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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서울] 제일 중요-아버지에 대한 충실성
조회수 | 58
작성일 | 17.09.01
[인천] 제일 중요-아버지에 대한 충실성

어제 드디어 새롭게 만든 사제관에 입주를 했습니다. 비록 조립식 건물이기는 하지만, 저를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기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한없이 자랑하고 싶은 공간입니다.

그런데 입주하는 것은 좋은데 한 가지 괴로운 것이 있더군요. 그것은 바로 이사하는 것입니다. 남들은 하도 자주 이사를 해서 이제 이사하는 것은 도가 텄겠다고 말을 하지만, 여전히 이사하는 것은 저에게 커다란 일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짐이 워낙 많거든요. 아마 책을 담은 짐만 해도 20박스 이상 나올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이사를 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걱정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 걱정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어제 하루 만에 이사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요? 이삿짐센터를 이용한다고요? 물론 아닙니다. 그러면 아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서 이사한다고요? 그것도 역시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사할 수 있을까요? 맞아요. 짐을 없애면 되는 것입니다. 책은 모두 신학교 도서관에 보내기로 결심했고요, 옷이나 각종 짐들도 신학생들에게 건네주기로 했지요.

따라서 아주 필요한 짐인 컴퓨터와 몇 권의 책, 그리고 옷가지 몇 벌만 옮기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이사 방법이 있었는데, 왜 이제까지 힘들게 이사를 했는지……. 그것은 바로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책 중에서 한 번 읽은 뒤에 다시 손이 가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다시 볼꺼야 라는 생각 때문에, 계속해서 무겁게 끌고 다니는 경우가 참으로 많았지요. 옷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제가 패션모델이 아닌 이상, 옷을 자주 갈아입는 일이 없습니다. 즉, 입는 옷이 항상 똑같지요. 그러기 때문에 1년 중에서 한 번도 입지 않고 옷장 안에 갇혀 있는 것도 꽤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밖의 제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 중에서도 이런 형태를 띠면서 구석에 쳐 박혀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바로 이렇게 자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많은 짐들. 바로 주인인 저의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포기했을 때, 그 많은 것들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데, 차마 포기하지 못하고 아등바등 힘들게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충실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나,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나 능력의 차별을 두지 않고, 대신 얼마나 충실하게 당신의 뜻을 위해 노력했는가를 보십니다(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그 한 달란트마저 빼앗긴 이유는 자기가 받은 그 한 달란트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마음, 즉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었다는 것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 역시 주님께서 주신 것이고, 주님께서는 그것을 뛰어 넘어서 주님의 뜻을 이 세상에 완성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얼마나 그 노력을 했었는지요?

주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그 뜻을 철저히 따르는데 최선을 다하시는 오늘이 되셨으면 합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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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루이 왕 시대에 가난한 곡예사가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저녁, 헐어빠진 깔개에 공과 칼을 말아서 겨드랑이에 끼고 저녁도 굶은 채 잘 만한 헛간을 찾아 걸어가던 그는 같은 길을 걷는 수도자를 보고 공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수도자는 바르나베와 이야기를 하는 도중 그의 순박한 마음에 감동되어 '마음이 깨끗한 사람'임을 알고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바르나베 친구, 나와 함께 갑시다. 내가 원장으로 있는 수도원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겠소."

이리하여 바르나베는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들어간 수도원에는 각자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과 지식을 다해 성모님께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박식한 모리스 수사는 글을 독피지에 옮겨 쓰고 일렉산드로 수사는 거기에 아름다운 세밀화를 그려 넣으며 마르보드 수사는 쉬지 않고 석상을 깎고 있어서 수염과 눈썹, 머리칼이 온통 먼지로 하얗게 뒤덮여 있습니다. 수도원 안에는 또한 시인들도 있어서 성모님을 찬미하는 송가나 산문을 짓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투어 성모님을 찬송하고,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쌓이는 것을 보고 바르나베는 자신이 단순하고 무지한 것을 탄식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바르나베는 기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성당으로 달려가더니 한 시간 이상 머물러 있었습니다. 저녁식사 후에도 또 성당에 갔습니다. 이때부터 매일 성당이 비어 있는 시간이면 바르나베는 성당에서 지냈습니다. 그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수도원장이 고참수사를 데리고 문틈으로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바르나베 수사는 성모님 제단 앞에 거꾸로 서서 허공에 쳐든 발을 여섯 개의 구리공과 열두 개의 칼을 가지고 재주를 부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수사가 분개하여 그를 끌어내려 할 때였습니다. 성모님께서 제단에서 내려와 푸른 옷자락으로 곡예사의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곡예사의 봉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복음 말씀의 가르침이지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자기 분수에 맞는 달란트를 받았으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가르침을 달란트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이 먼 길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겼습니다.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돈 다섯 달란트를 주고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마태25,15)떠났지요.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고,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지만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가서 그 돈을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얼마 뒤에 돌아온 주인은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여 더 많은 달란트를 벌어들인 두 하인을 보고 기뻐하며 말합니다.

“잘하였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25,21)

그러나 “주인께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무서운 분이신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저는 주인님의 돈을 가지고 가서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그 돈이 그대로 있습니다.”(마태25,25)한 종에게는 호통을 치며 화를 내지요.

“너야말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여봐라, 저자에게서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쫓아라. 거기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마태25,26-30)

그렇습니다. 우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걸맞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누구에게는 왜 다섯 달란트를 주고 두 달란트를 주며, 또 한 달란트를 주었는냐고 비교할 필요가 없지요. 받은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성실한 결과를 내놓는다면 하느님께서는 더 큰 상급으로 우리를 격려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달란트는 지능, 용모, 건강, 감성 등 참으로 다양합니다. 때로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다는 것을 잊고 왜 남보다 지능이 떨어지며, 용모가 뒤쳐지는지, 또 재물이 넉넉지 않는지 남과 비교하며 불평을 하지요. 그러나 비교하기보다는 남과 다른 재능을 받은 만큼 부지런히 잘 활용하여 개발해 나가라는 것이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에디슨은 이런 말을 했지요. 역시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후의 심판 때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얼마나 많이 쌓고 벌었느냐가 아니라 가진 재능을 얼마나 성실하게 잘 활용했는가하는 것입니다. 성실히 노력한 사람은 더 많은 은총을 받겠지만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또 묵상할 것은 우리는 마치 내가 만든 재능에 내가 잘나서 내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단지 그 관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도대체 누가 여러분을 남보다 낫다고 보아줍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다 받은 것인데 왜 받은 것이 아니고 자기의 것인 양 자랑합니까?”(1고린4,7)라고 말씀하시며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의 주인이기보다 하느님의 관리인입니다. 관리인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주인인 하느님께 대한 충성이지요.

“관리인에게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것은 주인에 대한 충성입니다.”(1고린4,2)

하느님께서 주신 재물이나 건강, 자녀 등에 집착하여 하느님을 멀리하는 어리석은 종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각자 받은 재능에 최선을 다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우리는 그의 관리인에 지나지 않다는 말씀을 가슴에 담고 산다면 집착에서 오는 고통에서 자유롭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서울대교구 이기양 요셉 신부
  |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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