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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4. 바오로가 사용한 영과 육의 개념은 무엇인가?
조회수 | 3,996
작성일 | 10.07.13
‘영’과 ‘육’이라는 용어에 대해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다. 두 용어가 함께 사용될 때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기 전에 따로 분리하여 그 의미를 살펴보자.

‘육flesh’이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성sex’에 관련된 것을 상상하기 쉽다. 우리에게 ‘육적인 죄’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한 성적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바오로는 훨씬 더 포괄적인 의미로 이 용어를 이해했다. 바오로는 동물이든 인간이는 몸체를 가진 존재를 가리켜 ‘육’이라는 말을 사용한다.(1코린 15,39)

이런 의미에서 이 용어는 몸과 관련된 ‘육’을 뜻하는 ‘바사르’를 변역했을 것이다. 히브리인들한테는 ‘육’또는 ‘살’ 외에는 ‘몸’을 가리키는 용어가 없었다. ‘살과 피’(15,50)라는 표현은 덧없는 피조물로서 살아 있는 인간을 뜻한다.

이런 신체적 의미 외에 바오로는 쉽게 썩고 빠르게 지나가며 한계가 있음을 상징하기 위해 ‘육’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육은 인간의 실존이 지닌 나약함을 상징한다. 이런 의미에서 육은 인간의 성에 제한되지 않는다. 바오로는 성적 행위를 ‘육적인’ 근심거리 가운데 하나로 여기긴 했지만 육의 의미를 성적인 것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모든 인간은 육적이다.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으며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영spirit’이라는 용어도 아주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상응하는 히브리말 ‘루아’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말 ‘프네우마’도 ‘숨’또는 ‘바람’을 뜻한다. 영은 보거나 만질 수는 없지만 느껴지는 어떤 것이다. 인간에 대해 사용할 때는 존재의 내적 핵심을 뜻한다.

한 사람의 마음이나 영혼과 동의어로 내적인 사람을 뜻할 수도 있다. 물론 성령(로마 5,5; 15,13) 또는 하느님의 영(8,14; 1코린 12,3)을 가리킬 수도 있다. 바오로는 거룩한 영과 인간의 영이 다르다고 보았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은 인간의 인격 안에 머물기 위해 우리 가운데 내려오신다.(6,19)

때때로 ‘영’은 인간의 내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영혼’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몸과 영혼을 전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그리스 철학에서 비롯되었으며 후대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그 부분을 적용한 것이지 바오로 자신이 그런 구분을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바오로는 인간의 인격에 대한 유다인의 이해를 이어받았다.

인간은 살아 있으며 혼이 있는 몸이다. 인간은 몸과 영혼으로 구분되지 않으며, 몸과 영혼은 하나로 결합된다. 바오로는 ‘거룩한 영’(로마 1,4), ‘종살이의 영’(8,15), 또는 ‘온유한 마음’(1코린 4,12)에 대해 말할 때 은유적 의미로 ‘영’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바오로는 육과 영을 대조하여 거듭 사용한다. 이 두 단어는 자연적으로 바오로의 사상 안에서 함께 가는데 여기에서 영과 육의 대조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육은 죄에 매이고 율법에 집착하며 지나가 버릴 유한한 현실에 머물러 있는 존재를 나타낸다. 한편 영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일상생활에서 살아내기 위해 투쟁하는 것, 성령에 따라 사는 것, 다가올 하느님의 나라에 마음을 붙들어 매는 것을 뜻한다. 로마 신자들과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은 자주 영과 육으 f대조하여 말한다. 두 본문을 살펴보자.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보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로마 8,5-9)

“내 말은 이렇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다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력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의 행실은 자며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박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미 경고한 그대로 이제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갈라 5,16-23)

성령에 대해 가장 집중적으로 다루는 로마 8장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걸어가라.’(8,4. ‘걸어가는 것’은 ‘살아가는 것’은 은유임. 갈라 5,16참조)고 촉구한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는 육에 집착하여 공동체를 해롭게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일고 있는데, 여러분을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어떤 이는 ‘나는 바오로 편이다.’하고 어떤 이는 ‘나는 아폴로 편이다.’하고 있으니, 여러분을 속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3,3-4)

우리는 이 구절에서 바오로가 어떻게 메시지의 핵심을 영과 육의 대조를 통해 표현하는지 볼 수 있다. 여기서 초점은 성이 아니라 모든 인간 행위와 관련된다. 영과 육은 서로 대조되는 삶의 방식을 나타낸다. 우리는 육보다 성령에 따라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로마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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