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가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523 97.6%
[청주] 세상의 소금과 빛
조회수 | 352
작성일 | 20.02.09
[청주] 세상의 소금과 빛

-------------------------------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죄도 없으신 분이 죄 많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어떤이가 “빛으로 오시는 당신은 제가 어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하였듯이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둠을 비추려 빛(“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8,12).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시간 빛과 소금에 대해 묵상하는 가운데 은총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5,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5,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이미 빛이요, 소금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1테살 5,4-5).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뱣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에페5,8).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로마13,12).

이미 소금이요, 빛이거늘 짠 맛을 내지 못하고 밝게 비추지 못한 삶을 살았다면 그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소금이 짠 맛을 내고, 빛이 빛을 내는 것은 자연의 이치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이미 존재의 이유를 잃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모시지 못하면 짠맛을 잃은 소금과 다를 바 없어 결국은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금이 되고, 빛을 비추어 주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오늘 복음을 통해 비추어진 모습은 “착한 행실”입니다. 의도적인 착한 행실이 아니라 삶에 젖어있는 나의 모습이 다른 이의 모범과 표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고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구체적 실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비추어 생각해 봅니다.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이사5,10).하고 기록한 대로입니다.

“네 가운데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위로와 희망이 되는 말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명절에 서로의 만남을 위해 모였지만 얼마나 많은 다툼이 많았는지....상처를 키웠던 사람도 있습니다. 시기, 질투와 미움으로 흉보고, 비난하고 모함하는 말을 내려놔야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의 말은 언제나 정답고 또 소금으로 맛을 낸 것 같아야 합니다”(콜로4,6). 말은 말 많은 것을 싫어하고, 말꼬리 잡는 것도 싫어하며 말을 뒤집는 것도 싫어한답니다. 헛된 말을 하지 않고 진실한 말만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소금이 쉴까”라는 속담을 아세요? 어떤 일에도 절대로 굽히거나 변하지 아니하고 틀림없어 매우 미더움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미더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의 빛이 새벽처럼 터져 나오고”,,,“암흑이 대낮처럼 되리라”(이사58,10).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에 관심을 두면 사랑의 나눔과 말조심에 마음을 써야 합니다.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에게 희생의 봉헌을 하고 위로와 희망이 되는 말을 한다면 그 자체가 소금이요, 빛입니다.

소금의 역할이 뭡니까? 자신을 녹여 맛갈지게 하고 부패를 막는 것입니다.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보존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부패하지도 않고 세상의 부패를 막습니다. 또한 소금은 절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향력을 말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사람도 절이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불평, 불만이 많고 교만한 사람을 감사의 사람, 온유한 사람, 겸손한 사람으로 게으른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소금의 절정은 맛을 내는데 있습니다. 소금은 일단 사용이 되면 그 형체를 찾아볼 수 없지만 그 기능은 여전히 발휘합니다.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음식의 맛을 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제 맛은, 드러나지 않게 이웃 안에서 사랑으로 녹아나야 합니다. 희생과 봉사를 통해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삶의 의미를 주고, 생명의 가치를 알게 해 주며 가치 있는 삶,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복음을 전해야 하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소금의 삶입니다. 인생의 맛을 잃었던 이들이 우리들의 희생으로 맛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 촛불을 보십시오.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녹이지 않고서는 결코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희생이 없이는 세상을 비출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사회가 밝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둡다고 생각하십니까? 예, 이렇게 어둡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빛이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오늘의 세상을 어둡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돈이 부족하고, 식량이 부족해서입니까? 과학이 미발달해서입니까? 학문이 부족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오늘의 삶의 현실은 과거에 비해 소비는 늘어났지만 더 가난해 졌고, 기쁨도 줄어들었고, 집은 커졌지만 가족 수는 줄었습니다. 물질은 풍요로워졌는지 모르지만 소중한 가치는 줄어들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고민은 줄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나 개신교, 불교등 제도 종교의 의례와 가르침 그리고 계율은 따르지 않으면서 개인적 신앙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무늬만 신자인 사람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어두운 것은 의롭고 밝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알면서도 필요한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됨이 적어서입니다. 진리가 부족해서입니다. 정의가 바로 서 있지 않고 사랑이 결핍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빛이 빛을 비추지 않고, 소금이 소금의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빛이 더 필요합니다. 소금의 역할이 간절합니다.

어떤 분을 만났는데 교통사고를 당해서 열흘을 입원했대요. 특별히 아프지도 않은데 일행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다른 사람들도 아프지 않았답니다. 이쪽, 저쪽 보험금을 받게 되었는데 치료비를 제외하고 1백 여 만원씩 받았다고 했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것이지요. 우리 신자가 이정도인데.....사도 바오로는 선언합니다.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필리2,15).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는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진실을 가리는 어두움, 정신의 어두움, 마음의 어두움을 비춰야합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우리의 착한 행실이 나를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별은 어두운 밤에 더 빛나게 보입니다. 사회가 어둡다고 생각될수록 우리의 빛이 비추어져야 하겠습니다. 세상이 부패했다고 생각될수록 우리에게 소금의 역할에 대한 소명을 일깨웠으면 좋겠습니다. 까만 밤에 우리의 삶이 더욱 빛나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2020년 2월 9일
523 97.6%
세상의 소금이자 빛

------------------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소금과 빛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소멸시키는 소금과 빛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 말입니다. 자신을 녹이는 소금과 양초가 그렇고, 자신을 녹이지 못하는 천장의 전등과 돌처럼 굳은 소금이라 하는 암염이 그렇습니다. 모두 짠 맛과 빛을 지니고 있지만, 가는 길이 너무도 다른 듯합니다.

한쪽은 기꺼이 자기 본연의 모습을 희생하면서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희망이 되지만 다른 한쪽은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살아가려 하기 때문이죠.

사람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자신의 몸도 마음도 내어놓고 희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기 것을 내어놓거나 죽이지 못하고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예수님 시대에는 같은 민족이면서도 수많은 율법 조항만을 강조하며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불합리함에 정면으로 맞서 응대하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죄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스스로 세상과 반대되는 힘겨운 생활을 선택하셨습니다. 하지만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그 당당했던 모습은 결국 세상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어 십자가 죽음이라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그분의 삶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을 뜻을 따르며,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죽음을 선택하셨지만 그분의 삶은 어둠 속에 있던 이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생명의 빛이 되었죠.

누군가가 말하길…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 주는 일’이라 했습니다.
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까만 하늘처럼, 꽃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무딘 땅처럼
함께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연어 떼처럼

별을, 꽃을, 연어가 빛날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의 배경이 되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빛나고 싶지 않은 이들은 없겠지만 예수님은 세상 속으로 녹아들어 힘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신앙인들이 되시길 응원하십니다. 추운 겨울이면 땅 위에 내려앉는 새하얀 눈들도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땅속으로 녹아들어 봄을 꽃피우듯이, 우리들도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분의 사랑을 피어오르게 할 수 있는 존재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그렇게 살아갈 때, 독서의 말씀처럼 네가 부르면 ‘나 여기 있다’하고 응답해주실 그분이 옆에 계심을 기억하는 신앙인들이 되시길 기도해 봅니다.

---------------------

청주교구 이정희 미카엘 신부
2023년 2월 5일 주보
  | 02.03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823   사순 제5주일 성경 말씀 해설  [2] 8
822   [수도회] 눈물 흘리시는 하느님  [5] 2740
821   [수원] “000야, 이제 그만 혼자 가두어 있지 말고 이리 나오너라.  [6] 2787
820   [인천] 부활.....누구와 함께 있는 것?  [7] 2736
819   [서울]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  [9] 2828
818   [마산] 나는 부활이며 생명이다  [6] 3017
817   [부산] 라자로의 부활사건  [8] 3289
816   [안동] 생명의 삶  [4] 2438
815   [대구] "너는 나를 믿느냐?"  [8] 4792
814   [청주]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  [1] 354
813   [대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5] 2835
812   [제주] “돌을 치워라”  [1] 229
811   [전주] 죽은 라자로를 살리는 자매의 믿음  [3] 3108
810   [광주] '죽은 자여 일어나라'  [2] 248
809   [군종] 라자로의 소생  [2] 240
808   [의정부] 신성과 인성의 감사로운 결합  [3] 2781
807   [원주] "주님이 계셨더라면…"  [2] 2589
806   [춘천] 우리 안에 사랑의 영으로 부활을  [2] 288
805   (자) 사순 제5주일 독서와 복음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  [6] 2593
804   사순 제4주일 성경 말씀 해설  [7] 99
803   [수도회] 무거운 십자가는 은총의 도구로 사용된다.  [9] 2847
802   [수원] 주님의 마음? 내 마음?  [9] 2432
801   [인천] 눈이 멀었던 사람의 신앙고백  [9] 2739
800   [서울] 세 가지 발견  [12] 2750
799   [마산] 나날이 눈 떠가는 삶  [6] 2677
798   [부산] 눈 뜬 것도 죄가 되는가?  [9] 2699
797   [안동] 제대로 본다는 것은  [4] 2534
796   [대구] 영적인 눈을 뜬다면  [9] 3542
795   [청주] 맑은 눈을 지니길 희망  [1] 340
794   [대전] 소라도 잡아야 하는 거 아냐?  [6] 2441
793   [전주] 어둠 속에 머무르려는  [2] 2293
792   [광주/제주]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기  [2] 327
791   [군종] 얼굴을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3] 2654
790   [의정부] 본다는 것의 의미  [2] 331
789   [원주] 동상이몽(同床異夢)  [2] 339
788   [춘천] 마음의 눈으로  [5] 2838
787   (자) 사순 제4주일 독서와 복음 (태경소경이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6] 2280
786   사순 제3주일 성경 말씀 해설  [2] 163
785   [수도회] 우리 평생의 갈증을 채워주실 분  [10] 2505
784   [수원] “생리적 갈증과 신앙적 해갈”  [10] 2873
1 [2][3][4][5][6][7][8][9][10]..[21]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3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