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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4주일 독서와 복음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조회수 | 2,259
작성일 | 08.02.01
▥ 제1독서 :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라.
▥ 스바니야 예언서의 말씀 2,3; 3,12-13

3 주님을 찾아라, 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이들아! 의로움을 찾아라. 겸손함을 찾아라. 그러면 주님의 분노의 날에 너희가 화를 피할 수 있으리라.

3,12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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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독서 :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 1,26-31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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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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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참행복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참행복이 어떻게 가난에 있는 것인지요? 어찌하여 슬픔에 있고 박해 속에 있는 것인지요? 알아듣기 힘든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는지요?

성경의 가난은 무소유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난은 자유로움에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적게 가지고 있는지가 가난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얼마를 가졌건 가진 것에서 자유로운 이가 성경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가진 것이 많건 적건 물질의 노예로 살아간다면, 그는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물질을 섬기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기준으로 부자라도 성경의 가난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세속 판단으로는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성경의 관점에서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난은 적극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힘이 있었습니다. 자유롭게 살면 주님께서 힘과 행복을 주신다는 암시입니다. 돈과 물질은 흐르는 물과도 같습니다. 붙잡는다고 잡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셔야 진정한 소유가 되고, 나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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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08년 2월 3일
  |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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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말한 사람은 공산주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입니다. 종교에 대한 이런 오해는, 종교가 죽음 후에나 누리는 천당이라는 환상 속의 행복을 설정해 놓고, 사람들을 달래고 마취시켜서 착취 계급에 순종하도록 한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옵니다.

그러나 산상 설교의 참행복은 오히려 현실의 역동성을 드러내는 것이지, 미래에 주어질 이런 몽환적 행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가난하고 슬프게 살면 나중에 하늘 나라에서 행복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현실에서 가난한 마음, 빈 마음이 되었을 때 누리는 하늘 나라의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슬픔의 밑바닥에서 들리는 ‘하느님의 위로’가 있고, 우리의 온유함 안에, 의로움과 자비로움, 깨끗한 마음 안에 그리고 평화를 일구어 가는 우리의 삶 안에, 이미 세상이 말하는 행복과 다른, ‘참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 속에서 이런 참된 행복을 맛보고 살지 못한다면, 죽음 이후의 하느님 나라에서 주어질 기쁨은, 내가 누릴 수 없는 ‘낯선 기쁨’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한 번도 하느님 나라를 맛보지 못한다면, 미구에 주어질 하느님 나라도 결코 ‘나의 나라’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세상에 살면서 적어도 단 한 가지라도 참행복을 맛보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신 여덟 가지 행복 가운데 우리 자신은 어떤 행복을 맛보며 살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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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1년 1월 30일
  |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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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행복은 세속적인 기준에 따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사람, 슬픈 사람, 박해받는 사람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하게 됩니다. 이른바 착한 사람들, 의롭고 자비로운 사람들이 더 많은 피해를 보고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그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행복을 채워 주시면, 그 많은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 속에서도 참된 행복이 마음속에 솟아오른다는 것입니다. 참된 행복을 주는 주체는 하느님이십니다. 산상 설교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그 행복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산상 설교의 참된 행복은 현실의 역동성 안에 드러나는 것이지, 미래에 막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된 행복의 조건을 ‘지금 여기서’ 실천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행복을 말합니다. 지상에서 가난한 마음, 겸손의 영을 지니는 사람이 하늘 나라의 기쁨을 누리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슬픔의 밑바닥에서 들리는 ‘하느님의 위로’를 삶 속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온유함과 의로움과 자비로움, 깨끗한 마음 안에서 주어지는 예수님의 참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의 삶 속에 불멸의 평화가 가득 찹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진리를 전하다가 어려움이나 박해를 당할 때, 우리는 불사불멸의 즐거움, 영원한 상급의 전조를 체험합니다. 예수님의 ‘진복팔단’이 내 안에 어떻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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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류한영 베드로 신부
매일미사 2017년 1월 29일
  |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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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에서 ‘행복하다’ 또는 ‘행복하여라’라는 표현과 함께 전해지는 말씀은 모두 행복 선언에 속합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이런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군중을 향하여 말씀하신 마태오 복음의 내용은 운문 형태로 전해지며 ‘참행복’ 선언으로 불립니다. 문자로 기록하는 것이 쉽지 않아 대부분이 구전으로 전해지는 고대 사회에서 운문 형태는 기억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참행복 선언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였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합니다.

복음서에서 참행복으로 불리는 본문은 두 가지입니다. ‘진복팔단’으로도 불리는 오늘 복음과 함께 루카 복음에서도 행복 선언을 찾을 수 있습니다(루카 6,20-23 참조). 두 행복 선언이 강조하는 점은 조금 다르지만 공통된 주제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굶주리고 (의로움에) 목마른 사람들과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마지막 주제는 공통적으로 행복 선언의 끝에 자리하면서 시대 배경을 잘 보여 줍니다.

행복 선언은 종말론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미래에 올 보상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행복 선언은 위로의 말씀이면서 신앙인들을 향한 윤리적인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게 합니다. 만일 지금 그렇지 못하다면 현재의 모습을 바꾸어 가는 것도 신앙인들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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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
매일미사 2023년 1월 29일
  |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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