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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삶에 대한 축하, 사랑의 방식
조회수 | 145
작성일 | 18.11.02
[광주] 삶에 대한 축하, 사랑의 방식

“주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차이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평온의 기도’ 라인흘드 니벼).

어떤 자매가 면담 중에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평소 부정적인 말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데, 그렇게 안 하려고 노력하는데도 안되는 자신이 싫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부모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일하고 희생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런 부모를 위해 그녀는 완벽해져야만 했다. 그리고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비난하고 학대하고 못난이 취급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자신에게 했던 방식으로 대했다. 그것이 그녀만의 사랑 방식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는 내 안의 아픔과 상처, 한계를 보았다. 나는 완벽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 또한 완벽할 수 없음을. 때로는 남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지만 내가 그들을 바꿀 수 없고, 나 자신의 나쁜 성격이나 습관조차 바꾸기 쉽지 않음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직 지금 여기,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 일 것이다. 좀 더 나아지기 위해서.

대화 도중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그토록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런 것처럼 남들도 자신처럼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은 내가 좀 더 행복해지고 그처럼 다른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해지도록 돕는 것임을. 그것은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한다”는 계명의 그녀만의 버전이 되었다. 그녀는 삶을 축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자신과 그들의 열망을 축하했고,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자신과 자신처럼 애를 써온 그들의 삶을 축하했다. 더욱 사랑하려고 애쓰는 자신과, 앞으로의 거창한 기대보다 이제까지 조금 성장한 자신에게 만족했고, 완벽하지 못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자신과 그들을 축하했다. 그리고 부족하기에 하느님의 도우심과 그분의 자리가 필요한 자신과 그들을 축하했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늘 축하하시듯이.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

▦ 광주대교구 한병학 마태오 신부 : 2018년 1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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