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국내여행

국외여행

수   필

편   지

책동네

음   악

생   활

문화정보

클릭 오늘 !

포토갤러리

행사일정

♣ 현재위치 : 홈 > 문화광장 > 시(時)

시(時) 코너 ( 여러분들의 자작시나 유명한 분들의 좋은 글들을 회원이면 누구나 올릴 수 있습니다... )

 


이름 |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495 48%
그리고 미소를 : 폴 엘뤼아르
조회수 | 2,560
작성일 | 05.02.15
밤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슬픔의 끝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창이 있고
불켜진 창이 있다.
언제나 꿈은 깨어나듯이
충족시켜야 할 욕망과 채워야 할 배고픔이 있고
관대한 마음과
내미는 손 열려 있는 손이 있고
주의 깊은 눈이 있고
함께 나누어야 할 삶
삶이 있다.


495 48%
폴 엘뤼아르 [Paul Eluard 1895∼1952]

"그의 시는 사랑과 자유라는 두 가지 주제로 일관되었다. 시는 이미 신비로운 꿈을 통해서 밝고 조화된 세계를 饔쳬歐?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사랑으로 한몸이 되어 자유와 평화를 향해 굳세게 전진하기 위해 서 있는 것이다. 그의 언어는 날이 갈수록 투명하고 서정적이며 서민적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적극적으로 저항운동에 참여했고 1942년에는 공산당에 가입했지만, 그의 시는 좌우익을 불문하고 프랑스에서 가장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 시가 되었다. 또한 초현실주의로부터 출발한 모든 시인들 중에서 후대의 시인들에게 그만큼 큰 영향을 준 사람도 드물다. 그것은 '시는 실천적인 진실을 목적으로 삼는다'는 로트레아몽의 말을 자신의 모토로 삼고 '시인은 영감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영감을 주는 자'라고 한결같이 생각해 온 그의 투철한 사명감의 당연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의 시인 혹은 정치적 시인이란 평을 받는 폴 엘뤼아르Paul Eluard(1895-1952)는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시인의 하나다. 그는 파리 북쪽 교외에 있는 노동자의 거리 생 드니에서 출생하였으나 아버지는 회계사이며 어머니는 양재사인 비교적 유복한 중산층 출신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여 중고등학교 시절 폐결핵으로 공부를 중단해야 했고, 1911년에서 1913년까지 스위스의 다보스라는 곳에 있는 요양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보들레르, 아폴리네르 등의 작품을 읽게 되고 특히 미국 시인 휘트만의 시를 좋아하며 스스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또한 소년 엘뤼아르는 여기에서 러시아 태생의 한 소녀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랑은 결실되어 4년 뒤인 1917년 드디어 결혼하게 되는데 후일 그가 애칭으로 갈라라고 부른 여인이다. "그녀는 순결한 눈을 녹게 하고 풀 속에서 꽃을 피어나게 한 유일의 존재이다"라고 그는 찬양했다. 이보다 앞서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엘뤼아르는 요양원에서 나오자마자 간호병으로 전선에 동원되었다. 그는 야전 병원에서 전쟁의 참상을 맛보았고 이는 그의 마음 속에 큰 충격을 주어 전시 중 병원에서 쓴 <평화를 위한 시> 외 1편의 선언문 같은 시들을 자비 출판했다.

파리에 돌아온 그는 한때 차라와 당시 유행하던 다다이즘 운동을 벌였고 후에는 앙드레 브르통을 만나 데스노스, 아라공과 함께 초현실주의 운동의 중요하고 열렬한 멤버가 되었다. 엘뤼아르와 초현실주의와의 관계는 밀접할 뿐 아니라, 이 새로운 문학 정신이 그의 시에 준 영향은 깊다. 1920년에서 1936년까지 그는 브르통이나 르네 샤르와 공동으로 여러 권의 초현실주의적인 시집과 평론을 펴냈을 뿐만 아니라 <죽지 않으므로 죽는 일> 및 그의 걸작으로 꼽히는 <고통의 수도>, <사랑, 시>, <목전의 삶>, <모든 사람의 장미> 등 그의 중요한 시 작품들은 모두 직접 간접으로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시집 <모든 사람의 장미>로 그의 초현실주의 시대는 끝난다. 이 동안에 엘뤼아르는 첫 부인 갈라와 헤어지고 제2의 부인 마리아 벤즈, 속칭 뉘슈와 결혼한다. 뉘슈와의 사랑과 애정은 그의 첫사랑인 갈라에 못지않게 짙고 깊어 수많은 아름다운 시를 낳게 했으며 그녀의 영향은 그녀가 죽은 뒤에도 계속되었다.

1936년을 전후하여 그의 시는 점차 사회적, 정치적 관심을 보이고 인류와 정의를 위한 연대 운동에 가담한다. "지금의 모든 시인은 그가 다른 사람의 생에, 공동의 생에 깊이 관여되어 있음을 주장할 권리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때가 왔다"고 그는 썼다. 1936년 스페인 내란이 일어나자 그는 공화파에 가담하였고 '게르니카의 승리'를 발표했다. 이동안 인간애와 자유를 노래부른 시집에 <풍요한 눈>, <자연의 흐름>, <볼 것을 준다> 등이 있다.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한때 사랑과 꿈의 시인이었던 엘뤼아르는 자유와 조국을 위한 투사가 되었다. 이로부터 1944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항독 비밀 저항 운동에 가담하여 싸웠고, 작가 국민 위원회의 북부 책임자가 되어 비밀 출판물인 <심야총서>를 간행하여 자유와 조국 해방을 위하여 시를 통해 투쟁했다.

이동안에 그는 시집으로 <시와 진실>(이 시집 맨 첫머리에 유명한 시 '자유'가 실려 있다), <전쟁 중에 일곱 편의 사랑의 시>, <독일인의 집합지에서> 등이 있다. 1942년에는 영국의 항공 편대가 수천 부의 그의 <시와 진실>을 독일군 점령 아래 싸우는 프랑스의 항독 투사 위에 뿌렸다. 시가 무기가 된 것이다. 대전이 끝나자 그는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인간에 대한 신뢰와 연대감을 고취하고 계속 시집을 펴냈으로써 자유와 인간애를 노래불렀다. <그치지 않는 시>, <정치 시편>, <도덕의 한 교훈>, <모든 것을 말한다> 등이다. 그가 세계와 인류와의 연계를 주장하는 소위 참여 문학에 가담했다고 하나 그의 시는 계속 개성적이며 서정적이고 그의 시의 주제는 언제나 영원한 사랑과 죽음, 평화, 자유였다.

1946년 그가 강연 여행으로 스위스에 있을 때 아내 뉘슈의 죽음의 통지를 받았다. 그는 한때 절망과 공허에 빠져 약 1년 동안 실어증에 빠져 있었으나 인류에 대한 신뢰와 사랑과 희망으로 이 위기를 극복했다. 1949년 멕시코의 세계 평화 회의에 참석했다가 거기서 다시 도미니크라는 여성을 만나 제3의 부인으로 맞이했다. 이 재혼을 기하여 엘뤼아르는 <불사신>이라는 시집을 써서 생의 기쁨을 되찾은 행복을 노래했다. 그러나 1952년 엘뤼아르는 과로와 협심증을 일으켜 급사했다. 그의 유해는 전세계의 지식인과 문인의 애도를 받으며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 묻혔다.
  | 02.15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15   김남조 : 부활의 구세주    05.04.12 1751
14   용혜원 : 그리움이 있다는 것은    05.03.11 1912
13   서정홍 : 따뜻한 봄날    05.03.11 1597
12   곽재구 : 바람이 좋은 저녁    05.03.04 1766
11   문정희 : 버들강아지    05.02.25 2140
10   이연분 : 밤에 쓰는 편지    05.02.24 1742
9   최 옥 : 참을 수 없는 사랑의 그리움    05.02.24 1831
8   유치환 : 春 信    05.02.24 1586
7   그대 오려고 그랬나... : 송해연    05.02.24 2235
6   새 아침에 : 조창환    05.02.19 1612
5   식구 1 : 정일근    05.02.18 1612
4   그대에게 가고 싶다 : 안도현  [1]   05.02.15 2042
3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이해인  [2]   05.02.15 2176
2   김춘수 : 꽃  [1]   05.02.15 11963
  그리고 미소를 : 폴 엘뤼아르  [1]   05.02.15 2560
 이전 [1].. 11
 

 

시(時) 코너 ( 여러분들의 자작시나 유명한 분들의 좋은 글들을 회원이면 누구나 올릴 수 있습니다... )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1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