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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수원] 빛과 지하실
조회수 | 140
작성일 | 23.03.18
[의정부] 빛과 지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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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영혼에는 마치 빛이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지하실과 같은 어둡고 그늘진 곳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온갖 종류의 죄와 욕망들이 은밀하게 감춰져 있지요. 그러나 그곳은 어둡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고, 우리 스스로도 애써 그것을 보려하지 않습니다.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무시하고 살아가는 것이 마음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하실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캄캄해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영혼 안에 흘러들어오기 시작하면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더러움과 죄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은총의 빛이 더 강하게 비추면 비출수록 우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더 깊이 자각할 수 있게 되지요. 그러고는 마치 오늘 복음의 저 세리처럼 “오, 하느님! 죄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가슴에서부터 진정한 탄원이 분출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자신의 죄를 자각할 수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은총이 임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빛이 있으니 죄가 보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은 정말로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은총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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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강동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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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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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들 중에 열심한 사람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드렸다. 그래서 오전 9시, 정오, 그리고 오후 3시에 기도를 하였는데, 그것도 성전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이 가장 효과가 크다고 하여 시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성전 뜰로 갔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렇게 기도하러 성전으로 간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 사람들은 하나는 바리사이파 사람이었고 하나는 세리였다.

바리사이파 사람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로서 예수님 당시 그 수효가 육 천명 가량 되었다고 한다.

이 바리사이파 사람은 그러나 하느님께 기도하러 간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가 하느님을 향하여 감사기도를 바친다고는 하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향하여 기도한 것이다. 즉 독백만 늘어놓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찬사를 하느님 앞에 올리러 간 사람이었다.

평소에도 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단식하는 표를 내고, 또한 율법에 명한 모든 것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사람들 앞에 자신이 경건하다는 것을 드러내기를 좋아하였다. 이들을 예수께서 책망하신다.

또 한 사람은 세리였다.
세리는 관세를 거두어들이는 사람인데,
세리는 의례 부정축재를 한다는 사회적 통념 때문에,
그리고 외국인들과 자주 접촉을 하기 때문에
직업상 죄인의 취급을 받았다.

이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느님을 향해 감히 얼굴도 들지 못하고, 다만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고 있다.

자신은 오로지 주님의 자비가 필요한 죄인임을 고백하고 있다.

하느님은 바리사이파 사람을 제쳐두고 세리를 의인으로 간주하셨다. 즉 예수께서는 이러한 기도가 하느님께 받아들여지고 은혜를 받게 된다고 하시며,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일러주신다.

오늘 복음을 보면 교만한 사람은 기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겸손해야 들어갈 수 있음을 알려준다. 또,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사람은 기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이웃과 비교하여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또 비교하며 따라야 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복음에 나타나는 바리사이파 사람은 참으로 열심한 사람이다. 그는 금식도 했고, 십일조도 잘 바쳤다. 그는 분명히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남들만큼 선한가?가 아니라,
내가 하느님 앞에 선한가? 이다.

즉 우리들의 선행이나 신앙생활이나 그 기준, 척도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마 우리가 우리의 삶을 예수님의 생과 비교할 때는 우리도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라고 할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이나 선행의 기준이 이웃이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기준은 바로 완전하신 하느님이시다.

이 사순절의 기간이 이러한 우리의 변화가 나타나는 그래서 진정으로 주님의 빠스카 신비에 참여할 수 있는 때가 되도록 한다면 이 사순절은 우리에게 큰 은총의 기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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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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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르면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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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바리사이와 세리가 성전에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바리사이는
자신을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세리와 비교하는 것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과 만남은 그냥 자신이 이미 내린 결론을 확증 받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세리는
자신의 의로움은 하느님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믿는 바대로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남과 비교해 이미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심판관이시고 그 사람을 의롭게 만드는 구원자이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의롭게 된 사람은 하느님이 필요 없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기도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그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는
왜 사람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비교우위에 놓으려고 했을까요?
‘열등감’ 때문입니다.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남을 심판하는 버릇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남과 비교해 올라가고 싶다는 말은 자신이 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열등감은 ‘자존감’이 부족한 데서 옵니다.
스스로 자존감을 키우려고 하면 남과 비교하게 됩니다.
이것이 자존심입니다.
남과 비교하려다 보면 옳고 그름을 많이 따지게 됩니다.
자신이 옳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바리사이-율법학자가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당대는 그르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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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더’(2017)는 부모의 사랑이 자녀의 자존감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그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단절을 경험하는지 잘 보여 줍니다.

‘어기’는 특별한 외모로 안면에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 27번의 성형수술을 받아 겨우 눈, 코, 입을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이 됩니다.

부모는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학교에 보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평생 그렇게 살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과감하게 학교에 입학시킵니다.

물론 어기를 좋아해 주는 ‘잭’이란 친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도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자기가 어기처럼 태어났으면 자살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친구도 교장 선생님의 부탁으로 힘겹게 어기와 친해지려 했던 것입니다.

어기는 그 말에 상처받지만, 그가 이전의 친구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고 서로 화해합니다. 잭도 자신이 속해 있던 친구들과 싸우며 어기 편을 들어줍니다. 그리고 그를 싫어하는 친구들도 점점 그의 편이 되어갑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지쳐도 부모만은 어기편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누나인 ‘비아’도 항상 어기편입니다. 그래서 어기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나 비아가 오히려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절친 ‘미란다’로부터 갑자기 따돌림을 당하며 힘들어합니다. 그러면서도 부모의 관심을 위해 힘들어하는 어기를 챙겨야 합니다. 하지만 비아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할머니는 힘들어하는 비아를 안아줍니다.

비아의 절친인 미란다는 어기에게 헬멧을 선물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미란다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 줍니다. 미란다는 좋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비아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항상 부러워했고 질투까지 했습니다. 이 열등감이 어기에게 헬멧을 선물하게 했습니다. 자신과 같은 처지인 어기는 사람들 앞에서 헬멧을 쓰고 다녀야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헬멧을 쓰고 다니던 사람은 미란다 자신이었습니다. 그 열등감이 남에게도 헬멧을 씌워 움츠러들게 만들고 비아도 따돌리며 열등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하지만 미란다도 연극부에서 인정을 받고 또한 비아 부모의 사랑도 받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해주는 부모의 딸인 비아의 마음을 슬프게 한 것이 아파서 연극에서 자신의 주인공 역할을 일부러 비아에게 돌려줍니다. 그렇게 모두가 행복하게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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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기에게는 잭이 있고, 비아에게는 미란다가 있습니다. 잭과 미란다는 어기와 비아의 친구이지만 열등감이 있는 친구들입니다. 잭은 그 열등감을 이전의 친구 집단에서 극복하려 했고, 미란다는 연극에서 능력으로 비아를 이기려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바리사이가 세리에게 헬멧을 씌우려 하는 오늘 복음의 모습과 같습니다.

하지만 세리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도 하느님 자녀의 자격을 갖췄음을 믿었고 그 자격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남을 끌어내려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은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 기인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하느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자주 말하십시오.

특별히 “아빠!”라고 해 보십시오. 아빠라는 말은 친자녀라는 뜻입니다. 아버지는 세상에서 연세 많으신 분들에게 붙일 수 있는 말이지만, 아빠라는 말은 친아버지에게만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친아버지와 함께라면 그 자존감 때문에 굳이 자신을 남들과 비교해 자신을 들어 높이려 하지 않습니다.

운동회 날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친구를 위해 함께 손을 잡고 걸어서 결승선까지 들어온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자신들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장애가 있는 친구를 이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굳이 친구를 이기면서 극복해야 할 열등감이 없었던 것입니다.

영화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하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너희들이 옳음과 친절함,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함을 선택하라.”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은 열등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상대가 그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기 위해 항상 남에게 씌워줄 헬멧을 들고 다닙니다.

하지만 “아빠, 아버지!”가 있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합니다. 자신들에게 함부로 대한 사람들에게까지 친절합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하느님을 부모로 인정하지 않는 바리사이의 몫이라면, 친절함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하느님 자녀라는 자존감을 가진 이들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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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2021년 3월 13일
  |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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