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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희망을 믿음으로 믿으며 당당하게 살아갑시다"
조회수 | 127
작성일 | 20.05.14
[원주] "희망을 믿음으로 믿으며 당당하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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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삶은 모두가 순탄 하지만은 않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각자 나름대로의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큰 사건이 닥쳐오거나 버틸 수 없는 고통에 처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도와 줄 것만 같은 누군가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만약 아무도 내가 내민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진지하게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이 닥쳐와 불안과 두려움에 빠진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펼쳤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모든 이가 백이면 백 사람들을 원망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사람들에게 향했던 구원의 손길을 하느님께로 돌릴 것이 분명합니다. 하느님께 절규와 부르짖음으로 지금 닥쳐온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해달라고 매달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느님께서도 침묵만 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막의 은수자 은둔자라 칭송받던 안토니오 성인이 큰 시련과 고통을 극복한 후에 하느님께 여쭈었다고 합니다.

"주님 제가 시련을 당하던 그 때 당신은 도대체 어디에 계셨습니까?"

"나는 어느 때 보다도 그대 옆에 가까이 있었다."

지금 만약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 이겨내지 못한 채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애타게 찾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께서는 어느 때 보다도 여러분 옆에 더 가까이 계시고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으십니다.

"너희가 내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다.(요한 14, 20)"

여러분이 주님께서 그 어느 때보다도 옆에 계시다는 것을 믿음으로 믿고 따르기만 한다면 분명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새 힘(희망)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의탁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신뢰심은 당신에게 닥쳐오는 거대한 시련과 불안과 두려움을 당당하게 받아들이셨고, 마침내 믿음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믿음을 본받아 내게 언제 어느 때 닥쳐올지 모르는 불안과 두려움을 당당하게 맞서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지금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 있다면 가까이 계신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며 기도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큰 튼튼하고 강한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내 계명을 지키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이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를 드러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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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조원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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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하느님께서
작은 사랑의 실천을 기뻐하시고
작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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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 때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성당에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바로 사랑하라!'라는 이야기입니다. 곧,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때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자주, 많이 들었기 때문일까요? 이 사랑하라'라는 말씀이 식상하게도 느껴지고, 가슴 깊이 와 닿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좋은 말씀이고, 맞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너무 자주 들어서 그런지 엄마의 잔소리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사랑해야지'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은 먹고 살기 바빠서...',
'저 사람은 하는 짓이 싫어서...',
'요즘은 너무나도 힘들어서 누구를 사랑할 수 조차 없어.'라고
핑계를 대며, 사랑하기를 망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곧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의 합당한 이유를 찾아야만 하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과 조건이 사랑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만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황님께서는 이런 우리에게 한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작은 사랑의 실천을 기뻐하시고 작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신다.”

이 말씀은 마다가스카르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작년 9월 7일 수도 ‘안타나나리보’에 위치한 한 수녀원에 방문했을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물론 수도 생활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신 것이지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곧, 사랑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닌, 있는 그대로 작은 사랑부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가장 작은 사랑을 있는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이 성체 앞에 머물고,
가족을 사랑하기 위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더 많이 이웃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로만 이해하고 망설이는 사랑이 아닌
사랑의 실천을 통해
사랑의 진리를 우리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다시금 우리들에게 사랑하라!'라고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리를 사랑의 삶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이 초대에 의미 없는 대답이 아닌, 작은 사랑의 실천을 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조건을 따지거나 묻지도 않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어 봅시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의 사랑이 아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사랑의 기적을 우리는 체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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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주상현 안젤로 신부
2020년 5월 17일 원주교구 주보에서
  |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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