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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
조회수 | 457
작성일 | 20.03.30
[청주]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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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종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 시련의 시기에
하느님의 뜻을 헤아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 안에서 고통을 극복해 내야 합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바라봐야 하고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 안에 갇혀 있는가?
아니면 이웃을 향해 열려 있는가?

나의 색깔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루카19,41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 이르러 그 도시를 내려다 보시며 눈물을 흘리시며 한탄 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 구나.”멸망할 도시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해 한탄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회개를 호소하시며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 주실 수 있는 분에게 큰 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셨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 간구를 들어 주셨습니다.”(히브5,7)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요한 11장 절이하)을 보면. 마리아도 울고, 그와 함께 있던 유다인들도 울고 예수님께서도 그들처럼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눈물을 흘리셨을까?
한마디로 예수님께서는
살아있는 생명이셨기 때문에 우실 수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신적이 있습니까?
살아있기 대문에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사실 라자로를 무덤에서
다시 살릴 수 있는 분이
죽음을 보고 슬퍼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눈물을 아십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죽음의 길로 들어설까 노심초사하시고, 그분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큰 슬픔을 아십니다. 인간의 모든 고통에 깊이 연민하십니다.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는 바로 그곳에 살아있는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것은 마리아와 다른 문상객처럼 라자로의 죽음을 슬퍼해서가 아니라 그분이 살아있는 생명이셨기 때문입니다. 죽은자의 가슴은 공명을 모릅니다. 깊이 공감할 줄을 모릅니다. 살아있는 자만이 공명합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 눈에서 눈물을 흘리신 것은 “마리아 뿐 아니라 같이 따라온 유다인들까지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마리아와 마르타 다른 문상객들이 슬프게 운 것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깊지 못한 이해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께로부터 와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유가 어디에 있든 그들의 슬픔은 순수한 것이었고 예수님의 가슴도 그 슬픔에 깊이 공감하고 공명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눈물은 큰 축복입니다. 마태복음 참된 행복의 선언에서도 보면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울어 줄 수 있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 깊은 참회의 눈물로 아버지 하느님께 간구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주 우십시오. 눈물을 흘리면 복이 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깊이 공명하는 곳에 축복이 주어집니다.

그러니 가끔은 대성통곡하십시오. 아무 곳에서 하지 말고 주님 앞에서, 성체 앞에서 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생명의 샘터로 인도하실 것이며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줄 것입니다.”

묵시21,4에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입니다. 이제는 죽음도 없고 슬픔도 울부짓음도 고통도 없을 것입니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인색해진 눈물을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눈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영혼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어떻게 보면 울지 못한다는 것은 병입니다. 영혼이 마를 대로 말라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우시기 바랍니다.

요즘은‘코로나19’로 인해 웁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울고,
경제적 고통의 압박으로 울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공명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한 몫 잡으려고 합니다. 자기만을 위해서 사재기를 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고통을 받는 이들을 생각하며 헌신과 희생으로 그 현장에 나섭니다. 분명한 색깔이 납니다. 생명을 지닌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분명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야 “살아나거라.”하고 말씀하시지 않고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죽은 자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분이 무덤 앞에 섰을 때 이미 라자로는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입장에서 보면 라자로는 죽지 않았습니다. 사실 목숨이 끊어졌다는 것을 죽었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의미보다는 부활의 삶에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하느님 안에 있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나오너라. 무덤에서 나오너라!’

무슨 얘기냐 하면
진짜 죽는 것은 내가 무덤에 갇히는 것입니다.

선입견, 똥고집,
남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마음,
시기, 질투, 집착, 소유, 지배, 명예욕, 교만함, 사재기 등등.
이런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무덤에서 나오너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바로 그 생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공명하지 못한다면 공명하라는 것입니다.
나만 생각한다면 이웃을 향해 열려 있으라는 초대입니다. 사람들이 돌을 치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치웠습니다. 마르타가 냄새난다고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예수님은 명하셨고 그대로 했더니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였는데 그것을 풀어주라고 하셨습니다.

풀어주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내 스스로를 옭아매지도 말 것이며
남을 내 잣대로 재어 판단하고 단죄하여
무덤에 가두어 옭아매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코로나19’를 통해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은총의 기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웃사랑에 열려있음을 확인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베푸는 마음에 인색하다면,
용서하고 화해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면
십자가 위에서 처절하게
나를 위해 울고 계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우리도 그분 마음으로
이웃에게 다가가 공명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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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2020년 3월 29일
528 45.2%
라자로 대신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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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일 복음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 구절에 머물렀습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라자로는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라자로가 아닌 그가 나온 무덤에 시선을 두었습니다. 어두컴컴하고, 어쩌면 아직도 시신 썩은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빈 무덤.

라자로 대신 누군가 무덤에 들어가야 한다며 그는 누가 들어가야 하나요? 라자로 대신 빈 무덤에 들어가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골고타에서 돌아가시고 묻히셨습니다.

비슷한 구절을 하나 더 찾아보았습니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루카 복음 19장 5절입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나무에 올라간 자캐오 대신 누군가 나무에 올라가야 한다면 그 사람은 누굴까요? 바로 예수님입니다. 자캐오에게는 내려오라 하시고 대신 당신께서 나무(십자가)에 올라가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구원, 생명 등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의 희생, 곧 수난과 죽음으로 맞바꾼 것입니다. 라자로의 생명을 위해 예수님께서 무덤으로 들어가셔야 했고, 자캐오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나무에 올라가셔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은총과 행복에 감사의 시간을 가지시길 청해 봅니다.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것들이 누군가 특히 하느님과 내 이웃의 희생과 아픔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신다면, 감사뿐만 아니라 내 삶의 태도가 조금 더 겸손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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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최현규 안토니오 신부
2023년 3월 26일 주보
  |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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