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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조회수 | 2,651
작성일 | 08.02.01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하고 시작되는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가난한 사람, 온유한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박해받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은 비록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고통과 고난 속에 있지만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들이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차례 가난한 사람을 축복하셨고 또 그분 자신이 가난한 사람이셨습니다. 가난한 부모를 가졌고, 초라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으며 가난함 속에서 머리 둘 곳조차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이웃, 그분의 친구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으며, 죄인들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란 우선적으로 물질적으로 부족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살아가면서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들 때문에, 먹고, 입고, 잠 자는 문제, 바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입니다. 프라도 수도회의 창립자이신 슈브리에 신부님은 ‘이 사람 잘 사는구나!’, ‘괜찮은데!’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며, 또 물질적으로 가난할 때 우리는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고 하느님께 의탁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실상 사람들은 가난할 때 하느님을 원망하기 쉬운데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  바로 행복한 사람들은 그러한 때 오히려 하느님만을 의탁합니다. 세상에 의지할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고 느낄 때 하느님께 달려드는 사람, 그 사람은 하느님 안에서 온갖 부요를 누립니다. 그러기에 슈브리에 신부님은 “가난의 정신을 가진 사람은 항상 너무 많이 가졌다고 생각해서 하느님께 갚아드리고 자기 것을 나누려고 하지만, 세상의 정신을 가진 사람은 넉넉히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고 언제나 무엇인가 더 가지려고 불만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두번째 근거는 우리가 정말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고, 그것을 나누고 있는가하는 문제를 따져볼 때 쉽게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진정 가난한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우리 역시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이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부끄럽지 않고 사랑스럽다면, 자신이 그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더라고 그것이 기쁠 수 있다면 그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살아가기 위해서 추하고, 더럽고, 냄새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들의 냄새가, 모습이 아릅답고 사랑스럽다면, 부모님이 시장에서 생선을 팔기 때문에 늘 비린내가 배어 있더라도 그 냄새가 바로 어머니 냄새, 사랑스런 냄새로 여겨질 때, 우리는 가난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는 성경 말씀이 정말 기쁜 소식으로 들리고 눈물 흘리던 때를 알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행복은 자신이 하느님의 축복 속에 살고 있다는 기쁨입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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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김종원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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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행복

과연 인간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세적인 것 곧, 부와 명예, 권력과 지위에 있다고 할 지 모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에만 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때로는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고통과 걱정과 시련에도 행복은 있습니다. 불행이라고 느끼는 일도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큰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등 오히려 인간적으로 불행해 보이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가시적인 것들이 영원한 구원에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행복 선언은, 우리가 추구하던 행복의 출발점이며, 분명 “나만을 위한” 이기적 삶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를 위한” 이타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요청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만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를 위한” 삶을 살기위한 방법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주님의 행복 선언에서 그것을 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과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이란 성령의 인도를 통해, 세속적 가치나 불의한 사회 구조를 하느님이 바라시는 세계로 변화시키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세상과 인간에 대해 증오나 분노를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슬퍼하며, 남을 판단하거나 단죄하지 않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 속에서 교만하거나 우쭐대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의 것으로 채워진,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킨 예수 그리스도처럼 모든 이들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끊임없이 일합니다. 문득 요한 금구 성인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훌륭한 말씀은 감동을 주지만, 훌륭한 표양은 주위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배경민 신부
  |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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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행복선언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 보니, 얼마 전에 인기 있었던 <도깨비>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조카의 돈까지 뺏어가려는, 재물에 눈이 먼 한 가족에게 도깨비가 벌을 내립니다. 그들에게 황금 덩어리를 주는 것, 그것이 벌이었습니다. 도깨비의 지인이 말합니다. “그게 왜 벌이냐”고 상이지! 그러나 놀랍게도 상처럼 보이는 그 황금덩어리는 그 들에게 벌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그 황금을 서로 차지하려 는 욕심을 부려 잠도 못자고 서로 싸우고 급기야 경찰서까지 가게 됩니다. 상처럼 보이는 재물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재물에만 눈이 먼 그들은 처음부터 불행한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계속 그런 불행한 상태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행복선언, 진복팔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하는 것은 ‘행복하여라’는 말입니다. 이는 명령형이 아닌 감탄사라는 것 입니다. ‘너는 행복해져라’가 아니라 ‘너는 행복하구나’라는 것입니다. ‘너는 지금 불행하니 미래에는 행복해 질꺼야’라 는 위로가 아니라 현재 ‘네가 지금 불행한 것 자체가 행복 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자칫 조 롱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 이 가난한 사람-모든 것을 놓고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돈이나 명예, 학벌과 지식 그런 것으로 분명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잠깐 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요 즘 온 국민을 분노케한 정권과 그 실세들의 모습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돈, 명예, 지식 등등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리고 가난이 좋다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면 부귀영화와 명예가 있지만 하느님 앞에 자신의 무력함을 알고 하느님께 매달리며 의지하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성경에서 말 하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극빈하지만 하루 한끼 밥 도 못 먹는 사람이 일확천금 로또를 꿈꾸며 하루하루 허

황한 꿈속에서 살아가느라 하느님을 찾지 못하고 그분께 의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이 아닐 것입니다. 부나 권력, 명예에 의지하지 않고, ‘겸손되이 자신의 나약함과 무력함을 깨닫고 하느님께 매달리며 의지 하는 사람’, 이들이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진복팔단은 더 이상 조롱이 아니라 신앙인인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가난, 이는 내가 모든 것을 놓고 하느님을 신뢰 하는 태도입니다. 슬퍼함, 이는 자비로우신 하느님과 나의 죄 사이에서 오는 갈등과 나 자신의 불충분함을 숨김없이 보고 느끼는 태도입니다. 온유함, 이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온유하게 대하는 태도입니다. 의로움에 대한 굶주림, 자비, 마음의 깨끗함, 평화를 이룩함 그리고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을 준비…. 결국 이 8가지는 인간이 신앙인으로서, 아닌 일반인으로서도 유용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덕목이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 때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보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보답을 외적인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미래의 것으로만 생각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현재적인 의미로 ‘행복하다’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 8가지 덕에 대한 보답은 덕 그 자체 안에 있습니다. 마음이 순수한 사람은 하느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지금 벌써 가난한 사람의 것이고, 그는 이미 하느님 을 향해 열려 있고,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자기의 갈망을 채 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행복은 현재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다면 우리는 행복한 것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행복은 아닐지라도, 금방 없어지지 않는 영원 한 행복을 우리는 주님 안에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의정부교구 조지훈 힐라리오 신부 : 2017년 1월 29일
  |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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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복팔단(眞福八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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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순례길은 늘 즐겁지만 기쁨을 최고조로 느끼게 해주는 성지는 ‘참행복 선언 성당’입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진복팔단(眞福八端) 곧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로 시작하는 가르침(마태 5,1-12)의 장소입니다. 갈릴래아 호수 한 언덕에 자리한 이 성지는 진복팔단이라는 명칭 답게 팔각형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마태 5,1에 따르면, 예수님은 산에서 참행복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과 가까운 산을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모세도 시나이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아온 바 있지요(탈출 24,12).

사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은 모세와 여러모로 비슷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 예수님이 헤로데의 위협 때문에 이집트로 피신하였다가 돌아오게 된 일(마태 2장)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탈출한 뒤 가나안이 바라보이는 곳까지 걸었던 여정과 비슷합니다. 유다 임금의 탄생 소식을 접하고 어린 남아들을 학살한 헤로데는 히브리인의 번성을 두려워해 사내아이들을 죽인 파라오(탈출 1,22)가 생각나게 합니다. 아기 예수님이 헤로데의 학살에서 살아남은 건 파라오의 살해 위협에서 살아남은 어린 모세와 유사하고요.

예수님이 전하신 진복팔단은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태 5-7장에 나오는 ‘산상수훈’(山上垂訓)의 첫 가르침이 진복팔단이니 그 중요성이 엿보이지요. 다만 루카 6,17-23에서는 예수님께서 산이 아닌 평지에서 행복과 함께 불행 선언을 하신 걸로 서술합니다. 그 이유는, 마태오 복음이 모세를 아는 주로 유다인들을, 루카 복음은 이방인들과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데 있습니다.

당시 군중은 유명한 설교가이자 기적을 행한다는 라삐의 가르침이 궁금하기도 했겠지만, 실은 굶주리거나 몸이 아파서 치유를 바라고 따라온 경우가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들을 측은하게 여기신 예수님은 이사 61장을 인용한 말씀으로 희망을 주십니다. 가난하고 부족한 사람이 하늘나라를 차지하기 더 쉽다고 말입니다(마태 5,3-4). 그리고 하늘나라는 ‘내세에서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시고자, 미래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선언하십니다(3.10절). 사실 그렇지요, 부족함이 없으면 하느님을 찾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하늘나라와 멀어지게 됩니다. 고통은 결코 반가운 게 아니지만, 그 때문에 하느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갈구하게 되니 하늘나라로 가까이 인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비를 넘을 때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셨음을 깨닫게 되므로, 고통과 행복은 서로 모순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가리켜 ‘가련한 이들의 보호자’라고 하셨나 봅니다(시편 9,13; 34,7 등). 예수님은 결핍이나 역경이 불행과 동의어가 아님을, 하느님을 아는 것이 최고의 지혜이며 행복의 원천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진복팔단 성지에서는, 행복이란 쟁취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지혜로써 발견하는 것임을 되새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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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 소피아 :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2023년 1월 29일 주보
  |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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