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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정의의 빛을, 사랑의 소금을 녹이면서 상생(相生)”
조회수 | 2,496
작성일 | 05.02.05
오늘의 복음 요약은 '우리가 세상의 소금, 빛이 되어야 한다'는 윤리강령입니다. 우리들이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실천해야 될 사명을 말씀하십니다.

소금이란 음식에 맛을 내주는 역할뿐만 아니라 부패를 방지해주는 기능을 갖고, 빛은 어둠을 밝혀주고, 상징적으로 희망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라고 비유하신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업에 동참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밝히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생각하고 반성하고 또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어둠이 없었을 때가 없었고, 부정부패가 없었던 시기는 없었습니다. 입시부정(핸드폰을 통한 수능부정행위)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준법정신도 그렇습니다. 생명존중을 의미하는 인권도 그렇습니다. 배금주의(맘모니즘 숭상)도 그렇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문제입니다. 이러한 상태는 주님의 시대에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말씀하실 때, '세상의 어둠과 부패를 직시하라'는 말씀이셨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건데, 이 세상에 어둠이 없고 부패가 없었다면 어떻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겠습니까? 그분은 어둠을 몰아내시고, 썩어 가는 인류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정의와 사랑을 강조하여 가르치시고 실천하셨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을 승리한 무기는 정의와 사랑뿐이었습니다. 정의로 불의를 물리치시고, 사랑으로 꺼져 가는 모든 생명에 기운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따르라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야됨을 알 것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라 정의와 사랑의 행위를 실천하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정의와 사랑, 이것만이 어둠을 밝히고 썩음을 방지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빛과 소금'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 스스로가 그 역할을 하겠습니까? 그 방법은 내가 죽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께 순명하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은 마치 소금이 녹아야 짠맛을 이루는 것처럼, 빛이 자신을 태워야 촛불을 밝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죽어서 남을 살리고 그뿐만 아니라 나도 사는 그리스도교 사랑의 법칙을 따르는 것입니다. 불의를 용서하지 않는 것은 자기희생을 따르지 않는 불성실한 삶인 것입니다. 불의를 용납하고 불의에 동참하는 것은 우선은 편하고 이익이 있을지 몰라도, 결론은 죽는 것입니다.

빅토르 위고의『레미제라블』에서 장발쟝이 그렇습니다. 그는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혀 이 땅에 발붙이기가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세상이 그를 미워할 지라도 단 한사람, 미카엘 신부님은 그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장발쟝은 오히려 은촛대를 훔쳐 도주하다가 순찰중이던 경찰에게 붙잡혀 은촛대를 훔친 사실이 발각되려는 순간에 미카엘 신부님은 그 촛대는 자신이 선물로 준 것이라고 변명해 줌으로써 또다시 장발쟝에게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이에 감화된 장발쟝은 평생동안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며 일생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사랑의 결과는 이처럼 힘이 크다'는 것을 사랑을 통해 드러내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불의를 극복하는 무기는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신자여러분!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산다는 것이 '빛과 소금'이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정의의 빛을, 사랑의 빛을 밝히면서 생활을 살아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매일 우리의 부대와 가정과 이웃간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도록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말 한마디라도, 생각 하나라도, 빛과 소금이 아닌 것을 용납하지 않아야 됩니다. 빛과 소금의 길이 고되고 괴롭더라도, 그 경지는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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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구석훈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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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맛을 찾아줍시다!

군대는 매우 다양한 젊은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살아오던 환경도 서로 다르고 성격이나 생긴 모습 또한 다양합니다. 그래도 다들 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다양성과 상관없이 모두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종종 그와 반대되는 모습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드물게 온갖 어둠을 짊어지고 체념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고 삶의 의미, 삶의 맛을 잃어버려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은 그들의 얼굴과 표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모두와는 좀 달라 보이는 사람에게 신부는 말을 걸어보게 됩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모두가 활기차 보이면 좋겠는데 그 가운데 어두운 그림자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에 빗장을 걸어두고 절대 열어주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는 문을 열기가 힘들지만 누군가가 도와주면 열어줄 용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먼저 다가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은 스스로 고민들을 이야기하기도 하면서 변화되고자 하는 열망을 보입니다.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에게 누군가가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혼자서는 힘들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십니다.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전달하고 삶의 맛을 잃은 사람들에게 그 맛을 찾아주라고 요구하십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먼저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빛과 소금은 자신을 태우고 녹일 때, 즉 자신을 버릴 때 그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적극적으로 내어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때가 더 많이 있습니다. 일단은 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나도 도움을 받아야 하고, 나도 살아야 하고, 나도 좀 쉴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나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신 안에 갇혀 있게 되면 다른 사람을 볼 여유 역시도 생길 수가 없습니다. 빛과 소금이 중요한지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어디에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모르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우리가 빛과 소금이 되어주길 바라고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 점을 알아야 하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빛과 소금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약자라고 생각하는 편에서, 그늘이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열심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역시도 그러한 삶을 사셨지요. 그리고 우리들이 같은 삶을 살아가기를 같은 체험을 할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모습은 어때야 할까요?

우리 자신이 빛과 소금이 될 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역시 또 다른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느님의 나라는 분명 이 세상에 구현될 것입니다.

박임호 신부
  |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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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맛을 찾아줍시다!

군대는 매우 다양한 젊은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살아오던 환경도 서로 다르고 성격이나 생긴 모습 또한 다양합니다. 그래도 다들 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다양성과 상관없이 모두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종종 그와 반대되는 모습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드물게 온갖 어둠을 짊어지고 체념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고 삶의 의미, 삶의 맛을 잃어버려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은 그들의 얼굴과 표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모두와는 좀 달라 보이는 사람에게 신부는 말을 걸어보게 됩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모두가 활기차 보이면 좋겠는데 그 가운데 어두운 그림자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에 빗장을 걸어두고 절대 열어주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는 문을 열기가 힘들지만 누군가가 도와주면 열어줄 용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먼저 다가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은 스스로 고민들을 이야기하기도 하면서 변화되고자 하는 열망을 보입니다.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에게 누군가가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혼자서는 힘들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십니다.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전달하고 삶의 맛을 잃은 사람들에게 그 맛을 찾아주라고 요구하십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먼저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빛과 소금은 자신을 태우고 녹일 때, 즉 자신을 버릴 때 그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적극적으로 내어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때가 더 많이 있습니다. 일단은 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나도 도움을 받아야 하고, 나도 살아야 하고, 나도 좀 쉴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나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신 안에 갇혀 있게 되면 다른 사람을 볼 여유 역시도 생길 수가 없습니다. 빛과 소금이 중요한지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어디에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모르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우리가 빛과 소금이 되어주길 바라고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 점을 알아야 하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빛과 소금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약자라고 생각하는 편에서, 그늘이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열심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역시도 그러한 삶을 사셨지요. 그리고 우리들이 같은 삶을 살아가기를 같은 체험을 할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모습은 어때야 할까요?
우리 자신이 빛과 소금이 될 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역시 또 다른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느님의 나라는 분명 이 세상에 구현될 것입니다.

박임호 신부
  |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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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입니다.

이곳 군종교구에서 만나게 되는 병사들에게 세례성사를 베풀 때 저는 “여러분이 이제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 주셔야 합니다.”라고 꼭 말씀드립니다. 그 의미를 오늘 들으신 복음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그 사명이 무엇인지 명확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소금과 빛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소금의 성분인 나트륨은 생명을 유지 하는 기본요소이기도 하며, 구약에서는 희생 제물을 바칠 때 방부제 역할과 더불어 정결하게 하기 위해 소금을 뿌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소금’이란 말은 인간에게 소금이 필요 하듯이 당신의 제자들이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소금은 인간이 섭취하는 여러 가지 음식들의 맛을 내는데 들어가며, 그 음식을 통해 인간 몸 안에 스며들게 되죠. 서품을 받고 사제로 살아가면서 소금과 자주 마주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본당에서 쓰이게 되는 성수 항아리에 성수가 다시 채워지도록 물을 축복할 때 사제는 축복 기도를 바치고, 소금을 물에 넣으며 잘 녹도록 한두 번 휘저어 줍니다. 저는 그때마다 소금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곤 합니다. 식사를 준비할 때도 소금과 친숙해집니다. 군종교구에 파견되어 살면서 사제관에서 혼자 식사를 준비할 때가 많습니다. 제가 예전부터 자신 있게 그리고 자주 끓이는 국이 있습니다. 바로 따끈 따끈한 콩나물국입니다. 조리하기가 쉽고 건강 에도 좋아서 장을 볼 때 신선한 콩나물을 늘 구입합니다. 콩나물국은 우선 콩나물을 잘 우려내어 고유의 시원한 맛도 있어야 하지만 더 맛있게 먹으려면 약간의 간이 맞아야 합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소금입니다. 짜지 않게 간을 잘 맞추어 주었을 때, 깔끔한 콩나물국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침 식사에 곁들이는 계란 프라이를 하면서도 흰자와 노른자가 살짝 익으려 할 때 소금을 조금 뿌려주면 비린내를 잡아주고 맛을 더해 줍니다. 이처럼 소금은 자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전체를 이롭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낯선 군 생활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살겠다며 예비자 교리를 받고 미사 안에서 세례성사를 받은 새영세자들에게 저는 오늘의 이 복음을 매번 상기시켜 드립니다. 특별히 새영세자 병사들이 대부로부터 촛불을 건네받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이제부터 여러분은 손에 들린 그 촛불처럼 살아있는 촛불이 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냥 화려하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태우면서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촛불이 되길 바라는 마음일 뿐입니다. 세상에 영향을 주고 변화시키지만, 자신은 드러내지 않기를 예수님께서는 바라고 계십니다. 소금은 자신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을 때 그 효과가 더 커집니다. 그리스도인이 제 맛과 빛을 낸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는 녹아 사라지고 부패를 방지하고 거룩함을 보존하는 것이며, 스스로는 타버리지만, 어둠을 밝히고 진리를 조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소금과 빛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고, 삶 안에서 실천해 나가는 길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군종교구 이동명 사도 요한 신부 : 2017년 2월 5일
  |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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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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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영적 고향은 인천 가톨릭대학교입니다. 인천 신학교는 강화도 진강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생활하다 보니 신학생 때 많은 교우분들이 물어보십니다. “신학교가 강화도 시골에 있어서 많이 불편하시겠어요.” 이러한 물음에 저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신학교가 강화도에 있어서 좋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줄곧 살아왔더라면 시골보다는 하늘 높이 솟은 빌딩들이 즐비한 도시가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한적하고 조용한 인천 신학교가 무척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학교에 입학해 생긴 취미가 있습니다. 그 취미는 바로 산책입니다. 신학교 주변은 정말이지 아름답습니다. 그러한 자연 안에서 거닐 때면 절로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도시에 태어나 뛰어놀기만을 좋아했던 저는 자연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신학생이 되어서는 계절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부로 살아가며 교우분들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 관해 물을 때면 이러한 저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하느님 체험이라고 대답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모든 사람 안에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새겨주신 흔적이 있습니다. 이 흔적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왜냐면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기 때문이지요.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창세기 1장 26절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제1독서와 복음 말씀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새겨주신 흔적을 ‘빛’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어렵고 살기 힘들다고 합니다. 힘겨워하는 우리에게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우리 스스로가 촛불이 되어야 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성당에서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군대, 직장, 가정, 학교에서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때 비로소 미사 강복 이후에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실천합시다.”를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거리로 나가 띠를 두르고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표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며 그러한 실천이 곧 선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의 복음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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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정민기 로베르토 모세 신부
2023년 2월 5일 주보
  |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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