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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5주일 독서와 복음 (너희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다)
조회수 | 2,191
작성일 | 11.02.05
▥ 제1독서 :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리라.
▥ 이사야 예언서 58,7-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7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9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10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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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독서 : 나는 여러분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선포하였습니다.
▥ 코린토 1서 2,1-5

1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
2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3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4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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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5,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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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일본의 작가 미쓰하라 유리의 『길』이라는 시집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짧고 쉬운 시들이 아름답고 뜻이 깊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권 사 두고 보좌 신부로서 사목지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간 절판되어 더 구할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최근 한 신자에게서 이 책을 선물받고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이 시집에는 ‘길을 만든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맨 처음 길을 걸은 사람 훌륭해/ 험한 길 처음으로 걸은 사람/ 이름을 외울 가치가 있을 만큼 훌륭해/ 그 오롯한 자세/ 정말 아름다워/ 허나 그 뒤이어/ 이름 따위 안 남을 줄 알면서도/ 꾸준히 길을 밟아 다지며 걸어간 이들의/ 소박한 걸음/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니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복음의 요구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자신과 가정을 돌보기에도 벅찬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가르침이 가슴 깊이 와 닿을 수 없는 이상일 것으로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위의 짧은 시가 노래하듯, 주님의 뜻을 실행하는 삶은 누구에게나 자기 나름의 처지에서 가능합니다. 어떤 이가 먼저 길을 내는 몫을 맡았다면 다른 이는 그 길을 걸어가고 따라가 줌으로써 그 길을 넓히고 다지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실 일들, 우리를 통해 하실 일들에 미리 제한을 두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도록 이끄시는 주님의 손길에 신뢰하고 감사하며 응답하는 것이 참행복의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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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4년 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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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 어둠을 밝힐 수 있는 빛과 음식의 맛을 내는 소금, 이 둘은 살면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들을 대변해 주는 표징들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적절합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어떤 제도나 이념, 권력과 폭력이 아님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배웠습니다. 설령 그런 것들이 사람들을 통제와 규율 속에서 획일화하고, 왜곡된 가치 질서에 잠시 물들게 할 수는 있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변화 없이 세상의 변화를 만날 수 없다는 진리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하고 명하십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이며,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신앙인의 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상적인 자아를 꿈꿉니다. 현실에서 성공이 재산과 권력에 달려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행복과 평화를 인생의 목표로 삼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자기 계발서가 난무하는 요즘 시대에도 성경은 한결같은 원칙을 고수합니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길은 이사야 예언자가 여전히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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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매일미사 2017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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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될 것이다.’가 아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될 것이다.’가 아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언젠가 신앙으로 우리가 잘 다듬어지고, 성장하게 되고, 무엇인가 나아지게 되면 그때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금과 빛은 먼 뒷날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우리 자신이 소금이고, 빛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전에 썼던 제 강론들을 찬찬히 읽어 본 적이 있는데, 부끄러움이 확 밀려왔습니다. 글이 참 형편없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 글에 맞갖게 살지 못하는 것도 부끄러웠습니다. 또 이런 글들을 많은 사람이 읽는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래서 강론하는 것도, 강론 원고를 기고할 자신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부족하여도, 모자라도 그냥 올리자. 내 입장에서 아무리 부끄러워도 주님께서 알아서 이 글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지를 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는 것이 아무리 보잘것없고, 제가 보기에 너무나 부끄럽다고 하여도 나름의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저 자신이 소금이요, 빛이라는 생각이 쉽게 들지 않더라도, 주님 말씀을 믿고 소금처럼, 빛처럼 노력하자는 생각을 해 봅니다. 빛을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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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 한재호 루카 신부
매일미사 2020년 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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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믿음의 정도를 가늠하고 재어 볼 수 있는 척도는 무엇일까요? 주일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 수를 통계 내어 가늠하면 되겠습니까? 교회의 여러 성사들에 늘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수로 판단하면 되겠습니까? 오늘 복음에 따르면 우리 믿음의 정도는 우리가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어 사는 것으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산상 설교 시작 부분으로 행복 선언(마태오 5,3-12 참조) 바로 다음의 말씀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가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고 전합니다(마태오 5,1 참조).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도 산에서, 성당에서 예수님께 다가가 그분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는 이 산을 내려가기가 두렵습니다. 비록 잠깐이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산에 있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산에서 내려간 바오로 사도는 아테네에 가서 예수님을 전하였는데 그의 말을 들은 그리스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습니다(사도행전 17,32 참조).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맨 처음 코린토에 갔을 때 자신은 약하였으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무척 두렵고 떨렸다고 하였습니다(코린토1서 2,3 참조). 우리는 예수님께 들은 생명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산에서 내려와 세상 한가운데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신자가 아닌 듯 살아갈 수 없습니다. 신자의 본분을 외면하며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 한가운데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당부하십니다. 소금의 비유는 너무도 명확합니다. 소금은 음식에 맛을 냅니다. 우리는 복음의 진리를 세상 안에서 참되게 증언하며 세상을 맛나고 풍요롭게 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소금이 음식의 부패를 막아 주는 것처럼, 우리가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고(야고보서 1,27 참조) 나아가 세상의 부조리와 부패를 막는 소금이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믿음을 더해 주시기를, 우리의 인생이 신자의 맛과 본분을 잃지 않는 복된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께 간절히 청하며 용기를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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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정용진 요셉 신부
매일미사 2023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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