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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십자가의 역설
조회수 | 70
작성일 | 17.09.02
[군종] 십자가의 역설

사형 도구였던 십자가가 구원의 표지가 됩니다.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게 됩니다.(마태16,25) 가톨릭교회는 이 같은 ‘역설’위에 세워진 종교입니다. ‘역설’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파라도코스(παράδοξος)에서 유래합니다. 파라(παρά는 ‘반대’(反)를 뜻하고, 도코스(δοξος)는 ‘의견’을 뜻합니다. 그렇기에 역설은상반 되는 두 개의 의미가 같은 용어에 담겨있는 모순을 일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지고 따르라하시는 십자가가 대표적인 역설입니다. 십자가는 고통과 죽음으로 나아가는 형벌이었고, 고통과 죽음은 인간에게 결코 좋은 것이 될 수 없기에, 십자가를 지라는 말은 곧 “가서 끔찍하게 고통 받다가 죽어버려”라는 저주이자 모욕과도 같은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성화 됩니다. 십자가가 예수님을 비참하게 죽게 만들었지만, 그로 인한 예수님의 죽음은 오히려 십자가를 새로운 구원의 통로가 되도록 변화시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얼굴은 분명 일그러져 있습니다. 상처투성이로 일그러진 그 얼굴에는 고통이 담겨 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그러진 예수님의 얼굴이 지금 나의 고통을 위로하고, 나의 아픔, 나의상처를 치유합니다. 역설입니다.

지금 나에게 닥쳐오는 어려움과 좌절, 고통이 있습니다.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지 원망하게 되는 아픔과 상처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고통과 죽음이라는 악의 모습으로 나를 찾아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악을 악으로만 여기며 내 안에 악을 그 모습 그대로 쌓아둡니다. 그러면 그것은 진짜 악으로 뿌리 내려 나를 병들게 만듭니다. 그러나 참 신앙인들은 악의 모습으로 고통이 찾아올 때, 성당으로 달려가 십자가에 매달리신 일그러진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나에게 닥쳐온 악을 예수님의 얼굴을 통해 바라볼 때, 그 악은 ‘역설의 신비’ 속에서 또 다른 구원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악은 그 자체로 나쁜 것 입니다.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나에게 찾아온 악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악 그 자체가 될 수 있고, 또 다른 차원에서 구원의 통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역설의 신비’이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지고 따르라 하시는 ‘십자가의 역설’입니다.

▥ 군종교구 최혁 베드로 신부 - 2017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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