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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항구함, 충실성, 지속적인 신뢰
조회수 | 66
작성일 | 19.07.12
루카 10,25-37 /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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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함, 충실성, 지속적인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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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J. 크로닌이 지은 감명 깊은 소설 ‘천국의 열쇠’에 등장하는 프랜치스 치셤의 신부의 성소 여정은 굴곡 많고 험난하며 의외성으로 가득 찬 사제성소의 한 단면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프랜치스 치셤은 사제로 서품되기 전까지 여러 번에 걸쳐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뜻하지 않게 다가온 부모님과의 사별과 그로 인한 뼈저린 고독 앞에서 방황하고 몸부림칩니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자 친구 노라의 죽음, 신학교에서 저질렀던 치명적인 실수, 발령받는 본당 마다 직면하게 되는 주임사제와의 마찰...

그럴 때 마다 그의 곁에는 한 따뜻한 은사님이 계셨습니다. 신학교 시절 학장이었던 러스티 맥 신부님. 다른 사람들은 다들 드러내놓고 ‘이 인간은 안 된다’고 펄펄 뛰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한 평생에 걸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줍니다. 학장신부는 프랜치스 치셤 안에 잠재되어 있는 하느님을 향한 순도 높은 신앙, 순수한 열정, 불의에 맞서 단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강인함을 눈여겨봅니다.

프랜치스 치셤 입장에서 볼 때, 비록 밖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전달되는 학장신부님의 근심어린 배려와 기도, 걱정 섞인 연민의 눈길이 자신의 사제성소를 활짝 꽃피어나게 만들었다는 것을 나중에 확인합니다. 항구함, 충실성, 지속적인 신뢰를 토대로 한 둘 사이의 인간관계, 참으로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가 추구해야할 관계의 전형이자 모범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때 어떤 마음으로 바라봅니까? 혹시라도 상대방을 내가 딛고 올라서야할 경쟁자로 바라보지는 않습니까? 상대방은 내가 물리쳐야 할 적대자가 아닙니까? 상대방은 내 성취의 도구는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런 시각은 빨리 수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보내셔서 관계 안에 살게 하시는데, 우리는 그들을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선물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서로 격려해주고, 서로 지지해주고, 서로 보완해주는 동반자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저 역시 돌아보니 수도원 입회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대형 사고를 저질렀습니다. 수도원이나 신학교는 속성상 군대와 비슷합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늘 있어야 하고, 돌아올 시간에 정확하게 돌아와야 합니다.

요즘 양성담당자로 살다보니 제가 저질렀던 ‘장기간 무단이탈’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담당자들에게 있어 얼마나 속상하는 일이었는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철없던 시절, 프랜치스 치셤에게 있어 러스키 맥 신부님과도 같던 신부님이 제게도 계셨습니다. 돌아보니 제 힘으로 걸어온 길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지속적인 배려와 항구한 인내 속에 한 사람의 성소가 싹트고 열매 맺는다는 것을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사랑의 실천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며 우리에게 보여주시는데, 그 본보기는 바로 ‘착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그가 지니고 있었던 사랑의 특징은 ‘항구성’입니다. 꾸준히, 지속적으로, 끝까지 그 누군가를 향한 사랑을 실천합니다. 무엇보다도 뒷마무리가 확실합니다. 애프터서비스까지 책임집니다.

적당히 해보다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건 내 영역이 아니다, 이건 내 힘에 부친다며 어느 순간 물러서지 않습니다. 짜증내지도 않습니다. 생색내지도 않습니다. 누가 알아봐주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한 인간이 지금 내 눈앞에서 괴로워하고 있기에, 고통 받고 있기에, 죽어가고 있기에, 연민의 마음으로 다가갑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합니다. 이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참된 사랑의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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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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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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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은인은 놀랍게도 우리가 배척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또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모습으로 이웃을 만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의 이웃이 먼저 이기심과 무관심으로 병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먼저 이기심과 무관심으로 병든 것입니다.

먹고 살려고 발버둥거리는 사이 이웃은 점점 우리 사회에서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의 이웃은 때론 가깝고 때론 멀리 있습니다.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는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이웃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상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외면한 이웃의 상처를 통해 이웃과 소통하는 법을 가르쳐주십니다.
착한 이웃은 쓰러진 사람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사람입니다.

우리를 향한 지극한 하느님 사랑은 착한 이웃을 통해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쓰러지고 절망한 이웃의 마음에 붕대를 싸매어 줄 이웃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아직 살만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착한 이웃으로 우리 곁에 사시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상처를 싸매주는 따뜻한 이웃이 되는 길이 하느님을 진정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깊은 사랑은 우리에게 이웃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진실된 사랑을 실천하는 착한 이웃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멀어진 마음을 가깝게 하는 것은 이웃의 허물과 상처를 감싸주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단 한가지 그것은 이웃의 아픔을 감싸주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이러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사랑을 실천합시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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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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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기도

하느님, 아빠, 아버지, 성령의 이끄심으로 우리 삶이 당신 자비를 넘쳐흐르게 하는 당신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 독서

오늘 복음은 율법 교사와 예수님의 대화를 다룹니다. 율법 교사는 예수님께두 가지를 질문합니다. 첫째, 율법 교사의 ‘영원한 생명’(25 – 28절)에 대한 질문은 단지 죽지 않고 영원히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수명 연장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과 깊은 친교를 체험하며 살 수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율법 교사의 질문은 율법을 지키고, 하느님에 대한 모든 지식을 섭렵했다고 자신하면서도 정작 하느님을 마음 깊은 곳에서 체험하지 못하는 사람이 지닌 내적 불안을 보여줍니다.

둘째, 율법 교사는 누가 ‘나의 이웃’ 인지 묻습니다.(29 – 37절)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 ‘이웃이 되어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을 보살펴 주는 사마리아 사람의 예를 들어 보여주십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길에 버려진 사람을 보고 ‘가엾은 마음’ 을 느낍니다. 그리스어 splagcni,zomai라는 동사는 신약성경에서 나병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깊이 연민을 느끼는 예수님의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하는데 (루카 7, 13; 15, 20), 이제 예수님의 깊은 연민이 길가에서 죽어가던 사람을 ‘끝까지’ 돌보아 주는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던 이 사마리아인은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 중에 있는 예수님 자신을 상징하는 인물일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이 느끼는 ‘가엾은 마음’ 은 다른 사람을 향해 전적으로 열린 마음과 자신의 시간과 능력, 나아가 삶 전체를 내주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그의 행동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보고도 반대쪽으로 가버리는 사제나 레위인과는 극적으로 대조됩니다. ‘가엾은 마음’ 에서 비롯된 사마리아인의 행위는 단 한 번 관심을 보여주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 사람이 완전히 혼자서 자기 길을 갈 때까지 계속되는 도움의 행위로 이어집니다. (34 – 35절)이것은 율법 교사의 입에서 스스로 표현한 ‘자비’ 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37절) ‘자비’ 는 지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영원한 생명’ 을 상속받고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자질입니다.

당시 유다 문화에서 사마리아인이 율법 스승의 모범으로 소개되는 것은 역설적입니다. 자신의 이웃이 누구인지 모르는 율법 교사와 달리, 사마리아 사람은 즉시 그를 알아보고, 그에게 자비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는 예수님의 초대는 이 이름 없는 사마리아 사람이 단지 유다인만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을 계속 중인 예수님을 따라가는 모든 제자의 모범으로 소개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너도 사마리아 사람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이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새로운 계명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를 떠올리게 합니다. (요한 13, 34)

이웃에게 자비를 실천하는 일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비로운 행위 안에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넘치는 자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하느님이 자비로운 분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자비를 실천하면서 지상에서 이미 영원한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죄와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이웃에게 ‘자비’ 를 베푸는 삶은 이미 그가 질적으로 다른 삶, ‘그리스도 안의 삶’, 지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았다는 표지입니다.

▪ 성찰

누군가한테서 자비로운 행위를 받는 것은 늘 은총의 체험이기에, 자비로움의 원천이신 하느님,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길에 쓰러졌을 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시간과 능력과 사랑, 모든 것을 내준 사람들 때문에 다시 일어나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 안에서 제 가난한 인생에 넘치는 하느님, 당신 자비와 아름다움,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제가 받은 당신 자비 체험이 다른 사람들한테 끊임없이 흘러들어 지상에서 이미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삶을 맛보게 해주십시오.

▪ 기도

주님의 가르침은 완전하여 생기를 돋게 하고 주님의 법은 참되어 어수룩한 이를 슬기롭게 하네. (시편 1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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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오로의 딸 임숙희 수녀
  |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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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란 용어도 진부하게 들릴 정도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합니다.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일은 바로 이웃에서 일어난 것처럼 신속하게 아는 반면, 아파트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이 죽은 지 며칠이 지나도 아무도 모르는 이때 ‘누가 내 이웃인가?’에 대한 물음이 새삼스레 들려옵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계시는데, 오늘은 한 율법교사가 찾아옵니다. 그의 숨은 의도는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 예수께서는 또 시험대에 오르십니다. 주객이 전도됩니다. “주님, 저를 시험하시고 살펴보시며 제 속과 마음을 달구어 보소서.”(시편 26,2)라고 해야 할 사람은 우리인데도.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늘도 승-승의 길을 이끌어 내십니다. 율법교사의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가?’ 그리고 ‘누가 나의 이웃인가?’ 예수께서는 ‘이러이러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또는 ‘네 이웃은 이런 사람들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훌륭한 선생님은 학생들 안에 내재해 있는 생각을 끄집어내고 스스로 답을 도출하게 합니다. 우문을 현답으로 이끌어 냅니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하느냐?” 하시며 그의 생각과 의견을 물으십니다. 그때그때마다 율법교사는 자신의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대답으로 판정을 받습니다. 두 사람 모두 승자가 됩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 하느님 사랑에 대한 이 말씀은 그들이 마음에 새기고 자자손손 들려주어야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이고,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율법교사답게 막연한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는 말씀도 놓치지 않았기에 예수께 “옳게 대답하였다.”고 인정받았습니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살 것이다.” 영원한 생명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그렇게 하며 사는 길’입니다.

이쯤하면 알아듣고 이야기가 끝날 것 같은데 그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10,29) 내심으로 ‘율법 규정이 무엇인지 잘 알고 그대로 지키는 사람, 경제적인 능력이 있기에 자선도 많이 하는 사람, 단식과 기도를 많이 하는 거룩한 사람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그들이 내 이웃이지요? 당신이 어울리는 창녀나 세리 같은 죄인들은 율법도 모르고, 자선도 하지 않고 기도도 제대로 하지 않는, 하느님도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 족속이 아닌가요? 그러니 내가 맞고, 예수 당신이 틀렸소.’라며 정당성을 유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드십니다. 거룩한 성직자 부류는 부정을 타면 하느님 대전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강도를 만나 초주검을 당한 사람을 보고는 멀찍이 길 반대쪽으로 지나갔습니다. 세 번째로 지나간 사람을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여운 마음을 품은 사마리아 사람은 우선 응급처치를 한 뒤 나그네를 자기 노새에 태우고 여관에 데려다 주고 돌보아 달라고 합니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드리겠다고. 마음에서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루카 6,38) 베풀었습니다(‘베푼다’는 용어도 그에게는 맞지 않지만). 이런 사람들이 바로 ‘언제 자기가 병든 주님을 돌보아 드렸는지 모르는 사람’으로서 세상 창조 때부터 준비한 나라를 차지하는 사람입니다(마태 25,34).

이야기를 마친 예수께서는 “자, 이제 너의 이웃이 누구이냐?”가 아니라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하느냐?”(10,36)라고 물으십니다. 이웃을 결정하는 기준이 나(율법교사)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중심입니다. 그 이웃은 내가 정한 범주에 속하는 고정된 이웃이 아니라 장소와 시간과 대상도 수시로 바뀔 수 있는 이웃입니다. 율법교사는 언급하기 어색한지 ‘사마리아인’이라 하지 않고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10,37ㄱ)라고 대답합니다. 사실 그 대답이 훨씬 현명하긴 합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꼭 사마리아인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에 말입니다.

성경 공부만 하는 학자보다 말씀을 사는 사람이 더 신앙인답듯이 율법을 공부하는 학자보다 율법도 잘 모르는 사마리아인이 참으로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10)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10,37ㄴ) 과연 그가 가서 그렇게 하였을지 궁금합니다. 그가 의지해 왔던 관념을 뒤집어엎고, 그가 누렸던 안전지대를 포기할 수 있었을까요? 사회적·종교적 관습이 쌓아놓은 장벽을 허문다는 것은 물결을 거슬러 가는 것이요, 도전과 시련과 박해의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타인들의 요구에 자신을 내어 놓는 것이며 좋은 뜻만으로도 부족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고 선의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비난과 시기 질투로 인해 상처를 받을 각오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서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준다.”(루카 6,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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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세라피아 수녀 (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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