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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됩시다.
조회수 | 1,116
작성일 | 17.02.01
[대구]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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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덕본당 주임으로 있을 때, 선배신부님과 함께 소금 장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소금 판매 수익금으로 선교후원 회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비자도 소금이었는데, 아주 색깔이 희고 입자도 참 고왔습니다. 물기가 쫙 빠지면 소금 품질이 더 나아지고, 응달에 5년을 놔두면 명품 소금이 된다고 했습니다. 주문한 소금부대들을 차에 싣고 이동할 때 소금물이 차에 흘러내렸고, 짠 내가 났습니다. 그 소금기를 씻어내지 않고 그냥 놔두면 차가 빨리 부식되기 때문에 금방 씻어내야 했습니다. 바닷가 사람들의 차의 수명이 짧은 것은 소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소금이 어딘가에 들어간다고 해서 다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장량본당에서는 사제관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재작년부터 품질 좋은 소금을 넣은 김장을 팔아서 큰 수익을 냈습니다. 소금이 들어가지 않은 김장은 별 맛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소금은 음식 맛을 내기도 하고, 음식이 썩지 않게도 합니다. 그 외에도 소금은 여러 분야에서 소중하게 사용됩니다.

2.

어린 시절에 많이 불렀던 동요 중에 < 파란 마음 하얀 마음 >이 있지요? 그 가사는 이렇습니다. 1)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여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파아란 하늘 보며 자라니까요. 2)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 거여요. 산도 들도 지붕도 하얀 눈으로 하얗게 하얗게 덮인 속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노래가사처럼 우리 마음에 빛을 갖고 있다면 여름에는 파랗고, 겨울에는 하얗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빛이 되어야 할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일깨워주십니다.

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소금은 음식 맛을 내고 썩지 않게 하고, 빛은 어둠을 밝힙니다. 소금은 녹지 않으면 짠 맛을 낼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녹여야만 소금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빛은 자기 자신을 태워야만 환해질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2일, 우리는 한 해 동안 사용할 초를 축복했습니다. 초도 자기 몸을 녹이지 않으면 빛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가정생활을 예로 들면, 가족의 행복과 일치를 위해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낼 때, 가족을 위한 빛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신부가 되고 나니까, 모든 가족이 제 의견을 많이 묻습니다. 제 가족뿐만 아니라,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빛의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모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자녀의 말과 행동이 부모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내팽개치지 않고, 끝까지 자녀의 마음을 달래고 잘 보살펴서 올바른 길로 걸어갈 수 있게 정성껏 이끌어주는 것도 부모가 자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빛 역할일 것입니다.

어떤 손님이 어두운 골목길에 내렸는데, 택시기사가 금방 떠나지 않고 손님이 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계속해서 헤드라이트로 그 손님을 비춰주었다고 합니다. 택시기사가 손님을 그렇게 배려하는 모습도 분명 빛의 역할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인생의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를 신앙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닷물은 염도가 3%에 불과해도 그렇게 짠 데, 천주교 신자는 우리나라에 10%나 되는데도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성찰해봅니다. 세상 안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더욱더 충실히 해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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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정재성 신부
523 97.6%
[대구] 소금과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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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통하여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삶에 맛을 내고 이 세상에 맛을들이는 소금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둠이 짙게 깔린 이 세상에 한 줄기 빛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제1독서는 이러한 우리의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참회의 날에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라 전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리면서도 이웃과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곤경에 처한 형제를 외면하고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기도입니다.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아파할 때 하느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으며 하느님의도우심을 바랄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참 소금이며 빛이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려줍니다. 사도 바오로는 복음을 전하다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무시당하고 쫓기고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그것을 이겨내고 기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통을 온몸으로 껴안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 모두의 소금과 빛이 되셨습니다. 신앙인이란 바오로 사도 같이 참 빛이신 그분의 삶, 그분의 가치를 선택하고 충실히 따르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처럼 이 땅에 소금이요 빛의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정작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녹여야 하고자기 자신을 태워야하기에 그러합니다. 그러한 삶은 말로써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드러나야 하기에 그러합니다.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을 오늘을 사는 나를 통해 계속 이어나가길 원하십니다. ‘세상에 맛을 들여라. 세상에 희망의 빛이 되어라.’소금과 빛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이 이 땅에 있는 한, 그러한 신앙인을 통해서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이며 희망을 품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다시금 묵상합니다.“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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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장우영 요셉 신부
2017년 2월 5일
  | 02.07
523 97.6%
아버지

[대구] 빛과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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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을 지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되심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되셨듯이 우리도 이 날 초를 봉헌하면서 초와 같이 자신을 태워 세상을 비추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온전히 자신을 아버지께 봉헌하셨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큰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 이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내고 오늘 연중 제5주일을 맞이하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빛과 소금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소금은 모든 음식의 간을 맞추는 조미료의 역할을 합니다. 우리 신자들도 소금과 같이 이 세상에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 조미료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또한 음식의 부패를 방지하는 방부제의 역할을 합니다.

우리 신자들도 소금과 같이 부패하고 타락한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방부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빛은 자신을 태워 이 세상을 밝게 비추는 역할을합니다. 길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매는 인류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 세상을밝게 비추는 큰 빛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자신을 태워 예수님의 큰 빛을 이 세상에 전하는 작은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타협하고 잘못을 범하고 하느님을 멀리하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빛의 역할을하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같이 방황하며 살고 있습니다.

죄악으로 썩어가는 이 세상에 소금이 필요합니다. 어둠 속에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에게 빛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과 소금이 제 역할을 하려면 빛은 자신을 태워야만 그 빛을 세상에 비출 수 있습니다. 소금도 자신을 녹여야만조미료와 방부제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자신을 희생하고 봉사할 때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간혹 ‘나는 누구이며 어떠한 존재인가?’, ‘이 세상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정의를 내리십니다.

“너희는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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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백명흠 바오로 신부
2020년 2월 9일
  | 02.07
523 97.6%
세상의 소금과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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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금은 짠맛의 결정체로 생존과 부패 방지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며, 빛은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필수적인 요소와 도구인 ‘소금과 빛’으로서의 쓸모 있는 역할을 강조하십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쓸모 있는 역할을 실천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맞아들이며, 헐벗은 사람을 덮어 주고 …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 대낮처럼 되리라.”(이사 58,7-10) 이사야 예언서의 이 말씀은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주었다. …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31-46 참조)

오늘 두 번째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음”(1코린 2,4)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 선포를 통해 쓸모 있는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믿음의 바탕을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작은 이’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돌보듯, 함께하는 이들을 돌보아,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해야하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1코린 2,2)한 바오로 사도의 결심을 기억하며, 이번 한 주간도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쓸모 있는 우리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도록 합시다.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하고 말씀해 주시리라.”(이사 58,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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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정황래 시몬 신부
2023년 2월 5일 주보
  |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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