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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나병환자의 용기와 믿음
조회수 | 119
작성일 | 18.02.11
[군종] 나병환자의 용기와 믿음

찾아오는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심으로써 당신의 정체를 조심스럽게 드러내시던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거의 죽은 사람과 같은 상태에 놓인(즉, 죽음의 생활을 하고 있던) 나병환자를 고쳐 주심으로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십니다.

나병은 참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무척이나 무서운 병입니다. 오늘의 제 1독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당시 나병 환자는 다른 사람들과 상종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즉, “그는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이므로 부정하다. 그는 머리에 병이 든 사람이므로, 사제는 그를 부정한 이로 선언해야 한다. 악성 피부병에 걸린 병자는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푼다. 그리고 콧수염을 가리고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친다. 병이 남아 있는 한 그는 부정하다. 그는 부정한 사람이므로, 진영밖에 자리를 잡고 혼자 살아야 한다.”(레위 13,44-46)라고 법에 명시되어 있었죠.

옛날엔 한번 걸렸다 하면 그 시간부터 그 사람은 완전히 죽은 인생으로 취급받았을 정도로 끔찍한 병이 바로 이 나병이었다고 합니다. 눈은 흘기게 되고 입은 비뚤어지며 목소리는 쇳소리를 내게 되고 눈썹이 빠지며 손가락 발가락들이 오그라들고 빠지게 되고, 얼굴에 돌기가 생겨서 사람들에게 심한 거부감을 일으키는 징그러운 모습을 지니게 된다고 하죠.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것이 나병에 걸린 이들의 불행이라고 들었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나병에 걸린 사람은 이 ‘상처’(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벌로 여겨지는 이 상처)를 평생 지니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이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구약에서 나환자들은 건강한 사람들과 철저하게 분리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가족과 친지들을 떠나 진지밖에 자리를 잡고 따로 살아야 했으며, 혹시라도 건강한 사람이 잘못 접근하게 되면 자기는 '부정한 사람이오.'하면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병을 경고해 주어야 했습니다. 만일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돌로 쳐죽이는 끔찍한 형벌을 받아야만 했죠. 부모와 가족은 물론 세상의 모든 것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외롭고도 불행한 삶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병환자의 운명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치유해 주신 것은 외적인 병의 치유, 그 자체를 넘어서 '저주받은 인생; 즉, 죽음자체의 삶'이라고 간주되었던 그들에게 높은 인격의 가치를 부여해 주신 것입니다. 또한 어떤 인생(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예수님 앞에서 치유될 수 있고 새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우리 모두가 본받기를 그분은 은연중에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나환자에게 손을 갖다 댄다는 것은 같이 부정 타는 일인데도 예수님께서는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세상에는 나병보다 더 무서운 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죄를 모르는; 혹은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교만과 위선들이죠. 이러한 위선과 교만에 사로잡힌 이들은 속은 썩었어도 겉은 멀쩡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병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를 못합니다. 자신의 병을 모르니 치유될 리가 없겠죠. 옛날 바리사이파 사람이나 율 법학자들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시대에도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사회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병을 솔직하게 내보이면 고쳐질 텐데 감추고 있기 때문에 평생 불구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나환자는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님께 자기 병을 갖고 나감으로써 치유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용기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 곁으로 달려오기를 항상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잘못에 대해 늘 측은한 마음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죠. 예수님께 용기있게 나아갑시다. 그분만이 진정 우리를 완전히 고쳐 주시며 구해 주실 수 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마르 1,40).

▦ 군종교구 이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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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마음의 나병(?)

오늘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두 가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하느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이고, 두 번째는 우리 마음의 나병입니다.

첫 번째로 하느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나병환자는 목숨을 걸고 자신의 치유를 위해 예수님께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겸손되이 무릎을 꿇고,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소원을 말합니다. 우리도 하느님께 기도할 때 이처럼 해야 합니다. 나의 모든 의지와 노력으로 하느님께 기도해야 하고 또 겸손되이 기도해야 하며, ‘주님, 이거 들어주세요.’라고 하기보다는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이거 좀 들어주시겠습니까?’하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 맡기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 마음의 나병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유다인에게도 그리스인에게도 하느님의 교회에도 방해를 놓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이처럼 우리 마음의 나병이란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를 이룩하는데 방해를 놓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방해... 어떠한 것들입니까? 판단, 이기심, 시기, 질투, 미움, 다툼... 참 많습니다. 과연 우리 자신에게는 어떠한 마음의 나병이 있나요?

이러한 마음의 나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나처럼 하십시오. 나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유익한 것을 찾습니다.” 바로 마음의 나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애를 써야 하며, 상대방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찾고 그 유익을 위해 내가 노력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타인에게 슬픔을 주려고 노력하지 맙시다. 또한 타인의 단점을 바라보지 말고, 장점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며, 타인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찾아나서는 우리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공동체에 방해를 놓는 자가 아니라, 공동체에 윤활유가 되는 존재,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겸손한 모습으로 그분께 청하며 하루하루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군종교구 박종혁 사도 요한 신부
  |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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