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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우리는 누구입니까?
조회수 | 825
작성일 | 17.02.03
[대전] 우리는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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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당신 제자인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아시다시피 소금은 음식 속에 녹아 사라지지만 음식의 맛을 내고 또한 음식이 썩지 않도록 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소금 없이는 어연 음식도 맞을 낼 수 없습니다.

어느 공동체나 궂은 일을 맡아 하고 헌신적으로 자신을 내어 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불평하거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말없이, 그런 소금 같은 존재가 있기에 그 공동체는 아름답고 살맛나는 공동체가 됩니다.

또한 빛은 사물을 올바르게 보게 해주고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어둔 밤에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어딘가에서 빛이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생명 경시 풍조, 물질만능주의, 쾌락, 이기주의적 가치관이 군림하는 이 세상에서,‘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적 가치관을 기장 중요한 것으로 간직 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아직도 세상에는 희망이 있고 사람들은 하느님 계심을 알게 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떻게 우리 사회가 이 지경까지 됐는가!’ 하는 통탄을 자아내계 합니다. 돈과 권력을 최고의 가치로 송배하며 숨 가쁘게 달려 온 이 사회의 어두운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보면서 ‘우리는 누구인가?' 하고 자문하게 합니다.

지금 우리 나라엔 천주교 신자만도 380 만 명이 넘습니다. 개신교 신자까지 합치면 인구 5명 충 한 명 이상이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크리스챤입니다.(2015 인구 총 조사)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많은데 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삶을 살치 않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 안에서는 하느님을 찾고 거룩하게 기도드리는데, 교회 밖의 가정과 사회에서는 복음적 가치관에 따라 살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오늘 주님의 말씀이 우릴 부끄럽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릴 부끄럽게 하시거나 꾸짖으시려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존재들인지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일깨워 추시고, 참으로 당신 자녀로 살기  쉽지 않은 이 세상에서 용기를 내어 그렇게 살아가도록 격려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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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이대근 론지노 신부
2017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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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우리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소금으로 살라고 하셨겠습니까? ‘소금은 부패를 방지합니다.’ 소금은 음식이 썩는 것을 막는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어느 곳에 가든지 그곳을 썩지 않게 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고상한 것과 옳은 것과 순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과 덕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들을 마음속에 품고”(필립4,8)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소금은 맛을 냅니다.’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어떤 음식도 제 맛이 나지 않습니다. 맛을 내려면 먼저 소금이 음식에 녹아야 합니다. 녹는다는 것은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주님은 살맛나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믿는 자에게 겸손과 사랑으로 섬길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소금은 생명력을 제공합니다.’ 인간의 몸에 필요한 하루 최저 소금 섭취량은 10∼15g 정도라고 합니다. 만일 이것이 공급되지 않으면 노폐물이 배설되지 못해 병이 생기는 것은 물론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조용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사회에 생명력을 제공하는,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류시화 시인은 자신의 시 ‘소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바다의 눈물”이라는 말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소금의 맛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얼마의 상처를 입더라도, 아픔을 감수하거나 눈물을 흘려서라도 소금의 맛을 내려는 누군가의 섬김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이 살맛나는 세상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의 봉사가 이루어지는 한 주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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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민병섭 바오로 신부
2020년 2월 9일
  |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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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과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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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이스라엘 대학의 고고학자들이 고대의 물고기 화석에서 불의 흔적을 발견하였는데, 수석 연구원인 Irit Zohar의 분석에 따르면 770,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존에 인간이 최초로 불을 사용한 것보다 훨씬 이전인 선사시대의 것입니다. 결국 우리 인간은 인류 초창기부터 불을 이용하여 획기적으로 음식을 요리하여 먹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맛나는 음식을 만드는 데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소금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불(빛)과 소금을 빗대어, 오늘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5,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금과 불(빛)의 공통점은 정확한 어떤 지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충만합니다. 음식을 만드는 데 소금을 너무 적게 치면 싱거워서 맛이 없고, 그렇다고 너무 많이 치면 짜서 먹기가 거북하거나 온갖 성인병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불(빛)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식에 따라 적절히 익히거나 끓이는 것이 맛을 내는 비결입니다. 모든 생물체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태양빛도 금성에서는 너무 뜨겁고, 화성은 너무 춥기에, 그 중간에 있는 지구가 우리가 가장 살기 좋은 곳입니다.

병원 사목을 하면서 환우들을 만나면 기꺼이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기도해 주고, 상담해 주지만 그들의 마음을 알아듣고 그 고통을 헤아리는 가운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듯합니다. 내 딴에는 위로라고 한 말이 아프신 분, 특히 말기 환우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지는 않은 것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어려움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우들을 대하면서 무조건적인 존중과 경청, 그리고 공감능력을 키우면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시고 치유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금과 불(빛)의 또 다른 공통 특징은 자신을 녹이거나 태우면서 맛을 내고 빛을 발합니다. 소금은 자신을 녹여서 맛난 음식을 만들고, 제대의 초는 자신을 녹여서 제단을 밝힙니다. 이제 성체로 오신 예수님의 몸은 매일 영하는 우리의 혀에서 녹아 우리의 몸을 양육시키고 성화시키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다.”(갈라 3,27)라고 말씀하시며,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고백하십니다.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환우들을 만나, 그 아픔과 고통에 녹아드는 가운데 작은 등불이 되기를 희망하고, 우리 자신을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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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최효인 시몬 신부
2023년 2월 5일 주보
  |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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