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ning: fread() [function.fread]: Length parameter must be greater than 0. in /home/hosting_users/ocatholic/www/bbs/lib.php on line 1002

Warning: fread() [function.fread]: Length parameter must be greater than 0. in /home/hosting_users/ocatholic/www/bbs/lib.php on line 1002
평일강론-홀수해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평일강론 (홀수해)

평일강론

홀 수 해

짝 수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528 66.4%
[의정부/대전/수원] 봉헌
조회수 | 594
작성일 | 23.04.02
[의정부] 봉헌

------------------------------------------------

예수께서 라자로의 집을 방문하셨을 때 라자로의 누이 마리아는 값진 순 나르드 향유 한 근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드립니다.

이를 본 유다는 대단히 못마땅하게 생각하지요.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1데나리온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유다의 말대로 3백 데나리온이나 하는 향유는 매우 비싼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값진 것을 예수님을 위해 아낌없이 바치려고 하는 마리아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선물의 값어치가 주는 사람의 애정과 항상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일수록 값지고 귀한 것을 주고 싶어하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예수님께 그토록 값비싼 향유를 사용하였다면 그만큼 예수님을 사랑하였다는 말이 되겠죠.

그러므로 교회가 주님께 값나가는 것을 바치는 것을 너무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닙니다.

웅장한 성전을 지어 봉헌하고,
화려한 장식으로 성전을 꾸미고,
많은 돈을 들여 성상을 조각하는 등의 행위는 그 동기만 순수하다면 주님을 그만큼 사랑한다는 우리들 마음의 표현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께 어떤 값진 것을 바칩니까?

--------------------------------------------------

의정부교구 강동진 신부
528 66.4%
[의정부] 잘 봅시다.

--------------------------------------------

사람은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시각을 이용해 사물을 보는 눈과
또 하나는 마음으로부터 보는 눈이라고 합니다.

시각을 통해 사물을 볼 때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책이구나, 저것은 자전거구나’ 하고 구분할 뿐입니다.
이러한 단계가 끝나면 마음의 눈이 작동을 합니다.

‘책은 싫어! 머리 아파, 자전거 타기는 좋아해!
마을 밖 공터에서 신나게 달려야지.’
이어서 행동이 나타납니다.
책을 뒤로 하고 자전거를 끌고 나가는 것이지요.
이를 누군가가 막으면 평화는 사라지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타니아에서 다시 살린 라자로와 함께 식사를 하십니다.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셨다는 것은 생명의 주관자라는 것을 알리는 사건으로 이분이 바로 구약에서부터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 그리스도임을 명백히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석사제들과 그 무리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예수님을 미워하게 되고 급기야는 살인을 통해 그분의 업적을 지우려 합니다.

욕심과 미움으로 물든 마음의 눈이 악을 행하도록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살인은 십계명을 어기는 큰 죄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죽이기로 결의를 합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마음의 눈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 완전한 방법은 전능하신 하느님을 참으로 열심히 믿는 것입니다.

------------------------------------------------

의정부교구 김유철 신부
  | 04.02
528 66.4%
[대전] 예수님과의 만남

-------------------------------------------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활합니다.
그 가운데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특별한 만남이며,
신앙 안에서 형제, 자매와의 만남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한 복된 만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와 예수님의 만남은 아주 특별하고도 은혜로운 만남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다가서는 순간, 예수님의 매력에 이끌리게 됩니다.

이로 인해 마리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나르드 향유)을 바칩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광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마리아가 그 순간을 깊은 감사와 은혜로움으로 맞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복음을 대할 때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던 오랜 여정을 되돌아봅니다.

어린 시절, 단순한 마음으로 사제가 되고자 했던 저는 조금씩 주님의 부르심을 느끼기 시작했고 서서히 주님의 사랑 안으로 더욱 깊이 이끌렸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에 걸쳐 나 자신과 주님을 깊이 알게 되었고, 그럴수록 주님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바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이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주님에게 빠져 있습니다.

매일 새롭게 그리고 충실히 주님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주님의 은총에 의탁할 때만이 이 사랑의 만남을 지속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

대전교구 김종기 신부
  | 04.02
528 66.4%
[수원] 야곱의 사다리

----------------------------------------------

어제 손님들이 와서 바티칸을 또 가이드했습니다.
바티칸 박물관 안에는 미사 할 때의 성작처럼 생긴 커다란 빨간 대리석 욕조가 있습니다.

바로 네로 황제의 욕조입니다.
높이가 사람의 키 정도 되는 욕조라 청년들은 서로 “저길 어떻게 올라갔을까?”하고 물어보았습니다.
답은 뻔한 것이었습니다.

“계단이나 사다리가 있었겠지.”

그렇습니다.
계단이나 사다리가 없다면 높은 곳에 오르락내리락 할 수 없습니다. 사다리는 바로 혼자 힘으로는 오르거나 내려올 수 없는 높이를 연결시켜주는 길이요 통로입니다.

구약성경에 이 사다리(계단)가 나옵니다.
바로 베텔에서 야곱이 꿈을 꾸었을 때입니다.
하나의 사다리가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있었고 하늘과 땅 사이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인간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땅에서 났으니 땅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땅도 인간 때문에 함께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하느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는 것처럼 죄의 땅이 아닌 깨끗한 하늘에만 머무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죄의 땅으로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분이 계셨으니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분이지만 동시에 육체를 취하신 인간이시기 때문에 땅에도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야곱이 본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는
바로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어떤 누구도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늘나라로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꿈에서 깨어나 ‘참말 야훼께서 여기 계셨는데도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하며 그곳이 곧 ‘하느님의 집’ (성전, 베텔)임을 깨닫고 베고 잤던 돌에 기름을 붓고 나중엔 그곳에 제단을 세웁니다.

기름은 성경에 성령님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라고
당신이 ‘그리스도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하셨듯이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머리에 부어지고
그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발을 통해서 세상에 내려오시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 위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내린 피와 물이 그리스도의 몸을 타고 발로 흘러 땅에 떨어져 땅이 정화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목적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야곱이 베고 잤던 돌에 기름을 발랐던 것은 그리스도로부터 자신의 머리 위로 성령의 은총이 흘러 들어옴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는 이와 똑 같은 행위를 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발에 엄청나게 비싼 나르드 향유를 바르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습니다. 결국 그 향유는 자신의 머리를 향기롭게 한 것입니다.

인간은 야곱의 사다리의 발치에 머리를 대고 하늘로부터 오는 그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집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마리아의 언니 마르타는 예수님을 대접할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으나 마리아만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그 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마르타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예수님의 발치에서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
그것이 내 안에 성령으로 가득 차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유일한 스승으로 모시고
그분으로부터 배우고
그 분이 산 것처럼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자신의 몸에도 배이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처음으로 발현했던 마리아 막달레나가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라는 결정적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같은 사람임을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마리아 막달레나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예수님께 “랍부니”, 즉 ‘선생님’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추상적인 무엇이 아닙니다.
그분을 스승님으로 삼고 배우고 그 분이 산 것처럼
살려고 하는 아주 구체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도 읽거나 공부하지 않고 미사도 주일미사만 간신히 하고 성체 밑에 자주 앉아 있으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분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수원교구 전삼용 신부
  | 04.02
528 66.4%
[수원] 마리아의 큰 사랑

-----------------------------------------------

예수님께서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요한 복음 12장 1절) 베타니아로 가신 것은 유대인들이 미리 준비하여 열 나흗날까지 보관하던 파스카 양처럼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죄를 없애실 흠 없는 어린 양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래서 파스카 축제 닷새 전에 예루살렘으로 가실 생각이었다. 라자로와의 식사는 유대인들의 관습이었다.

파스카 양을 준비하기 전에 잠시 흥겨운 시간을 가졌는데,
양을 마련한 후에는 축제 때까지
단식이나 정화하는 데 마음을 쏟았기 때문이다.
이 식사는 또한 예수님의 권능을 상기시켜 주는 식사이다.

마르타는 정성스럽게 식사 준비를 하고 온 마음 다해 그리스도께 시중을 들었다.
라자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하는 영예를 가지고 식사를 한다. 그리고 마리아는 비싼 나르드 향유를 가져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가족들의 시중드는 것을 흐뭇해하시면서 받아주신다. 마리아는 여기서도 시중을 들지 않고 제자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리아는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다.
이는 우리의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것이다.

“그러자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요한 복음 12장 3절)

이렇게 향유를 부어 그 향기가 가득 차게 하는 것은 그 행위가 하느님 때문에 그리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행은 좋은 냄새를 풍기는 향유이다.
자선을 베풀고, 병자를 찾아가고, 낯선 이들을 맞아들이는 일과 겸손, 친절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것이다. 이 향유가 온 집안 즉 그리스도의 교회를 향내로 가득 채우는 값진 향유가 될 것이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요한 복음 12장 5절)

유다는 열 두 사도 중의 하나였고,
돈주머니를 관리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돈 때문에 배반하지 않도록 그 일을 맡기신 것 같다.
믿음이 없고 사악한 유다는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맡고 있던 돈주머니에서 훔치는 것은 물론 자신을 믿어준 주님을 배반하고 만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요한 복음 12장 7절)

여기서 보면 유다가 순수하게 말하고 주님께서는 마리아의 행동에 담긴 신비를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이것은 당신께서 곧 돌아가실 것이며 향료와 향유로 당신의 장례가 치러질 것임을 알려주신다.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요한 복음 12장 8절)

사실 제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할 시간은 많이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을 떠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유다를 꾸짖으시면서 향유를 부은 마리아를 두둔해 주셨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그분이 살려주신 라자로를 보려고 몰려 왔다.

그러니까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려고 결의하였다고 한다.
생명을 다시 얻어 살아난 사람을 죽이려 하는 것은 참으로 눈먼 자의 눈먼 생각이 아니겠는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분이 당신을 죽이더라도 당신은 다시 살아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셨다.

우리도 보면 이런 눈먼 자들의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죽은 이들이 생명으로 돌아오고 죄를 용서받아 되살아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시샘하며 그들이 다시 죽기를 바라고 죽이고 싶어 하는지도 우리자신을 살펴야 한다.

예수님께로 가는 것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유대 지도자들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막으려고 살해에 또 살해를 저지를 생각을 한다.

라자로를 죽이면 그 기적의 힘도 지울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선행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는 삶을 살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며 부활을 준비하고 있는지 성찰하면서 주님을 따르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하면서 이 성주간을 지내도록 하여야 하겠다.

--------------------------------------------------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2017년 4월 10일
  | 04.02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1616   [수도회] ‘겁 많은 개가 더 크게’  [1] 2028
1615   [청주/부산]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와 예수님  [2] 1429
1614   [수원/춘천] 성령과 함께 하는 삶이란?  [1] 898
1613   [인천] 예수님께 따지기 시작  [1] 1412
1612   (녹) 연중 제8주간 토요일 독서와 복음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5] 3168
1611   [수도회] 하느님의 집은 강도의 소굴로 변해 있었다.  [5] 2658
1610   [부산/대구/안동/전주/청주] 성전은 분명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곳  [6] 3091
1609   [수원/춘천/원주] “산을 옮긴다”  [3] 1124
1608   [인천/서울]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5] 2651
1607   (녹) 연중 제8주간 금요일 독서와 복음 (성전정화 - 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3] 3179
1606   [수도회] ‘눈이 멀다’라는 표현은?  [4] 1541
1605   [부산/전주/청주]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4] 1323
1604   [수원/춘천/대전/원주] 소경 바르티매오  [3] 1471
1603   [인천/서울]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3] 1451
1602   (녹) 연중 제8주간 목요일 독서와 복음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4] 3641
1601   [수도회] 차마 가기 싫었던 형극의 길  [1] 1481
1600   [부산/대구/광주]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3] 2269
1599   [수원/춘천/대전] 주님께 나를 따르시라고?  [2] 1147
1598   [인천/서울] 얼마나 주님께 감사하고?  [2] 1350
1597   (녹) 연중 제8주간 수요일 독서와 복음 (스승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4] 4724
1 [2][3][4][5][6][7][8][9][10]..[81]  다음
 

 

평일강론

홀 수 해

짝 수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3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


Warning: Unknown(): write failed: Disk quota exceeded (122) in Unknown on line 0

Warning: Unknown(): Failed to write session data (files). Please verify that the current setting of session.save_path is correct (/home/hosting_users/ocatholic/www/bbs/data/__zbSessionTMP) in Unknown on line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