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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이 정도면 괜찮겠지?
조회수 | 113
작성일 | 17.12.22
[광주] 이 정도면 괜찮겠지?

언젠가 아침 일찍 미사를 드리기 위해 제의실에서 제의를 입고 있는데, 복사 아이 한 녀석이 제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 머리가…” 그래서 머리카락이 많이 헝클어졌나 하고 거울을 보았습니다. 이 정도는 뭐 준수한 얼굴이고, 이상하지 않은데 왜 그러지 하고 그 아이를 빤히 쳐다보니까 다시 저에게 말합니다. “신부님, 뒷머리가…” 아닌게아니라 자세히 보니 제 뒷머리에 까치들이 집을 지었더군요.

어느덧 제대 앞 대림환의 마지막 초인 백색 초까지 4개의 초가 환히 불을 다 밝혔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시기로 하신 주님을 기쁘게 맞아들이는 일만 남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을 만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까? 혹시 저처럼 앞모습만 보고, 또는 겉모습만 주변 정리를 해놓고 ‘이 정도면 괜찮겠지?’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혹시나 모르니까 마지막으로 자신의 뒷모습과 속마음까지도 다시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마리아는 평범한 인간으로서(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하더라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처녀로서 잉태하리라는 하느님의 계획에 대해 응답합니다. 그리고 한 여인의 이 결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는 엄청난 일이, 구세주의 강생이라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마리아의 모습을 찬찬히 들어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가 인사했을 때 마리아는 몹시 놀라고 당황해 하기는 했으나, 넋을 잃지 않고 도대체 지금 그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자신에게, 그리고 하느님께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반복된 사고와 되물음, 내 뜻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자세가 마리아로 하여금 마침내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대답을 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대림시기의 마지막 자리에 있는 우리는 때로는 하느님의 말씀을 그저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마리아와 같이 깊이 묵상하여 자신을 더 깊게 돌아보고 하느님께 끊임없이 여쭈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앞모습만, 겉모습만 화려하게 꾸미면서 예수님을 어쩔 수 없이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온 삶으로 주님의 오심을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광주대교구 이동욱 모이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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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세상의 수많은 것 가운데 가장 쓸모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하나를 꼽아 자기 안에 심어 놓은 채 살아갑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그 하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입니다. 시간이 흘러 쌓이게 되면 그 하나는 사람의 얼굴을 이런 모양 혹은 저런 모양으로 꼴을 지어 주기도 합니다. 이제 잠시 멈추어 우리가 그동안 삶의 중심으로 삼아 왔던 그 하나를 되짚어 보았으면 합니다.

광야에 살던 건장한 청년이 사람들 사이에 나 타나 목청껏 회개를 외칩니다. 자리를 옮겨 요르단 강에서는 많은 사람에게 죄를 씻는 세례도 베풉니다. 그는 자신을 ‘소리’ 또는 ‘곧이어 오시기로 된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는’ 자로 소개합니다. 그가 자신을 낮출 뿐만 아니라 당당히 그분을 선포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작은 마을에 살던 앳된 처녀가 느닷없는 소식을 전해 듣고 아연실색합니다. 자신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앙을 오롯이 궁글려 가며 걸어가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듣게 된 전갈은 이 세상에서 있어 본 적이 없는 일이었기에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전해 들은 말씀을 받아들01 게 되는데 그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세상 사람들에게 저마다 중심이 되는 그 하나 는 여러 가지겠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단순하고도 전부인 그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그분에 대한 우리의 체험입니다. 한 청년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만난 그 분에 대한 기역을 자신의 하나로 삼아 증거의 삶을 살아갑니다. 또한 한 처녀는 늙은 친척 아 주머니가 높으신 분의 힘을 입어 임신했다는 소식을 자신의 하나로 삼아 종의 삶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그분께서 나에게 선물처럼 내어주신 체험들은 무엇입니까? 언제 어디서 받았습니까? 그동안 그 체험들이 나의 얼굴과 하루를 어떻게 변 화시켜 주었습니까? 이제 곧 우리 삶의 중심이 며 하나이신 그분께서 또다시 아기가 되어 오십니다. 그분의 분명한 뭇은 몸소 우리의 하루 안으로 들어오시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되 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 광주대교구 김동하 세례자 요한 신부 : 2017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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