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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행복의 유통기한
조회수 | 538
작성일 | 20.01.31
[청주] 행복의 유통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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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상식적인 수준에서 정의해 보면, ‘행복은 만족한 상태’ 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의 종류’라는 제목 으로 행복을 분류했습니다. 직업적 행복, 취미생활의 행복, 인 간관계의 행복, 영적인 행복, 신체의 행복, 경제적 행복, 봉사의 행복, 자연이 주는 행복, 약물이 주는 행복, 창조행위의 행복, 휴식의 행복, 학문적 행복... 사람이 느끼는 행복은 이 범주 안 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 범주 중에 더 많은 종류에서 더 많이 만 족하면 더 행복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부분에서 어느 정도 만족하는지 체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터넷에 행복에 대한 격언들을 찾아서 몇 개만 적어 봅니다. 만족의 비결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모든 욕망을 버리고 가 진 것을 즐기는 것이다(임어당).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그가 감사함을 느끼는 깊이에 달려 있다(존 밀러). 행복이란 그 자체가 긴 인내이다(알베르 까뮈). 행복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욕심을 줄이거나 재산을 많이 가지면 된다(벤자민 프랭클린). 행복은 입맞춤과 같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행복 을 주어야만 한다(디어도어 루빈).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 행복에 대한 가르침을 찾아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인 진복팔단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길은 행복 선언 안에 요약되어 있다. 그 길은 사람의 마음이 갈망하는 영원한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1697)”

행복에 대한 가르침을 더 소개해보겠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갈망은 인간의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다. 인간은 하느님을 향하여, 하느님에게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 인간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진리와 행복은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27)”

“도덕률은 하느님의 지혜의 작품이다. ... 도덕률은 약속된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과 행동 규범을 인간에게 제시해 주며,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에서 벗어나게 하는 악의 길을 피하라고 가르친다. 도덕률의 규범은 엄격하지만, 그것이 약속하는 바는 감미롭다(1950).”

“...참행복은 우리 마음에 있는 악한 본능을 정화하고, 무엇보다 우선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권유한다.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부나 안락에 있지 않고, 인간적인 영예나 권력에도 있지 않으며, 제아무리 유용해도 과학이나 기술, 예술 등 인간 업적에도 있지 않으며, 어떤 피조물 안에도 있지 않고 오로지 모든 선과 사랑의 근원이신 하느님께만 있다고 가르친다(1723).”

이 외에도 교회 교리서의 행복에 대한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 16항, 27항, 1718항, 1024항, 1718항, 1723항, 1743항, 1762항, 1768항, 1810항... 교회의 가르침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느님이라는 모퉁잇돌을 기초로 행복의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모퉁잇돌이 하느님이 아니라면...?! 취미생활을 열심히 하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 일을 몇 살까지 할 수 있을까? 죽기 직전까지 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일까?

그리고 그 다음은...?” 여러분이 지금 추구하고 있는 행복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됩니까? 행복의 유통기한을 늘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통 기한이 영원한 행복은 누가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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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이경호 베드로 신부
2017년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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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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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행복하기 위하여 공부도 하고, 결혼도 합니다. 또 행복하기 위하여 땀 흘려 일하고, 행복하기 위하여 돈을 벌고, 행복하기 위하여 명예를 추구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고통을 내일의 행복을 위하여 참아냅니다. 심지어 잘못된 수단과 방법으로 행복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고통과 시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서, 적어도 지금보다야 못하겠냐는 심정으로 안타까운 선택을 합니다.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나 힘으로 약한 이들을 찍어누르는 권력자들도 다른 이들의 행복보다는 나의 행복을 위하여 불법을 자행하고 윤리와 양심을 외면합니다.

이처럼 인간 삶의 모든 기준은 이 행복입니다. 그 행복을 추구하는 수단과 방법이 옳은 것이든 그른 것이든, 또한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의 가치와 기준이 다를지언정 인간의 최종 목표는 행복한 삶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일시적인 행복을 영원한 것인양 쫓고 있는 것이 우리의 또 다른 불행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영원한 생명을 갖고 계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영원한 행복이 있는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며 지금의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영원한 행복을 얻기 위한 조건을 오늘 복음을 통하여 제시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고 온갖 사악한 말을 듣는 사람들.”
“지금보다 좀 더 여유가 생기면 그때 가서 베풀며 살겠습니다.”
“너만 힘들어? 내가 더 힘들어. 위로 받을 사람은 나야!”
“누군들 온유하고 자비롭지 않게 살고 싶습니까?
근데 저 인간이 맨날 제 속을 긁어놓네요.”
“저 놈들은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눌러야 돼.
그래야 감히 도발을 못하지. 그게 평화야!”
“신자가 된 후로 유혹이 더 많아졌어요. 죄만 더 짓고 사는 것 같아요.”

신앙인일지라도 우리에게 늘 다가오는 유혹입니다. 영원한 행복을 위한 지향은 있어도 실천이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진 맙시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노력한다면 세상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우리의 그러한 노력이 조금씩 하느님 나라를 완성시켜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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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이상백 라우렌시오 신부
2023년 1월 29일 주보
  |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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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모심으로써 행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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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한 주간 행복하셨습니까? 날이 많이 춥습니다. 마음만은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행복에로 초대하십니다. 이 시간 참된 행복에 대해 묵상하는 가운데 행복에 행복을 더하시기 바랍니다.

‘로또 복권에 당첨 430억원, 건강과 바꿀 수만 있다면’이라는 제목의 뉴스가 있었습니다. 많은 돈을 얻는 행운을 쥐었지만, 건강을 잃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고, 기쁘지도 않았으며 감사의 마음을 지니지 못했습니다. “돈은 나에게 슬픔만 가져다주었다. 내 인생을 파괴했다.” 고 말한 뒤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많은 재물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전주의 87세된 김소관 할머니는 시장에서 잡곡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십니다. 하루 벌이가 1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중에 3,000원을 꼬박꼬박 ‘자선남비’에 넣었다고 합니다. “늙은 나이지만 일을 해서 나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행복”이랍니다.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소유와 지배를 통해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러나 참된 행복은 거기서 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서 옵니까? 참된 행복은 천상의 것을 추구하는 데서 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은 알되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며, 이 모든 것을 모르나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라고 말합니다. “행복한 사람이란 하느님에 대한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자신 안에 모신 사람입니다.”(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하느님을 모시고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행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행복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인간 내면의 욕구 충족 상태, 만족한 삶입니다. 우리는 소유, 지배, 사랑 중 어느 것에 만족을 추구해야 할까요? 사랑입니다.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덟가지 행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간략하게 묵상해 보겠습니다.

1.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 이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희망을 두기에 그분께 온전히 의탁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고, 베푸는 마음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도 또 주고 싶은데 더 줄 것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마음의 상태가 마음의 가난입니다.

여러분은 가족을 위해 또 이웃을 위해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경제적인 능력도 없고 건강도 없어서 줄 것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건강이 없다고 하더라도 줄 수 있습니다. 기도로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봉쇄수도원에서 일생 기도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가 문제입니다. 줄 것이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남의 도움 없이 살 만큼 큰 부자도 없습니다. 마지막 장례를 스스로 치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2.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했습니다.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고 공명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 그 이면에 있는 사랑을 생각하며 나도 그러한 마음으로 이웃의 아픔에 동참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자기의 죄에 애통해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3. 온유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온유는 흔들림이 없는 상태입니다. 단순한 부드러움이나 따뜻함이 아닙니다. 어떤 처지나 상황 여건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하느님 편에서 평상심을 유지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를 해보면 금방 압니다. 마음 안에 주님을 제대로 모시면, 외풍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누구누구 때문에 상처받지 않습니다.

성당에도 그룹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위 ‘파’가 있습니다. 바오로파 아폴로파, 대파, 실파, 양파, 쪽파....있듯이 신부파, 수녀파, 회장파...사람을 따라가며 끼리끼리 뭉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주님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4. 의로움에 주린 사람은 행복합니다. 진선미를 갈망하며 천상 것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순명하고, 금식을 통해 마음을 비우며 욕망의 절제로 재물을 이웃과 나누는 실천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성경의 요셉의 삶에서 드러납니다. 약혼자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듣고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당시의 법대로 하면 마리아는 돌팔매질로 죽음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마리아를 사랑으로 배려했습니다. 그리고 천사의 메시지를 따라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였습니다.

5. 자비로운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자비는 사랑의 구체적 표현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잘못이 무엇이든 기꺼이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도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고 이웃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행위야말로 자비로움의 절정입니다. 요한사도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6.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완전한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고 하셨습니다. 거룩함을 지니고 홀로 있어도 부끄러움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며 혹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곧 용서를 청하는 이는 행복합니다. 죄에 물들지 않은 맑은 영혼을 지닌 사람은 행복합니다.

7.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평화는 단순히 평온한 상태를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릅니다. 많은 순교성인 성녀들은 박해와 죽음 앞에서 마음이 시끄러웠을까요? 혼란스러웠을까요? 그들은 평화로웠습니다. 목숨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주님을 증거하는 도구로 쓰임 받는다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차지했기 때문에 육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평화를 누렸습니다. 내 마음의 욕망과 무질서, 불의와 미움을 거두고 화해를 전해주며 갈라진 사람을 맺어주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8.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진리를 증거 하다 보면 기득권의 반대에 부딪히고 미움을 사게 됩니다. 그러나 끝까지 진리 안에 머물게 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지금의 순간을 모면하려고 하면 더 큰 것을 놓치게 됩니다.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며 끝까지 참고 기다리며 주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하는데 불구하고 시기와 질투, 모욕과 중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기뻐하였습니다(사도5,41).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의로움은 단순히 정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입니다. 그러므로 정의는 사랑을 포용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정의를 포용합니다. 따라서 사랑 안에서 나오지 않은 정의는 진리가 아닙니다.

저에게는 조카들이 있는데 큰 조카는 서울의 유명대학에서 공부하였습니다. 그가 학과 대표직을 맡고 정의구현에 앞장섰던 때가 있습니다. 그는 데모하는 학생들의 앞에 섰습니다. 그것도 몽둥이를 들고. 어깨도 다쳤습니다. 결국은 유치장 신세를 져야 했고 저는 삼촌으로서 그에게 반성문을 요구하고 그것을 가지고 판사를 찾아가 사정하며 제가 교육을 잘하겠다고 해서 옥살이를 면했습니다.

정의를 부르짖으며 몽둥이를 들었으니 폭력이지, 어찌 정의구현을 하겠습니까? 의로운 방법으로 의로움을 구해야지 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어찌 의로움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의로움은 사랑 안에서 나온 상대를 위한 배려입니다. 사랑은 정의를 포용하지만, 정의는 사랑을 포용하지 못합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 알게 모르게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기치 않은 시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더 주님께 매달리고 의탁하여 행복을 지켜야 합니다. 역경 속에서도 주님을 차지하면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하늘의 큰 상이 우리의 것입니다. 한 주간 예수님을 마음에 모심으로써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5,12). “항상 행복하십시오.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정진석 추기경).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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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2023년 1월 29일
  |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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