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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억눌린 민초(民草)들의 천국
조회수 | 2,287
작성일 | 05.01.28
역사의 참 주역은 누구인가? 대통령이나 고관들인? 소위 정책 결정자들  인가? 아니면 말없이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끈질기게 삶을 역어가는 일반 백성들인가? 오늘 복음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라고 선언하신다. 이들 가난한 이들이 역사의 참 주인이며 승리자들이다.

1. 누가 역사의 주인공이가?

역사를 이끌어가며 발전시키는 주역이 누구인가 하는데 대한 토론이 분분하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국회의원 같은 힘과 권력을 가지고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에 의해 역사는 이끌어지며 발전한다고 믿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런 생각은 구 시대적인 "온 나라는 나랏님의 것"이라는 구 시대적인 사고방식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아무리 윗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더라도 일반 국민들 즉 민중들이 살아주는 것만큼 밖에 역사는 진전되지 못하는 법이다. 그리고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바로 이 백성들, 민초(民草)들의 땀과 희생 위에서만 솟아나는 것이기에 역사발전의 참 주역은 바로 말없이 땀흘리며 사는 민중들이라는 견해이다.

예수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하늘나라'에 관한 것이었다. 오늘 복음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고 선언하신다. 오늘 복음의 산상수훈의 말씀은 이런 사람들이 하늘나라의 시민이다 하시면서 하늘나라의 '시민 자격 헌장'을 선포하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난하고, 슬퍼하고, 온유하고, 옳은 일에 목말라 하고, 자비를 베풀고, 마음이 깨끗하고, 평화를 위해서 일하고,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하늘나라를 완성시키며 차지할 사람들이며 구원될 사람들이라는 선언이다. 예수님은 왜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하늘나라의 주인공이며 구원받을 자들이라고 말씀하시는가?

2. 구원 역사 안에서 보는 가난한 자(anawim)의 특권.

산상수훈의 이 말씀은 거슬러 올라가면 오랜 뿌리를 가지고 있다. 오늘 제1독서는 이사야 이후에 등장한 스바니아 예언자가 '야훼의 분노가 터지는 날'(스바 1,15), '그 징벌의 날'에 구원받을 수 있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우쳐주는 말씀이다. "내가 기(氣)를 못 펴는 가난한 사람들만을 네 안에 남기리니 이렇게 살아남은 이스라엘은 야훼의 이름만 믿고 안심하여라. 그들은 억울하게 남을 속일 줄도 모르며, 간사한 혀로 사기 칠 줄도 모른다. 그러나 배불리 먹고 쉬리니 아무도 들볶지 못하리라."(스바 3,12-13). 이 얼마나 민초들에게 선포된 희망적인 복음인가?

사도 바오로는 오늘 제2독서에서 가난한 이들의 구원을 또 다른 면에서 역설하신다. 예수님께서 당신 구원의 일꾼들을 부르시면서 "세속적인 견지에서 지혜로운 사람, 유력한 사람, 가문이 좋은 사람들을 택하지 않으시고 어리석고 약하고 보잘것없고 멸시받는 사람들을 택하셨다. "(제2독서)고 하시며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지혜이며 아무도 하느님 앞에서 뽐낼 수 없다고 단언하신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보잘것없는 이들을 뽑아 당신의 능력으로 강하게 만드시고  그들을 통해 당산의 크신 역사를 훌륭히 이루시기 때문이다.

'야훼의 가난한자'( anawim)의 구원 소식은, "권세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신다."(루가 1,52)고 하신 성모님의 마니피캇에서 또 한번 선언된다. 예수님의 산상수훈도 같은 맥락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예수님께 선택받은 사도들이나 하느님께만 의지하고 법대로 사는 이 땅의 수많은 어진 민초들도 바로 야훼의 사랑 받는 '가난한 자'들의 후예들이 아니겠는가?

3. 민초들의 하느님께 영광을 !

민초들 만세 !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가난하고 힘없고 그래서 의지할 곳이라고는 하느님밖에 없는 백성, 항상 억눌림 받고 이용당하면서도 하느님을 믿기에 자기양심을 속일 줄 모르고, 법 없이도 살아갈 겸손하고 어진 백성들, 자기 일을 성실히 수행하며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사는 이런 백성들이 하늘 나라를 차지 할 것이라는 선언인 것이다. 수없이 짓밟혔으면서도 끈질기게 되살아나서 자기 몫을 말없이 해내는 어린 양 같은 민초들이야말로 역사 발전의 주역이며 참 행복을 누려야 할 하느님의 백성임을 선언하신 것이다.

인간이 지닌 지식이나 미모나 재산이나 힘은 그것이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을 때, 역사의 완성을 위해 어떤 기여도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반대로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하느님을 입을 때 하느님의 도구가 되고 , 하느님은 그를 통해 모든 것을 이루 실수 있다.

"자랑하려거든 그렇게 하도록 해주신 하느님을 자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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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유영봉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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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행복(幸福)한 것은?

‘아무 것도 아닌’ 저를 불러주셨음에 행복합니다.

가지는 것에 집착(執着)하지 않는 한 평신도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전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이루려고 가지려고 이기려고 안간힘을 다 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난 뒤 그게 다 헛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앞으로 남은 여정은 그 시절을 위로하며 잘 살아야겠습니다.

남에게 곧잘 짜증내고 화내며 내 기대를 채워주지 않은 이들에게 불만을 토로한 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저의 이런 투정들을 다 받아주는 이를 보았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그에게 속해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침묵이 그의 온유함이 저를 속하게 만들었나 봅니다.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고 남을 위해 사는 이를 보았습니다. 세상을 사는 요령도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종종 목젖을 내놓고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습니다.

남모르게 어려운 할머니를 돌보는 자매님을 압니다. 자신도 무척 어려운 여건 속에 처해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부터 없이 사는 저도 그 자매님을 위해 뭔가 해 줄 일이 없는지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전에 있던 본당에서 잘 울던 자매님을 압니다. 그분은 슬픈 일뿐만 아니라 기쁜 일이 있어도 잘 웁니다. 감정이 무딘 저는 그분을 볼 때마다 연민과 사랑을 느낍니다.그리고 솔직히 부럽습니다.

‘해결사’ 라고 불리는 신부님을 압니다. 그분은 늘 말 많고 소란스러운 본당에 자주 발령 받곤 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계셨던 본당에서 특별히 하시는 일 없이 지내다 다른 본당으로 가시는 것 같은데 희한하게도 그분이 가실 때쯤에는 그 본당은 기적같이 평안해집니다. 참 신비롭습니다.

남의 실수를 변호하다가 궁지에 몰린 적이 있었습니다. 무척이나 당혹스럽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게 있다면 변호한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행복한 것은 ‘아무 것도 아닌’ 저를 불러주셨다는 것(1고린 1, 28)을 안다는 것입니다.

이주형 예로니모 신부
  |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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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참 행복 - 희망의 약속

행복이 무엇일까요? 매번 우리들은 이 행복이라는 주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누구나 행복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고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각자의 행복을 찾아가고 그 행복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미 풍족하게 가졌음에도 더 많은 재산을 모으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집이 없어서, 일자리가 없어서 일상이 무너져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더 가치 있는 일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몰려온 사람들은 잘살고 부유한 사람보다는 힘든 현실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런 군중에게 예수님의 참 행복의 말씀은 위로이자 하나의 약속입니다. 지금은 비록 의로움 때문에 가난하고, 슬퍼하고, 박해받고 있지만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그것이 가치 있는 일이고 나중에는 상황이 역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참 행복의 말씀은 가르침임과 동시에 희망의 약속인 셈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희망의 약속을 안고 참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인 것이지요.

사실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 행복을 위해 하느님께 일용할 양식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한 사람이 되어갑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부자의 기도만 들어주시고 가난한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셔서 일용할 양식을 가지지 못하는 것일까요? 적어도 그것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오히려 가진 사람들이 더 가지려 하고 독점하고 있으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눔의 몫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해외 원조 주일입니다. 세상 곳곳에는 아직도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풍족한 삶이 누군가에게는 가난이라는 짐을 지우는 일이 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풍족함을 나누어 누군가의 가난의 짐을 덜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마산교구 박종선 갈리스도 신부 : 2017년 1월 29일
  |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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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들을 위한 하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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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작은 이들을 “위한” 구원자로서의 사명을 스스럼없이 폭로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만납니다.

선민의식을 지니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충실한 토라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희생 제사를 통해 벌을 피하고 복을 구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웃과 나를’ ‘둘이 아닌 한 몸’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사명을 여기에 집중합니다. 이스라엘 해방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올바른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스라엘 기득권이 추구하는 율법주의에 반해, 사회의 소수자를 하늘나라의 수혜자로 선포합니다. 당시의 신앙관을 뒤집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스바 3,12), ‘어리석고’, ‘약하며’, ‘비천하고’, ‘천대받으며’, 그저 ‘없는 것’(1코린 1,27-28)이 당신의 관심사였습니다.

하늘나라의 수혜자인 ‘작고, 낮은 이’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마태 5,13-16)이 되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라고 명하십니다.

율법학자들의 의로움은 ‘오로지 희생제물을 바쳐 율법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분을 스승으로 따르는 제자들의 의로움은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자비’는 ‘이웃과 함께 그 결핍도 받아들이는 아름다움’입니다. 수없이 많은 결함과 결핍이 많은 우리 역시 하느님 앞에서 ‘작고, 낮은’ 자세로 하늘나라의 진실한 선포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해외 원조 주일입니다. 지난 2022년 한 해 동안 복음을 선포하다 돌아가신 선교사들이 18분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자 노력했었던 이들과 이들의 치열했던 ‘삶의 자리’에 대한 원조가 지속되어, 이들의 노고와 희생이 퇴색되지 않도록 함께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작은 이들을 위한 하늘나라’를 건설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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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김종훈 엠마누엘 신부
2023년 1월 29일 주보
  |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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