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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론 : 교회의 전형인 마리아
조회수 | 3,056
작성일 | 04.09.29
1. 오늘날 제기되는 문제점

우리는 마리아를 교회의 전형, 즉 인격 안에 있는 교회로 고찰할 수 있는데, 이러한 마리아에 관한 교의는 교회 이해를 위해 도움이 된다. 그러나 우선 마리아에 대한 과도하거나 무시에서 오는 그릇된 교리와 참된 교리가 구별되어야 하고 이와 함께 참된 신심과 거짓 신심을 구별해야 한다. 특별히 사목자들은 강론, 저술, 기타 표양을 통해 마리아의 덕행을 본받고 신자들에게 바르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오늘날 제기되는 마리아에 관한 문제들을 다음과 같이 짚어볼 수 있다.

첫째, 현대교회에 만연된 행동의 이데올로기라는 풍조이다. ‘적극성’, ‘어떤 경우나 생산적’이고, ‘중요한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은 뭐니뭐니해도 남성에게는 끊임없는 유혹이다. 이러한 경향은 복음의 순수한 의미를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인 행동강령으로 바꾸기에 급급하다. 이렇게 해서 교회는 급속도로 남성화된 모델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독일말 ‘교회(Kirche)'의 문법적 성이 여성임은 우연이 아니다. 교회 안에는 모성, 감사, 명상, 위로, 따뜻함, 포근함, 침묵, 은둔, 기다림, 아름다움 등등 한마디로 생산적인 세상에서는 별 쓸모 없는 것으로 보이는 가치들의 신비가 살아있다. 사실 남성적 교회론은 신비적 체험의 여지라고는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교회의 기획이요 추상화라 할 수 있다. 교회의 남성화, 교회의 행동적 이데올로기화는 오늘날 세상의 풍조와 함께 알게 모르게 교회 전반에 만연되어 교구나 본당, 수도회, 평신도 단체를 불문하고 있다. 교회는 마리아를 바라봄으로써 어머니로서의 고유한 모습을 재발견하고 여성의 신비를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한국적인 신심풍조이다. 여전히 한 많은 우리 민족 심성 저변에는 포근한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그리워하는 소망이 뿌리깊게 박혀있다. 우리는 특별히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에게서 위로를 받고 싶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어한다. 이러한 현상은 레지오 마리애, 성모의 기사회 등등의 신심운동, 무엇보다도 미사중에서까지 열심히 바치는 할머니들의 묵주기도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글을 모르는 할머니들은 다른 기도는 몰라도 성모송 하나는 신통하게도 줄줄 외운다. 묵주기도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주님의 기도를 제치고 가장 보편적인 기도가 되었다. 이러한 한국의 신심풍토는 올바른 마리아 교리와 신심의 당위성을 전제하고 있다.

셋째, 우리나라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지나친 마리아 신심이다. 평신도 특히 장년, 노년 중에 퍼져 있는 마리아 신심이 때때로 지나쳐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치하고 있는 상황도 자주 있는 실정, 묵주기도가 우리나라에서 압도적인 기도가 되었고 어느 성당이든지 가장 두드러지는 중심자리에 성모상을 모시고 공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모성월이 단연 돋보이고 있고, 어느 본당 할 것 없이 레지오 마리애가 가장 대표적인 신심단체로 자리잡고 있다. 지나친 마리아 신심은 개신교 일부 교파로부터 가톨릭 교회를 ‘마리아교’로 오해를 받고 있기까지 한 실정이다.

넷째,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지만 마리아에 대한 지나친 무시태도도 문제이다. 앞으로 고찰하겠지만 마리아는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에 정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마리아에 대한 지나친 신심에 대한 역반응으로 오히려 마리아에 대한 의식적인 무시나 무관심의 태도도 있을 수 있다. 특별히 마리아에 대한 전통적 신심이 퇴조하고 있는 남미에서는 그로 인한 공백이 정치적, 사회적 이데올로기들로 대치되고 있다.

마리아에 대한 신학적 정당성, 신앙의 균형에 대한 이해와 가르침은 우리의 몫이라 하겠다. / 대구교구 정황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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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서에서의 마리아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서술되어 있는 마리아에 관한 전승의 대부분은 마리아를 섬긴 신심에 근거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일부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마리아에 대한 돈독한 신심을 지녔던 루가, 요한 복음사가와 사도행전 저자의 영향으로 개신교를 제외한 그리스도교(로마 가톨릭, 동방교회, 성공회 등)에서 마리아 신심이 발전되었다.

2.1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사료

마리아에 관한 보고들 가운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신빙성 있는 사료들은 다음 세 단락이다.

1) 마르 6,1-6

객지에서 활동하던 예수는 한 번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다. 예수의 설교 내용이 대단히 파격적인 것에 놀란 고향 사람들이 빈정대고 있다. “...그런 모든 것이 어디서 생겨났을까? 저 사람은 목수가 아닌가? 그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다 우리와 같이 여기 살고 있지 않은가?...(6,2-3)” 평소에 자기들과 똑같이 살던 예수가 객지 물을 좀 먹고 오더니 너무나 변한 모습에 보인 고향 사람들의 반응이다.

첫째, 이스라엘 관행에 따르면, ‘요셉의 아들 아닌가’하고 물었어야 하는데도 그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로 보고 있는 것이 뜻밖이다. 아마도 요셉은 오래 전에 타계하여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듯하다.

둘째, 예수에게 남자 형제 넷과 누이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형제, 자매들이라 하면 친형제 자매들을 뜻하기도 하고 친척 형제 자매를 뜻하기도 했다. 개신교에서는 이들을 친형제 자매로 이해하는 반면 가톨릭에서는 친척 형제 자매로 알아듣고 있다. 아마도 마리아의 동정성을 믿어온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마리아의 평생 동정 신조가 없었다면 친 형제자매로 이해하는 것이 다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2) 마르 3,20-21 ; 31-35

세례 이후 예수는 정처 없이 하늘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하고 다녔다. 그러자 친족들은 예수를 정신병자 취급을 하고 예수를 붙잡아 강제로라도 고향으로 데려오고자 했다.(3,21)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를 찾아왔다는 말을 듣자 예수는 매정하게도 쏘아붙이고 있다.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입니까” 그러고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다”(3,34-35)하고 말한다. 순 인간적인 차원으로 본다면 아무래도 예수는 효자 축에는 들지 못했다. 예수의 말은, 혈연관계보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 갖는 영적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혈연 가족보다 영적 가족을 주목한 것이 예수의 의도로 보여진다.

3) 루가 11,27-28

예수의 설교에 감복한 어느 부인이 큰 소리로 “당신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11,27)하자 예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대답한다. 낳아주고 길러준 생모가 즉시 복된 것이 아니다. 이 예수의 말로 미루어보아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 축에 들지 못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역사 안에서의 마리아를 정직하게 살펴보면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고, 아들은 어머니를 멀리했다고 할 수 있다.

2.2 신심을 토대로 한 사료

성서 저자들의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분명 마리아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그리스도인들의 절대 다수는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 예수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있다. 신심을 토대로 한 사료 가운데 주요한 것들은 다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동정 잉태 (마태 1,18-35 ; 루가 1,26-38)

오늘날 동정녀 잉태 신앙에 대해 역사적 사실로 보는 견해와 그리스도 신앙에 근거한 견해가 맞서 있다.

동정녀 잉태신앙의 의미는 분명하다. 그것은 결코 마리아의 특별한 능력을 다루는 마리아론이 아니라 예수가 메시아요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하는 그리스도론이라는 것이다. 예수 신원의 특별성은 예수의 잉태도 특별할 수밖에 없다는 신학논리가 동정녀 잉태 이야기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예수 이전의 이스라엘의 뛰어난 사람들의 잉태도 특별한 면모가 있었다. 이사악의 어머니 사래(창세 11,30 ; 17,17 ; 18,11-14)는 석녀에다가 잉태하기에는 나이가 많았고, 야곱과 에사오의 어머니 리브가(창세 25,21)도 석녀였고,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도 석녀인데다가 나이도 많았음(루가 1,7.36)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로 잉태되는 데에야 더더욱 하느님의 지극한 섭리를 상정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루가 1,35 ; 마태 1,18.20) 동정녀가 잉태하고 출산했다는 내용이다. 이 사화는 동정녀가 메시아를 잉태하고 출산하리라는 구약의 예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 7,14)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대목에 유의했다.(마태 1,23 :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예언이 마리아가 동정녀로서 예수를 잉태했다는 신앙을 싹트게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것이 주요한 견해이다.

따라서 임마누엘 메시아 예수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확고한 신앙이었다. 루가 복음저자는 이 사화 말미에서 마리아를 돈독한 신앙인으로 묘사,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

루가는 전사(前史, 1-2장)에서 동정 잉태(1,26-38)말고도 엘리사벳 방문이야기(1,39-45), 마리아의 노래(1,46-55 마니피캇), 예수 성탄이야기(2,1-21), 예수 아기 봉헌(2,22-38)과 소년 예수의 성전 순례(2,41-52)를 다루고 있다.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돈독했던 루가는 이러한 사화를 통해 마리아의 두 가지 성품을 강조하고자 했다.

첫째로, 마리아는 뜻밖의 일을 겪을 때마다 함부로 속단하지 않고 그 일을 마음 속에 고이고이 간직하고 곰곰이 생각하는 사려 깊은 분이라는 것이다.(1,29 ; 2,19.51)

둘째로, 마리아는 하느님 말씀이라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조차도 믿으시니(1,38.45), 마리아야말로 신앙인들의 귀감이다.

2) 가나의 혼인잔치(요한 2,1-11)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는 요한 복음사가가 당시 기적 이야기를 모아 놓은 ‘표징출전’에서 7가지 이야기를 복음서에 옮겨 썼는데 그 가운데서 첫 번째 이야기다. 그 가운데 “부인, 제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2,4)라는 부분은 표징출전에는 없는 것을 복음서 저자가 덧붙인 것이다.

우선, 이스라엘 문화권 내에서 아들이 친어머니를 보고 부인이라고 부르는 법은 없다. 여기서 ‘부인’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상징이라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따라서 예수는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죽음과 부활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때가 되기 전에, 이스라엘이 예수에게 구원을 강요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다음, “제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는 말.

예수는 죽음과 부활로써 이스라엘을 구원할 때를 생각하는데 비해 이스라엘은 당장 포도주를 구할 생각만 한다. 초자연적 예수와 자연적인 이스라엘간에 서로의 관심과 관점이 다르다.

그 다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요한 복음저자에게 예수의 때는 죽음과 부활이었다. 아직, 구원의 결정적인 시간이 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3) 십자가 아래에 선 마리아(요한 19,25-27)

공관복음서에 따르면 마리아도 요한도 십자가 아래에 없지만 요한 복음 저자는 마리아와 요한이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의 죽음을 지켜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는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자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했지만, 이제는 당신의 때가 온 것을 알고(13,1) 십자가 위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마리아께 교회를 상징하는 요한의 어머니가 되는 지위를 부여한다. 마리아와 요한이 이 이스라엘과 교회로 상징되고 있다.

4) 초대 공동체(사도 1,12-14)

예수가 승천한 다음 사도들은 공동체를 이루며 성령 강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부인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형제들도 함께 있었다”(1,14)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셨나? 정답은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교회 창립 후 마리아는 곧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도행전이나 사도들의 편지에도, 교부들의 글에도 마리아에 대한 사실적 행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추론이다.

2.3 성서적 고찰의 결론

마리아에 대한 성서 저자들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늦게 각성되었다. 늦게 작성된 성서(90년 이후)들이 비로소 마리아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그 진술은 대단히 담담하고 간략하다. 우리는 다음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첫째, 마리아에 대한 성서 저자들의 첫 번째 관심은 그리스도론이다. 그리스도가 복음 선포의 절대적 중심이고 마리아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주변인물일 뿐이다. 마리아는 예수 때문에, 예수 안에서 구세사의 일정한 기능, 직무를 담당한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와 가장 가까운 인물이었다.

둘째, 마리아에 대한 성서 저자들의 두 번째 관심은 교회론이었다. 성서저술은 전기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복음선포(Kerygma)를 지향하고 있다. 마리아는 그리스인으로서의 탁월한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 특별히 마리아는 구원을 이루는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마리아는 구원의 도구인 교회에 하나의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교회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교회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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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리아론 발전

3.1 교부시대

교부들은 성서를 토대로 마리아가 지닌 의미를 밝히기 시작한다. 유스티노(†163)와 이레네오(†202)는 마리아를 하와와 대비시키고 있다. 하와를 통해서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해선 삶이 왔다는 것이다. (“하와의 불순명의 매듭은 마리아의 순명을 통해서 풀어졌다. 하와가 불신앙을 통해서 얽어맨 것을 동정녀 마리아가 신앙을 통해서 풀어낸 것이다”(이레네오)

특히 이레네오는 마리아를 교회와 연관시켜 마리아를 교회의 원형으로, 교회의 예형(Typus)으로 고찰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특히 제2정전(Apocrypha)을 간과할 수 없는데, 제2정전은 예수 생애에 관한 수많은 기록들이 담겨 있고,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도 풍부하다. 이 사화들은 완전히 상상력을 동원해서 꾸민 예기라 할 수 있는 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교 민중신심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예컨대 마리아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의 이름과 행적, 동정잉태설화, 성전에서의 봉헌설화 등도 이러한 설화를 토대로 성서에 유입되었던 것이다.

3C는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찰. 예수 탄생의 비정상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예수의 온전한 인간성에 손상을 줄 위협 때문에 처음에는 떼르뚤리아노(†220), 오리게네스(†253), 히에로니무스(347-419) 등은 동정성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 그러나 서방교회는 암브로시우스(†397), 아우구스띠노(354-430)등, 동방교회에서는 요한 크리소스또모(350-407), 시리아의 에프렘(†373)등이 영원한 동정성 관철시킴.

4C.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모친(Theotokos)*[주석 : 마리아가 참으로 어머니라면 전인으로서의 어머니지 육신만의 어머니가 아니다. 그런데 예수는 동시에 불가분적으로 신이며 인간이다.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이기에 하느님의 어머니로 지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리아가 참으로 어머니라면 전인으로서의 어머니지 육신만의 어머니가 아니다. 그런데 예수는 동시에 불가분적으로 신이며 인간이다.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이기에 하느님의 어머니로 지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라는 칭호 부여, 이와 함께 마리아 신심이 융성하게 된다. 마리아를 주보로 하는 교회들이 건립.

5C까지는 마리아가 불완전성을 지닌 인간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암브로시우스(339-397)와 아우구스띠노를 통해 마리아의 성성과 무죄성이 서방교회에서 관철되어 오랜 논쟁을 거친 끝에 동방교회에서도 관철.

4C 말에 마리아의 임종에 관한 신학적 사유가 처음 전개. 그러나 이 문제는 그렇게 절박한 문제가 아니었다. 5세기에 와서 마리아 축일이 등장(8월 15일- 천주의 모친의 날)

8C 마리아의 승천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 이 말은 마리아의 영육이 동시에 하느님께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신앙 표현.

→ 교부시대 특징 : 그리스도의 강생이라는 신비를 중심으로 마리아가 차지하고 있는 의미가 발견되고 구세사적 전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

3.2 중세

중세에 구원역사에서 마리아의 역할이 더욱 크게 부각.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반려자로 부각. 이와 함께 마리아의 인격과 생애에 대해 더욱 풍부히 고찰하려고 노력. 마리아가 입은 은총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짐. 이렇게 해서 강력한 마리아 신심이 광범위하게 때로는 지나치게 자리잡게 된다. ­­­ → 신앙 진리의 개인화, 감정적 내면화, 윤리화 초래. 중세 마리아에 관한 작품에는 마리아의 몸무게, 피부색, 머리카락, 눈빛까지 묘사.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

이러한 영향으로 13C 이후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마리아는 한결같이 단아하고 완벽한 미로를 갖춘 아가씨의 모습. 설교가들은 마리아의 눈물, 한숨, 고통에 대해 긴 한숨을 섞어가며 묘사.

12C 마리아의 기능을 십자가와 연결. 마리아가 골고타 언덕에서 참된 봉헌을 했다고 생각. -끌레르보의 Bernard(1090-1153)는 처음으로 마리아의 중재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스콜라 신학은 다시 마리아의 무원죄성을 다루고 있다. Tomas(1225-1274)는 무염시태를 부정하였으나 Duns Skotus(1266-1308)는 무염시태를 옹호.

3.3 종교개혁 시대

종교개혁 시대는 지나친 마리아 신심, 왜곡된 마리아 신심으로 마리아에 대한 본질이 많이 변질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자들은 마리아를 멀리해야한다는 계기를 찾지 못하였다. M. Luther(1483-1546)는 J. V. Calvin(1509-1564)과는 반대로 마리아 공경을 긍정적으로 고백하였다. 물론 루터도 마리아에 대한 남용과 왜곡을 비판, 교회 내에서 본질을 회복하려했다.

‘Confessio Augustana’(아욱스부르그 신조, 1530)의 변호론도 올바른 마리아 신심을 촉구하고 있다: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가 교회를 위해 전구한다해도 마리아가 죽음을 물리치고 사탄을 물리치고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다면 도대체 그리스도가 왜 필요한가? 마리아가 최고의 공경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기는 하나 그리스도와 같이 간주되려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마리아에 대한 과장된 가르침으로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밀어내고 그리스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3.4 근대

가톨릭과 대립과정에서 마리아에 대한 종교개혁가들의 거부감이 반마리아적 태도로 경직되었다. 이에 반동으로 가톨릭에서는 마리아 신심이 확대되었다. 특히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영향밖에 있던 나라에서.

신학 영역에서는 특히 마리아의 무원죄성이 논의되었고, 이와 함께 마리아를 여신 또는 삼위일체에서 비롯된 넷째 위격으로 보는 입장까지 등장하였다.

1854년 비오 9세(1846-1878)는 무염시태를 교의로 선포.

20C초 가톨릭 개혁운동의 하나로 마리아에 대한 재조명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이 운동은 주로 ①구원사업에서의 마리아의 중재성, ②마리아의 모성, ③공동구속자성 등 세 주재와 관련되었다. ․유일한 중재자를 위하여 함께 일했다는 의미에서 마리아가 중재자요, 공동의 구속자라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인류를 위한 대표라는 의미에서 마리아를 인류의 모친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오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구속자, 중재자라는 말은 완전한 의미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해당된다. 따라서 어떤 경우라도 마리아를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하게 세우려는 시도는 배격되어야 마땅하다. 교황 비오 12세는 열렬한 마리아 신심의 소유자였다. 이때 마리아 연구가 교황의 주도 하에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1950년에 성모 승천 교의를 선포하였다.

3.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과거의 마리아에 대한 과장으로부터 보다 성서적이고 교부학적으로 마리아를 고찰하여 마리아가 가진 본래의 구세사적 기능을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마리아론의 역사는 이중적이다.

① 신약성서에 토대를 둔 객관적 성찰
② 상상력이 동원된 과장과 감정적 태도와 행동

교회는 개혁을 필요로 한다는 명제는 다른 어떤 부분보다 마리아론에서 절박하다.
교회헌장 8장은 이제까지 교회가 편찬한 마리아에 관한 가장 완벽하고 권위있는 가르침을 종합하고 있다.

첫째, 마리아는 자유로운 신앙과 순명으로 인류 구원에 협력하신다. 성부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성자의 인격과 활동에 헌신과 순종을 다했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하느님의 계획이 실현되었으니 마리아는 성령의 궁전이다. 마리아에 대한 신앙은 그리스도 중심이 되어야 한다.

둘째, 마리아는 하느님의 모친이면서 그리스도의 모친이다. 또한 은총의 질서 안에서 우리의 모친도 된다.

셋째, 유일무이한 중재자는 오직 그리스도뿐이시다. 그러나 첫째, 그리스도의 협력자로서, 둘째, 모든 사람을 위한 배려를 통해 마리아도 중재적 역할에 참여하게 된다.
넷째, 마리아는 교회의 원형이시다. 마리아는 동정성과 모성이라는 신비를 통해 교회의 원형이 된다.

다섯째, 마리아는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의 희망이며 위로이다.

공의회 이후 성서주석은 마리아론에 대한 성서적 기초를 보완해 주었고 주제를 다양하게 해 주었다. 교의신학은 본격적으로 마리아론을 풍부하게 전개시켰다. 특히 인간학과의 연결은 마리아에 대한 이해를 고취시켰다. 이 무렵에 발표된 사도적 권고 ‘마리아 공경’과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는 마리아론에 대한 재각성에 공헌하였다.

그러나 공의회 이후 얼마동안 마리아론에 대한 갑작스런 퇴조가 있었다. 마리아에 관한 교리가 교회일치에 불필요한 장애물이 되고 있지나 않는가 하는 반성과 그와 같은 교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방향을 위협하지나 않는가 하는 우려가 그 원인이었다. 즉 그리스도가 아니라 마리아를 바라보는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는데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리아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처음부터 신앙의 형평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었다면 오늘날 마리아에 대한 정당한 이해는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오늘날 성령과 마리아, 마리아와 토착화, 마리아 신심, 발현과 사적계시 등등의 새로운 관점이 대두되고 이 모든 관점의 중심은 언제나 그리스도이어야 한다. “마리아의 신비는 오직 그리스의 신비 안에서만 온전히 밝혀진다”(구세주의 어머니, 4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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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학적 반성

마리아에 대한 가톨릭 교의신학의 가장 중요한 정식은 다음 다섯 가지이다.

①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 ② 마리아는 하느님의 모친 ③ 마리아는 처음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았고 평생을 죄 없이 살았다. ④ 마리아는 승천하셨다. ⑤ 마리아는 인류를 위한 중재자요 전구자

4.1.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마리아 평생 동정 신앙은 문헌상으로 150년경에 씌어진 ‘야고보의 원복음서’에 처음 등장한다. 예수 출산 이후에도 마리아는 평생 동정으로 사셨다는 신앙이 교부들로부터 정착되기 시작했다. Origenes(185-254),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PetrusⅠ(†311), Athanasius(296-373), 니싸의 Gregorius(335-395), 프랑스 프와티에의 Hilarius(315-367), 콘스탄티노플의 Johannes Chrysostomus(374-407), 시리아의 Ephram(†373) 및 Hippo의 Augustinus(354-430) 등.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라는 표현을 썼다.

“누가 하느님의 출생이 … 영원한 동정녀이신 마리아로부터 육화 되었다고 고백하지 않으면 파문이다”(DS 422). “누가 …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가 참된 의미가 아니라거나 하느님을 나으신 분이 아니라고 하면 … 파문이다”(DS 427).

동정잉태 및 출산의 신학적 테마는 대단히 복잡하기 때문에 여기서 다룰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우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자연과학적 입장에서 볼 때 고등 생명체의 동정녀 잉태 및 출산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동정녀 잉태 및 출산에 대한 신조는 자연과학적 지반 위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수단이 사용되어야 한다.

이 신조는 세계가 인격적 창조주 하느님의 피조물이라는 전제 하에서만 받아들여 질 수 있다. 하느님은 하시고자 하신다면 인간의 성행위를 통하지 않고 얼마든지 한 처녀의 자궁을 열 수 있다. 우리는 마리아 동정성의 불가피한 동기를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다. 마리아의 동정성은 계시 메시지의 진리라 할 수 있다. 이 진리의 유일한 근거는 이러한 양식으로 작용하는 하느님의 절대적 의지이다.

동정교의의 핵심은 모든 생명의 창조주요 원천이신 성부가 예수의 실존의 유일한 기반이라는 사실이다. 동정녀 출산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시작의 표징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고 있다. 구원은 성부가 성령을 통하여 동정녀의 자궁을 열어서 성자 안에서 실현되도록 한 것이다(치유 기적사화 - 부활 - 다 같은 맥락이다).

4.2.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마리아에게 드린 지극한 존칭이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 하느님을 낳으신 분)’였다. 문헌상으로 이 말은 Hippolytus(170-236), Origenes(185-254)의 저작들에서 처음 등장한다. 4C에 이 용어는 동방교회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대체로 Alexandria신학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특히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였던 Nestorius(†451)는 마리아가 오직 인간 예수만을 낳았기 때문에 인간 예수의 어머니는 될 수 있어도 신 예수의 어머니는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분리하는 Antiochia 신학파 사상). 굳이 부르자면 ‘그리스도의 어머니(Christokos)’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에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Cyrillus(†444)는 마리아가 비록 인간 예수만 낳았다 하더라도 예수에게서 인성과 신성은 분리할 수 없는 한 위격으로 결합되어 있기에 마리아는 하느님 예수의 어머니, 즉 하느님의 어머니도 된다고 주장하였다(예수의 신성과 인성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위격으로 결합).

431년에 소집된 Ephesus 공의회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하고 Nestorius와 그 추종자들을 단죄하였다. 네스토리우스는 직위 해제 당하고 이집트 남부로 유배, 사망하였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모친이 될 것을 수락한 “예”라는 응답은 구세사적 의미를 가진다. 이 말은 단순한 출산 원리 이상의 것을 말하고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 편으로 들어가 거룩하게 되었고 이것은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것이다(구원의 교회적 구조). 마리아의 수락 행위는 교회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마리아 안에서 신자들의 무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수락했고 하느님의 구원에 참여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마리아는 교회의 원형이며 교회에 대한 마리아의 모성의 의미가 드러난다. 이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호칭한 에페소 공의회 결정 이후 교회 내에 마리아 신심과 신학은 폭발적으로 증가, 발전하게 되었다.

4.3. 무염시태와 지속적인 무죄성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마리아가 평생 죄를 지으신 일이 없다는 교의를 선포하였다. “거룩하고 죄에 물들지 않은 동정녀요 하느님의 모친이신 마리아”(DS 1516).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는 교서 ‘무량하신 하느님(Ineffabilis Deus)’에서 성모무염시태 교의를 선포했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잉태되신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안에서 전능하신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은총과 배려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보존되었다”(DS 1516). 동방교회에서는 성모무염시태 교의를 배척한다.

교서는 또한 마리아가 지속적으로 모든 죄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천명한다: “마리아는 … 언제나 모든 죄로부터 해방되어 … 순수하고 거룩하신 분이다”(DS 2800).

마리아는 잉태될 때부터 죽기까지 원죄와 모든 죄에 물들지 않고 깨끗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이 교의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즉시 이런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처음부터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예외적인 사람이었나?

이러한 그리스도의 구원의 보편성에 대한 문제에 대해 가톨릭 신학은 무죄성과 구원의 필요성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리아도 다른 모든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인간이었으나 하느님의 은총의 힘으로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마리아가 원죄에 물들지 않고 깨끗한 인간이었다는 것은 한 분이요 유일한 중재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교의에서 가능한 신앙신조라 할 수 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위한 깨끗한 자리였다. 여기서도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다.

4.4. 마리아의 승천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는 성모승천교의를 선포하였다. “원죄 없으시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지상의 삶을 마치신 다음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 영광으로 들어 올려지셨다. 동방교회는 이 교리도 배척한다(마리아의 승천을 성모 蒙召昇天이라 한다. 받을 몽, 부를 소, 곧 부르심을 받은 승천, 하늘에 오르심이라 할 수 있다).
6세기 이전까지는 마리아의 승천에 대한 전통적인 자각이 없었다. 그 이후 마리아의 현양 문제는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남달랐던 교황 비오 12세는 마리아 승천을 교의로 관철시켰다. 우선 ‘승천’이란 표현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마리아의 승천을 그리스도의 승천과 같은 선상으로 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들어올려 지셨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승천과 구별된다. 또한 들어올려진다는 표현도 주의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천국에 대한 장소개념의 오해를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전제로 하고, 이 교의의 핵심 의도는 마리아가 자신의 구세사적 목표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과 일치를 말한다. 다시 말해 마리아는 구원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지향하는 목표는 개인만이 아니라 전 인류의 목표요 교회의 목표인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의 승천, 곧 마리아에게 이루어진 구원은 교회의 커다란 보증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도 마리아의 몽소승천은 교회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4.5. 인류를 위한 중재자

마리아가 하느님과 인류를 위한 중재역할을 한다는 사상은 끌레르보의 베르나르도(1090 -1153)에 의해 개발되었다. 마리아는 교회를 위해 끊임없이 전구하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에게 은총을 전해주는 통로와 같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가톨릭 개혁 운동 안의 마리아에 대한 탐구는 마리아의 중재성을 새롭게 조명했다. 마리아는 전적인 순명으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함께 구속사업에 협력했다는 의미에서 ‘중재자’ 또는 ‘공동 구세주’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구세주 또는 중재자라는 명칭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해당된다. 마리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이미 마리아를 종종 그리스도와 동등하게 생각했던 오해를 초래하였다. 이렇게 해서 마리아에 대한 과장이 계속되었다. 마리아가 으뜸이신 그리스도 다음가는 으뜸이라고 하였고, 마리아를 위한 으뜸가는 은총이 따로 있었다는 주장 등이 성서적 근거 없이 난무하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비오 12세의 성모승천 교의가 선포되었고 마리아 신심은 최고조를 이루게되었다. 교황 요한 23세는 마리아 공경의 과도함을 바로 잡으려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한 발짝 더 나아가 마리아에게 부여되었던 개념을 요셉에게도 적용하여 ‘원죄에 물들지 않은 요셉’을 공경하려 하였고 이를 교의로 선포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가운데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최되었고 과도한 마리아 열기는 공의회 주역들에 의해 진정되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를 변호자, 보조자, 협조자, 중재자로 부른다. 그러나 이러한 명칭은 유일한 중재자인 그리스도의 지위를 조금도 침해하지 않는 종속적인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재직에 협력한 마리아의 종속적 중재 역할로서 이러한 모성적 보호로 신자들이 더욱 그리스도와 깊이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이다(교회헌장 62).

마리아 교의의 연대표

431 에페소 공의회 - 하느님의 어머니
553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1854 교서 무량하신 하느님 - 무염시태, 지속적 무죄
1950 사도적 헌장 관후하신 하느님 - 성모몽소승천
1964 제2차 바티칸 공의회 - 인류의 중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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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 96.8%
5. 해석학적 반성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에 대한 탐구에 균형을 찾고 있다. 그러나 공의회 이후 얼마 동안 마리아에 대한 갑작스런 퇴조가 있었다. 마리에 관한 교리가 교회일치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마리아에 대한 과도한 신심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왜곡시킬 수 있는 위험 때문이었다.

그러나 초대교회 때부터 마리아가 구원사업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정당했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전체 맥락에서 한 요소가 되어왔다면, 오늘날 마리아에 대한 인식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마리아에 대한 전통적 신심이 퇴조하고 있는 남미에서는 그로 인한 공백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와 함께 오늘날 성령과 마리아, 마리아와 토착화, 마리아 신심 등등의 새로운 주제들이 대두되고 있다.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균형을 위해서 마리아는 여전히 신학적 정당성을 가진다.

첫째, 마리아에 대한 고찰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직접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 마리아에 대한 정당한 자리를 인정할 때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론에 굳건히 뿌리박을 수 있다.

둘째, 마리아는 주님의 어머니가 되는 그 인격을 통해 하느님의 옛 백성과 새 백성을, 이스라엘과 교회를 떨어질 수 없게 하나로 묶어주고 있다. 말하자면 마리아는 연결고리이다. 이 연결고리를 통해 구약과 신약은 균형을 찾을 수 있고 마리아 안에서 성서 전체에 충실할 수 있다.

셋째, 마리아에 대한 균형있는 인식은 우리 신앙생활에 필수 불가결한 이성뿐 아니라 감성을 깨닫게 한다. 머리는 냉철하게 성찰해야 하지만 가슴은 따뜻해야 한다. 마리아는 신앙에 완전한 인간적 차원을 보여준다.

넷째, 마리아는 동정이요 동시에 어머니이신 자신의 운명으로 하느님께서 모든 여성들을 위해 계획하신 일들에 계속 빛을 던져주고 잇다. 마리아의 동정과 모성을 통해 여성의 신비는 여성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는 아주 귀한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다섯째, 마리아는 교회의 모습이자 표상이며 모델이다. 마리아를 바라봄으로써 교회는 자신을 제도로서의 경직화나 사회, 정치적 도구로서의 고착화로부터 방어할 수 있다. 마리아 안에서 교회는 어머니로서의 고유한 모성을 재발견하고 그로써 한낱 복잡한 조직의 단체로 타락하지 않을 있게 된다.

1. 마리아의 무염시태와 지속적인 무죄성

무염시태

마리아는 원죄에서 완전하게 보호되었는가? 아니면 마리아 역시 이에 오염되었다가 예수 탄생 전에 당신 성자의 은총으로 깨끗해졌는가?

이러한 물음들은 교부시대에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마침내 이 문제들은 1854년 비오 9세의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이란 회칙으로 인해 종결되었는데, 마리아의 특권은 당신 생명의 시초부터 풍성했으며 마리아는 모든 죄, 심지어는 원죄에서까지 깨끗이 보호되었다고 주장한 둔스 스코투스의 주장을 받아들여 비오 9세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자기의 잉태 첫 순간부터 전능하신 하느님의 은총과 특권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예견된 공로에 힘입어 원죄의 아무 흔적도 받지 않도록 보호되었음”을 선포하였다. 이는 하느님의 전능성과 하느님의 무한함, 하느님의 선택의 정당성,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의 적합성,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중재 능력의 위대성, 하느님의 은총을 보존한 성실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영광, 은총을 받은 인간, 구원받는 인간의 미래적 모습을 선취적 성취로서 이 교의의 정당성을 말하고 있다.

지속적인 무죄성

마리아는 “잉태되시는 첫 순간부터 특수한 성덕의 빛으로 꾸며졌다”(교회 56항). 온전히 거룩하신 마리아는 분명히 죄에서 면죄되셨다. 왜냐하면 죄란 항상 하느님을 부인하거나 배반하는 행위를 뜻하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을 결코 떠나지 않으셨다.

또한 마리아는 “은총이 가득하신 분”으로서 ‘은총의 충만’이란 계속 죄 없이 완전하다는 또 다른 표현이다. 마리아는 가장 충만한 은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은총을 입게 된다.

2. 마리아의 승천

이 교의는 초대 교회 때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337년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오에게서 처음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 후로 많은 교부들이나 신학자들은 이 교의를 계속적으로 주장하였다.

대표적으로 신학자 휠로그라씨(G.Filograssi)는 마리아의 신적 모성, 완전한 동정성, 온전한 성성, 무죄한 잉태,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내밀한 일치를 그 전거로 하여 승천신앙을 교의로 선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이에 교황 비오 12세는 여러 사람들의 자문을 통해 1950년 11월 1일에 마리아 승천을 교의로 선포(Munificentissmus Deus)하였다.

마리아의 승천은 예수의 승천과는 구별된다. 즉 마리아의 승천은 assumptio(올림을 받음)이라는 말로 표현을 하고 예수의 승천은 ascensio(상승, 오름, 올라감)으로 표현을 한다. 예수의 승천은 능동적인 표현인데 반해 마리아의 승천은 수동적인 것으로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것’이다. 즉 마리아가 구원에 이르렀다는 것, 한 인간이 하느님께 온전히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한다.

칼 라너에 의하면, 마리아 승천은 마리아가 근원적으로 구원받은 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고성소에 내리신 것은 예수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죽은 자들에 관계되는 구원사적 의의를 갖고 있다. 영광 중에 몸채 부활한 그리스도는 육신을 가졌고 부활되는 구원 공동체의 시작이다. 마리아도 완전무결하게 구원되신 분으로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 구원사실의 완성이다.”

그러므로 마리아 승천 교의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 행위의 완성이며 은총의 완성이며,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이라고 믿는바가 우리에게 이루어지도록 희망하는 것이다.

3. 인류를 위한 중재자이신 마리아

▶ 모순?
1) 그리스도는 유일한 ‘중재자’이다.
2) 마리아는 ‘중재자’이다.

▶ 의미구분.
- 마리아를 ‘중재자’라 말할 때, 그 ‘중재성’은 그리스도처럼 유일하고 절대적인 중재성을 뜻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중재에 종속되는 의미로 ‘중재성’이다. 전구자로서의 중재성이다. 이러한 중재적 역할은 교회 내에서 낯설지 않다. 교회는 이미 신앙 안에서 ‘성인들의 통공, 전구로서의 중재역할’을 알고 있다. 마리아의 중재적 역할은 구세사적 견지에서 그 어떤 성인보다 중요한 것이었으며, 지금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결론!
1) 그리스도는 유일한 ‘중재자’이다. 2) 마리아는 ‘중재자’이다. 라는 두 가지 명제는 서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해했을 때, 오히려 서로의 의미를 더 풍성하게 해준다. 마리아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은 애매하고 잘못 이해할 경우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종속적인 전구자”로서의 시각만 흐트리지 않는다면, 마리아의 중재성은 교회의 더없이 값진 선물이 된다.

- 그리스도의 ‘중재’와 마리아의 ‘중재’는 다르다.

문제: 마리아의 중재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그리스도의 중재성에 대해서 까지도 침범을 하고 있다. 니체아의 테오파네스는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께로 갈 수 없다”고 말한다.

마리아의 중재문제는 비오 9세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 1854. 12.8)칙서를 기점으로 더욱 빈번하게 등장하게 되었고 20세기 교회개혁 운동의 영향으로 마리아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삽입되었다.

그 중 교회헌장 8장(60과 62항)에서 마리아의 중재성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다. 공의회는 바오로의 가르침에 따라 단일하고 유일한 ‘중재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고 확인하고 마리아를 중재자라고 부르는 것을 매우 조심스럽게 여긴다. 여기에서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곧 마리아의 ‘중재역할’이라는 의미이다. 마리아의 중재역할의 특성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의미로 드러나는데 곧 마리아의 역할은 스스로의 필연성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얻어진 것이므로 그리스도께 종속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것은 그리스도의 중재성을 흐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마리아는 중재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수 있는 문헌은 바로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반포된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1986.3.25)이다. 여기서 말하는 중재자로서의 마리아는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종속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은총의 분배자로서의 마리아의 중재는 구원에 반드시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참고: ①(예수 그리스도의 중재성) 중재자라는 말은 사실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결정적으로 화해시켜준 그리스도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강생을 통해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셨으며’, 또한 ‘거룩한 신성’을 지니고 계신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십자가상의 희생제사를 통해 온 인류를 구속해 내셨다.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중재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온전한 인간이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느님이셨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께 ‘오직 하나뿐인 유일한 중재자’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② 다른 시도: 이것은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올바른 자리 매김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반복하는 바라 의심할 수 없는 신앙의 진리임을 상기한다면, 또 하느님과 그의 성인들의 거룩한 공동체 안에 성인들에 대한 우리의 공경과 기원이 있고, 우리를 위한 성인들의 전구가 있다고 말한다면, 가장 복된 동정녀의 중재에 대한 교의는 우리가 믿는 바에 대한 우리의 의식 안에서 우리에게 이미 상당히 친숙한 교의이다“라고 말한 칼 라너의 말대로 처음부터 일반적인 의미의 중재성 개념으로 자리 매김 한다면 어떠한 혼동도 없을 것이다.

4. 마리아와 발현

특성: 성모님이 발현한 장소는 대부분이 고립된 지역이거나 불모의 지역이며 그 목격자들은 어린이와 같은 단순한고 소박한 사람들이다.

메시지의 공통점: 성모님의 메시지에는 공통된 주제가 있다. 즉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기를, 죄를 더 이상 짓지 말기를, 지은 죄에 대해 보속하기를 권고하신다. 특히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기를 원하시며, 주일을 거룩히 지낼 것을 당부하신다. 메시지들은 다양한 형태로 주어졌지만 성모님의 요구들은 항상 동일하였다. 성모님은 우리에게 기도와 참회할 것을 거듭 요청하신다.

교회의 판별: 교회는 먼저 ‘왜 마리아가 발현하였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그 발현은 그리스도에 의해 계시된 차원과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고 객관적인 발현과 주관적인 착시를 구별한다. 그리고 발현 목격자의 건강 상태도 헤아린다.
이러한 것들을 기준으로 해서 발현의 진실성을 판단한다.

성모님의 발현 문제에 있어서 가장 먼저 생각하여야 할 것은 성모님이 왜 발현하시는가?라는 것이다. 즉 그 메시지가 어떤 것인가라는 말이다. 발현을 통해서 전달되는 메시지의 궁극적인 초점은 인류의 구원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특정 개인을 지향하기보다는 교회 공동체의 선익을 위한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앙은 기적 현상에 연연해하는 신앙이 아니라 종말을 지향하는 신앙이기에 이러한 발현의 메시지보다는 거기에 따르는 기적들과 여러 현상들에 얽매이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5. 레지오 마리애와 기초 공동체

① 레지오 마리애

역사: 레지오 마리애는 아일랜드 프랭크 더프에 의해서 1921년 9월 7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1953년 5월 31일에 당시 광주 지목구장인 골롬반회 소속 현 하롤드 주교가 토마스 모란 신부와 원 요한 신부의 레지오 마리애 도입에 동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대구는 1957년 2월 4일에 계산 성당에서 ‘다윗의 탑’이 발족되면서 시작되었다.

정의: 레지오 마리애는 라틴어로서 ‘마리아의 군단’이라는 뜻으로 고대 로마군단의 형태로 조직(쁘레시디움→꾸리아→꼬미시움→레지아→세나뚜스→꼰칠리움 레지오니스 마리애)되었고 그 명칭 또한 거기서 따온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의 신심을 본받아 개인의 성화를 이룸으로써 자신의 냉담을 막을 뿐 아니라 사제직과 왕직과 예언직의 수행을 통하여 선교활동을 펼치고 현세에서 그리스도 왕국을 건설하려는 평신도 사제직 단체이다.

목적: 레지오의 목적은 단원의 개인 성화를 도모하고 교회의 지도 하에 마리아와 교회 사업에 기도와 적극적인 협력을 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데 있다.

② 레지오 마리애와 기초 공동체

기초 공동체는 교회구조의 문제이고 레지오 마리애는 신심 단체이다.

행사중심의 사목, 형식적인 전례로 인한 영성의 약화, 권위주의와 본당, 교구, 단체의 집단 이기주의가 표면화되어 있는 교회의 현 실상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삶의 현장 교회인 기초공동체와 그 생활로 교회의 본 모습을 되살릴 수 있고 현 교회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기초 공동체 운동이 활발히 피어나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은 문제이다. 왜냐하면 ‘레지오 마리애와의 관계와 역할 설정’이라는 걸림돌이 있기 때문이다. 이 역할 설정이 제대로 안되면 기초 공동체 운동은 실패할 것이다.

그래서 우선은 기초 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를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이 구별을 통해 레지오 마리애의 특수한 기능이나 카리스마를 공동체 안으로 통합 시켜나가야 한다. 기초 공동체는 교회활동의 일반적인 일을, 레지오 마리애는 기초공동체가 할 수 없는 전문적이고 큰 일을 해야 한다. 즉 기초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는 상호 보완 협력 관계이어야 한다.

* 공동체와 단체의 차이점

공동체
목적 : 보편적 / 존속기간 : 항구적 / 구성원 : 다양 / 친교의 범위 : 울타리 없는 우정

단체
목적 : 특수 / 존속기간 : 일시적 / 구성원 : 획일 / 친교의 범위 : 한정된 친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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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레지오의 활동보고 절차  [2]  배기현 05.12.14 4138
19   연차 총친목회에 관해서요.  [1]  coolh5029 05.11.21 2518
18   마리아와 요셉이 동정을 지킨 이유    05.02.27 2641
17   성모 마리아 승천 대축일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04.10.06 2404
  마리아론 : 교회의 전형인 마리아  [4]   04.09.29 3056
15   마리아(Maria)라는 이름의 의미는?  [4]   04.07.17 2785
14   어떤 신학자들은 ‘성서의 저자는 동정녀 잉태가 역사적 사...    04.07.12 2149
13   마리아가 현대 여성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04.07.12 1364
12   마리아를 ‘새 하와’라고도 하던 데 무슨 뜻인가요?    04.07.12 1824
11   성모 발현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04.07.12 1492
10   성모님이 곳곳에서 자주 발현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04.07.12 1613
9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에서는 예수님보다 성모님을 더 사랑...  [2]   04.07.12 1898
8   왜 하느님께 직접 청하지 않고 성모님을 통해 기도하나요? ...    04.07.12 1757
7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스카풀라 나 기적의 메달을 하고 다니...  [2]   04.07.12 2456
6   성모상의 종류는 왜 그렇게 많은가요?    04.07.12 2738
5   개신교 신자들은 성모상을 우상 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답해...    04.07.12 1590
4   성모님에 대해서는 호칭도 많고 축일도 많은데 왜 그런가요?...    04.07.12 1468
3   마리아라는 이름은 어디서 비롯 된 것인가요?    04.07.12 1208
2   묵주기도는 반드시 묵주를 가지고 해야 합니까?    04.07.10 1506
1   축복 받지 않은 묵주로 기도하면 은사를 받지 못합니까?  [1]   04.07.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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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과 답변 코너 ( 성모 마리아에 관한 질문과 답변 코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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