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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사순 제4주일 독서와 복음 (태경소경이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조회수 | 2,385
작성일 | 08.02.28
▥  제1독서 : 다윗이 이스라엘 임금으로 기름부음을 받다.
▥ 사무엘기 상권 16,1ㄱㄹㅁㅂ.6-7.10-13ㄴ

그 무렵
1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떠나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보낸다. 내가 친히 그의 아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사람을 하나 보아 두었다."

이사이와 그의 아들들이
6 왔을 때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바로 주님 앞에 서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10 이사이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사이에게 "이들 가운데에는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없소." 하였다.
11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아들들이 다 모인 겁니까?" 하고 묻자, 이사이는 "막내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여기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12 그래서 이사이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다. 그는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 주님께서 "바로 이 아이다. 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사무엘은 기름이 담긴 뿔을 들고 형들 한가운데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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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독서 :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5,8-14

형제 여러분,
8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9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
10 무엇이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가려내십시오.
11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둠의 일에 가담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십시오.
12 사실 그들이 은밀히 저지르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입니다. 13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모두 빛으로 밝혀집니다.
14 밝혀진 것은 모두 빛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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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 요한이 전한 복음 9,1-41<또는 9,1.6-9.13-17.34-38>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2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3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4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
5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6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7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그에게 이르셨다. '실로암'은 '파견된 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8 이웃 사람들이, 그리고 그가 전에 거지였던 것을 보아 온 이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이가 아닌가?"
9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이오."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니오. 그와 닮은 사람이오." 하였다. 그 사람은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0 그들이 "그러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묻자,
11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12 그들이 "그 사람이 어디 있소?" 하고 물으니, 그가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들은 전에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들에게 데리고 갔다.
14 그런데 예수님께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날은 안식일이었다.
15 그래서 바리사이들도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다시 물었다. 그는 "그분이 제 눈에 진흙을 붙여 주신 다음, 제가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6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몇몇은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고, 어떤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일으킬 수 있겠소?" 하여, 그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다.
17 그리하여 그들이 눈이 멀었던 이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당신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러자 그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18 유다인들은 그가 눈이 멀었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앞을 볼 수 있게 된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19 그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소?"
20 그의 부모가 대답하였다.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이라는 것과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누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도 우리는 모릅니다.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이를 먹었으니 제 일은 스스로 이야기할 것입니다."
22 그의 부모는 유다인들이 두려워 이렇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면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다인들이 이미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23 그래서 그의 부모가 "나이를 먹었으니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하고 말한 것이다.
24 그리하여 바리사이들은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다시 불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시오. 우리는 그자가 죄인임을 알고 있소." 하고 말하였다. 25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제가 눈이 멀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것은 압니다."
26 "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소? 그가 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소?" 하고 그들이 물으니,
27 그가 대답하였다. "제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은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째서 다시 들으려고 하십니까?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28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말하였다. "당신은 그자의 제자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요.
29 우리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아오. 그러나 그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오."
30 그 사람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 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31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누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 그 사람의 말은 들어 주십니다.
32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해 주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33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34 그러자 그들은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 하며, 그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35 그가 밖으로 내쫓겼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시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36 그 사람이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자,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38 그는 "주님, 저는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께 경배하였다.

<39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40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고 말하였다.
4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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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의 평생소원은 눈을 뜨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소경은 예수님을 만나 마침내 눈을 뜹니다. 더 놀라운 것은 마음의 눈까지 떴다는 사실입니다. 기적의 목적은 단순히 병만 고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치유를 통하여 하느님의 힘을 알리려는 데 있습니다. 치유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인 셈입니다.

소경의 치유도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하느님의 힘을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기적은 준비되어 있으면 누구에게나 주어집니다. 준비도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주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한 자세로 믿음의 길을 간다면, 언젠가 기적을 만나게 됩니다. 복음의 교훈은 이 점을 알리려는 데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소경 이야기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바리사이입니다. 그들은 기적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법적으로 따지고 있습니다. 소경이 눈을 뜬 날이 안식일이었다고 예수님을 윽박지릅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장님입니다.

다음은 소경의 가족과 이웃입니다. 그들은 기적을 보고도 호기심 이상을 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들에게 해가 끼칠까 두려워합니다. 믿음에서 의심을 넘지 못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소경입니다. 그는 눈을 뜨고 싶은 일념으로 기다렸기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소경은 진심으로 감사하며 일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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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08년 3월 2일
  |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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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Black)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중복 장애인 헬렌 켈러의 생애를 각색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는 아름다운 대사들이 참 많습니다. 그 가운데 “빛이 없는 곳에서는 성한 눈도 아무 소용이 없다!”라는 한마디가 오래오래 가슴속에서 맴돕니다. 우리가 모두 성한 눈을 가지고 다닐지라도 빛이 없다면 눈은 쓸모없는 기관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빛이신 예수님께서 안 계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는지요? 어느 날 불현듯 엄습해 온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으로 다가오시는 주님께서 안 계시다면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요? 우리 모두 길을 잃고 어둠 속을 지치도록 헤맬 것입니다. 이런 상태라면 차라리 우리 존재가 없는 것만도 못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빛이심을 드러내시며 눈먼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먼 이는 이제 빛이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고 주님을 선포합니다. 보지 못하던 자가 진정으로 보게 되었고, 육신의 눈이 성한 사람이 오히려 참빛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되는 역전이 일어납니다.

세상 것에 눈이 밝다고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삶 속에서 예수님을 깨닫고 살지 못하면 우리의 성한 눈은 영적인 세계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진정한 빛이 없기에 그의 영혼은 어둠 속에 있을 뿐입니다. 세상 것에만 눈이 밝은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일 수 있지만, 내면의 세계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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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1년 4월 3일
  |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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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시기가 깊어 가는 사순 제4주일을 '장미 주일'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요즈음은 보기 드물지만 이날 사제가 자색이 아닌 장미색 제의를 입고 전례를 거행한 데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희생과 단식, 보속 등을 엄격히 지키는 이 사순 시기에 부활의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며 위로하는 '장밋빛 주일'을 보내는 것은 낯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고 느끼는 것의 중요성을 알기에 오늘의 이 거룩한 전례가 더욱더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지닌 사람의 특징을 올바르고 합당한 일에서 기쁨을 느낄 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순 시기가 신앙인으로서 필요한 덕을 키우고 수양하는 때라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쁨을 느끼는지 잘 살펴볼 일입니다. 기쁨이 그저 걱정거리가 없어진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체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사순 시기의 전례를 통하여 조금씩 깨달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삶에서 '변화의 표징'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때 느끼는 기쁨이야말로 사순 시기를 뜻있게 보내는 이들의 특권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발견하는 것은, 이러한 기쁨을 얻고자 노력하지만 이 기쁨은 자기 자신이 완성하고 누리는 기쁨이 아니라, 주님의 성령으로 완성되도록 '내어놓는' 기쁨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미완성의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참기쁨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전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처드 세넷이라는 사회학자는 『장인』이라는 책에서, 훌륭한 장인은 역설적으로 '완벽 주의'를 피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완벽 주의와 씨름하다 보면 나 자신을 의심하는 일을 해 보이려는 꼴이 되고 만다. 이 지경에 이르면 제작자의 정신 상태는 지금 만드는 물건이 해야 할 일보다도 제작자 본인의 역량을 보여 주겠다는 쪽으로 더 쏠리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빛 속의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그러한 삶에는 장애와 오류와 박해가 생기지만 마침내 빛을 따르고 빛에 개방된 삶입니다. 그 빛이 온전히 자신을 비추고 채운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느껴야 하고 또한 느낄 수 있는 기쁨의 본질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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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4년 3월 30일
  |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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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앞을 못 보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진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바르십니다. 이 장면은 하느님께서 진흙을 빚어 사람을 창조하시는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창세 2장 참조). 새로운 생명을 주신다는 의미이지요. 이어 예수님 말씀대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자 그의 눈이 밝아집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에는 일하면 안 된다는 자신들의 논리에 갇히고는 예수님을 죄인 취급해 버립니다. 더욱이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려고 눈을 뜬 사람과 그의 부모까지 몰아붙이지요. 부모는 예수님께서 눈을 뜨게 해 주셨다고 고백하면 회당에서 추방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얼버무려 버립니다.

하지만 눈을 뜬 사람은 바리사이들의 위협에 조금도 굴하지 않지요. 오히려 그들에게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상세하게 증언합니다. 대단한 용기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바리사이들로부터 회당에서 쫓겨나지 않습니까?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친히 다가가시고, 그는 마침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게 되지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그는 모든 것을 보게 되었고, 영적인 눈마저 뜨게 된 것입니다.

오늘 바리사이들은 진실을 은폐하려 하지만 진실은 결코 어둠 속에 묻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빛의 아들로 처신했지만, 점점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하느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처신했지만 결국 하느님을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 되었지요. 반면, 눈을 뜬 사람은 더욱 빛의 세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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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매일미사 2017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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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에 대한 유다인들의 생각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그들은 병이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였고, 병의 정도가 심할수록 죄가 크다고 여겼습니다. 그럼 오늘 복음처럼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먼 사람은 어떤 죄를 지었을까요? 이런 궁금증과 함께 복음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먼 사람을 예수님께서 보게 해 주십니다.

요한 복음의 표현으로 하면 표징이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표현으로는 기적입니다. 모든 복음서가 그렇듯이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해 주신 기적 이야기는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표징이 일어난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 관심을 모읍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표징 곧 기적을 일으키셨다는 것을 애써 부인합니다. 눈이 멀었던 사람의 부모를 불러 그가 정말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였는지 묻고 본인에게도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묻습니다. 이 모든 일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과 함께 눈을 뜨게 된 사람과 바리사이들을 대조적으로 보여 줍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던 이는 표징을 체험하고 자신을 낫게 하신 분이 누구신지 알아 갑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일어난 모든 일에 완고하게 처신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에 대하여 관심이 없고,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다는 것에만 집착합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눈먼 사람은 눈을 뜨고 예수님을 찾지만, 바리사이들은 눈먼 사람처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실상 하느님의 일을 보지 못하고 눈이 먼 사람은 바리사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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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
매일미사 2020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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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제2독서인 에페소서의 이 말씀은 마치 복음서의 주제를 요약해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 복음은 빛과 어둠의 이야기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빛’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빛과 어둠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사람을, 반대로 어둠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빛이 없는 상태에, 곧 어둠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나타냅니다.

오늘 복음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동시에 애써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 중심에는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과 그것을 통하여 드러나는 예수님의 신원이 있습니다. 눈먼 사람은 빛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만남으로 그는 빛을 선물받습니다. 그는 이제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갑니다.

눈을 뜨게 된 사람과 대조되는 이는 바리사이들입니다. 그들은 볼 수 있는, 눈이 멀지 않은 이들이지만 빛을 거부합니다. 다른 의미로 눈은 뜨고 있지만 진정한 빛을 보지 못합니다. 그들의 생각에 눈먼 것은 죄의 결과이고, 눈먼 사람은 죄인입니다. 바리사이들에게는 죄의 여부와 안식일에 지켜야 할 규정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안식일 규정을 어긴 예수님 또한 바리사이들의 눈에는 죄인일 뿐입니다. 죄만을 생각하고 죄를 찾는 눈에는 죄가 보일 뿐입니다. 빛을 생각하고 빛을 찾는 사람에게는 빛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에페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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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
매일미사 2023년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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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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