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가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528 45.2%
[광주] '죽은 자여 일어나라'
조회수 | 374
작성일 | 20.03.27
[광주] '죽은 자여 일어나라'

-----------------------------------------------

<"라자로야, 나오너라.">

오늘 복음에서 죽은 라자로에게 외치신 주님의 우렁찬 목소리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무덤 속에서 주님의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실 믿고 사랑하며 선을 행하는 것도 바로 끝날에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함입니다. 거기에 삶의 진정한 목표가 있으며 희망이 있습니다.

과부의 아들이 죽어 상여에 실려 나갈 때에도 예수께서는 그 앞에 가셔서 "젊은이여, 일어나라."하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죽었던 젊은이가 벌떡 일어나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삶과 죽음이 바로 예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분에게만이 참된 생명이 있고 부활이 있습니다.

인간이 죽으면 허무로 돌아갈 것인가. 이것은 많은 이들이 죽음 앞에서 가져 보는 공통된 두려움입니다. 죽음이라는 어두운 문을 통해서 인간은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인가. 흙으로 가는가. 흙으로 가면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그렇다면 인간은 정말 허무인가. 이 처럼 인류는 죽음이라는 수수께끼 앞에 영원히 혼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절망은 걷혔습니다. '죽음'에 외치신 예수님의 목소리 앞에 허무는 사라졌으며 죽음 그 자체도 세력을 잃었습니다. 하느님 앞에는 삶 아닌 것이 없습니다. 죽어서도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예수께서 죽은 라자로를 살리심은, 당신이 장차 보여 주실 그 엄청난 사건인 부활을 암시해 줍니다. 썩어서 냄새가 났던 라자로가 다시 살아났듯이 하느님이신 예수님도 죽었다가 그처럼 다시 살아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로 인류를 죽음에서 구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주님의 목소리를 뜻깊게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라자로야, 나오너라.">

얼마나 큰 감격스런 외침입니까. 살아 생전의 모든 감격적인 사건을 합쳐 봐도 부활의 감격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만큼 죽음에서의 부활은 전 생애를 보상해 주는 위대한 선물입니다.

구약의 경우에 보면, 죽은 자가 다시 살게 되리라는 믿음은 크게 발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부활과 내세의 삶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직 현실만이 중요했으며, '지금, 여기서' 잘먹고 잘사는 것만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난이나 시련은 큰 불행이었습니다. 고통은 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가치를 일시에 전도시키셨습니다.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을 직접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삶은 지금 여기에서 잘사는 것과는 별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못먹고 못사는 사람들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럼 누가 과연 잘사는 것이냐. 부활의 새벽을 차지하는 사람이 결국 승리의 삶을 산 것입니다.

"네가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

우리는 그래서 살아서도 하느님의 영광을 봐야 합니다. 영광을 볼 수 있는 비결은 바로 믿음입니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보았습니다. 믿었기 때문에 죽은 오빠가 살아나는 그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뭘 믿느냐. 그것은 예수님이야말로 길이요 생명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믿으면서도 술에 묶여진 사람이 있고 화투에 갇힌 사람이 있으며 춤바람에 탈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탐욕과 쾌락에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또는 사치나 허영, 오만함과 불친절이라는 흙 속에 묻힌 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육신의 두 눈은 멀쩡하게 떠 있으면서도 죽어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라자로야, 나오너라.">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우리는 죽음에 대한 큰 희망을 가질 뿐만 아니라 또한 죄중에 빠진 우리 자신이 무덤 밖으로 뛰어 나와야 합니다. 얽어매고 있는 끈을 용기있게 풀고 나와야 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부활의 아침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금년 사순절에 어떤 자매가 저를 찾아와서는 "뭘 주저하고 있느냐. 빨리 나오너라."하시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답니다. 이 자매 는 몇 달 동안 주일 미사에도 나오지 않고 신앙을 쉬고 있던 사람이 었습니다. 그런데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고해성사를 보고 나더니 "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신앙이 죽은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순 시기는 부활을 준비하는 은혜로운 시기입니다. 예수님이 백번 부활하신다 해도 우리 자신이 부활의 새벽을 승리로 맞이하지 못 한다면 신앙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잘살았다는 인생의 가치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죽음에서 벗어나도록 합시다. 이것이 바로 사순 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

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528 45.2%
괜찮해야...지금 부터 잘하면 되야

---------------------------------------------

사제로 살면서 강론을 하거나 오늘처럼 이렇게 신자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저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가르침을 가장 먼저 그리고 충실하게 잘 따라야 하는 사람은 바로 말씀의 선포자인 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신자들에게 꾸짖듯이 약간 목소리 높여 “주님을 만나면 자신의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변화되지 않으면 주님을 만난 것도 아니고, 우리 신앙고백대로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도 없는 것입니다”라는 내용으로 강론을 하고 나서 스스로 아주 만족스러워 하며 자리에 앉아 잠시 묵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제 뒤통수를 세차게 때리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속으로 ‘누구야?’ 하며 고개를 돌려 돌아보니 예수님께서 “너나 잘해라 이놈아!”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시간이 멈춘 듯 머리가 멍해지고 이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예. 주님, 저나 잘하면 되겠지요.”

사순절을 시작하며 발표하신 교황님의 2011년 사순시기 담화에서
<“사순 제5주일에는 라자로의 부활이 선포됩니다. 이때 우리는 우리 실존의 궁극적 신비와 만나게 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너는 이것을 믿느냐?’ (요한 11,25-26)

이 순간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마르타와 더불어 진실로 나자렛의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희망을 두는 때입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요한 11,27).

현세의 삶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이루는 친교는 죽음의 장벽을 넘도록 준비시켜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해줍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믿음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은 우리가 우리 실존의 궁극적 의미에 눈뜨게 해줍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진리가 인류역사, 개인의 삶과 사회생활, 문화, 정치, 경제에 결정적이고 진정한 의미를 줍니다. 신앙의 빛이 없다면 온 세상은 미래도 희망도 없는 무덤 안에 갇혀 버리고 말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산다 하면서도 때로는 주님의 뜻이 아닌 내 뜻만을 내세우며 살아갈 때가 있고, 또 현세적인 것에 매여 집착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제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며 풀이 죽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어김없이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풀이 죽어 쳐져 있는 저를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시며, 사랑 가득한 손으로 제 어깨를 감싸 안으시고, 죽은 라자로를 무덤에서 부르실 때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43)” 하시듯, ‘괜찮해야...지금부터 잘하면 돼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도 모르는 힘이 저를 이끌어 다시 일어서게 되고, 용기를 내어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도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주님께서는 저에게 무서운 얼굴로 ‘너나 잘해라 이놈아!’와 사랑 가득한 눈빛과 음성으로 ‘괜찮해야...’를 반복하십니다.

-------------------------------------

광주대교구 황규열 바오로 신부
  | 03.27
528 45.2%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

오늘 복음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또 예수님이 사랑하신 라자로와 마르타와 마리아가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라자로가 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사랑하는 오빠를 위해 예수님께 서둘러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때 오시지 않습니다. 결국 라자로는 죽습니다. 사랑하는 혈육을 잃은 마르타와 마리아는 망연자실하고, 많은 이가 그들을 위로하러 옵니다. 마침내 예수님도 오십니다. 그러나 라자로가 죽은 지 벌써 나흘이나 된 때입니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필요할 때 곁에 계시지 않았던 예수님에 대한 원망도 숨기지 않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르타와 마리아만이 아닙니다. 그들을 위로하러 온 이들 가운데 몇몇도 라자로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의 진정성과 그분의 능력에 의구심을 표출합니다.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저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었는가?”

오늘 복음의 등장인물들이 겪은 그 모든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매일 체험하며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누구든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누구든 병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그 가족과 지인들은 슬픔과 절망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침묵하신 듯한 하느님에 대한 원망을 표출하기도 하며,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의 진정성과 그분의 능력에 의구심을 품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는 것을 오늘 예수님은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슬픔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 하느님의 부재와 침묵을 원망하는 사람들, 하느님의 사랑의 진정성과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당신 일을 하십니다.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어 무덤 밖으로 불러내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질문하십니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우리가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리고 예수님이 현재로 가져오신 우리의 미래를 우리가 참으로 볼 수만 있다면, 라자로가 그랬듯이 우리도 우리를 붙잡아 놓고 있는 돌무덤에서 당당하게 살아 걸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

광주대교구 안세환 대건 안드레아 신부
2023년 3월 26일
  | 03.24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814   부활 제6주일 성경 말씀 해설  [5] 173
813   [수도회] 진리이신 성령이여, 오십시오  [8] 2666
812   [수원] 협조자 성령의 약속  [8] 3108
811   [인천]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7] 2837
810   [서울]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시는 성령  [11] 3024
809   [마산] 신부님, 사제관에 불 좀 켜 놓고 사이소!  [4] 3169
808   [부산] 성령의 약속 : “아버지께 구하면 성령을 보내겠다”  [5] 3065
807   [안동] 늘 함께 하시는 성령  [5] 2926
806   [대구] 하느님의 협조자 파라클리토  [6] 3838
805   [전주] “성령께서는 우리가 걸어갈 길을 가르쳐주신다"  [3] 476
804   [광주] 십인십색(十人十色)  [2] 764
803   [청주] 성령, 한계 없는 사랑의 기운  [2] 601
802   [대전] 제자들과 함께 하는 성령  [4] 2677
801   [의정부] 나에게 중요한 것은?  [4] 881
800   [군종] 사랑해요  [3] 877
799   [원주] "희망을 믿음으로 믿으며 당당하게 살아갑시다"  [2] 503
798   [춘천] 진리의 영(靈)만이…  [4] 2932
797   (백) 부활 제6주일 독서와 복음 (다른 보호자를 보내실 것이다)  [7] 2377
796   부활 제5주일 성경 말씀 해설  [7] 131
795   [수도회] 미풍처럼 다가오시는 하느님  [2] 2574
794   [청주] 주님의 길  [2] 119
793   [대전]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완전한 유일한 이콘(상)  [2] 2810
792   [인천]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8] 2562
791   [수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4] 3051
790   [서울]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신 예수  [9] 2834
789   [안동] 행복의 길 :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  [3] 2838
788   [대구] 우리 삶의 네비게이션이신 예수님  [4] 2847
787   [마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2] 2799
786   [부산] 하느님이 하시는 일  [4] 2476
785   [전주] ‘위하여’가 아닌 ‘함께’  [3] 740
784   [광주/제주] 본래의 제 기능  [4] 553
783   [군종]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2] 1810
782   [의정부]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1] 902
781   [원주] '길'이신 예수님을 따라  [2] 600
780   [춘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2] 3052
779   (백) 부활 제5주일 독서와 복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7] 2247
778   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 성경 말씀 해설  [3] 94
777   [수도회] 행복한 목자 착한 목자  [6] 2418
776   [인천] 죽을때 후회하지 않을 인생  [6] 2546
775   [수원]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7] 2517
1 [2][3][4][5][6][7][8][9][10]..[21]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3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