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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등불을 밝히시는 하느님
조회수 | 2,723
작성일 | 05.02.03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단점보다 자신의 장점에 대해서 듣기를 원합니다. 스스로를 다른 사람 앞에 모자라는 놈이라 고백하지만, 한편으로는 위로 받고 칭찬받기를 원합니다. 누구든 높이 올라가는 것에 대해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낮은 곳에서 낮게 살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실상 높이 올라가기를 원하는지도 모릅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이전의 자랑할 만한 점들을 사람들 앞에 늘어놓을 때도 있습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어두거나 침상 밑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누구나 잘 알아볼 수 있는 곳에 놓아둔다. 등은 방이 가장 밝을 수 있는 위치에 놓아둡니다. 복음처럼, 불을 구석진 곳에 숨겨두지는 않습니다. 가장 잘 퍼질 만한 위치에 놓아둡니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드러낼 만한, 자랑할만한 어떤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누구나 그것을 빨리 알 수 있도록 전하고 싶어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비유의 주인공은 하느님이십니다. 다시 말해, 등불을 빛이 가장 잘 보일 수 있는 곳에 놓아두는 사람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스스로 그렇게 놓아두기보다 하느님이 우리를 그렇게 놓아두시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복음에서 "위선자들처럼 기도하지 마라, 너희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서 기도하라. 그러면 숨은 일도 다 보시는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다"라는 말씀을 묵상해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골방에서 기도해야 하는 것처럼, 봉사를 하든지, 기도를 하든지, 자신을 과시하지 않고, 조용히 없는 듯 겸손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조용히 숨어 있는 듯 활동하지만, 하느님은 우리들의 숨은 일들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을 정도로 밝혀 주시는 일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등불을 보기 좋은 곳에 위치시키듯이, 숨은 일도 살펴보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숨은 활동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펴 보여 주실 것입니다.

남 모르게 착한 일을 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왠지 모를 섭섭한 기분이 들 수도 있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서겠지요. 남을 위해 애쓰다가 손해까지 보았는데 아무도 몰라준다면 씁쓸하거나 허전한 마음이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라고 하시는 이것은 '걱정하지 마라, 숨은 일도 살펴보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헤아리고 계시며 너의 삶을 통해 빛이 사람들 가운데 비치게 해 주실 것이다'라고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소리 없이, 드러나지 않게 희생하고 봉사하지만 하느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선한 활동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등불이 밝게 빛나는 곳에 위치하듯, 우리의 작은 선행과 봉사를 통해 세상을 비추는 큰일을 하시리라는 것에 확신과 기쁨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고 나서 손해 본 기분이 들어도, 힘을 내어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비록 우리가 잠시의 손해가 있더라도 우리의 선행은 하느님께서 알아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숨은 일들을 보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남을 행복하게 해 줄 때 우리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행복하게 해 드릴 때 우리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1독서는 우리에게 손해와 희생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느님이 그 빈자리를 채워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 그렇게만 하면 너희 빛이 새벽 동이 트듯 터져 나오리라. 야훼의 영광이 너희 뒤를 받쳐 주리라." 우리가 행동하지만, 사실은 우리 속에서 하느님이 활동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모두가 잘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우리를 놓아주실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소금처럼 녹아서 자취를 감춘다 해도, 우리의 모습이 닳아 없어진다 해도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소금처럼 녹아 영영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우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성령과 그분의 능력에 의해 우리가 예수님을 닮은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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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류한빈 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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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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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유행가 중 “촛불 하나”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는 사는 게 힘들어 지친 이들에게 힘이 되고자 지오디(GOD)라는 그룹이 부른 노래인데, 가사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 …… 너무 어두워 길이 보이지 않아 / 내게 있는 건 성냥 하나와 촛불 하나 / 이 작은 촛불 하나 가지고 무얼 하나 / 촛불 하나 켠다고 어둠이 달아나나 …… 하지만 그렇지 않아 / 작은 촛불하나 켜보면 달라지는 게 너무나도 많아 /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내 주위에 / 또 다른 초 하나가 놓여져 있었기에 / 불을 밝히니 촛불이 두 개가 되고 / 그 불빛으로 다른 초를 또 찾고 /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어둠은 사라져가고 / 지치고 힘들 땐 내게 기대 / 언제나 네 곁에 서 있을게 /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 내가 너의 손잡아 줄게 ……”

이러한 “촛불하나”라는 노래를 듣고 있자면 우리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의 빛을 지닌 존재다.” 라고 이야기하시는 것이며, 그 빛으로 어둠을 물리쳐야 함을 이야기하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빛이 어둠을 이겨내는 방식은 세상의 방식인 힘겨루기나 폭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착한 행실을 통해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그리스도의 빛을 잘 간직하고 있는가요? 그 빛을 어디에 두고 있을까요? 때때로 우리는 거대한 세상의 어둠 앞에서 우리의 빛이 너무나도 나약해 보여 그 빛을 숨기려하지는 않았을까요? 우리의 빛이 보이면 세상의 어둠이 우리를 삼켜 버릴까봐 무서워 우리의 빛을 숨기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세상의 어둠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빛의 자녀로 살아가려는 우리를 유혹합니다. ‘착하게 살아서는 바보밖에 되지 못한다고’, ‘너희는 왜 그렇게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느냐고’, ‘너희가 들고 있는 그 빛을 버리기만 하면 너희도 이 거대한 어둠 속으로 들어와 편안하게 살 수 있다.’ 라고요.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세상의 유혹 앞에서 당당히 우리의 빛을 드러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어둠이 가득한 이 세상에 빛의 존재로 내려오셨고, 그 빛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그 빛으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 빛을 받아 세상의 어둠과 싸우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유혹을 당당히 이겨내고, 세상 속에서 착한 행실로써 승리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빛이 나약해 보일지라도, 우리의 빛이 한 순간 불어오는 세상의 풍파에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보일지 몰라도, 우리는 그 빛을 세상 속에서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각자의 빛을 세상 속에서 드러낼 때, 또 다른 빛이 우리 곁에 모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빛들이 모일 때 예수님께서는 어둠이 결코 빛을 이길 수 없음을 세상에 드러내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모인 빛들이 점점 번져 결국은 이겨낼 수 없어 보이던 세상의 어둠을 이겨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세상의 어둠이 주는 유혹과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 속에서 우리의 착한 행실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빛을 지닌 하느님의 자녀임을 증거 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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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박지훈 디모테오 신부
2017년 2월 5일
  |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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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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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당신은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빛과 소금은 그런 것입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아니라 꼭 있어야 하는 소중한 역할을 빛과 소금이 합니다. 당신도 세상에서 그런 사람입니다. 꼭 필요한 소중한 사람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너희는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요? 불특정 다수의 모든 타자를 두고 말하나요? 아니면 너, 나의 자녀, 그리스도인을 말하나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너희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살아가는 참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타인들, 다른 이들을 비추는 역할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아, 예수님께서는 다른 이들과 그리스도인들을 구분합니다.

‘그리스도인, 당신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한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안 된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예수님께서는 소금의 짠맛을 잃지 말고, 등불의 밝은 빛으로 다른 이들을 비추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도록 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세상에서 해야 하는 역할입니다. 소금의 짠맛을, 등불의 밝은 빛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짠맛과 빛의 원천은 하느님이시다.’

혹시 내가 짠맛을 낼 수 있다면, 어떤 이가 빛을 비추어 주변을 밝힌다면, 그 짠맛과 빛의 원천은 하느님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것을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나의 소금 역할과, 나의 빛 역할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소금의 짠맛과 하느님에게서 오는 빛의 밝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하며, 하느님께 청하고, 하느님에게서 모든 힘을 받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묵상해야 한다.’

하느님에게서 짠맛을 받고, 하느님에게서 빛을 받으려면 끊임없이 기도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인의 짠맛을 청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빛을 청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소금의 짠맛을 잃고, 우리가 묵상하지 않으면 빛은 밝음을 잃게 됩니다.

걱정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한 가지, 하느님과 멀어져 소금의 짠맛과 빛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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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김기현 모이세 신부
2023년 2월 5일 주보
  |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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