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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주님을 위한 착한 행실
조회수 | 2,433
작성일 | 05.02.04
오늘 복음 말씀인 소금과 빛의 비유는 여기저기에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비유입니다. 우선 소금이란 무엇인가를 정화시키고 보존하는데 사용된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 5,13)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소금처럼 세상 속에서 자신의 맛, 곧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과 가치를 드러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또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마태 5,14)”라는 말씀은 이사야 예언서와 관련해서 해석합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야훼의 영광이 너를 비춘다. 온 땅이 아직 어둠에 덮여, 민족들은 암흑에 싸여 있는데 야훼께서 너만은 비추신다. 네 위에서만은 그 영광을 나타내신다. 민족들이 너의 빛을 보고 모여들며 제왕들이 솟아오르는 너의 광채에 끌려오는구나”(이사 60,1-3).

여기서 어둠을 비추는 빛의 역할이란 시온 산 위에 위치한 주님 현존의 성전인 예루살렘의 사명을 암시합니다. 바꿔 말하면 어둠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비추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소금과 빛의 비유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의도하는 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도록 이끕니다.

주님께서 염려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소금도 짠 맛을 잃어 밖에 내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수 있고(마태 5,13), 등불도 됫박으로 덮여 사람들을 밝게 비추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마태 5,15). 주님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퇴색되고 미지근해지는 우리의 신앙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착한 행실에 있습니다.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생명의 빛을 위한 착한 행실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독서와 관련해서 2가지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말씀처럼,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입니다.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 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이사 58,7). 정확히 번역하자면, 의식주로 인해 고통 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자기와 피를 나눈 혈육처럼 사랑으로 돌보아 주라는 뜻입니다. 그런 후에야 주님께서는 우리가 기도 속에서 당신께 부르짖고 간청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이사 58,9).

다른 하나는 이런 착한 행실이 결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이 점을 분명히 합니다. “그리고 내가 말을 하거나 설교를 할 때에도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을 쓰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성령과 그의 능력만을 드러내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느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1고린 2,4-5). 사람들을 위해 어둠 속에 빛을 비추는 착한 행실은 세상적인 명성과 인기에 영합하여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신뢰하고 믿게 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이름을 팔아 내 욕심을 채우는 또 하나의 유다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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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홍승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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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과 빛의 삶

현대인들에게 소금은 고혈압이나 동맥 경화의 주범처럼 여겨지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짜게 먹지 말라는 말은 건강의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이 말도 다 맞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짜게 먹는 것이 위험한 것은 주로 정제염을 먹기 때문인데 좋은 소금을 먹는다면 짜게 맛을 내도 건강에 큰 문제는 없다고 한다. 사실 시중에 나오는 대부분의 소금은 가공된 정제염이다. 천일염과 정제염의 차이는 영양 성분 차이다. 천일염은 80%의 나트륨과 각종 미네랄이 들어 있는 반면 정제염은 95%~99%가 나트륨이다.

정제염은 독성과 불순물을 잘 제거해 냈지만 아쉽게도 그 과정에서 영양 성분도 함께 제거해서 문제가 된다. 실제로 농촌진흥청과 부산대학교가 공동으로 연구하여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에 게재한 한 연구결과를 보면 천일염으로 담근 김치가 정제염 김치보다 발효가 더 빨리 잘 진행되었고, 유산균 수와 아삭거림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이는 천일염 속에 들어 있는 각종 영양 성분들이 골고루 영향을 미친 까닭이다. 게다가 두 김치가 잘 익었을 때의 김치액으로 위암 세포를 처리한 결과 암세포의 성장 저해율이 정제염김치추출액은 51%인데 비해 천일염김치추출액은 66%로 나타났다. 즉 맛과 영양에서 천일염과 정제염은 큰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천일염의 문제는 불순물과 독소 제거를 위해 긴 시간과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긴 시간과 노력은 낭비가 아니라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소금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다.

빛 중의 빛은 태양이다. 하지만 태양의 빛이 모두 좋은 건 아니다. 가시광선은 식물의 광합성을 돕는 등 좋은 역할을 하지만 자외선은 면역체계를 망가뜨리고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화상이나 피부암, 백내장 등을 일으키는 무서운 빛이다. 이 자외선을 지구는 지혜롭게 차단해 왔는데 그것이 성층권에 있는 오존이다. 지구는 오존을 만드는 데 41억 년의 정성을 들였다. 좋은 빛을 잘 받아들이고 나쁜 빛을 잘 차단하는 데 결코 짧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금이든 햇빛이든 좋은 것만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소금이든 햇빛이든 정화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해 우리도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의 장점을 잘 성장시켜 남과 나누고 자신의 단점을 잘 극복하며 정화되어 가야 한다. 조금 더 순도 높은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우리는 정성으로 우리를 단련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소금과 빛의 삶이라 함은 몇 번의 선행이 아니라 일생의 일관된 노력이 빚어낸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오늘도 사랑을 나누고 자신을 돌아보아야겠다.

이경일 신부
  |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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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장례미사를 다녀왔습니다. 예전에 청년성서모임을 통해서 알게 된 어떤 형제님의 장례미사였지요. 40대 초반의 나이.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주님 곁으로 갑작스럽게 떠났습니다. 이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평소에 특별한 지병을 앓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뜻밖의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아무튼 놀라움과 함께 이 갑작스런 이별에 슬픔을 안고 장례미사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 미사에 많은 신부님들이 오신 것입니다. 모두 8분의 신부님께서 함께 미사를 봉헌하셨고, 또한 이 형제님을 기억하는 많은 청년들이 슬피 울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신부님들과 많은 청년들이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이 형제님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형제님께서 살아 있을 때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기 때문입니다. 성서공부와 성령기도회를 통해 주님께 더욱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노력했고, 더불어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범적인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더욱 더 이 이별을 아쉬움과 큰 슬픔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형제님이 참 잘 사셨구나.’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리고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도 말씀하시듯이, 이 세상을 살면서 자기만을 위해 살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빛과 소금이 되는 모습으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과연 나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의 모습으로써 ‘참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긍정적인 답을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만 기억할 뿐, 실제로는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만을 간직하며 정 반대의 모습으로 살아왔음을 반성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신앙의 기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몸으로 직접 그 사랑을 실천하여 진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모범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나중에 주님 앞에 떳떳하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말만 하는 신앙이 아닌, 빛과 소금의 모습을 직접 살아가는 실천하는 신앙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말씀하시지요. 즉, 나눔과 사랑을 실천할 때에 우리가 주님을 부르면 대답해주시고, 우리가 부르짖을 때 ‘나 여기 있다.’하고 말씀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빛과 소금’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범적인 삶을 사는 사람만이 주님과 함께 하면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빛과 소금이 되라’는 주님의 말씀을 가슴깊이 새기며 살아가는 우리가 됩시다. 그리고 그 말씀을 나의 삶에서 철저하게 실천하도록 합시다. 이러한 모습으로 살다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참 잘 살았다.”라고 칭찬해주시며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큰 상으로 주실 것입니다.

조명연 신부
  |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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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대학에서 이러한 실험을 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정면에서 마주 오는 두 대의 차가 서로 부딪히는 장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차가 부딪히는 커다란 소리를 들려주면서 화면을 멈췄지요. 이제 사람들에게 차가 부딪힐 때의 장면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이야기해달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의 유리창이 심하게 깨졌으며, 운전석에 있었던 사람이 앞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 차가 심하게 찌그러지는 것도 보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의 영상에는 그런 장면이 없었습니다. 아주 느리게 다가오는 두 대의 차가 살짝 정면에서 부딪히는 장면을 빠른 속도로 재생했던 것이고, 여기에 부딪히는 커다란 소리를 입혔을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기억이 일어나지도 않은 것을 일어난 것처럼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었습니다. 거짓된 기억을 진짜 기억인양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어렸을 때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기억이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가짜 기억일 때가 많다고 합니다. 누군가에 대한 미움과 부정적인 생각 역시 자신의 가짜 기억에 기초해서 생길 때가 많답니다. 그래서 심리학자 윌리엄 랠프 인지는 ‘과거의 사건은 대략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으로 나눌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연연하는 삶이 아닌, 지금을 충실하게 사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어나지 않은 사건과 중요하지 않은 사건으로 지금을 제대로 살지 못하면 안 됩니다. 하느님의 창조물인 우리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기억하고 지금을 제대로 살면서,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누릴 내 자신을 꿈 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먼 미래에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것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임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음식의 맛을 결정짓는 소금처럼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바로 ‘나’이며,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게 하는 환한 빛과 같은 존재가 바로 ‘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소금과 빛인 ‘나’의 모습을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세상에 알릴 수 있다고 하십니다.

가짜 기억으로 지금의 내 모습을 형편없이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인 귀한 ‘나’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지금 이 순간 주님을 세상에 알리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때 가짜 기억을 잊어버리고, 하느님과 하는 진짜 소중한 기억들을 간직하게 될 것입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7년 2월 5일
  |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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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주님을 드러내는 소금과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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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안식년 동안 이스라엘에서 3개월을 지내게 되었다. 그때 알게 된 것이 주님 무덤 성당에서 밤샘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두 시간을 줄을 서서 기다려도 고작 30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덤 제대 경배를 할 수 있었는데, 밤새도록 무덤 성당에서 기도를 할 수 있다니 귀가 번쩍 뜨여 무조건 신청을 했다. 신청한 날짜가 되어 무덤 성당에 가서 주의 사항을 듣고 성당 내부 청소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당 안은 아직 겨울이라 추웠고 배정된 인원이 15명 안팎이라 뭔가 쓸쓸하고 어색한 느낌이었다. 주님 무덤 성당에서도 주님의 시신을 안치했던 곳을 예수님 무덤 제대라고 부른다. 무덤 제대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천사들이 나타났던 천사들의 경당이 네모난 건물 안에 있는데 그 건너편에는 대기하는 벤치가 있다. 그 벤치에 앉아서 들어가라는 사인을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10시간도 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지?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묵주기도를 바쳐도 한계가 있을 텐데…. 성경을 읽어 볼까?’ 갑자기 시간이 너무 긴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오르며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30분 정도의 청소 시간이 끝나갈 무렵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 주님을 만나려고 할 때 이렇게 벤치에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게 되지는 않을까? 곧 있으면 주님을 만난다. 이제 곧 주님을 뵙겠구나.’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주님을 만나고 싶은지, 그분을 만나는 순간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느낄 수가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은 사라지고 주님을 만난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벅차 올랐다. 무덤으로 들어가도 된다는 사인을 받고 예수님 무덤 제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주님 석관 앞에 무릎을 꿇고 석관에 몸을 기대었다. 주님께서 나를 초대해 주셨다는 감사의 마음과 주님을 이렇게 만났다는 행복한 마음이 차오르며 눈물이 흐르고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세 명 정도가 함께 들어갔는데 옆에 있던 사람들이 일찍 나가고 홀로 주님 무덤 제대 앞에 앉아 기도할 수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냥 눈을 감고 있기도 하고 뜨고 바라보기도 했다. 감정이 가득 차서 다른 무엇을 할 수도 없었지만 해야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그냥 찬 바닥이 찬 줄도 모르고 두 시간이 넘게 있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 양보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는 골고타와 다른 경당들을 두루 다니며 기도할 수 있었다. 길 줄만 알았던 10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몸은 꽁꽁 얼었지만 마음은 너무나 뜨거웠다. 무언가 다 싱겁고 무미건조하고 시큰둥했던 나의 신앙생활 중에 제대로 주님의 맛, 신앙의 맛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 성지는 주님을 더욱 값지고 맛나게 느끼게 해주는 소금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서는 그냥 길을 걸어도 바람이 불어와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우두커니 바라보아도 ‘주님도 이 길을 걸으셨고 이 바람을 맞으셨고 이 사람들을 보시며 지내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체험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한 체험은 신앙을 일깨우고 주님께 집중하게 해주는 힘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 역시도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을까? 주님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 주님을 참으로 느낄 수 있는 신앙인.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의 신앙이 소금이어서 주님의 맛이 잘 살도록 해야 하는구나, 주님의 모습이 잘 드러나도록 비추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님이 주된 음식이고 나는 그 맛을 살려야 하는 소금이었는데 마치 내가 주된 음식이고 내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주님을 소금으로 여기며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성찰하게 된다. 주님을 환히 드러내는 빛이 되었어야 하는데 주님을 나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게 된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3,30)는 요한 세례자의 고백이 겹쳐 떠오르는 것은 주님을 참 맛없게 만들었던 삶에 대한 부끄러움이고 주님을 드러내지 못한 시들한 빛에 대한 부끄러움일 것이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성품을 본받아 주님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참된 소금의 삶, 빛의 삶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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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이경일 토마스 신부
2020년 2월 9일
  |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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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제 관심을 끌 만한 영상 하나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제목 하나만으로도 곧바로 클릭하게 했습니다. 영상의 제목은 ‘글씨 잘 쓰는 법’입니다. 글씨를 잘 쓰지 못하는 저로서는 관심이 아니 둘 수가 없었습니다. 이 영상에서 제시하는 글 잘 쓰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가로획을 길게 써야 시원하게 보인다. 2) 세로획은 똑바로 써야 바르게 보인다. 3) ‘ㄱ,ㄴ’ 의 경우는 각이 없이 부드럽게 써야 글씨가 예뻐진다. 4) ‘ㅇ’은 예쁘게 쓴다. 너무 작아서 무슨 글씨인지 모르게 써서는 안 된다.

모두 맞는 말이었고 왜 제가 글을 잘 못 쓰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기억하며 신경 써서 글을 쓰는 데 노력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도 여전히 악필입니다.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쓰면 빨리 쓸 수가 없다 보니 다시 예전처럼 쓰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예쁜 글씨가 나오지 않습니다. 알고도 실천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압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살지 않는다면 주님의 말씀을 통해 변화가 생길 수가 없습니다. 주님 말씀을 알고 그 앎을 내 몸으로 살아야 주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 세상에 전달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제맛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이르십니다. 믿음과 거룩한 지혜를 잃어버린다면 그래서 주님 곁에서 머무를 수가 없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의 필요한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세상의 빛이라고 하십니다. 빛이 없다면 이 세상 안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둠 속에서 빛이 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받아서 다시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냥 주님의 말씀만 기억하면 될까요? 아닙니다. 스스로 그렇게 소금과 빛의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따라야지만 주님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변화를 목격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말로만이 아닌 진짜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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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2020년 2월 9일
  |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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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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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 5,13)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라는 말씀을 접할 때면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교훈이 떠오릅니다.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이 교훈이 저에겐 참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정신에 따라 청소년을 가르치고, 청소년 또한 이 정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1950년대 개교 이래 실시되었던 무감독 시험은 지금까지 이어져 청소년들의 학문과 양심을 성장시키고 있었습니다.

요즘 우리에게 선포되고 있는 마태오 복음 5장에서 7장까지의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설교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산상설교의 가르침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율법의 참된 정신에 관한 것입니다.

산상설교의 첫 단계로는 지난 주일에 복음으로 선포된 진복팔단, 참 행복에 대한 선언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에 이은 소금과 빛에 대한 가르침을 이야기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위한 제자들의 본질과 사명을 소금과 빛을 통해 표현해 주십니다. 산상설교의 가르침이 우리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를 이야기하십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의 모습임을 이야기하십니다.

소금은 본질적으로 음식의 맛을 돋우고, 부패를 막는 역할을 합니다. 빛은 어둠을 밝히고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고 바라보게 합니다. 제자들의 사명과 그리고 당신을 따르는 이들의 모습이 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으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소금이다.”(마태 5,13-14 참조)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이미 빛이며 소금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분의 가르침과 정신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오늘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는 길에 버려질 따름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때로는 힘들고 어렵습니다. 눈앞의 이익 앞에서,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 앞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바보 같은 삶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빛과 소금이, 우리의 양심이 우리가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사명을 따라 충실히 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짠맛을, 우리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하느님께 도와달라고 간절히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그러한 우리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 아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녀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임을 잊지 않도록 우리의 신앙을 잘 전달해야 합니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교육철학을 가지고 지금까지 무감독 시험을 통해 이러한 정신을 후대에 전해주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녀들에게 이 좋은 신앙을 잘 전달해 주어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세상의 빛과 소금임을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하느님께 은총을 청하는 한 주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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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유동식 마리오 신부
2023년 2월 5일 주보
  |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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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에 의하면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의 행복은 1년을 채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고로 다리를 잃은 사람은 어떨까요? 다리를 잃는 순간부터 큰 좌절감 속에서 힘든 시간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한 1년을 넘어가면 불행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개척하며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1년 뒤의 행복도가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보다 훨씬 높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그래서 영원히 행복하길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우리 몸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즉, 행복이든 불행이든 그 어느 쪽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도록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우리 몸 안의 유전자가 그 역할을 하는데, 행복감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게을러지고 나태해져서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는 의지가 약해질 것이고, 반대로 불행에 빠져 우울감이 너무 길어지면 삶을 포기하게 되어 유전자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행복이든 불행이든 어느 한 곳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수백만 년 동안 진화됐고 또 앞으로도 진화될 인간이기에 계속된 변화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몫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삶 자체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할 때 불행의 순간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으며, 자기 삶에 더 충실할 수 있습니다.

늘 행복하길 원하는 우리이지만, 이는 욕심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대신 어떤 삶이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출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세상 안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빛나는 사람, 세상 안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단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3.14)

세상의 소금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비춰주신 것도 아닙니다. 분명하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십니다.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존재로 태어났고,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복만을 추구하는 삶이 아닌, 또 불행 안에서 헤어나지 못해 좌절과 절망을 반복하는 삶도 우리의 삶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으로 꼭 필요하고 거룩한 삶입니다. 그래서 이 모습에 맞게 더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처럼 우리의 빛이 새벽빛처럼 세상에 터져 나올 것입니다(이사 58,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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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2023년 2월 5일
  |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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