에 내려오는 듯 했다.
화려하고 싱싱한 젊음의 거리 맨하탄 한가운데 서니 삼성과 LG 전광판이 화려하게 빛난다. 우리나라는 몰라도 삼성과 LG 회사를 아는 사람은 많다고 한다.

맨하탄은 1626년 이곳에 원래 거주하던 인디언들에게서 24달러 어치 장신구를 주고 산 땅이란다. 물론 당시의 24달러가 지금의 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액수이긴 했겠지만 그래도 그때의 인디언들은 맨하탄이 담고 있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울 빌딩들 사이에서 보이는 하늘이 한 뼘 정도라면 뉴욕의 하늘은 손가락 마디 정도에 불과한 듯 온통 빌딩 숲이다.
수십, 수백년 묵은 고즈넉한 빌딩들의 나이와 저마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설레는 장식들로 가득한 내부의 아기자기하고 정겨운 꾸밈들.
그리고 빌딩들 틈틈이 찾을 수 있는 자그마한 공원들과 그곳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찾는 밝은 표정의 사람들에게서 삭막함은 오히려 무색하기만 하다.
또한 길을 물으면 가던 길을 돌아 지도를 보여주거나 방향을 알려주고 문을 열면 다음 사람이 문을 잡아주는 사람 냄새가 풍기는 곳,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도시가 바로 뉴욕이었다.

뉴욕, 꿈에도 가리라고 생각 못했던 도시였는데 그 도시 한복판에 내가 서 있다.
그것도 가족 모두가 말이다.
그렇다. 아들 덕분에 우리는 뉴욕의 중심지 맨하탄을 마치 우리동네인양 휘젓고 다녔다.
출퇴근이라도 하듯 아침 일찍 나가고 언제나 집에 돌아오면 저녁 8시가 넘는다.
모든 상가가 문을 닫는 시간이기에 우린 그 시간에 맞춰 귀가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손님들이 많아도 저녁 8시만 되면 문을 닫는 것도 우리하고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피곤에 지칠만도 한데 가족이 모여 패션쇼를 연다.
딸은 물론 아빠도 아들도 차례대로 워킹을 하며 폼을 재고...
그러니 웃음소리가 그칠 줄을 모른다.
뉴욕에서의 하루를 또 그렇게 폼 나게 지냈다.

5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