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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가난한 이웃 위해 무엇을 했는가
조회수 | 2,405
작성일 | 08.02.02
가난한 사람들

우리는 늘 하느님 나라로의 최종 목표를 두고 지상 여정의 삶을 순례하는 순례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 순례의 첫 번째 삶의 지표를 오늘 예수님께서는 장엄히 선포하십니다. 이름하여 ‘산상설교’ 혹은 ‘진복팔단’이라 불리는 가르침입니다. 가르침의 첫 말씀은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입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에서는 ‘마음’이 빠져있고 그냥 ‘가난한 사람(루카 6, 20)’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가난은 물질적 가난과 정신적 가난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충실히 지켰던 부자 젊은이에게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고 당신을 따라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재산이 많았던 젊은이는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기에 슬퍼하며 예수님을 떠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른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 24).

세상 재물의 집착과 유혹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얼마나 많은 걸림돌이 되는지를 단적으로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안에 구원에 이르는 재미있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선 ①낙타를 죽입니다. ②죽은 낙타를 불로 화장 시킵니다. ③화장 시키고 남은 낙타의 뼈를 밀가루처럼 곱게 빻습니다. ④곱게 빻은 뼈 가루를 작은 깔대기를 통해 바늘구멍 속으로 조금씩 통과 시킵니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 모르나 가르침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구원에 이르기 위하여는 우선 먼저 나를 불태워야 합니다. 내게 있는 세상 것들을 죽여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잘게 부서져야 합니다. 세상 재물과 욕심으로 비대해진 몸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르는 작은 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최대한 작아지고 가난이라는 동반자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하느님 나라인 것입니다.

박해받는 사람들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존경을 받았던 세계적인 휴머니스트, 박애주의자이셨던 ‘아베 피에르(1912~2007)’ 신부님은 예수님의 진복팔단의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첫째 말씀과 마지막 여덟째 말씀에 특히 주목하십니다. 그러면서 신부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나누어 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국가 원수이건, 회사의 우두머리이건, 교사이건 매일 저녁 ‘나의 능력과 특권과 재능과 학식을 가지고 약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라고 묻는 자가 마음이 가난한 자인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십자가의 어리석음, 계산적이지 않은 손해 보는 삶을 살고, 그리스도인의 정직을 살려면 반드시 박해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요한 15, 18~19).

예수님 말씀처럼 가난한 마음으로 살려면 세상은 늘 우리를 괴롭힙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여덟 가지 행복선언 중 첫 번째와 마지막 선언에 대한 보상이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 3; 10) 라고 되어있는 것입니다. 아베 피에르 신부님은 마지막 행복선언에 대하여도 이렇게 말합니다.

“마지막 행복은 반드시 순교자로 죽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 사람이 있는데 그들 중 가장 힘센 자가 가장 힘없는 자를 착취하려 할 때, 나머지 한 사람이 ‘네가 나를 죽이지 않고서는 이 힘없는 자를 아프게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날, 하늘나라는 이미 이 땅에 와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용기 역시 세상 것을 추구하지 않고 살았던 진정한 마음의 가난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나의 겸손과 가난과 어리석음으로 고통의 이 세상이 그래도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 예수님의 기쁨이 존재함을 삶으로 보여주는 이가 참된 행복을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추기경 시절에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기본 요소는 기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절망의 배후에 생길 수 있는 값싼 즐거움 따위의 기쁨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삶과 함께 하며 이러한 삶조차도 살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그런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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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배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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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은혜는 바위에 새기고….

제가 새신부로 보좌 발령을 받고 본당에 갔을 때 일입니다. 가장 큰 문제를 교회의 자립에 초점이 맞추고 있었기에 교무금 책정 때 저는 앞에서 신자들을 상대하고 뒤에서는 본당신부님이 서 계셨습니다. “조금만 올리시지요.” “좀 적게해주세요.” 그때 뒤에 계신 본당신부님께서 큰 기침을 하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됨을 보았습니다.

힘든 시절, 당시 신자 어르신께서 과거에 성당에서 죽을 쑤워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만큼 교회는 가난했으며 밀가루 신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지요. 50-60년대 전쟁 후, 폐허로 모두 살기 힘든 때 한국 교회는 다른 나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천주교에서도 밀가루
천주교 금호동 성당은 하룻밤사이에 가재를 잃은 금북, 금남, 옥수동 수재민들에게 14일과 15일에 밀가루 2만 3천 7백부대와 의류 1천 5백점을 전달했다. 천주교 구제회(NCWC) 마태오 부장과 조 분도 신부는 이틀에 걸쳐 금호동 지구의 4백 21가구 2천 3백 70명에게 구호물자를 전달하고 이재민을 위로했다. 한편 명동 천주교회도 15일 상오 난곡동 일대 이재민에게 밀가루 40부대와 의류 4백 점을 나누어주었다.(경향신문 1964.9.15)

극빈자에 우유와 죽 NCWC에서 급식
‘수원’ 가난한 살림에 시달리고 있는 극빈자를 위하여 NCW에서는 천주교 수원시 북수동 성당에 급식소를 설치하고 지난 16일 부터 하루 평균 약 이천명의 극빈자에 우유죽을 나누어 주고 있어 대환영을 받고 있다.(경향신문 1961.1.20)

명륜동에 있는 가톨릭 대학생 회관은 오스트리아 오지리 부인회에서 사순절을 맞아 단식한 희생을 모아서 한국으로 송금하여 주었기에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시대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생소하게 생각되지만 우리가 가난하고 어렵고 힘들 때 도움을 받아서 살아온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전환이 되었습니다. 우리보다 힘든나라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받은 것을 나누는 의미가 되겠지요.

우리는 참된 행복(진복팔단)의 정신으로 살기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삶과 손해를 보더라도 활짝 웃는 자세와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삶과 모욕과 박해를 받고 거짓과 사악한 말로 마음이 아프더라도 행복하고 기뻐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위로를 받습니다.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는 말씀에 우리는 행복합니다. 어떤 것도 다 수용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이흥섭 신부
  |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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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행복을 선언하다.

저의 두 번째 소임지, 솔모루 공동체와 더불어 교구의 모든 교우 분들께 사랑 을 전합니다.

행복. 어머니는 마음이 평화로운 것이 곧 행복이라 했습니다. 솔모루, 이제는 네비게이션이 없이도 마음 편히 찾아 올 수 있는 곳입니다. 길이 눈에 익듯, 사람도, 사랑도 익었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대가 알고 있기에 나는 사랑을 고백합니다. 또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에 그대를 사랑함에 행복 합니다.”

말씀을 읽을 때면 예수님의 마음, 그분의 생각, 당신의 의지를 떠올립니다. 이를 위해서 그와 비슷한 장소나 삶의 자리, 대상을 정해 보는 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지금 저에게 솔모루가 바로 그러한 ‘하느님 자리’입니다. 날 것이 아니라, 눈에 익은 사랑을 발견합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같은 분이십니다. 당신이 그러하였기에 그 말씀은 참으로 복되며, 그 말씀을 깊이 되새기며 실천하는 우리도 복됩니다. 언뜻 보기에는 행복하다 할 수 없는 것이, 행복하다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우기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다 어떻게 행복한지를 말씀 하시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꼭 빠뜨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대목이라, 강조해서 얘기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신나서 말씀하셨습니다. 행복은 이런 저런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분의 외양을 묘사해 보는 것이 또 재미있습니다. 행복을 말하는 그분의 머리칼은 얼마나 부드러우며, 가슴을 파고드는 그분의 말씀이 나오는 입술과, 그분과 함께 앉아 있는 푹신한 갈대밭이 따뜻합니다. 그분이 좋아선지, 그분이 묻어나는 모든 것이 좋습니다. 바야흐로 행복입니다. 그러니,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 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고 이해합니다.

솔모루 공동체와 사랑을 한 지, 한 해가 지났습니다. 누군가는 서 있다가 앉기를 반복했고, 저는 다가가서 앉았습니다. 온유한 포용으로 행복을 찾고자 다짐 했습니다. 맞잡아 주시는 사랑에 기뻤습니다. 콧등이 시큰하게 고백을 할 수 있을 때에, 하느님으로 꽉 차있는 은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백은 꼭 당신이 말씀하신 행복입니다. 저마다의 모양으로 행복을 선언하십시오. 드러냄을 통해 그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춘천교구 이지목 안셀모 신부 : 2017년 1월 29일
  |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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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가난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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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원조 주일에 우리는 산상 설교에서 한 행복 선언의 내용을 들었습니다. 이를 우리는 진복팔단(眞福八端)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진복팔단은 여덟 가지 행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 말씀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로운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의 이 말씀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으로 갈 수 있는 길’인지 묵상해 보게 됩니다. 특별히 해외 원조 주일을 맞아 ‘가난’ 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가난해서 행복한 사람은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없을 것입니다. 가난은 삶의 궁핍함과 소외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로 인해 사람을 불행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가난에 대한 척도에는 실제로는 명확한 선이 있습니다. 이를 학자들은 ‘절대 빈곤’ 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절대 빈곤’ 은 인간이 생존해 나가는데 필요한 일정한 경제적 자원이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빈곤에는 고정불변의 기준이 있고, 이것은 삶을 위협할 정도의 가난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가난’ 에는 ‘상대적 빈곤’ 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상대적 빈곤’ 은 사회의 발전 수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화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일반적으로 중위 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상대적 빈곤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현대인들은 SNS(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내가 아는 누군가는 잘 먹고 잘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하지?” 라는 생각을 하며 상대적 빈곤감을 많이 느낀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삶이 절망인 것처럼 생각하며 괴로워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복음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는 신앙인이 되기를 청하며 교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배웠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결단을 내리고 살아야 하며,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살 것임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자기 인생의 잣대로 삼고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살아갈 것이라 다짐했습니다” (한국 천주교 예비신자 교리서 28p).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살고자 다짐했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1코린 1,26). 여러분이 세례를 청했던 그날 여러분의 첫 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을 찾아라, 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이들아! 의로움을 찾아라. 겸손함을 찾아라.” (스바 2,3)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세상 안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며,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얻기 위해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주님께서는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순간의 만족이 아닌 영원한 만족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마음이 가난한 삶을 선택하시고, 주님이 주신 은총을 진정 가난한 이들에게 나눌 수 있으며, 영원한 행복을 희망하며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가실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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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윤장호 시몬 신부
2023년 1월 29일 주보
  |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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