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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어둠 속에 머무르려는
조회수 | 2,380
작성일 | 08.02.29
예수님께서는 복음에서 “내가 세상의 빛이다”고 말씀하시고 태생 소경에게 볼수 있는 빛의 은총을 주셨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예언자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은 그 사람을 협박하여 위증토록 다그쳤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고 말하면서 거부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미워하는 바리사이들은 그를 비웃으며 밖으로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가 내쫓겼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자 묻습니다.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그 사람이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그는 “주님, 저는 믿습니다.”하며 예수님께 경배하였다.(요한 9, 36-38)

교우 여러분! 우리는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빛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 자녀로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제단체 회원으로 기도 모임에 참석하고 있고 교회 봉사자로서도 활동하고 있으며, 또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 가족간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신앙생활은 빛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한 우리들 믿음의 역사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 우리는 인생여정에서 우리들의 부족했던 믿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둠의 세계 속에서 우리 멋대로 일때는 하느님 말씀을 전하기가 왜 그렇게도 쑥스러웠으며, 재산을 모으지 않으면 인생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왜 그렇게도 교무금, 주일헌금 봉헌하는데도 인색했던지요.

참 행복을 이 세상에서만 찾아보려고 무진장 헤맸던 시절들도 많았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참으로 살아온 여정이 부끄러울뿐이지만 주님말씀의 힘으로 용기내어 기도드립니다.

빛이신 예수님! 자꾸만 영육간에 눈이 떠져서 우리가 빛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주소서. 또 매일매일을 “주님 믿습니다”라는 고백으로 시작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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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김요안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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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어보고,
또 왜냐고 물어도 보고 그렇게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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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귀한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잘 듣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과 원래부터 눈먼 이가 눈을 뜬 놀라운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복음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땅에 침을 뱉고 진흙으로 개어서 날 때부터 눈 먼 이에게 바르신 다음, 가서 씻으라고 하셨고 그가 그대로 했으며, 그래서 눈을 뜨게 되었다는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신기하기는 해도 그리 거창하거나 요란하지 않지요? 예수님이 무슨 특수 기도문을 외우셨거나 몇 시간씩 양팔 기도를 하셨다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저 ‘~하라’고 하셨고 그는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일이 생기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하라시는 대로 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눈을 뜨게 되었던 것이지요. 만일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잘 듣지 않고 그냥 흘려버렸다면 그는 실로암 못에 가지도, 씻지도, 나아가 눈을 뜨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귀 기울여 잘 듣지 않기 때문은 아닌지요?

그리고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 기가 막히는 일이
‘어떻게’ 벌어지게 되었냐는 것에만
온통 관심을 기울입니다.

이웃 사람들이나 그가 전에 거지였던 것을 보아 이들(8), 바리사이들(15-16.19.26)과 부모도(21) 한결같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만 묻지요.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는 것이 아닐까요?

누구의 죄 때문에 저 모양 저 꼴이냐는 제자들의 질문은 “범인색출, 발본색원, 검거, 책임추궁과 단호한 처벌, 질서확립” 등의 단어들을 생각나게 하고 그 질문에 숨어 있는 못된 마음보를 짐작하게 합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예수님은 ‘하느님의 일’ 곧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라는 답답한 대답을 하시지요.

그냥 ‘누구 때문’이라고 책임을 져야 할 범인 ‘한 놈만’ 딱 지목하면 쉽고 깔끔할 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은 또 뭔지 제자들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니 이해하지 못하기로는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날 때부터 눈먼 이가 눈을 뜨고서
예수님을 ‘예언자,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분,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17.31.33)으로 당당히 증언합니다.

그리고 ‘선생님’(36)이라고 부르던 분을
이제는 ‘주님’이라고 경배합니다,(38)

형제자매여러분!
아, 이 놀라운 일이
‘왜’ 일어났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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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김훈 안토니오 신부
  | 03.22
528 45.2%
[전주] 빛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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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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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을 보면 ‘빛’에 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요한 3,19-21).”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사람이 낮에 걸어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어디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밤에 걸어 다니면 그 사람 안에 빛이 없으므로 걸려 넘어진다(요한 11,9-10).”

“빛이 너희 가운데에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걸어가거라. 그래서 어둠이 너희를 덮치지 못하게 하여라.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그 빛을 믿어,빛의 자녀가 되어라(요한 12,35-36).”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2,46).”

이 말씀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빛이신 분’이다.
2) ‘빛’이신 분인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생명’을 얻게 된다.
3) 그러나 예수님을 거부하면, ‘죽음의 어둠’에 빠지게 된다.
4) 예수님께서 주시는 ‘빛’을(생명을) 받고 싶다면,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받아야 한다.

여기서 ‘낮 시간’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주시는 빛을(구원과 생명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 시간입니다. 이 시간이 언제까지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르니까 ‘지금’ 받아야 합니다. 나중으로 미루면서 안 받으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마태오 24,50) 심판이 닥치게 될 것입니다. 이 심판은 개인의 사심판일 수도 있고, 종말의 공심판일 수도 있습니다.

심판의 날이 닥치면, 예수님을 안 믿고 있었던 사람들은 ‘안 믿고 있는 그 상태’ 그대로,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죄 속에서 살면서 회개하지 않고 있었던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 있는 그 상태’ 그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9,39).”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라는 말씀은,
요한복음 3장에 있는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7).”라는 말씀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에, 예수님 말씀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의 뜻은,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려고 왔는데, 구원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내가 주는 구원을 받을 것이고, 구원받기를 거부하면서 나를 배척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입니다.

요한복음 3장 18절에, ‘심판’에 관한 말씀에 대한 보충 설명이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요한 3,18).”

이 말씀의 뜻은, “믿지 않는 것은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것이고,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것은 심판을 선택하는 것이다.”입니다. 생명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간은 없습니다.

여기서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라는 말씀의 뜻은, “자기가 죽음의 어둠 속에 있음을 인정하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빛을 받기를 원하고,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은 어둠에서 해방되어서 빛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입니다. 그것은 보지 못하던 이들이 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라는 말씀의 뜻은, “자기가 어둠 속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거나, 또는 어둠 속에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어둠을 더 좋아하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빛을 거부하는 자들은, 빛을 보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어둠 속에 있게 될 것이다.”입니다. 잘 보고 있다가 눈먼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눈먼 상태 그대로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인류는 메시아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예외 없이 모두 다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마태 4,16; 요한 1,5). 그런데 어떤 이는 빛을(구원을) 갈망했고, 어떤 이는 아무 생각 없이, 희망도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나라, 구원, 생명, 참 평화, 참 행복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 없이, 하루살이처럼 허무한 삶을 살다가 그냥 그대로 생을 마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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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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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자기가 구원받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는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고백하고) 회개하는 사람들은 죄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즉 구원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는 의인이라고 자처하면서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죄 속에서 멸망하게 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하늘나라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셔도,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또는 그냥 밖에 있겠다고 고집부리는 사람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안 들어가서 못 들어가게 됩니다.

사제가 고해실 안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고백할 죄가 없다면서 고해실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사람에게는 고해성사를 줄 수가 없습니다. 성사를 보라고 강요해서 억지로 보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보려는 마음 없이 억지로(형식적으로) 보는 고해성사는 고해성사가 아닙니다. 성인들(의인들)은 더 많이 회개하면서 죄를 고백하는데, 정말로 큰 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기는 죄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회개하기를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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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2020년 3월 22일
  |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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