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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조회수 | 492
작성일 | 20.01.31
[전주]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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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날을 며칠 앞두고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서로에게 행복을 빌어주는 인사를 아끼지 맙시다.

그러면 이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이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동화 <행복의 파랑새>의 주인공 찌르찌르와 미찌르라는 두 남매는 꿈속에서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머나먼 여행을 떠납니다. 죽음의 나라도 찾아가고, 과거와 미래의 여러 나라들을 살펴봅니다. 그러나 그 행복의 파랑새를 그 어느 곳에서도 찾지 못합니다. 결국 그들은 실망하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토록 간절히 찾던 행복의 파랑새는 집 문에 달려있는 새장 안에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우리들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은 이 행복을 쉬지 않고 찾고 있습니다만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이 행복을 엉뚱한 곳에서 찾아 헤매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행복선언’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 예수님께서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대신에 ‘어떻게 사는 사람이 행복한가?’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의 상식과는 다른 것입니다. 사람들은 부요와 풍요로움, 기쁨과 웃음 등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반대되는 가난과 굶주림, 슬픔 등은 하느님의 벌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우신 하느님 나라의 행복에 초대된 사람은 똑똑한 사람,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무엇 하나 자랑할 것도 없는 사람, 무시당하고 억눌리고 멸시받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겸손하고 오직 하느님께만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신을 완전히 비운 사람,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깨끗한 마음 안에 하느님을 모시고 살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올 한 해도 참된 행복의 길을 걸어갑시다. 여러분 모두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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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박병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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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행복을 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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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는 인생 여정을 함께하는 ‘그대’라는 존재가 있기에 행복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그대는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는 아름다운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때 ‘그대’라는 대상의 자리에 우리를 사랑해주는 누군가, 혹은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대입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 자신도 다른 누군가에게 그러한 존재로서 그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느님께서 그렇게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가 되어 주십니다. 함께 있기 때문에, 그리고 함께 있겠다는 약속 때문에 우리가 그 행복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물질적 풍요로움이나 건강 등에서 행복을 찾곤 합니다. 그런데 물질적 측면이나 건강이라는 차원의 행복은 더 큰 것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지기에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행복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거쳐가는 지점일 뿐이며, 참된 행복은 모든 사람이 바라고 추구하는 대상으로서 목적지이자 종착점이라는 마침의 상징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함께 있음을 기억하고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은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와 희망이 됩니다. 게다가 그 구체적인 주체가 하느님이시기에 우리가 누리게 되는 행복은 더욱 절대적이며 완전한 것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행복에 힘입어 다른 누구에게 행복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이며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국경과 민족을 초월하여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실천하는 사랑의 표현이 하나의 행복 선언이 되어 함께 있음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새로운 한 주, 우리가 행복을 주는 사람임을 기억하며, 행복 안에 머무르고 행복을 기꺼이 전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 …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 ”
-해바라기, “행복을 주는 사람”(1989)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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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윤영현 가브리엘 신부
2023년 1월 29일
  |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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