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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일어나시오.
조회수 | 107
작성일 | 19.05.03
[전주] 일어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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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에게 내 본명(本名)을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이 이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내가 나운동 본당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주일학교 어린이 하나가 편지를 주었는데, 거기에 “저는요, 신부님 세례명이 ‘일어나시오’인지 알았어요.” 라고 씌어 있었다. 이 꼬마아이에게는 ‘이냐시오’라는 귀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 성인의 이름이 “일어나시오”라는 말로 들렸던 모양이다.

그러나 “일어나시오”라는 이 한마디는 그저 아이가 보내준 편지에 적어놓은 잘못 표기된 이름이 아니라, 나의 모습을 새롭게 보게 하는 그분의 말씀이었다. 이 아이를 통하여 들려주신 당신을 향하여 항상 새롭게 일어나라는 그분의 사랑의 소리였다.

그렇다. 말씀을 향해 일어난다는 것은 짧은 내 삶의 과거를 붙들고 그 안에 안주하는 모습은 아니다. 또한 하루하루 나와의 타협을 통해 현재의 삶에 그저 만족하는 모습도 아니다. 설령 그 모습들이 내 능력의 한계이고, 지금 나의 처지로서는 합당한 입장이라 하여도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일어나라”는 말씀에 귀 기울이고 깊이 고뇌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죽은 자들의 삶에서 말씀을 통해 영원한 삶을 희망하는 자의 삶에로 우뚝 설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아브라함이 떠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도(창세12,1-4), 자캐오가 예수님 말씀을 듣고 나무에서 내려올 때도(루카19,1-10),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나 지난 라자로에게 큰소리로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의 모습에서도(요한11,38-44),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베드로에게서도(요한21,6)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기 위한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과 고뇌의 모습이 보인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제자들을 만난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이 말씀은 오늘 나에게 주어진 말씀이기도하다. 그분을 따르기 위해서 어서 일어나자. 지금까지 입고 있던 나의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생명이 충만한 부활의 옷을, 양들을 돌보라고 하시는 부르심의 옷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입고 일어나야겠다.

“일어나시오” 참 좋은 이름이다. 이 이름은 지금의 나에게도, 앞으로의 나에게도 꼭 맞는 이름인 것 같다. 아니 이름에 맞추어 그렇게 살기를 부활시기를 지내는 이때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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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안철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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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우리 자신의 초심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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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은 365일이며, 달로써는 열두 달입니다. 이를 다시 분기로 나누어 보면 총 4분기로, 한 분기는 3개월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이 3개월이란 시간은 어떠한 새로운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하여 지낼수 있는 기간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갓 태어난 아기와 그 부모님에게나, 군에 입대하여 생활하는 이등병에게나, 또한 서로 교제를 시작한 연인들에게 이 3개월이 지난 100일은 매우특별하고 기념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저 또한 어느덧 사제서품을 받은 지 약 3 개월 가량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주마등처럼 하루하루가 스쳐 지나갑니다. 그러한 가운데 저는 서품식 때 주교님께서 하셨던 질문을 기억하며, 그 때 가졌던 초심이 혹시나 변하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따랐던 초심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등장합니다. 그들의 초심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께 사명을 받았어도(요한20,19-23 참조)쉽게 회복되지 못하였던 것인지, 다시 예전처럼 어부로 돌아가 고기를 잡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한 채 아침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고 말을 건네는 다정하고 부드러운 음성이 물가에서 들려옵니다. 그리고 그 음성은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으로 던질 것을 요구합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따랐고, 그 결과는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끌어 올릴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의 몸이 예전에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예수님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그 때에 자신들이 가졌던 초심을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절망과 좌절로 그들의 마음에 드리웠던 어두움이 밝은 빛에 의해 물러남으로써 그들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주님을 배반한 베드로는 예전과는 달리 두려워하지 않고(루카5,8ㄴ 참조), 오히려 주님을 더 빨리 만나기 위해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듭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루카22,32 참조)” 기도하셨기 때문이고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용서해주시고 용기를 주실 분(루카5,8-10)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그가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한 “숯불” 앞에서, 다시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세 번의 물음을 통하여 당신에 대한 그의 사랑을 일깨워 회복시켜주시고, 그의 초심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총 부활 제6주일 가운데 중간 지점인 부활 제3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우리는 우리의 삶을 점검해 보아야겠습니다. 혹시3주전 맞이했던 부활의 참 기쁨을 마음에 간직한 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다시 부활을 맞이하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초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순시기를 보내고 부활을 맞이했던 마음과 우리가 세례로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여 그리스와 함께 죽고 새 생명으로 살아났다는 것을… 이러한 초심을 우리가 잃어버리지 않고 있을 때, 오늘 제 1독서의 사도들처럼 그 안에서 열심도 나오고, 뒷심도 나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베드로가 예수님의 물음에 답한 것처럼, 시시때때로 세례서약의 질문에 답해보며 우리의 초심을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런 우리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 곁에서 기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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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교구 김종신 베드로 신부 : 2016년 4월 10일
  |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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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있을 때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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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포 사목 한다는 이유로 지난 십 년간 잊고 살았는데 숲정이 강론을 다시 해야 한다는 원고청탁을 받고 가슴이 답답하였습니다. 글을 쓰는 자체도 어려운데 그것을 남 앞에 내어 놓아야 한다니! 이 답답한 심정은 마치 어린양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합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원고를 보내고 나면 속이 후련하겠지 하며 떠오르는 생각이‘맞아! 부활이 별건가? 바로 이런 것이 부활이지.’ 작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힘들지만 마다하지 않고 손에 든 묵주 알 하나하나 굴려간다면 그것이 부활이 아닐까요? 그 참맛을 기대하며 부탁받은 강론 원고를 써 내려가렵니다.

요즈음 사순절의 축복인지 뒤돌아서면 장례미사입니다. 그런데 매번 만나는 대부분의 상주들은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잘할걸!” 하고 말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래! 부모님 살아계신 지금 잘해야지.’ 하고 다짐을 합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유행가에도 있지 않습니까?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흔들리지 말고. 가까이 있을 때 붙잡지 그랬어. 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해. 이번이 마지막, 마지막 기회야. 이제는 마음에 그 문을 열어줘…’

예수님께서 아침저녁으로 산책도 하고 명상에 잠기곤 하였던 갈릴레아는, 일찍이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불러 희망을 주었던 참으로 아름다운 호수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들을 불러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주었던 곳에서, 이제는 스승을 잃고 자신들의 심정과도 같은 ‘어두운 밤’에 속절없이 그물을 던져 보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합니다. 제자들의 삶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입니다.

부활을 상징하는 이른 아침, 절망 속에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시어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그물을 던지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런 일련의 사건에서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주님이 계실 때와 계시지 않을 때, 주님의 말씀을 따를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다시 지난 상가에서 상주(喪主)가 한 이야기를 상기해봅니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잘할 걸…”부활을 믿고 산다는 것은 베드로처럼 주님을 알게 된 순간 얼른 참회하고 주님 곁으로 뛰어들어 평생 함께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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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이완재 타대오 신부 : 2019년 5월 5일
  |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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