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 메주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1955

날콩을 끓이고 끓여
푹 익혀서
밟고 짓이기고 으깨고
문드러진 모습으로
한 덩이가 되어 붙는 사랑
다시는 혼자가 되어 콩이 될 수 없는
집단의 정으로 유입되는
저 혼신의 정 덩어리
으깨지고 문드러진 몸으로
다시 익고 익어
오랜 맛으로 퍼져가는
어설프고 못나고 냄새나는
한국의 얼굴
우리는 엉켜버렸다
끈적끈적한 점액질의
실 날로 서로 엉켜
네 살인지 내 살인지
떼어내기 어려운 동질성
네가 아프면 내가 아프고
내가 아프면 네가 아픈
그래서 더는 날콩으로 돌아갈 수 없는
발효의 하얀 금줄의 맛
분장과 장식을 모두 버리고
콧대마저 문지른 다음에야
바닥에서 높고 깊은 울림으로
온몸으로 오는 성(聖)의 말씀 하나

▶ 시집 '오래 말하는 사이'(민음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