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나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1 84%
[광주] 우리의 봉헌은 떳떳한가. 그러면 무엇이 내 것입니까.
조회수 | 94
작성일 | 18.10.11
[광주] 우리의 봉헌은 떳떳한가. 그러면 무엇이 내 것입니까.

하느님과 재물!

이것은 신앙 안에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도전해 오는 문제요 갈등입니다. 대단히 송구스럽게도 재물이 하느님보다 더 매력 있게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믿는 이들도 하느님보다는 재물 앞에 머리를 숙이고 비굴해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지혜'야말로 어떤 재물보다도 뛰어나게 위대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참 보물은 지혜며 그 지혜 안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재물이 있다고 저자는 확신을 가지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지혜가 무엇입니까? 말할 것도 없이 하느님 자신입니다.

세상에 하느님보다 더 소중한 보배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얻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이며 하느님을 잃으면 세상을 다 잃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믿는 이들마저 땅의 재물에만 집착되어 있습니다. 열심한 사람들 중에도 상당수가 재물에 갇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젊은이는 아주 훌륭한 신앙인으로 보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율법을 거의 완벽하게 지켜 왔습니다. 바른 양심을 가지고 아주 성실하게 살았던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대단히 놀랍게도 그것은 위선이었습니다. 실제는 율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가진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했을 때 그는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오라고 해도 안 갑니다.

바로 이런 것이 신앙의 모순입니다. 자신은 십계명을 잘 지키고 봉사를 잘 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재물에 묶여져 있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비굴한 처신을 합니다. 사람이 봉헌이 떳떳지 못하고 나눔이 온전치 못하면 위선자가 됩니다.

돈이란 이상한 마력이 있어서 고상한 사람, 치사한 사람이 돈 앞에서 갈라지게 됩니다. 하다 못해 사람들이 화투 치는 모습을 봐도 돈 몇 푼에 그 사람의 본성이 드러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인도 돈 앞에 자기 신앙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알아보기 위해서는 교무금을 얼마 내고 있는지 장부를 들춰보면 대충은 압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언젠가 성탄 면접을 할 때 제가 교무금에 대해서 상당히 심도있게 강조한 적이 있었습니다. 십일조는 바라지 않지만 십일조의 반은 내야 한다고 강하게 밀어 봤더니 그때 신자들의 양심을 한 순간에 볼 수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많은 신자들이 자신을 속였습니다. 있는 사람들이 더 감췄습니다.

십일조의 은혜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 은혜는 누가 뭐래도 체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일조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마태23,23). 그러나 십일조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것은 자칫 위선도 되고 바리사이파 신앙도 됩니다. 뿐만 아니라 십일조의 반도 하느님 앞에 봉헌하지 않는 것 도 문제입니다. 그것도 역시 위선일 수 있으며 바리사이파 신앙 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주 “성의껏 낸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 '성의'가 대단히 애매해서 어떤 사람들에겐 백분의 일, 이백분의 일도 안됩니다. 믿음이 자갈이면 자갈이 나오고 믿음이 모래면 모래가 나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래서 믿음을 보배로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땅에 쌓은 재물은 녹이 슬거나 좀눠주고 베풀어 준 것이요 또한 하느님께 봉헌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아니라고 송구스러워 하겠지만 그것만이 진정 '내 것'이 되어서 나를 영원히 채워 줄 것입니다. 땅에 쌓은 재물은 결코 내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이 쌓고 높이 쌓았다 해도 그것은 결국 하느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봉헌을 더 떳떳하게 하도록 합시다. 봉헌은 진정 축복입니다. 은혜입니다. 하늘에 재물을 더 쌓도록 합시다.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마르10,23).

먹어서 아무리 많이 쌓아도 우리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땅에 쌓은 재물은 결국 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늘에 쌓은 것만이 내 것이 됩니다. 사람들은 그러나 하늘엔 관심이 없고 땅에만 관심이 큽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세상에 '내 것'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 이름으로 부동산이 수만 평 등기되어 있고 내 비밀번호로 수백억이 예치되어 있다 해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잠시 맡겨진 것입니다. 심지어는 내가 얻은 내 마누라도 내 것이 아니요 내가 낳은 자식도 내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잠시 맡겨진 것이요 때가 되면 주님께 다 돌려 드려야 합니다.

► 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451 84%
[광주]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갈 수 있을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부(富)’ 에 대해서 경고하십니다.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은총’ 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이만큼의 부를 얻으면 또 더 큰 부를 얻기 위해 멈추지 않고 사투(死關)를 벌입니다. 가진 것이 없을 때는 내 보금자리만 있어도 원이 없겠다고 하지만, 그것이 충족되면 또 더 큰집, 더 좋은 차와 같은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운 삶을 꿈꿉니다. ‘서면 앉고 싶고,앉으 면 눕고 싶다는 말처럼 이런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정말 인간의 본성인가? 싶을 정도로 씁쓸할 때가 있습니다. 그 돈 때문에 가족도 친구도 믿었던 소중한 사림들도 잃고, 가장 먼저는 하느님도 뒤로 해버립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무상(無價)으로 내어놓으셨는데, 돈에 굶주려 살고, 돈에 얽매여 살고, 돈을 숭배하며 사는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부유함’ 은 자식의 번성과 만수(萬壽)를 누리는 것처럼 하느님의 큰 축복 중 하나입니다. 자신이 가진 ‘부’ 를 통해서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부정적인 의미의 부자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과 누가 봐도 부유한데도 나는 아직도 가난하다며 베푸는 데에 인색하게 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반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실 상급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십니다. 그 상급은 한 마디로 하늘나라에서 누리게 될 진정한 ‘부유함’ 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옥좌에 앉게 될 것이고, 버리고 나눈 것에 대한 백배의 보상도 곁들여 받게 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약 속이니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멘!

유한(有限)한 이 지상에서의 ‘부’ 와 무한(無限)한 하늘나라에서의 ‘부’,이 둘 중에 어떤 ‘부’를 택할 것인지는 이제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를 택하시겠습니까?

▦ 광주대교구 김진모 펠릭스 신부 : 2018년 10월 14일
  | 10.12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725   [청주] 감사의 생활  [1] 2534
724   [대전] 권력보다 사랑을 택한 그리스도  [1] 956
723   [수원] 그리스도의 왕권은 어디로부터?  [2] 2070
722   [수도회]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4] 1915
721   [의정부] 주님! 왕입니다요!  [1] 1984
720   [안동] 그리스도 우리의 왕, 우리의 주님!  [1] 1982
719   [춘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앙  [2] 1987
718   [전주] ‘갑질 신부님, 주교님께 이를 거예요!’  [1] 130
717   [원주] 우리 삶의 왕이신 주님과의 만남  78
716   [서울] 예수님, 그분은 과연 누구이신가?  [2] 2565
715   [마산] 우리도 그리스도의 왕직을 계승해야 한다.  [3] 1944
714   [대구] 구유에서 십자가까지  [1] 1862
713   [군종] 왕입니다요.  72
712   [광주] 이 세상 왕이 아니다  [1] 2015
711   [인천] 고백하자! 누가 왕인가?  [2] 2009
710   (백)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성서 주간)]독서와 복음  [4] 812
709   [수도회] 하루 하루를 꽃밭으로  [4] 2542
708   [대전] 환난 이후 종말의 희망이  [2] 1036
707   [부산] 이 순간 최선을 다하자  [5] 2238
706   [수원] 시간에 대한 영원의 승리  [5] 2666
705   [원주] 역사의 완성인 종말은 분명 있다는 사실  [2] 2612
704   [대구] 빛과 소금의 삶  [2] 2050
703   [청주] 낼까 말까? 얼마 넣을까?  118
702   [광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105
701   [서울] 악한 세상을 이기는 지혜  [8] 2699
700   [인천] “미쳤어. 저렇게 왜 살까?”  [4] 2362
699   [전주] 종말론적 교회  [1] 2497
698   [의정부]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일  [3] 2142
697   [춘천]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4] 2880
696   [안동] 그 날과 그 시간에 대한 표징  135
695   [군종] “끝에서 만나는 은혜로운 시작”  124
694   [마산] 내 삶의 마지막을 기억하며  168
693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 세계가난한이의날  [5] 1890
692   [수도회]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봉헌  [4] 2676
691   [수원] 사랑은 작은 법이 없다  [4] 2653
690   [군종] 컵에 우유가 반밖에? 반씩이나?  [1] 2315
689   [부산] 참된 봉헌  [5] 2458
688   [안동] 나눔은 변화된 삶!  [2] 2526
687   [춘천] 정성어린 이 제물  [4] 2697
686   [의정부] 하느님과 공동체를 위한 카리스마  [4] 2381
1 [2][3][4][5][6][7][8][9][10]..[19]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8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