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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 [파리]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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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브르 박물관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은 그 소장작품 숫자만 치더라도 약 40만점으로써 한 작품에 1분씩 할애해 관람한다 해도 4개월을 꼬박 보내야만 한다고 한다. 루브르의 역사는 16세기초 프랑스와 1세 때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해 티치아노의 작품 12점 등의 이태리 거장들의 작품과 고대 조각 작품들을 보관하면서 시작되었다.

루이 13세 때는 이미200여 점의 작품이 보관되어 있었고 루이 14세 때는 1648년 창설된 회화, 조각, 아카데미의 전시회가 매년 열리면서 1710년에는 약 2500점이 소장되었다. 이 시대에는 프랑스가 고전주의 미술의 꽃을 피워 이태리의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쇠퇴해질 무렵이었다. 1725년부터 아카데미 주도하의 전시회는 살롱카페에서 있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살롱전'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리고 1768년 루브르를 박물관으로 개방하려는 1차 계획이 세워지고 1763년 혁명정부에 의해 실현되었다. 나폴레옹 시절에는 패전국으로부터 약탈해온 미술품들로 루브르를 메꾸어 그 당시 루브르는 세계 제1의 미술관이 되었다. 그후 샤를르 10세왕 때 전시관이 세분화되면서 이집트와 그리스 미술품 전시관이 개관되었고 루이 필립 왕 때 앗시리아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최초의 루브르는 1200년 필립 오귀스트 왕 때 파리의 수호 성곽으로 루브르를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장소는 현 루브르의 맨 동쪽에 자리잡고 있고 1988년 발굴 작업이 끝나 슐리(Sully)관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원형 모습을 볼 수 있다. 14세기에 들어와서 샤를르 5세는 루브르 왕궁을 옮기면서 왕실과 인연이 시작되어 1628년 루이 14세가 왕궁을 베르사이유로 옮기면서끝났다. 오늘날의 루브르가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와 1세 때로서 재정난으로 인해 파리 시민들의 협조가 필요해지자 루브르로 왕궁을 옮기게 된 것이다. 이 때 건축가 피에로 레스코에 의해 1546년 착공한 공사는 앙리 2세를 거쳐 서서히 현재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혁명 때 소실된 툴르리 궁은 앙리 2세가 투르넬 궁에서 사망하자 루브르로 왕궁을 옮긴 카트린느 메디치에 의해서시작되었고 건축가 들로르므의 계획 아래 두 궁을 연결시키는 통로 전물공사가 진행되었으나 종교 전쟁의 발발로 중단되었다. 그후 건축에 심미안을 가지고 있는 앙리 4세는 세느강변쪽의 날개에 해당하는 곳에 파피용드 플로르를 건설하였다. 이곳과 루브르가 연결되는 통로 건물도 한 때 왕립 조폐소와 인쇄소가 자리잡고 있었고 루브르 궁 건설에 참여한 예술가들의 아틀리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루브르의 동쪽편을 장식하는 대열주는 1667년부터 1673년까지 는 클로드 패로에 의해 건설되었다. 견고성을 높이기 위해 철근 구조로 제작된 이 대열주는 1964년 앙드레 말로의 제안에 따라 17세기에 계획된 원래의 설계도처럼 깊이 7m의 참호를 만들어 루브르의 웅장함을 돋보이게 한다. 루브르 벽면들의 장식을 잘 살펴보면 왕들의 이름들이 약자로 새겨져 있는데 L자가 두 개가 겹쳐진 것과 B는 루이 14세, K는 샤를르 9세, H자는 앙리 4세, LA자는 루이 13세이다.



루브르 박물관



◀ 루브르의 상징인 유리 피라미드



유리 피라미드


루브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유리의 피라미드이다. 이 기념물은 1981년 계획된 루브르 전체 건물을 박물관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미테랑 대통령의 대 루브르 계획안의 일환으로 건설되었다. 1983년에 착공해서 1989년에 완공된 유리의 피라미드는 박물관의 일반인 출입구로써 내부 유적 발굴과 전체 보수비를 포함해서 20억 프랑이 투자되었다고 한다. 이 기념물은 현대 감각의 가벼운 건축 양식으로써 중국계 미국인인 아이오밍 페이의 작품으로 툴르리 공원과 베르사이유 공원을 설계한 정원사 르노트르의 '풍경적 정원'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였다고 한다. 초기에는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나 그 준공은 루브르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내부에 들어가면 나선형의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지하 관장에 도착하게 되는데, 세느강과 인접한 관계로 지하 7개 지점인 이 광장은 입장권 판매와 안내창구가 자리잡고 있으며 안내를 위한 부대시설로 회의실, 서점, 카페, 2개의 식당이 자리잡고 있다. 지하에는 세개의 입구가 조그만 유리의 피라미드의 자연 조명에 의해 드러나는데 각각 입구마다 고유 이름이 표기되어 있으며 슐리(Sully)관이 루브르 박물관의 일반적인 입구이다.

그 외에도 드농(Denon)관, 단체 관람객의 출입구로만 사용되고 있는 리슐리외(Rechelieu)관이 있다.

이 지하 광장에서 중앙의 유리의 피라미드를 올려다 보면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더 웅장하게 보이며 실제규모는 길이 220m, 폭 110m이다. 높이는 루브르의 2층 높이(20m)와 3층(24m)의 중간인 12.60m이며 그 기울기는 이집트의 기자(Chiza) 피라미드의 각도인 50.70도를 취하고 있다. 피라미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유리는 생-고뱅 회사에서 제작했고 순수 수정과 같은 맑은 투명도를 갖도록 영국에서 표면을 처리하였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Théodore Géricault / The Raft of the Medusa / 1819 / H 4.91 m; W 7.16 m / [위치 : France: 19th century]


1816년 군인과 민간인을 태운 여러 척의 배가 프랑스 식민지인 아프리카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승객을 보호하기 위해 군용선인 메두사호도 함께 출발했다.

귀족이었던 메두사호의 선장은 능력이 아니라 인맥으로 선장의 직위를 얻은 사람이었는데 뒤에서 자신이 보호해야 할 여행 선박들을 오히려 힘차게 앞질러 나아갔다. 그는 항로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메두사호는 항로를 벗어나 난파하고 만다.

배에는 그 많은 승객을 실어 나르기에는 구조선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자 메두사호의 목재를 부숴 작은 뗏목을 엮었는데 그 위에 400명의 승객 중 150명 정도가 올라탔다.

선장과 장교들은 물론 안전한 구호선을 탄 후였으며, 뗏목에는 병사들과 평민들만 있었다. 뗏목을 견인 밧줄로 묶어서 항해를 시작한 구호선들은 매우 느리게 움직였다. 누군가 밧줄을 잘랐다. 따라서 키도 노도 없이 13일간 바다에 떠 있어야 했다.

뗏목에는 음식은 전혀 없었고 물도 조금밖에 없었다. 파도가 거세질 때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며칠이 흐르자 아직 건강한 자들이 죽은 사람들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병자들은 바다에 내버려졌다.

마침내 한 선박이 뗏목을 발견했을 때는 겨우 15명이었는데 그 중 5명마저 곧 목숨을 잃었다. 생존자 가운데 두 사람이 이 사실을 책으로 써서 세상에 내놓았다. 파리는 경악에 빠졌고 귀족층을 향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났다.

제리코는 이 그림에서 소수의 생존자와 이들을 구해 줄 선박이 발견된 그 순간을 그리고 있다. 뗏목 한쪽 끝에 여러 사람이 한 청년을 불쑥 쳐들어 잡고 있고 청년은 선박을 향해 붉은 천조각을 흔든다. 그의 오른쪽에 있는 남자도 뗏목의 존재를 선박에 알리기 위해 흰 천을 흔든다.

왼쪽에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남자가 수평선에 가려 보이지 않는 배를 가리키며 사람들에게 자신이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한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어 마치 고대 조각품 같이 보인다.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지만 한 손으로는 뗏목 가장자리로 밀려난 남자를 움켜잡고 있다.

제리코는 단지 소수의 인물을 그리면서도 인간적 고통, 잔혹성 그리고 곧 이루어질 구조에 대한 희망을 모두 묘사해 냈다. 거기에는 영웅을 표현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주인공들은 모두 고통과 회의를 겪으면서 죽음과 광증에 다다른 동시대 사람들이었다.


▶ [제리코] 메두사의 뗏목



Théodore Géricault / The Raft of the Medusa / 1819 / H 4.91 m; W 7.16 m / [위치 : France: 19th century]


1816년 군인과 민간인을 태운 여러 척의 배가 프랑스 식민지인 아프리카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승객을 보호하기 위해 군용선인 메두사호도 함께 출발했다.

귀족이었던 메두사호의 선장은 능력이 아니라 인맥으로 선장의 직위를 얻은 사람이었는데 뒤에서 자신이 보호해야 할 여행 선박들을 오히려 힘차게 앞질러 나아갔다. 그는 항로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메두사호는 항로를 벗어나 난파하고 만다.

배에는 그 많은 승객을 실어 나르기에는 구조선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자 메두사호의 목재를 부숴 작은 뗏목을 엮었는데 그 위에 400명의 승객 중 150명 정도가 올라탔다.

선장과 장교들은 물론 안전한 구호선을 탄 후였으며, 뗏목에는 병사들과 평민들만 있었다. 뗏목을 견인 밧줄로 묶어서 항해를 시작한 구호선들은 매우 느리게 움직였다. 누군가 밧줄을 잘랐다. 따라서 키도 노도 없이 13일간 바다에 떠 있어야 했다.

뗏목에는 음식은 전혀 없었고 물도 조금밖에 없었다. 파도가 거세질 때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며칠이 흐르자 아직 건강한 자들이 죽은 사람들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병자들은 바다에 내버려졌다.

마침내 한 선박이 뗏목을 발견했을 때는 겨우 15명이었는데 그 중 5명마저 곧 목숨을 잃었다. 생존자 가운데 두 사람이 이 사실을 책으로 써서 세상에 내놓았다. 파리는 경악에 빠졌고 귀족층을 향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났다.

제리코는 이 그림에서 소수의 생존자와 이들을 구해 줄 선박이 발견된 그 순간을 그리고 있다. 뗏목 한쪽 끝에 여러 사람이 한 청년을 불쑥 쳐들어 잡고 있고 청년은 선박을 향해 붉은 천조각을 흔든다. 그의 오른쪽에 있는 남자도 뗏목의 존재를 선박에 알리기 위해 흰 천을 흔든다.

왼쪽에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남자가 수평선에 가려 보이지 않는 배를 가리키며 사람들에게 자신이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한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어 마치 고대 조각품 같이 보인다.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지만 한 손으로는 뗏목 가장자리로 밀려난 남자를 움켜잡고 있다.

제리코는 단지 소수의 인물을 그리면서도 인간적 고통, 잔혹성 그리고 곧 이루어질 구조에 대한 희망을 모두 묘사해 냈다. 거기에는 영웅을 표현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주인공들은 모두 고통과 회의를 겪으면서 죽음과 광증에 다다른 동시대 사람들이었다.


▶ 다비드] 나폴레옹 대관식



Louis David / The Consecration of the Emperor Napoleon and the Coronation of Empress Josephine
(December 2, 1804) / 1806-1807 / H 6.21 m; W 9.79 m / [위치 : Franc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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