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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디토 16세 교황의 발자취 : 평화신문
조회수 | 114
작성일 | 23.01.04
‘주님 포도밭의 겸손한 일꾼’ 베네딕토 16세, 하느님 곁으로

가톨릭교회의 큰 별이 졌다.

무신론과 세속주의에 맞서 ‘진리의 수호자’로 교회 가르침을 지키고 새로운 복음화에 앞장섰던 제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로마시각 12월 31일 오전 9시 34분(한국시각 오후 5시 34분) 바티칸 ‘교회의 어머니 수도원’에서 선종했다. 향년 95세. 이날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는 전임 교황의 선종을 알리는 조종(弔鐘)이 울려 퍼졌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숨을 다하기 6시간 전인 새벽 3시경 이탈리아어로 “주님,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교황이 마지막 사투를 벌이며 자신의 생애를 집약한 이 말을 할 때 의료진이 곁에 있었다.

교황은 재임 시절 미리 작성한 유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진실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교회는 모든 부족됨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그분의 몸”이라며 “믿음 안에 굳게 서야 한다”고 끝까지 주님을 따라야 하는 불변의 진리를 남겼다. 그러면서 “내가 어떤 식으로든 잘못한 모든 사람에게 온 마음을 다해 용서를 구한다”며 “주님께서 나의 모든 죄와 결점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거처로 나를 맞이해 주실 것”이라고 남겼다.

2005년 교황에 즉위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8년간 베드로 후계자로서 보편 교회를 이끌었으며, 2013년 스스로 사도좌에서 물러났다. 교황의 사임은 가톨릭교회 역사상 598년 만의 일로 전 세계 신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지만, 이후 전임 교황이자, 명예 교황(Pope Emeritus)으로서 10년 동안 수도원에 머물며 지상 교회를 위해 묵묵히 기도해왔다. 또 때마다 후임인 프란치스코 교황과 조우하고 추기경단과 인사를 나누며 영적 조력자 역할을 다했다.

교황청은 선종 이틀 뒤인 1월 2일부터 사흘간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에 고인을 안치하고, 전 세계 신자들이 고인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수많은 신자가 새해를 목전에 두고 전해진 전임 교황의 선종 소식을 접하고, 그를 추모하고자 첫날에만 조문객 6만여 명이 바티칸을 찾았다. 전 세계 지역 교회는 일제히 하느님 품에 안긴 교황을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한국 교회도 교구별로 분향소를 설치하고, 장례 미사 당일인 5일 미사를 봉헌하며 전임 교황의 영원한 천상복락을 위해 함께 기도했다. 세계 주요 지도자들도 성명을 내고 추모의 뜻을 표했다.

한국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는 애도 메시지를 통해 “한민족의 일치와 이산가족의 재결합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사도좌 정기 방문 때에는 보편 교회를 위한 한국인 선교사들과 평신도들의 헌신을 치하하시며 격려해 주셨음을 기억하며 깊이 감사드린다”며 “한국의 주교들과 모든 신자는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께서 주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시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교황님의 사목 표어였던 ‘진리의 협력자’에서 알 수 있듯이 올바른 교리와 교회 정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셨다”면서 추모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 교황 선종 당일 저녁 밤 미사 강론을 통해 “그는 고귀하고 겸손한 이였다. 오직 주님만이 그가 교회를 위해 바친 희생에 대해 중재하실 힘을 지니고 있다”며 “교회와 세상에 그분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그가 베푼 모든 선행과 더불어 그의 믿음과 기도를 통한 증언, 그리고 은퇴 후의 삶에 모두 감사드린다”면서 추모했다.

바티칸은 5일 오전 9시 30분(로마시각)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봉헌하고, 평생 주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한 그를 떠나보냈다. 장례 미사에는 한국 교회를 대표해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와 염수정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주교회의 사무국장 신우식 신부가 참여했다. CPBC 가톨릭평화방송TV도 한국시각 5일 오후 5시 20분부터 장례 미사를 동시 생중계했다. 고인은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무덤의 역대 교황들 옆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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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2023년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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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 또 하나의 큰 별이 빛을 잃는 순간 한국 교회도 슬픔에 잠겼다. 한국 교회는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선종을 애도하며 미사와 기도로써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기렸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애도하며

로마시각 2022년 12월 31일 오전 9시 34분, 한국시각으로는 오후 5시 34분. 새해를 몇 시간 앞두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선종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에도 이날 오후 7시 30분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선종을 알리는 조종(弔鐘)이 울렸다. 많은 신자들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했다.

주교회의는 1월 2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지하성당에 공식 빈소를 마련했다. 빈소 앞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추모하기 위한 줄이 길게 이어졌다. 빈소를 찾은 신자들은 영정사진에 성수를 뿌리고 헌화하며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추모했다. 조문을 마친 신자들은 지하성당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위한 기도를 바쳤다. 지하성당은 금세 조문객으로 가득 찼다. 자리가 없어 서서 기도하는 신자들도 눈에 띄었다. 기도는 성호경으로 시작해 묵주기도 5단, 복음(요한 10,11-16) 낭독, 3분 묵상 순으로 진행됐다. 이어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영원한 안식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주모경과 성호경을 바쳤다.

주한 교황대사관에도 2일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대사관에 마련된 추모 공간은 정부 인사와 외교 사절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됐다. 이에 따라 신자와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다.

각 교구는 교구 홈페이지를 통해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선종을 알리고 추모 공간 설치, 추모 미사를 봉헌하며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기억했다.

대구대교구는 계산주교좌성당과 범어대성당, 수원교구 정자동주교좌성당, 의정부교구 주교좌 의정부성당,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 춘천교구 죽림동주교좌성당, 부산교구 남천주교좌성당과 울산대리구 복산성당, 안동교구 목성동주교좌성당, 제주교구는 중앙주교좌성당에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 또한, 교구장 주례로 추모 미사를 봉헌하고 교구 내 각 본당에서도 추모 미사를 봉헌하며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위해 기도했다.

한국 주교단도 7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교황 추모 미사를 봉헌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위한 기도

신자들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모든 성인과 함께 주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기도했다. 김춘규(마르티나, 서울대교구 신수동본당)씨는 “굉장히 겸손하신 모습에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을 특별히 좋아했다”며 “몸이 안 좋아도 교황님을 위해 기도하려고 추운 날씨에도 명동대성당에 왔다”고 말했다.

신심 단체 회원들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직속 마포지구 성인의 모후 꼬미시움 모순여(사비나) 단장은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퇴임하고 10년 동안 수도원에 계시면서 바깥출입을 안 하고 기도 생활만 하셨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며 “참으로 대단하고 우러러볼 만한 분”이라고 전했다.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손병선(아우구스티노) 전임 회장은 “교황님은 교회의 정통 교리를 수호하는 가르침으로 저희에게 큰 울림을 주셨기에 이번 선종 소식이 무척 안타깝고 슬펐다”면서 “주님의 양 떼를 돌보시던 대사제이자 대학자인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주님 품에서 영면하기를 기도했다”고 말했다.

수도자들도 빈소를 찾았다. 윤선옥(체칠리아, 예수성심시녀회) 수녀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학문적, 지성적인 부분에서 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신 분”이라며 “교회 수장으로서 매우 외롭고 힘드셨을 텐데도 양 떼들을 열심히 일하셨던 교황님을 생각하며 기도했다”고 전했다.

외국인 조문객도 있었다. 한국에 관광을 왔다는 파키스탄계 호주인 사예드·사하르씨 부부는 어린 자녀들과 교황을 추모했다. 무슬림인 이들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존경스러운 인물”이라며 “자녀에게 모든 종교와 인간을 존중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싶어 빈소를 찾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황은 가톨릭교회 지도자이자 한 명의 친절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와 인류를 위해 헌신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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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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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력 정치 지도자와 인사들도 추모 메시지

세계 유력 정치 지도자들과 인사들이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과의 만남을 회고하며 ‘주님 포도원의 겸손한 일꾼’을 추모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선종 당일 애도 메시지를 통해 “지난 2011년 바티칸을 방문해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시간을 보내는 특권을 누렸다”며 “고인의 관대함과 환대, 그리고 의미 있는 대화를 항상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원칙과 신앙에 따라 한평생 교회에 헌신한 저명한 신학자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역사상 두 번째 가톨릭 신자 대통령인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2008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백악관 방문을 떠올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고인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존엄성에 걸맞은 방식으로 살려면 세계적 연대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며 “사랑과 자선에 대한 교황의 관심이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국 찰스 3세 국왕은 2009년, 2010년 두 번에 걸친 베네딕토 16세 교황과의 만남을 떠올리며 “모든 사람의 평화와 선의를 증진하고, 성공회와 가톨릭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점을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선종 소식을 접하고 큰 슬픔에 빠졌다”며 “우리는 베네딕토 16세를 기도하고 공부하는 겸손한 사람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이어 2008년 베네딕토 16세의 유엔 연설을 언급하며 “소외된 사람들과의 연대를 외치면서 갈수록 커지는 빈부 격차를 좁히라고 한 교황의 긴급한 호소는 지금 어느 때보다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베네딕토 16세를 ‘위대한 영적 지도자’라고 칭송했다. 그러면서 “고인은 2009년 이스라엘을 방문함으로써 유다교와 가톨릭교회 간의 역사적 화해를 위해 온 마음을 쏟았다”며 “우리는 그를 진정한 친구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 종교 지도자들의 애도 물결도 이어지고 있다.

성공회 캔터베리대교구장 저스틴 웰비 대주교는 “현시대의 위대한 신학자 중 한 명인 교황은 글과 강론뿐 아니라 모든 일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신 분”이라고 말했다. 미국 유다교위원회는 “고인은 세계 유다인들과의 우정과 화해의 길을 쉬지 않고 걸었다”며 종교간 대화에 힘쓴 업적을 기렸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유별난 고양이 사랑을 추억하는 이들도 있었다.

고양이의 눈을 통해 베네딕토 16세의 어린 시절을 그린 아동문학가 잔네 페레고는 “베네딕토 16세는 고양이를 보면 항상 다가가서 쓰다듬었다”며 고인이야말로 진정한 ‘캣홀릭(Cat-holic, 가톨릭과 발음이 비슷함)’이었다고 CNA에 알려왔다.

베네딕토 16세는 ‘하느님의 로트와일러(독일의 맹견)’라는 별명이 있지만, 개보다는 고양이를 훨씬 더 좋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시절에는 바티칸 정원에서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우기도 했다. 바티칸 관계자들은 그 고양이들을 ‘바티캣(Vaticats)’이라고 불렀다고 작가 페레고가 귀띔했다.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에 선출되기 전 함께 교황청에서 근무했던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은 “라칭거 추기경은 로마 거리를 걸을 때 고양이를 만나면 고향(독일 바이에른 주) 방언으로 무언가 얘기하면서 먹을 것을 주고 무리에 돌려보내곤 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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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2023년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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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즉위한 뒤 1년 4개월 만인 2006년 8월 29일에 독일어로 직접 작성한 유언을 선종 당일 공개했다. 교황의 유언은 선종 후에 공개되는 관례에 따른 것이다. 다음은 영적 유언서(Spiritual Testament) 요약.

나의 영적 유언서

인생의 늦은 시기에 내가 겪은 세월을 돌아볼 때, 내가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무엇보다 나에게 삶을 주시고, 혼란스러운 여러 시기를 헤쳐나가도록 인도해주시며 모든 은총을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주님은 내가 미끄러질 때마다 항상 나를 품어주시고, 당신의 얼굴을 비춰주신다. 돌이켜보면 어둡고 힘겨운 여정조차 모두 나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고, 하느님께서 나를 잘 인도해주신 것이 그 안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어려운 시기에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나를 위해 분명한 빛처럼 사랑으로 멋진 가정을 준비해준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아버지의 명료한 믿음은 자녀인 우리에게 신앙을 가르쳐줬고, 어머니의 깊은 헌신과 큰 선함은 내가 충분히 다 감사할 수 없는 유산이다. 누나는 수십 년 동안 나를 애정 어린 보살핌으로 도왔다. 이러한 선행과 동행이 없었다면 나는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생애에 걸쳐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많은 친구와 이웃,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감사드린다. 나의 아름다운 조국에도 감사드리며, 고국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그들 속에서 나는 믿음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 땅이 믿음의 땅으로 남길 기도하며, 친애하는 독일 국민들이 믿음을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제2의 고향이 된 이탈리아와 로마를 향해서도 특히 감사하다.

내가 어떤 식으로든 잘못한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교회의 모든 이에게 말한다. 믿음을 굳게 지키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마십시오. 자연 과학과 역사적 연구는 종종 가톨릭 신앙과 상충하는 반박할 수 없는 결과를 제공할 수 있는 듯 보인다. 나는 오래전부터 자연 과학의 변화를 경험했고, 반대로는 신앙에 반하는 확실성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볼 수 있었고, 이는 과학이 아니라, 과학과 관련된 철학적 해석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다른 한편으로 자연과학과 대화하는 것 또한 믿음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

내가 신학, 특히 성경과학(biblical science)이란 여정에 동참한 세월이 60년 됐다. 그리고 다른 세대가 거듭하면서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이론들이 단순한 가설로 무너지는 것을 목도했다. 그것은 자유주의 세대, 실존주의 세대, 마르크스주의 세대가 해당한다. 나는 이러한 얽힌 가정들 속에서 믿음의 온당함이 어떻게 다시 나타나는지 봤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교회는 모든 부족함에도 진정으로 그의 몸이다.

마지막으로 겸손되이 요청한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나의 모든 죄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영원한 거처로 맞이해 주실 것입니다. 내게 맡겨진 모든 이에게 날마다 나의 진심 어린 기도가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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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이정훈 기자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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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1일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며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했다.

정순택 대주교가 주례하고 교구 주교단과 사제단이 공동 집전한 이 날 미사에는 수많은 신자가 참석해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위해 함께 기도했다.

정 대주교는 미사 강론을 통해 “우리나라 천주교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교황님을 존경하는 분들이 깊은 슬픔 속에, 또 한편으로는 하느님 품 안에 영원한 안식에 드심을 추모하는 상념에 깊이 잠긴다”며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선종을 애도했다.

정 대주교는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님은 인간 생명의 가치를 수호하는 데 큰 관심을 두셨다”며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을 존중하면서도 새롭게 변화하는 세상에 보조를 맞추고자 힘쓰셨고, 또한 젊은이들을 위한 사목에도 힘을 다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역사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느님을 인간의 지평에서 떼어놓은 데 있다고 일갈하셨고, 교회의 진정한 문제는 신자 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신앙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라는 말씀도 하셨다”며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약해지는 데서 위기가 생기고, 기도와 전례에 대한 미지근한 태도가 나타나며, 선교를 등한시하는 우리의 마음을 지적하신 것”이라고 했다.

정 대주교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재임하셨던 8년이라는 시간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업적과는 또 다른 면에서 교회의 크나큰 업적을 세우셨다”며 “교회가 내적인 면을 강화하고 또 영혼의 힘을 기르는 대피정과도 같은 기간이었다고 많은 학자는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지성과 통찰력, 신학에 대한 지대한 공헌, 교회와 인간에 대한 사랑, 성덕과 신앙심 때문에 위대했다고 말씀하셨다”면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정신은 세세대대 항상 더 위대하고 강력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며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기렸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장례미사는 현지시각으로 1월 5일 오전 9시 30분(한국시각 오후 5시 30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봉헌된다. 신자들이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유해는 1월 2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우리나라에도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된다. 서울대교구는 1일 주교좌 명동대성당에 분향소를 마련했으며, 주한 교황대사관에는 2일 공식 분향소가 차려진다. 또한, 전국 각 교구에도 분향소가 마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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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2023년 1월 8일 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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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독일 출신으로 본명은 요제프 알로이스 라칭거(Joseph Alois Ratzinger)이다. 교황 즉위 당시 78세였던 그는 1730년 클레멘스 12세 교황 이후 275년 동안 선출된 교황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교황이었다. 베네딕토 16세는 또 1415년 사임한 그레고리오 12세 교황 이후 598년 만에 임기 중 완전한 자유의사로 스스로 사도좌에서 내려온 교황이다. 더불어 재위 기간은 8년이지만 95세로 역대 최장수 교황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또 현시대 최고의 신학자, 정통 교리의 수호자였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승자로 현대 세속주의와 물질주의, 반 생명주의 문화의 혼돈 속에서 가톨릭 신앙의 정통성을 지키는데 헌신했다.

▨ 유소년ㆍ청소년기

베네딕토 16세 교황 곧 요제프 라칭거는 1927년 4월 16일 독일 바이에른주 마르크틀 암인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요제프 라칭거와 어머니 마리아 파인트너, 형 게오르그, 누나 마리아와 함께 그는 완전한 가톨릭 배경의 가정에서 자라났다. 교황은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평범한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표현했지만 태어난 지 4시간 만에 세례를 받을 만큼 가톨릭 신앙을 기반으로 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경찰관이었다. 청렴하고 정직한 이였다. 아울러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평일 미사는 물론 주일에는 새벽ㆍ교중ㆍ낮 미사 모두를 참여할 만큼 신심이 깊었다. 자상한 성품을 지닌 어머니가 딱딱한 집안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었다. 가족의 삶은 가톨릭 신앙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가족 모두 식사 때마다 기도했고, 매일 미사에 참여했으며, 묵주기도도 날마다 함께 바쳤다.

교황의 가정은 빈곤하진 않았지만 어릴 적부터 절약하면서 수수하게 살아야 했다. 교황은 “부유함 속에서 찾을 수 없는 즐거움이 바로 여기에서 생겨난다. 가족들은 아주 작은 일에도 기뻐할 수 있었다. 서로를 위하여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집안의 많은 사제와 수도자를 보며 자란 교황은 “이상하게도 하느님이 제게 무언가를 바라시고, 기대하신다는 것을 느꼈다”며 “그것이 사제직과 연결돼 있음을 확신했다”고 자신의 성소에 관해 밝혔다. 그래서 그는 12살이 되던 해인 1939년 트라운스타인 소신학교 입학했다.

교황은 1943년 독일 나치 청년 조직인 ‘히틀러 유겐트’에 강제 입회했다. 유겐트 가입은 저항할 수 없는 시대 상황이었다. 그나마 신학생들은 여러 훈련에 열외됐다. 하지만 전세가 기울자 트라운스타인 신학생들은 모조리 뮌헨의 고사포 부대로 징집됐다. 16살이던 그는 측량 소대에 배치돼 1944년 9월까지 1년 남짓 복무했다. 연합군 전투기를 추적해 비행 정보를 포대원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소년 라칭거는 1944년 가을 제대 후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2달 동안 노역 의무에 동원됐다. 전쟁 말기에 미군 포로가 돼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다 1945년 6월 19일 풀려났다.

▨ 사제이자 진보 신학자

라칭거는 1947년 뮌헨대학 부속 헤르초글리헤스 게오르기아눔 신학교 재입학했다. 신학교로 돌아온 그는 신학과 철학, 문학에 빠져 지냈다. 신학은 그를 평범한 그리스도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히 따르는 주님의 제자로 변모시켰다. 신학은 신앙과 사상의 지평을 넓혀줬고,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1951년 24살 나이로 독일 프라이징에서 사제품을 받은 라칭거는 뮌헨-모자크 성 마르틴 본당 보좌 신부로 첫 사목을 했다. 이후 그는 1953년 뮌헨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보나벤투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보다 아우구스티누스에 기울었다. 1953년 성 아우구스티노, 1957년 성 보나벤투라의 계시 개념에 관한 논문으로 신학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1954년 프라이징 철학-신학대학에서 교의 신학ㆍ기초 신학 교수로 강단에 선 라칭거는 젊은이들 말에 귀를 가장 잘 기울이는 젊은 신부로 인기를 끌었다. 그는 교과서를 정리해 간결하게 지식을 전달만 하는 교수가 아니었다. 가능한 한 많은 강의 소재들을 현실 관계 속에서 질문으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던져줬다.

그는 프라이징ㆍ본ㆍ뮌스터ㆍ튀빙겐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만 해도 개혁 진보 성향의 신학자로 통했다. 교의 신학과 기초 신학을 강의했는데 강의실은 늘 학생들로 빼곡했다. 그는 학생들과 솔직성과 관용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또 한스 큉 신부와 함께 교황청 책임자들이 교회를 경직시키고 있다며 교회의 권위주의를 서슴없이 비판했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30대의 젊은 신학 교수 신부였던 라칭거는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막하자 독일 쾰른대교구장 요제프 프링스 추기경의 신학 자문위원 자격으로 공의회 모든 회기에 참여했다. 그는 독일어권을 대표해서 개혁과 쇄신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훗날 교회 안에서는 “라칭거가 참석하지 않았더라면 공의회가 쇄신의 씨앗을 뿌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라칭거는 교황 즉위 후 “세계 모든 종교에 대한 신학적 이해, 신앙과 이성의 관계, 특히 현대 세계에서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한 이해는 공의회 당시 가톨릭교회가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들이었다”며 “우리는 공의회에 참여하며 마치 새로운 성령께서 오시는 듯 가슴이 벅찼다”고 회고했다.

라칭거 신부는 공의회에서의 활동 경험을 토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배경과 과정을 설명하는 해설서를 내기도 했다. 이 해설서에서 그는 “개혁과 쇄신의 방향으로 공의회를 이끌려는 동반자들이 많았고 주교들 사이에서도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롭고 자유로운 시도를 감행해 보자는 의지가 강했다”고 썼다.

▨ 삶의 반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여해 교회 개혁과 쇄신을 촉구했던 라칭거 신부는 1968년 독일 대학가는 물론 유럽을 휩쓸던 네오마르크시즘의 광풍을 목격하면서 보수 성향으로 돌아섰다. 학생들이 강의실을 점거하고 자신의 강의 내용을 대놓고 비판하는 수모를 겪은 그는 이때부터 바뀌었다. 무엇보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옷을 걸치고 있는 광신적 이데올로기의 폐해를 절감했다.

라칭거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혁과 쇄신 정신이 도전받고 있는 것을, 신앙과 교회가 전혀 다른 생각과 이념에서 남용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 일들이 벌어지는 수년간 자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저항해야 했고, 누군가가 나서서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 그는 교회가 세속주의와 무신론에 위협받지 않고, 또 시류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통 가르침에 충실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활동했다. 그는 1969년 튀빙겐에서 레겐스부르크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교의 신학 교수로서 확고한 명성을 다져갔다. 또 그해 폴란드의 카롤 보이티와(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와 처음 만나 서로 통해 뜻을 같이하기로 했다.

▨ 진리의 협조자

라칭거 신부는 1977년 3월 성 바오로 6세 교황으로부터 독일 뮌헨 프라이징 대교구장으로 임명돼 그해 5월 주교품을 받고 대주교로 승품됐다. 또 한 달도 안돼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라칭거 추기경의 사목 표어는 ‘진리의 협조자’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1년 라칭거 추기경을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임명했다. 이때부터 2005년 교황으로 선출될 때까지 24년간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활동하며 성 요한 바오로 2세를 보필했다.

라칭거 추기경은 신앙교리성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엄격한 교리 해석으로 가톨릭 신앙의 정통성을 수호했다. 가톨릭교회를 흔드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 한치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 강인한 면모를 보였다.

그는 가톨릭 신앙의 정통성을 고수하기 위해 가톨릭교회 표준 교리서인 「가톨릭교회 교리서」 간행 작업을 주도했다. 낙태ㆍ동성애ㆍ인간 복제ㆍ이혼 등 사회 문제부터 여성 사제 임명ㆍ사제 독신제 폐지ㆍ해방 신학과 같이 교회 윤리와 전통에 반하는 주장에 단호했다.

그가 ‘철갑 추기경’ ‘하느님의 충복(忠僕)’ ‘요한 바오로 3세’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20세기 말 사상과 문화 혼돈 속에서 가톨릭 신앙의 정통성을 지키려 한 노력에서 비롯됐다.

▨ 베네딕토 16세 교황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은 2005년 4월 19일 제265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선종 후 52개국 추기경 115명은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를 열고 이틀 만에 4차례 투표로 라칭거 추기경을 새로운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 선출했다.

라칭거 추기경은 자신의 교황 이름을 ‘베네딕토 16세’라고 정하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말씀을 인용해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께 문을 활짝 열자”고 첫 인사를 했다.

그해 4월 24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즉위 미사를 봉헌하고 사도좌에 공식 착좌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선임 교황들을 따라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사목 방향을 밝혔다. 또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임을 거듭 천명하면서 그 빛을 두려움과 불안, 미래에 대한 의구심에 시달리는 현대 인류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 교회 임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특별히 교회 일치에 대한 강력한 염원을 피력하면서 인류의 참다운 발전을 위해 협력하고 다른 문화와의 대화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네딕토 16세는 여전히 원칙을 강조하는 가톨릭 신학자로 평가받지만,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평화의 사도로서 교황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교황은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다름을 이해하며 다가갔고, 기존 가르침을 지키면서도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가르침을 현대 교회의 나침반으로 삼아 교회 쇄신과 개혁에 주력했다. 무엇보다 그는 ‘선교’와 그리스도인의 ‘새 복음화’에 힘을 쏟았다. 특히 유럽 교회의 새 복음화에 온갖 정성을 다했다. 그가 교황 이름을 유럽 교회의 수호성인인 ‘베네딕토’에서 따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교황은 “현대 교회의 우선 과제는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것”이라며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다시 드러내는 사명에 새롭게 눈떠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또 교회의 참된 쇄신과 개혁은 시노드나 사제 회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사람이 될 때 달성된다면서 신자 개개인과 가정, 사회 복음화에 전력했다.

교황은 해외 사목 방문을 통해 가정과 생명, 화해와 용서, 평화의 가치를 전 세계에 전파했다. 물질 만능주의와 세속화에 젖은 현대인들에게 가톨릭 전통과 문화의 소중한 가치들을 일깨우며 새 복음화의 씨앗을 뿌렸다. 또 교황은 “교회는 젊은이들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며 젊은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시했다.

교회 일치와 종교 간 대화에도 노력했다. 교황은 감리교와 의화 논쟁을 종식했고, 유다교 시나고그와 이슬람 모스크를 찾아가 화해와 평화를 촉구했다. 동방 가톨릭교회와 정교회 수장들과도 잇달아 만나 형제의 친교를 나눴다. 또 교황령 ‘성공회 신자 단체’를 발표, 성공회의 영적ㆍ전례적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가톨릭교회와 완전한 친교를 이룰 수 있도록 한 교회법의 틀을 마련했다. 2009년에는 가톨릭교회로 돌아온 성공회 신자들과 성직자들을 받아들였다.

정의ㆍ평화 문제와 관련해서는 “상호 이해에 바탕을 두고 다양한 사람들과 계속 대화하겠다”고 밝혔다.

교황은 정치ㆍ종교 분쟁으로 얼룩진 세계 곳곳에 평화와 화합의 중재자로 적극 나섰다. 교황은 2009년 요르단ㆍ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을 사목 방문하고, 2010년에는 로마에서 중동 주교시노드 특별회의를 개최했다. 중동 현실을 직접 대면하고 그들이 겪는 어려움에 귀를 기울였다. 교황은 외교 관계가 단절된 중국과 쿠바 등과도 관계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2007년 중국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발표하고, 중국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5월 24일)을 제정하는 등 중국 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2008년 교황청 산하에 중국 교회 문제를 연구하는 ‘중국 교회 특별위원회’를 직접 설립하기도 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 잇달아 터져 나온 사제 성추행 사건으로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교황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용서를 구하며 가톨릭교회 잘못에 대해 대중 앞에 머리 숙여 사죄했다.

▨ 사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13년 2월 11일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 축일에 교황직을 사임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교황은 이날 “이 행위(교황직 사임)의 중대성을 잘 의식하고 완전한 자유로 베드로 성인의 후계자인 교황의 직무를 사퇴한다”고 선언했다.

“완전한 자유의사로 교황직 포기를 선언한다”는 이 말이 베네딕토 16세의 교황직 사퇴가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교회법은 “교황이 그의 임무를 사퇴하려면 유효 조건으로서 그 사퇴가 자유로이 이루어지고 올바로 표시되어야 하지만 아무한테서도 수리될 필요는 없다”(332조 2항)고 규정하고 있다.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사임이 건강상 이유임을 밝혔다. 교황직 사임은 “도피가 아니라 봉사직에 충실히 머무는 또 다른 방식”이라고 했다. 교황은 2012년 보낸 긴 휴가 중 오로지 하느님과의 대화를 통해 사임이라는 중대한 결심을 내렸다고 했다. 베네딕토 16세의 사임 발표에 교회는 물론 전 세계가 당혹감과 충격을 금치 못하면서도 교황의 용기 있는 결단에 존경과 지지와 감사를 표시했다.

교황은 사임 발표 후 여름 집무실이 있는 카스델 간돌포로 옮겨가 새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지내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 교황으로 선출된 후 다시 바티칸으로 돌아와 ‘교회의 어머니’ 봉쇄 수도원에서 생활하다 2022년 12월 31일 선종했다.

▨ 약력

△1927년 4월 16일 독일 바이에른주 마르크틀 암인 출생
△1939년 트라운스타인 소신학교 입학
△1947년 뮌헨대학 부속 헤르초글리헤스 게오르기아눔 신학교 입학
△1951년 사제 수품, 뮌헨-모자크 성 마르틴 본당 보좌신부
△1953년 뮌헨대학교 신학박사 학위 취득
△1954~57년 프라이징 철학-신학대학에서 교의 신학ㆍ기초 신학 교수
△1959년 본 대학 기초 신학 정교수, 부친 사망
△1962~65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신학 전문 위원 활동
△1963년 뮌스터대학 교수, 모친 사망
△1966년 튀빙겐대학 교의 신학ㆍ 교의사학 정교수
△1969년 레겐스부르크대학 교의 신학ㆍ교의사학 정교수
△1976~77년 레겐스부르크대학 부총장
△1977년 3월 24일 뮌헨 프라이징 대교구장 임명
△1977년 5월 28일 대주교 수품
△1977년 6월 27일 추기경 서임
△1981년 11월 25일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장, 국제신학위원회 위원장
△2002년 추기경단 수석 추기경으로 임명
△2005년 4월 19일 제265대 교황으로 선출
△2013년 2월 28일 교황직 사임
△2022년 12월 31일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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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2023년 1월 8일 가톨릭평화신문
  |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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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위기 속에 탄생한 교회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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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의 전통과 가르침을 수호하고, 진리와 교의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은 새천년기가 막 시작한 시기 사도좌에 착좌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에게 자연스레 주어진 사명이었다. 신앙의 위기감이 팽배해진 당시, 일찍이 신학자로 활약해온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의 교황 즉위는 주님의 섭리였다.

세기 말부터 지구촌 곳곳에서 들끓기 시작한 무신론자들의 범람과 교회를 향한 공격, 서구 사회에서 고삐 풀린 듯 쏟아져 나오는 세속주의 세태와 상대주의의 흐름 속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재위 8년간 ‘교회의 수호자’ 역할을 다했다. 선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공산주의와 싸웠다면,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그리스도교를 흔드는 사상의 풍랑과 맞서 싸웠다.

교황은 난무하는 이데올로기와 사상의 격랑 속에 추기경 시절부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지, 신학자들의 실험장이 아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올바로 계승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계승해 ‘영적인 사막화’가 진행되는 현대 사회가 새로운 복음화로 무장하는 데 힘쓴 교황이었다.

3차례의 세계 주교 시노드 개최

교황은 즉위한 그해인 2005년 10월 교회의 핵심인 ‘성체성사’를 주제로 제11차 세계 주교 시노드(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를 개최해 성찬례 거행과 공경의 의미를 북돋웠다. 곧이어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낸 것도 모두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신앙의 핵심으로 돌아가도록 이끌고자 한 그의 의지였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08년 ‘성경’, 2012년 ‘새로운 복음화’를 주제로 총 3차례의 세계 주교 시노드를 개최했다.

8년 사이 3차례나 세계 주교들을 소집한 것도 탈 그리스도교 현상에 맞서고자 교회의 지혜를 모으기 위함이었다. 특히 재위 말, 그에겐 ‘신앙의 전수’와 ‘새로운 복음화’가 키워드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반포 20주년을 기념해 제정한 ‘신앙의 해’는 신앙의 회복과 더불어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그의 사도적 사명을 보편 교회에 적용한 것이다. 교황은 2010년 “우리 시대는 신앙 포기라는 도전을 받고 있다”며 “현대 세계에서 선교 열정을 가지고 새 복음화를 촉진할 수 있도록 적절한 대응책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선포하고, 교황청에 ‘새복음화촉진평의회’를 신설했다.

바오로 사도, 사제직, 그리고 공고한 믿음

교황은 이와 더불어 3차례 기념의 해를 제정해 보편 교회가 하나 되도록 이끌었다. 교황이 ‘바오로의 해’(2008~2009년), ‘사제의 해’(2009~2010), ‘신앙의 해’(2012~2013)를 선포한 것은 2000년 가톨릭교회의 어제와 오늘을 다시금 깊이 이해하고, 교회 공동체가 단단해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전 세계 신자들은 ‘완벽한 선교사’였던 바오로 사도의 열정을 본받고, 사제들은 사제직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했다. 교회 위기 속에 신앙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강조한 신앙의 해까지, 모든 지역 교회는 때마다 같은 주제 아래 모였고, 교회 안에서 희망을 얻었다.

28차례 해외 사목 방문, 복음화를 향한 헌신

교황은 28차례 로마 밖으로 나가 ‘지구촌 평화의 사도’의 역할을 다했다. 고향 독일을 3차례나 방문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하자”며 모국을 새 복음화 바람의 진원지로 만들고자 힘썼고, 카메룬, 요르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레바논, 멕시코와 쿠바를 방문하며 ‘유럽의 교황’이라는 비난도 잠재웠다. 가정과 생명, 화해와 용서, 평화의 가치를 전 세계에 전파했다. 물질 만능주의와 세속화에 젖은 현대인들에게 가톨릭 전통과 문화의 소중한 가치들을 일깨우며 새 복음화의 씨앗을 뿌렸다. 특히 가톨릭에 뿌리를 둔 유럽 사회는 신앙으로 재무장할 것을 강조했다.

독일과 호주, 스페인에서 열린 3번의 세계청년대회에도 참석해 젊은이들에게 신앙 열정을 불어넣었다. 교황은 100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운집한 대회 때마다 “그리스도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갖고 단단한 신앙의 반석을 세워 하느님과 하나 되자”고 힘을 실었다.

특히, 2012년 교황은 쿠바를 사목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 의장과 마주했고, 오랜 사회주의 체제지만 종교활동이 자유롭게 펼쳐지길 기원했다. 이를 계기로 쿠바는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종교 행사에 대한 제재를 완화했으며, 이후 미국과 쿠바가 국교를 정상화하는 데에도 기여하는 등 화해의 사도로서 역할도 다했다.

추기경 90명 임명, 45명 시성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8년 재위 기간 한국 교회의 고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해 추기경 90명을 새로 임명하고, 보편 교회의 공동체 결집과 선교력을 강화했다. 한국의 옥현진 대주교와 김종수 주교와 손삼석 주교를 비롯해 96명에 이르는 각지의 사제들을 주교로 임명하기도 했다.

아울러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를 비롯해 세계 모든 신자가 공경해야 하는 복자도 45명 시성했으며, 800여 명을 시복했다. 교황이 즉위한 2005년 10억 9000만 명이었던 지구촌 가톨릭 신자 수는 8년 뒤 12억 5000만 명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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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2023년 1월 8일 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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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인사들의 애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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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선종 소식과 더불어 우리의 마음은 상실의 슬픔 동시에 감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베네딕토 교황을 통해 우리는 위대한 선물을 받은 바 있습니다. 교수였을 때, 독일의 대주교가 되었을 때, 그리고 교황이 됨으로써 그분을 통해 받은 이 위대한 선물에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씀하신 대로 매우 고귀하고 지혜로우신 분이었고 또 매우 겸손하셨습니다. 저는 이분의 제2 개인 비서로서 5년 이상 직무를 수행할 특권이 있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저에게 아주 특별한 영적인 아버지이십니다. 사제로서 또 주교로서의 소명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분을 통해 배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황께서 이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고 계심을, 천국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천국 문에 서서 예수님의 사랑받는 아들로서 그분을 맞이하셨을 것입니다.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한국의 주교들은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께서 2005년도에 즉위하시고 8년간 사도좌에 재위하셨을 때 한민족의 일치와 이산가족의 재결합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2007년 사도좌 정기 방문 때에는 보편 교회를 위한 한국인 선교사들과 평신도들의 헌신을 치하하시며 격려해 주셨음을 기억하며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난 2013년, 성하께서는 오랜 숙고와 성찰 끝에 당신의 베드로 직무를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신 다음, 천상 본향으로 나아가는 마지막 지상 순례의 모범을 온 세계에 보여 주셨습니다. 한국의 주교들과 모든 신자는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께서 주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우리나라 천주교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교황님을 존경하는 분들이 깊은 슬픔 속에 또 한편으로는 하느님 품 안에 영원한 안식에 드심을 추모하는 상념에 깊이 잠깁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님께서 재임하셨던 8년이라는 시간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업적과는 또 다른 면에서 교회의 크나큰 업적을 세우셨습니다. 교회가 내적인 면을 강화하고 영혼의 힘을 기르는 대피정과도 같은 그런 기간이었다고 많은 학자는 평가합니다. 우리 시대의 평화의 사도이시고, 영적인 스승이시며 지도자셨던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님. 사랑의 빛으로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은총 속에 주님의 위로와 자비 안에서 평화와 안식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

한국 종교계는 평생을 가톨릭교회와 복음에 헌신하셨던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님이 떠나신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재임 시절 누구보다 가톨릭의 전통과 교리를 지키는 데 앞장선 분이었습니다. 21세기 최고의 신학자이자 유럽 최고의 지성으로 불렸으며 스스로 교황직을 내려놓고 후임 교황에게 순명하겠다고 언약하며 낮은 자리에 임하는 모습을 실천하심으로 가톨릭의 아름다운 전통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셨습니다. 평생 가톨릭의 전통과 사랑을 몸소 실천해온 교황의 삶의 궤적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한국 종교계는 복음에 헌신한 베네 16세 전 교황님의 영면을 바라며 평안과 안식이 영원히 함께하기를 기도하고, 슬픔에 잠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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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8일 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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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전통 살리고 성경에 근거한 신앙 회복에 힘써
회칙으로 돌아보는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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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위한 방향성 제공

회칙은 교황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열쇠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재임기간 총 3개의 회칙을 발표했다. 가장 먼저 2005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 복음의 핵심인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담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를 발표했다. 이 회칙을 통해 교황은 하느님 사랑에 응답하도록 창조된 피조물로서 인간의 역할을 역설했다.

2년 후인 2007년 11월 30일에는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를 발표했다. 교회 공동체와 현대인들이 희망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시대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희망이 무엇인지를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적 관점에서 말했다. 교황은 회칙에서 기도와 고통이야말로 ‘희망을 배우는 학교’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2009년 6월 29일에는 21세기의 첫 사회회칙 「진리 안의 사랑」을 발표했다. 교황은 회칙을 통해 글로벌 경제위기와 빈곤, 환경파괴 등 현대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광범위하게 다루면서, 진정한 인간 발전을 위한 시민 사회의 연대와 형제애, 인류 가족의 국제적 협력에 이르기까지 여러 측면의 미래적 전망을 제시했다.

교황은 3개의 회칙 외에도 권고 「사랑의 성사」와 「주님의 말씀」, 자의교서 「교회 일치」와 「믿음의 문」 등을 발표했고, 저서 「나자렛 예수」를 통해 인격적 만남이라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전하기도 했다.

특히 교황은 라틴어 사용을 권장하고 사용 분야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며, 교회 전통을 살리고 성경에 근거한 신앙 회복을 위해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보급을 확산시켰다.

‘종교 간 일치’, ‘화해’, ‘대화’, ‘평화’

‘종교 간 일치’, ‘화해’, ‘대화’, ‘평화’는 베네딕토 16세를 대표하는 말들이다. 교황은 즉위 직후부터 “그리스도교의 일치와 종교 간 대화, 비신자들과의 대화가 자신의 첫 번째 임무”라고 밝히며 종교와 이념의 벽을 허물고 상호 대화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즉위 후 첫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집전한 교황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와 중동, 라틴아메리카의 평화를 기원했다. 같은 해 5월에는 독일 출신 교황으로서 아우슈비츠수용소를 방문해 죽음의 벽 앞에서 나치 만행에 희생된 유다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11월에는 무슬림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슬람 국가 튀르키예를 방문해 “사랑은 위험보다 강하다”며 평화를 위한 종교의 역할을 역설했다. 평화를 위한 교황의 움직임은 끝이 없었다. 교황은 그해 12월 그리스 정교회 수장 크리스토둘로스 대주교와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고 “종교는 전 세계에 평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성공회 신자 및 성직자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할 수 있는 교회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영국 교회를 공식 방문하기도 했다. 중국 교회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나아가 교황은 2000년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교가 저지른 과오에 대해 사과하면서 “신앙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한 잘못을 매우 부끄러워하며 인정한다”고 밝혔다.

한반도에 대한 관심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도 꾸준한 관심을 보였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비롯한 평화와 화해를 독려했고, 특히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나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06년 교황청 주재 신임 일본대사의 신임장을 제정받는 자리에서 교황은 “교황청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북 양자협상과 다자협상을 권장한다”고 밝혔다.

2007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접견하면서는 “한국 국민들은 50년 넘게 가족과 헤어져 사는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다”며 “그 고통에 영적으로 함께 하고 있고, 하루속히 해결되도록 기도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아울러 북한 취약 계층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도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9년 교황청을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도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북한 주민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남북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손을 내밀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는 “남북 대화의 중요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이바지하리라는 희망을 낳고 있다”면서 전 세계 신자들의 기도를 이끌었다.

온전한 자유로 사임한 교황,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따라서

“하느님 앞에서 거듭거듭 제 양심을 성찰하면서, 저는 고령으로 더 이상 베드로 직무를 수행하기에 맞갖은 힘이 없다는 확신에 이르렀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사임 선언문 중 일부다.

가장 최근 생존하는 교황이 직무에서 물러난 것은 600여 년 전인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외부적인 요인이 작용했고, 건강상의 이유로 온전히 자발적 사임을 발표한 것은 2000년 교회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교황은 2월 11일 사임을 발표하고 재의 수요일 다음 날인 2월 14일 로마 교구 사제들과 만남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언급하며 “우리는 교회와 공의회가 진정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는 세상으로부터 잊힐 것이나, 여러분과 변함없이 함께할 것이고 여러분도 그럴 것으로 확신한다”며 오히려 사제들을 위로했다.

교황은 육체적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이어가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다. 공의회 당시 독일 쾰른대교구장 신학 자문위원으로 모든 회기에 참석했던 교황은 최근까지도 공의회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오하이오주 스튜번빌 소재 프란치스코 대학에서 열린 학술회의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공의회는 의미심장할 뿐만 아니라 필요했고, 현대 세계 안에서 교회의 문제는 마침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고 역설하며 마지막까지 교회와 시대의 사명을 분명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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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기자 mk@cpbc.co.kr
2023년 1월 8일 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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