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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성령, 한계 없는 사랑의 기운
조회수 | 140
작성일 | 20.05.16
[청주] 성령, 한계 없는 사랑의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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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두고 사랑하는 연인에게 한평생 함께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행하는 이벤트를 프로포즈라고 하죠. 프로포즈의 핵심은 고백입니다. 빛나는 보석, 화려한 장신구, 로맨틱한 분위기는 본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직접적인 고백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진실된 사랑 고백, 정성과 마음을 다한 염원의 표현은 큰 감동과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소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점은 물론 단점까지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며 둘 사이에 생겨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성까지도. 그래서 사랑은 품는 것이고 그것은 곧 언제까지나 하나로 나아가겠다는 성실함을 약속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빈말만 되풀이하는 사랑 고백이 아닌 진중하면서도 묵직한 한 번의 고백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십자가가 의미 있는 이유는, 십자가를 짊어지신 그 ‘행위’와 일련의 ‘과정’이 곧 성자 예수님의 참된 ‘고백’이고 ‘품음’이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우리의 불완전함까지도 채워주시겠다는 진실된 고백이기도 합니다. 있는 그대로, 지니신 당신의 모든 것이 곧 우리의 것이 될 것이며, 하나가 되어 동행할 것임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완전함은 물론 우리의 부족함까지도 내어주겠다는 정성 가득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솔직함 그리고 성실함으로 진실함이 더욱 빛나도록 응하는 것입니다. 그렇
게 하여 우리가 성자 예수님을 품을 때, 성부 하느님의 자비와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토록 합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새길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 안에 깊이….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과의 사랑은 서로를 살리는 것입니다. 서로를 더 높이 세워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같이 살아가는 것’임을 공감하고 공유하며 ‘같이 변해가는 것’임을 깨우치고 이어가는 것입니다. 어떠한 순간과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믿어주고 기대하는 인내와 포용은 우리와 주님과의 사랑을 더욱 굳건히 만들어줍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은 그 자체로 사랑의 기운입니다. 역동적이며 한계가 없습니다. 끊임없는 사랑 고백의 이어짐이고 충실한 약속의 이행이자 완성입니다. 또 전적인 품음입니다. 이토록 완전하고 설레는 프로포즈가 이제 곧 우리에게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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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우상일 요셉 신부
2020년 5월 17일 청주교구 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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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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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왔고 그 사랑은 이유를 묻지 않으며 이익을 따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사랑이며 십자가에 목숨을 내놓기까지 끝까지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이 시간 사랑의 의미를 새롭게 할 수 있는 은총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사랑은 일방통행일까요?
쌍방 통행일까요?
예, 좋습니다.
사랑은 일방통행입니다.

어떤 분은 자기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베풀고 또 베풀었는데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것이 없으니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자식에게, 배우자에게 이웃에게 온갖 정성을 다했는데
남는 것이 없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주고받는 것, 곧 쌍방통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랑하면 상대방이 알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 다시 채워줄 것이고,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수고와 땀의 보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일방통행’이지만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죄가 있든 없든 개의치 않으시고 베푸시는 사랑입니다.

“분별없이 마구 퍼주고 철없는 탕아처럼 다 내주고도 너무 적게 준 것이 아닌지 걱정하는”사랑입니다.

오히려 죄가 클수록 은총도 넘치는 사랑입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용서하시고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쳐라.”하시며
죄인이 잃었던 권위를 회복시켜주는 사랑입니다.
우리도 베푸는 사랑에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청하여 영원히 함께하실 보호자를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안다면 우리도 주님을 사랑해야합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을 바라고 그분 계명을 지킴으로써 삶 안에서 그분을 영광스럽게 해 드려야 합니다.

진실한 사랑은 감정만으로 이루어지는 정서적 사랑이 아니라 아낌없이 내어주는 행위로 이루어지는 실질적 사랑입니다. 말로 충분한 사랑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그 사람에게 좋은 것을 사랑하고, 그 사람이 바라는 것을 행하고자 하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청하여 아버지께서 보내주시는
보호자를 받아들이고 그분과 하나가 되고자 합니다.

보호자는 누구이십니까?

진리의 영이십니다.

요한복음 17장 17절에서는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영을 갈망해야 합니다.
진리의 영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삶을 체험하도록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진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살 때 영을 알아보게 되고, 육적으로 사는 사람은 영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하고, 보호자를 만나고자 한다면 우리의 육적인 삶을 영적인 삶으로, 천상을 갈망하는 삶으로 바꿔야 합니다. 아니 천상을 여기서부터 살아야 합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말합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에제36,26).

우리는 새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서 있다는 믿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도
많은 상처를 주고 또 받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사랑의 결과입니다.

사랑을 하면서도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은 내가 이만큼 베풀었으니 너는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느냐는 보상심리의 사랑 안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방식의 사랑으로 사랑함으로써 상대방을 소유하고 지배하며 마음속에 묶어두면 사랑을 빌미로 상처를 더해갑니다.

그러나 사랑은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상대의 고유성을 인정해 주고 그가 원하는 것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보상은 사랑입니다. 사랑함으로써 주어지는 기쁨과 평화, 보람이 이미 하느님께서 주시는 보상입니다.

우리 옛말에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설사 자식에게 업신여김을 받아도 부모는 자식을 미워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랑이란 내리 사랑이므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을 능가한다.’는 의미입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경우는 많아도 아랫사람이 윗 사람을 사랑하는 경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윗사람이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랑이 전수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지
내 방식의 사랑을 고집하여 상처를 키워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 일서 3장 18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요한14,15).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14,21).라고 하셨습니다.

인격적인 사랑은 인격의 지성, 정서, 의지에 일치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 대한 인격적 사랑은 그분의 비전과 열정에 동화될 뿐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실천하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기쁨, 예수님의 마음으로 모두를 사랑하는 가운데 평화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분의 정신과 가르침의 계명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내적 진실은 실천하는 행동으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요구를 헤아리고 그 것을 채워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도 하나 해내지 못하느냐?
이해하지 못하느냐?”하며 불평불만하지 말고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음을 기뻐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인생이 기계라면,
미움은 모래이고,
사랑은 기름입니다.”
기계에는 반드시 윤활유가 필요합니다.

우리 삶에는 사랑이 필수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

주님께 대한 사랑은 이웃 사랑을 통해 드러납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 주님께 대한 사랑을 드러내듯 우리가 서로에게 다짐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사랑을 증거 합니다. 약속 이행은 사랑의 증거입니다.

하느님과의 약속 배우자간의 약속, 부모와의 약속 자녀와의 약속 그리고 이웃과의 약속에 충실한 만큼 사랑을 증거 하게 될 것입니다.

첫 마음에로 돌아가서 서로의 관계를 회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하느님과 이웃의 관계를 지속시켜주는 힘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한14,18).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진리의 영을 약속해 주셨고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오셔서 우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영원히 지속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안에 오신 성령을 무시하고 고아처럼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결코 떠나 본 적이 없다.’네가 나를 원망하는 그 순간까지.......

“아버지의 품 안에는 아홉 자식이 있을 곳이 있지만
아홉 자식의 어느 집에도 아버지가 있을 곳은 없다.”는
말이 크게다가옵니다.

부디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 안에 머물러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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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2020년 5월 17일
  |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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