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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원주/수원] 영원한 삶
조회수 | 393
작성일 | 23.03.29
[의정부] 영원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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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삶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삶이란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생명이 언젠가 우리에게 닥쳐올 육체적인 죽음을 넘어서 내세에까지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영원히 산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갖는 사람은 닥쳐올 육체적 죽음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 두렵지도 않습니다. 죽음을 통과해도 계속 살게 될 테니까요. 그러나 자신이 영원히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할 때 여전히 두려워지게 마련입니다.

그동안 노력해오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듯한 상실감이 들고, 남기고 떠나야 할 모든 것들, 그것이 재물이든, 세속적 명예든, 혹은 절친한 가족과 친구들이든, 그 모든 것들에 대해 강한 집착과 미련이 생겨 죽고 싶지가 않고, 무엇보다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확신할 수 없기에 두려움과 공포가 생기는 것입니다.

영원한 삶에 대한 확신은 이러한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는 데서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죽음을 피하지 않고 자주자주 묵상하고,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생기는 모든 두려움들을 극복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면 이미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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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강동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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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잊을 수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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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잊을 수 없는 사람>에서 한 구도자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구도의 길에서 안다는 것은 행(行)에 비할 때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사람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지식이나 말에 의해서가 아님을 그는 깨우쳐주었다. 맑은 시선과 조용한 미소와 따뜻한 손길과 그리고 말이 없는 행동에 의해서 혼과 혼이 마주치는 것임을 그는 몸소 보여주었다. 수연! 그 이름처럼 그는 자기 둘레를 항상 맑게 씻어주었다. 평상심(平常心)이 도(道)임을 행동으로 보였다. 그가 성내는 일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는 한 말로 해서 자비의 화신이었다.”

영생은 바로 오늘, 지금이지요.

오늘 하루가 하느님으로 충만한 사람만이 영원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안다는 것은 스승의 말을 지키는 것에 비할 때 아무것도 아니지요. 평상심이 곧 하느님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내가 하느님의 화신이 되지 않으면 영생은 없습니다. 항상 자기 주위를 맑게 씻어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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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김찬진 신부
  |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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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내 말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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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복음 8장 51절).

유다인들에게 이 말씀은 정신 나간 사람의 말로 들렸다.
인간은 다 죽게 되어있는데,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신이 정녕 마귀 들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소...`내 말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니...예언자들도 죽었는데 당신은 도대체 누구란 말이요?"(요한 복음 8장 53절) 하고 대들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죽음`은 육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유다인들의 그 말은 "당신이 누구이기에 `내 말을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오?
당신에게 그렇게 해줄 능력이 있다는 말이오?"라는 뜻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당신의 신분을 분명히 밝히신다.
"너희가 자기 하느님이라고 하는 분이 나의 아버지이시다."

하느님의 당신의 아버지이시기에 당신의 말씀을 따르는 이들에게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죽음을 해결해 주실 수 있고 해결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지키는 사람은 하느님과의 관계에 들어가기 때문에,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현세의 육신의 죽음의 문을 지나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참된 영광이다.
이 영광은 하느님만이 내려주실 수 있는 것이며, 영원한 생명으로 갚아주시는 영광이다. 이러한 참된 영광,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 그분의 아버지이신 것이다. 그러한 아버지를 당신만이 아시고 그분의 뜻을 실행하고 있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아버지를 알 수 있으며, 아버지의 뜻을 전해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따를 때에 그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또 다시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은 내 날을 보리라는 희망에 차 있었고 과연 그 날을 보고 기뻐하였다".

유다인들은 이 말을 듣고
"당신이 아직 쉰 살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단 말이오?"하고 대든다. 즉, "나이도 어린 주제에 어떻게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할 수 있느냐? 미친 사람 아니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당신이 바로 시간의 구애됨이 없는 분으로 존재하셨다는 당신의 신적 본성을 밝히신 것이다.

"언제나 나는 살아있다"하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은 생명의 원천이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은 하느님의 생명이고, 이 생명이 인간의 시간 내에 들어와 계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계셨던 분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한 토막에서 명멸한 한 인간이 아니라, 사람이면서 하느님이신 분으로 우리에게 오시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임을 알고 있다.

이것을 감사드리며 당신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에게 도움이 되어주시고 믿음을 더해 주시도록 주님 앞에 겸손되이 청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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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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