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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조회수 | 109
작성일 | 21.11.07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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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복음(12장 38절-44절)에 따르면 주님께서 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사람들 눈에 드러나기를 좋아하고 그들은 위선을 감추며 사람들에게 의로운
사람으로 자처하지요.

주님께서는 그들이 회당에서 높은 자리를, 잔치에서 윗자리를 장터에서 사람들에게
인사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임을 가리키십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향해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코 12,40)

그런데 그들은 그래서는 안 되지만 약자를 무시하고 자기들의 이익을 찾았던 것입니다.

엄연히 고아와 과부를 학대하거나 무시하지 말라고
성경에 명시되어있는데도(탈출기 22,21 / 이사야 예언서 1,23)
그들은 그 율법들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열왕기 저자는 엘리야 예언자에게 긴 가뭄 속에서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빵을 만들어
하느님 사람에게 대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바알을 섬기며 우상숭배에 빠진 아합 왕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합니다.
몇 년동안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이 들겠다는 예언자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처럼
이스라엘 전역에 극심한 가뭄이 듭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사렙타라는 마을에 사는 한 과부에게 보내십니다.
예언자에게 궁핍한 가운데에서도 빵을 구워 대접한 과부에게 가뭄이 끝날 때까지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제각기 헌금함에 돈을 넣은 것을 맞은편에서 바라보시다가
한 과부가 렙톤 두 닢, 마르코는 친절하게도 로마화폐단위인 콰드란스를 넣어서 설명합니다.

우리가 알 듯이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았지만 희랍시대부터 사용하던
가장 낮은 화폐 단위인 렙톤이었던 것입니다.

한 렙톤은 약 400원이 조금 넘는 그래서 두 렙톤,
아니면 한 과드란스는 약 800원의 가치를
둔다고 하겠습니다.

세월이 흘러갔고 화폐의 가치도 변했겠지만
지금으로 보아서도 800-900원이라고 하니
천원도 안 되는 낮은 단위라 하겠습니다.

어렵고 궁핍한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 또 이웃을 돕는 것, 나 자신에게도
평화가 필요한데 이웃에게 친절과 따듯함을 베푼다는 것이 힘들더라고 그것이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 매달리시며 사랑을 실천하신 그리스도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사랑하기에 그분의 도움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그분처럼
겸손하고 너그럽게 살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우리교회의 중심은 바로 평신도에게 있고 그들은 각자의
가정과 일터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활의전문가입니다.
그들의 삶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복음선포를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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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정인준 신부
2021년 1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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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대유행을 겪으면서 자신의 위험을 뒤로한 채
현장에서 헌신하고 있는 의로운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의료진과 자원봉사자. 군인과 경찰, 구급대원 등
수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봉쇄된 지역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의약품과 식품들을 나눠주고
식료품점 주인은 자신의 물건들을 무료로 나누어주었습니다.
농부들은 채소와 쌀을 노상에 놔두고
어려운 사람들이 마음껏 가져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정의로운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도 여실히 볼 수 있었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나눠 줄 것까지도 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웃의 고통과 아픔보다 자신이 챙길 이익만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매일 국수만 먹다 맛있는 야채와 밥을 보고
기뻐하던 부인이 며칠 지나자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먹을 것도 없는 밥을 매일 똑 같이 먹어야한다니
뭘 먹으면 맛있는지 모르겠어요.”
남편이 말하길
“아마 세상에서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은 뇌물일거야”

오늘 복음에서는 지위 성분이 다른 두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높은 직위에 존경받는 사람들이지만
하느님께 충성하는 것 조차 자신의 부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만과 이익에 눈 먼 그들에게 이웃의 아픔을 공감할 눈과 귀가 없습니다.

비록 힘도 돈도 없는 가난한 과부지만
그녀는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눌 넓은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성전에 들어가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저하지 않고 하느님께 봉헌하였습니다.

부유한 율법학자들은 많은 것 중에 몇 닢을 넣었지만,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넣었습니다.

관대한 사랑이란 동정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마음입니다.
내가 많아서가 아니라 나도 부족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내어 주는 사랑을 알 때 가치있는 삶이 됩니다.
돈의 크기보다 마음의 크기가 중요합니다.
계산을 하지 않고 진심으로 나눌 줄 아는 마음이 정말 소중합니다.

돈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위험 부담보다 투자 효과가 큰 것이 가치있는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가치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가장 현명한 투자는 하늘나라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사는 데는 돈의 크기와 상관없이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사람들은 헌금함에 돈을 넣기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이미 얼마를 꺼낼까 결정을 합니다.
이 정도면 될까?
다른 사람이 보면 창피하지 않을까? 등등
그러나 그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내는 돈은 없어지지 않고 하늘나라에 투자한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성공을 위해 시간과 돈과 열정을 투자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보며 행복과 절망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 투자는 성과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헌금함에 돈을 넣을때도 주저합니다.

하늘 나라는 돈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크기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인간에 대한 가치를 그들이 가진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어 주는 것, 나눔의 크기에 의해 판단합니다.
나눔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가난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이 주신 것이기에 다시 이웃과 나누는 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주님, 저희가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늘 나라에서의
부의 가치를 진실로 이해하는
지혜와 믿음의 성장으로 인도하여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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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대교구 키엣 대주교
2021년 11월 7일 조명연 신부 제공
  |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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