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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행복하게 사는 방법
조회수 | 2,706
작성일 | 05.01.28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방법 여덟 가지를 알려 주십니다.

이 중에서 특히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마태 5,3)는 가르침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가난하게 살더라도 마음이 부자라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고 또 듣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르침을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따라서 마음이 가난하다는 의미를 잘 한번 살펴 봅시다.

고린토1서 1장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께서는 똑똑한 사람, 돈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 가문이 좋은 사람을 먼저 택하시지 않았습니다. 어리석고, 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택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하느님 앞에 무엇 하나 자랑할 것도 없이 무시당하고 억눌리고 멸시받는 그들이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겸손할 수 있었고 오직 하느님께만 전적으로 의지하였고 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참된 행복이 세속적인 권력이나 돈이나 명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속적인 행복을 마음에 두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깨끗한 마음 안에 하느님을 모시고 하느님 뜻을 실천하고 살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현실적 가난이 곧 행복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굶주린 이들에게는 빵을 주라 하셨고 병자를 보면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자신을 하나로 보시며, 그들에 대한 도움의 실천을 하느님 나라의 생명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조건으로 삼으십니다.(마태 25장)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께서 하셨듯이 사회복지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새해의 시작부터 인류는 너무나도 엄청난 재해로 인해 큰 고통에 처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가족과 이웃과 집과 마을 모든 것을 잃은 수백 만 명의 남아시아 사람들은 지금 희망을 찾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 지구상에는 10억 명 이상이 가난으로 굶주리고 있고 매일 4만 명의 어린이들이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죽어 간다고 합니다.

전 세계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힘이 닿는 대로 덜어 주는 일은 하느님 백성 전체의 의무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쓰고 남는 것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전통에 따라 자기에게 필요한 몫에서 나누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난 일년간 피부, 종교, 문화가 다른 민족이나 국가에게 얼마나 많은 자선을 했습니까?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의 통계에 의하면 신자 1인당 해외원조금액은 270원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 인색하다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무엇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선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다 같이 행복하게 사는 사랑의 공동체가 국경을 넘어 온 세계로 넓혀 가도록 기도해 주시고 힘을 보태어 주십시오.

이정효 예로니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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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묵상”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는 문구를 가장 좋아하던 칼 마르크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종교적 고난은 현실적 고난의 표현인 동시에 현실적 고난에 대한 항의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당시 유일한 진통제)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이러한 종교를 대신하여 ‘인간들의 피의 투쟁’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종교라는 것은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그러니 그냥 그렇게 살아라’하면서 자기의 배만 불리고 있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러니 그냥 그렇게 살아라’하면서 자기의 쾌락만 즐기고 있다. 그러니 여전히 종교는 인민의 아편일 뿐이다.”

저와 여러분은 ‘공산주의자’(共産主義者)나 ‘민주주의자’(民主主義者)가 아닙니다. ‘주의자(主義者)’이기 이전에 ‘주의자(主의 子)’입니다. ‘주의자(主의 子)’들은 고통받는 이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십자가 앞에 꿇어 주께 물었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눈물을 흘리며 주께 물었네.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그런데 답은 이렇게 얻습니다.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님 말씀하셨지.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그리고 이렇게 결심을 합니다.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 평화 위해,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위의 질문과 답, 결심은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故 이태석 요한 신부님께서 중학생 때 만든 <묵상>이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인간의 고통에 대해 하느님은 “사랑하라”는 답밖에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도 참된 신앙인은 고통 받는 인간들에게 “그러니 그냥 그렇게 살면 나중에 보상 받는다.” 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느님 앞에서 “그러니 말씀하신대로 그들에게 가서 함께 그렇게 살겠습니다.”라고 결심합니다. 이상한 것은 그것이 어떤 혁명보다 더 큰 변화를 만들며, 사람들은 “그것이 행복한 것이구나.” 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인간의 고통’에 대해 고민하며 누구는 ‘피’를, 누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선택하고 실천해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단어를 들을 때 ‘행복’하십니까? 혹시 ‘사랑’이라는 단어를 선택하셨다면 여러분은 여전히 ‘종교라는 아편’의 중독자입니다. 그리고 故 이태석 신부님의 노래나 삶에 대해서 들을 때 여전히 감격스럽고 행복하시다면, 여러분은 참된‘주의자(主의 子)’입니다.

해외원조주일인 오늘 1독서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스바 3,12) 그리고 故 이태석 신부님의 노래도 자꾸 생각이 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이병훈 세례자요한 신부
  |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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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작은 믿음

늘 생활 속에서 보는 것인데도 그냥 그러려니 하며 지나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 년 내내 안방 벽과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달력도 그중 하나죠.

새해 달력에 올해의 화두를 적습니다. 쓰기, 건강하기, 살빼기… 이 계획들이 제대 로 실현될지 여부는 올해 말에 알게 되겠지만, 한 해는 달력으로 시작해서 달력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흘러가는 시간, 지나고 나면 아쉬움만 남는 세월의 흔적을 달력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어떤 계획에 대한 기대감도 달력을 통 해 확인합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1년 365일이지만, 어떻게 나만의 시간을 엮어갈 것인지도 이번 기회에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직장을 갖고 있으면서 그 직장의 특성과 전혀 상관없는 좋은 활동을 하는 분들을 보 면 존경스럽습니다. 보통 직업을 갖고 있으면 그 업무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시달려 뭔 가 다른 일을 할 여유가 없을 것 같은데, 그 시간을 남을 위한 즐거움으로 선사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언제나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을 만나면 행복하고 넉넉해집니다. 모두 평범하게 사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봉사를 통해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 특히 열정을 가지고 그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

모두들 잘 아시는 마더 데레사 성녀에 관한 일화입니다. 인도에서 빈민들을 위해 일생 을 헌신한 마더 데레사 성녀는 1979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 국의 한 방송기자 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한평생을 죽어가는 사람들 곁에서 살아왔는데, 임종 하는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마더 데레사 성녀 는 평온한 얼굴로 환하게 미소 지으며 “기자님, 임종하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일입니다. 온 마음으로 자신들을 보살펴 주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이 살아 있는 몇 시간만이라도 그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것. 이것이 임종하는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에는 희망을 전해 주고 보여 주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 보이지 않게 세상 속에서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들에게 희망을 보여 주고 전해 주는 사람들이겠지요.

따뜻한 세상을 위한 작은 걸음이라도 떼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우리는 사랑할 때 하느님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 은혜를 청합시다.

▦ 대구대교구 김정렬 베드로 신부 : 2017년 1월 29일
  |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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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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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먹고, 당신의 거룩한 마음(聖心)을 간직한 사람은 가난해도, 굶주려도, 또 지금 울어도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사시던 시대에는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 배부른 사람, 웃는 사람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여겨졌고, 가난하고 굶주리는 사람은 하느님께 벌을 받았다고 여겨졌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이 겪는 불행은 본인들 능력 탓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잘 살고 못 산다는 기준은 인간이 만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부유하거나 가난하게 만드는 분이 아닙니다. 빈부의 격차 또한 인간이 만드는 것입니다. 고도로 발달한 산업사회는 인간에게 마냥 축복을 가져다줄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낳습니다. 빈부격차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심해졌습니다. 지구 한편에서는 영양의 과다 섭취로 병들지만 다른 편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축복하고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시기에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도 그들을 축복해야 할 것입니다. 가난한 이, 굶주리는 이, 우는 이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축복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이에게 축복이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도움이 그들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합니다. 이 세상에는 가난도 있고 굶주림도 있고 슬픔과 아픔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은 계속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주위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하느님의 현존과 축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축복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인은 하느님의 축복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그 축복을 전하는 이들입니다.

오늘은 세계 각국의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사랑과 기도를 실천하는 ‘해외 원조 주일’입니다. 대구대교구는 해외에서 선교사로 살아가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직접 지원하는 ‘생명사랑나눔운동본부’를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해외 원조 주일을 맞아 우선 이날 하루만이라도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 가난한 나라의 수많은 이웃들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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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최광경 비오 신부
2023년 1월 29일 주보
  |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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