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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예루살렘의 멸망 예고
조회수 | 114
작성일 | 21.11.22
[수원] 예루살렘의 멸망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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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보면,
어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감탄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그 성전이
돌 위에 돌이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로마가 성전을 무너뜨리고 예루살렘을 불태울 것이며
이스라엘은 주님을 살해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뒤 이 모든 일을 겪어야 했다.

성전이 언제 무너질 것이며 당신께서 오시기 전에 어떤 표징들이 나타날 것이냐는 질문에,
주님께서는 그 표징들에 대해 일러 주시며 그때가 언제인지는 알려주시지 않았다.
그때가 되면 많은 사람이 오류에 빠져 참된 믿음을 버리고 떠나갈 것이다.
그러면 마침내 주님의 날이 올 것이다.
주님께서 첫 번째 오심은 속죄를 위해서였고
두 번째 오심은 더 많은 이가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주님께서는 세상 종말에 일어날 일을 알려주시며 그들에게 경계하라고 하신다.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루카 21장 8절)고 하신다.

두 번째로 오실 때에는 비밀리에 오시지 않고 무시무시하고 화려하게 오실 것이다.
세상을 정의로 심판하기 위하여,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내려오실 것이다.

하느님은 참으로 진실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을 미리 말씀해 주셨다.
또 모든 말씀을 읽고 들었다. 우리는 언제 종말이 오는지 우리 모두 들었다.
그때에는 전쟁과 지진과 환난과 기근이 일어날 것이다(마르코 13,7-8).
그러므로 우리는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다.
이런 일에 관한 말씀을 읽을 때에는
그 말을 믿다가 막상 그 일이 일어나면 불평을 늘어놓곤 한다.

마지막 날에 민족과 민족이 맞서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날 것이다.
너희가 전쟁과 지진과 기근을 보게 되거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라고 하신다.
주님께서는 종말이 가까웠을 때, 일어날 표징들을 알려주신다.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라고 하신다.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다.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마태오 24,19)

‘예루살렘’하면
하느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셨고 당신 백성들과 만나신 얼마나 유서 깊은 곳인가?
그런데 그토록 파멸을 당했다는 사실은
당신의 어느 한 마디도 헛되지 않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며,
또한 예루살렘처럼 회개하지 아니하고
자기중심적으로 하느님을 따른다고 할 때에
이러한 파멸을 우리 자신도 당하게 될 것임을 경고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벌주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느님의 뜻을 역행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그 길을 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언제나 주님의 뜻에 귀 기울이고
그분 안에 기쁨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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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2017년 11월 28일
498 81.6%
인간만이 지닌 죽음을 기억할 수 있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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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심판의 ‘때’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제자들은 마지막 때의 표징을 묻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나타났다고 해도 신경 쓰지 말고 전쟁이 일어나도, 또 전염병이 돌아도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십니다. 때가 되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하늘의 표징이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 안에는 왜 죽음의 때를 알려고 하느냐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물론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마지막 때가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미래의 그때가 아닙니다.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이나 죽음이 미래의 무엇이 아닌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해 주는 은총으로 여기길 바라십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죽음은 정말 잘만 사용하면 진정 동물과 구별될 수 있는 인간만이 가진 은총입니다.

세상 모든 동물 중에 죽음 때문에 지금의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살다가 죽을 때가 되었다고 느끼면 순응하고 죽습니다. 죽음을 미리 생각하며 지금의 삶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죽을 때가 되었을 때 죽기 싫어서 발버둥 치는 동물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죽음이라는 것 앞에서 수많은 삶의 태도들을 취합니다. 인간은 죽음의 결과가 다 똑같지 않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 앞에서 여러 형태의 삶의 모습을 보입니다. 저는 인간의 삶의 선택이 근본적으로 각자의 죽음에 대한 반응이라 생각됩니다. 죽음은 분명 지금 삶의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영화 ‘올드’(2021)는 시간이 엄청나게 빨리 흐르는 한 해변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혼을 결심한 프리스카는 남편 가이와 어린 자녀 둘과 함께 3일간 외딴섬 휴양지로 마지막 휴가를 떠납니다. 프리스카의 가족 말고도 많은 이들이 휴양지로 모여듭니다. 여기서는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데 30분이 마치 1년처럼 시간이 빠르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휴양지 리조트를 운영하는 제약회사의 초청으로 이곳에 온 이들입니다. 그런데 이들 가족 중 일부는 간질이나 암, 정신병 등을 앓고 있었습니다. 제약회사에서 희귀한 광물로 둘러싸인 시간이 빨리 흐르는 이곳에 그들을 넣어놓고 자신들의 신약을 임상시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약의 임상시험이 시간도 꽤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직감하고는 여러 형태의 모습을 보입니다. 탈출하고 싶어 절벽을 통과하려고도 하고 기어오르려고 하고 바다로 헤엄쳐서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시도는 실패합니다. 그냥 있으면 며칠은 살 수 있는데 그런 시도를 하다 더 빨리 죽습니다.

또 어떤 이는 이 모든 것이 함께 있는 사람들의 탓이라고 여기고 정신발작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두르며 사람을 죽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지키려는 프리스카와 가이에 의해 그도 죽습니다.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어 어른들만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는 아이를 뱁니다. 아이가 아기를 배고 뭔가 자신들도 큰일을 이뤄낸 것처럼 당당해 합니다. 하지만 아기는 시간의 빠름을 견디지 못하고 먼지가 되어버립니다.

프리스카와 남편 가이와 두 성장한 아이들만 남은 상황에서 부부는 해변을 바라보며 이런 대화를 나누며 지난날을 화해하고 죽어갑니다. 프리스카가 노래합니다.

“사랑의 큐피드가 쏜….”

남편 가이가 말합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싸웠지? 다 잊어버렸네. 이유가 뭐였든 나는 당신에게 화 풀렸어. 우리 왜 이 해변을 떠나려고 했지? 이렇게 아름다운데.”

이들 부부는 자신들에게 남은 짧은 시간을 자녀들을 위해, 또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데 썼습니다. 남은 자녀들은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죽은 것을 알고는 그곳을 탈출하여 제약회사를 신고합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란 말이 있습니다.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이 능력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습니다.
미래에 있을 죽음을 ‘지금, 이 순간’으로 당겨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생존을 위한 삶이 아니라
어차피 끝나는 삶, 더 가치 있는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죽음을 현재에 두지 않고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삽니다.
그러나 어차피 지금 죽을 수도 있다고 여기면
조금 더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런데 왜 자꾸 죽음을 미래로 여기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보물들이 있습니다. 난파된 오래된 배에서 떠내려온 청나라 자기들인데 그것들의 가치는 하나당 수억 원에 이릅니다. 그런데 처음 발견한 어부들은 그 가치를 모르고 개밥그릇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육체는 그릇과 같습니다.
그 안에 영혼이 있고 또 그 안에 마음도 있습니다.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사랑을 담으면 하느님처럼 고귀한 사람이 되고
마음에 미움을 담으면 생존만 생각하는 동물과 다름이 없습니다.

손에 물 한 번 묻혀보지 못한 상류층 유대인 부인이 나치 수용소에서 자신보다 더 힘든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빅터 프랭클이 물었습니다.

“고생 한 번 못해본 사람이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납니까?”

“저는 평생 남의 도움만 받고 살아서 진짜 인생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하마터면 인간이 어떻게 싸우고 밥 먹고 살아가는지 모를 뻔했습니다. 이것을 알게 해 준 신에게 감사합니다.”

고통이 올 때 사람들은 수용소에서 여러 자세를 보입니다. 탈출하려고 하고 절망하고 미치기도 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귀한 자세를 보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자신이 먹을 것도 없는데 더 배고픈 이에게 주며 자신에게도 이런 면이 있음에 스스로 놀라기도 합니다. 어차피 죽는데 나의 가치를 생존만이 아닌 더 고귀하게 만들어 보자는 결단입니다.

이런 삶의 변화는 인간만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도구가 ‘죽음을 기억함’입니다. 이 죽음을 미래에만 두고 살아간다면 하느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을 썩히게 됩니다. 그러면 마지막 때 발버둥 칠 것이 분명합니다.

미래의 죽음을 현재로 끌어와 자신의 가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면, 하느님께서 죽음이란 것으로 인간이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죽음을 기억할 수 있는 은총을 그냥 흘려버리지 맙시다.
날마다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살면
저절로 자신의 존엄성을 높여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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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2021년 11월 23일
  |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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