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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님을 따르는 길은 십자가의 길
조회수 | 127
작성일 | 17.09.02
[서울] 주님을 따르는 길은 십자가의 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는 반박을 했습니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왜 예수님께 반박을 하며 항의했을까요? 베드로의 인간적 생각으로 메시아가 고난을 당하고 죽는 것을 도대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지체 없이 베드로를 호되게 꾸짖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자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은 자신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신 길은 바로 십자가의 길이며,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물론 인간적인 판단이나 사고로는 이해하기 힘든 길이었습니다.(이사 55,8 참조)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되면 세상 속에서는 고통과 수난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인간의 욕심만을 쫓아가면 결국 패망하고 만다는 가르침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당장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하느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행위가 결국 생명에 이르는 길이 됩니다. 신앙인이 가야 하는 길은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 자체가 이미 십자가를 각오한 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이냐 세속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늘 서 있게 됩니다. 세속의 범주에는 때로는 나 자신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신을 버리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세속 안에서 쉽지 않고 힘들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 안에 결과는 분명하게 차이를 드러냅니다.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가치 있고 참다운 행복의 삶이 되려면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 길의 결과는 주님께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미 증거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나 자신의 욕심을 버리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며 우리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물론 우리가 겸손하게 하느님께 의지하고 은총을 구해야 합니다.

▥ 서울대교구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 2017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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