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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서울]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조회수 | 72
작성일 | 18.07.12
[인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짖궃은 질문을 종종합니다. 아마 이런 질문을 어렸을 때 많이 듣지 않았습니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때 얼마나 난처했습니까? 엄마가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반대로 아빠가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요즘 아이들에게는 이 질문에 대해서 세가지 반응을 볼 수 있다고 하네요. 다음 이야기를 한번 보세요.

이모가 와서 가만히 아이에게 물어 봅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러면 아이는 아주 오랜 끝에, 이모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인데요.

첫째. 순진한 아이: "아빠가 좋은데, 엄마는 더 좋아.. 그런데 이모! 비밀인 것 알지?"

바로 이때 삼촌이 아주 큰 장난감을 사들고 와서 누가 더 좋으냐고 묻습니다.

둘째. 영악한 아이: "삼촌이 더 좋아~~"

엄마, 아빠가 바로 옆에 계신데, 고모가 들어와서는 묻습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셋째. 발칙한 아이: 아주 크고 당당한 목소리로.. "둘 다 그저 그래."

순진한 아이, 영악한 아이, 발칙한 아이의 모습을 재미있게 묘사한 글이었지요?

사실 우리들 안에는 이 3가지 모습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순진한 모습을 할 때도 있고, 영악한 모습을 취할 때도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발칙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요. 그래도 순진한 모습과 영악한 모습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할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발칙한 모습을 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습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지요.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지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즉, 세상의 일을 처리함에 있어, 그리고 하느님의 일을 처리하는데 지혜로우면서도 순수한 마음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보다는, 이 세상의 발칙한 모습을 취할 때가 많지 않나요? 그리고는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옹호하곤 합니다.

"나는 너무 주관이 뚜렷해서 그래. 나는 거짓말을 하지 못해. 나는 뒤끝이 없는 사람이야."

그러나 이 세상은 나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또한 내가 남을 배려하지 않는데, 남에게서 배려 받기를 원한다는 것은 커다란 욕심일 뿐이지요.

발칙한 주님의 자녀가 되기보다는 지혜롭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소망하여 봅니다. 즉, 우리 모두가 나만을 드러내고 나만을 합리화시키려는 마음을 버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웃 사랑을 순수한 마음과 지혜로운 마음으로 실천할 수 있기를 주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취할 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며…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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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을 때 기름진 땅에 심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반대로 척박한 땅에 심는 것이 옳을까요? 당연히 기름진 땅에 심는 것이 좋은 나무를 만드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몇 년 전 갑곶순교성지에 있으면서 몇 천 그루의 나무를 심었는데, 그때의 경험을 떠올려 볼 때 좋은 땅에 심은 나무들이 훨씬 잘 자랐던 것 같습니다. 척박한 땅에 심어진 나무 중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죽어 버린 것도 참 많았지요.

그러나 태풍이 왔을 때 저는 아주 특이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름진 좋은 땅에 심어진 나무보다 척박한 땅에서 힘들게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거센 바람을 거뜬히 이겨내더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프랑스의 한 마을에서는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기 위해서 일부러 척박한 땅에 포도나무를 심는다고 하네요. 왜냐하면 토질이 좋은 땅에 심은 포도나무는 쉽게 자라서 탐스런 포도송이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땅 표면의 영양분으로도 충분하기에 굳이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토질이 좋은 땅에 심은 포도나무는 병충해도 많고 기온의 변화에도 민감하며 자연재해에도 약하여 결국 포도의 품질이 떨어지게 된답니다.

그러나 척박한 땅에 심으면 자라는 속도는 더디고 열매도 늦게 맺히지만, 생존욕구에 의해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된답니다. 따라서 포도 맛도 더 깊고 자연의 변화에 따른 그 품질의 변화도 거의 없다고 하지요.

이 포도나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들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쉬운 일과 쉬운 돈벌이를 찾지요.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오히려 사람을 망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척박한 땅으로 상징되는 우리 삶의 고통과 시련이 나를 더욱 더 성장시켜주는 것인데, 항상 비옥한 땅에 뿌리를 내려서 편하게 지내기만을 원하는 나는 아니었던 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박해를 말씀하시며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를 일부러 고통의 바다 속에 빠져들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고통과 시련이라는 척박한 땅에서 뿌리를 깊이 내려 품질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이러한 희망도 전해 주시지요.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한 마음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나를 주님의 진정한 자녀로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면서 지혜롭지만 꾸밈없는 순박한 마음을 주님께 청해 봅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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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국내의 문제들과 국제 문제들이 있습니다. 종교, 경제, 인권, 평화의 문제뿐만 아니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대한 관심을 갖는 것 역시 이 세상 안에서 중요한 문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정치를 한다는 정치인들이 이렇게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고 구내식당의 식사 메뉴를 가지고 서로 싸운다면 어떨까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쓸데없는 일에 힘을 쏟는다면서 국민들의 지탄을 받게 될 것입니다. 먹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지만 더 중요한 일에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들 개개인을 보면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일에 참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집에서 다투었을 때를 떠올려보십시오. 반찬투정으로 싸우는 경우도 참 많다고 하더군요. 옷 문제, 청소 문제 등등의 별 것도 아닌 문제들 안에서 생기는 갈등으로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라는 말도 서슴지 않게 말하기도 합니다. 크고 중요한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실제 우리는 작은 것에 연연하고 걱정하면서 쓸데없는 힘을 쏟고 있습니다.

넓은 마음, 그리고 보다 더 큰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이 시선을 얻기 위해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 안에서 나오는 사랑을 통해 우리는 갈등과 다툼을 줄여나가면서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제자들이지요. 그런데 이 제자들의 모습을 보니 너무나 걱정이 많아 보였나 봅니다. 하긴 이 제자들의 능력이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습니다. 언변이 좋은 것도 아니고 지혜로운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특별한 세상의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여기에 주님께 대한 굳고 완벽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직은 부족함 그 자체였고 제자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불안의 마음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지요.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자신의 부족함은 사실 주님 앞에서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능력은 우리들의 부족함을 거뜬하게 채우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말로 신경을 쓰고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걱정하지 않고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가지고 힘차게 사랑을 전하면 됩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계속됩니다.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를 걱정하는 우리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에 한탄을 하고 힘들어하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정말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그저 믿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주님의 크심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습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8년 7월 13일
  |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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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월드컵을 보면서 늦게 잠이 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주로 생방송을 보지 않고 하이라이트를 보는 편입니다. 주로 골을 넣는 장면을 보여 주기도 하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늦은 시간이라도 생방송으로 볼 것입니다. 시험공부를 할 때도 그랬습니다. 처음부터 공부하기보다는 요점정리가 된 것들을 보곤 했습니다. 시간이 절약되기도 하고, 다른 것들에 시간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볼 것입니다. 그래야만 전체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가톨릭교회는 부활하신 영광의 모습인 예수님을 제단에 모시지 않고, 십자가에 달리신 고통의 예수님을 제단에 모실까요? 그 질문에 대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적대자들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가 인간의 죄보다 더 크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수난과 십자가의 고통은 요점정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밀알은 죽는 고통을 겪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어머니의 품을 떠나야만 아이는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가는 길에 고통과 아픔이 있을 것이다. 때로 박해와 죽음도 있을 것이다. 가족과 헤어질 수도 있고,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 너희에게 알려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영이시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결혼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해도 많은 문제가 생겨납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서, 이제 배우자들은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직장을 구해도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승진도 해야 하고, 동료들과 잘 지내야 하고, 주어지는 과제를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직장은 계속해서 급여를 주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있어서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자녀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하고, 아이들을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예전처럼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자녀는 가정의 희망이고, 미래이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에게 모든 것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들이 채워진다고 해서 진정으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욕망을 다 채우기도 힘들지만, 그렇게 채워진 것들은 그것이 사라지게 되면 더욱 공허하기도 합니다. 오직 하느님께 의탁할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화답송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참된 행복에 이르는지 말해 주고 있습니다. “당신은 가슴 속의 진실을 기뻐하시고, 남몰래 저에게 지혜를 주시나이다. 우슬초로 정화수를 뿌리소서. 제가 깨끗하여 지리이다. 저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지리다.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이제 다음 달이면 교구의 인사이동이 있을 것입니다. 많은 신부님이 새로운 곳을 향해서 떠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박해의 시기를 지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는 것도 아닙니다. 떠나야 하는 곳에서는 박수를 치면서 잘 가시라고 인사를 합니다. 도착해야 하는 곳에서도 기쁜 마음으로 새로이 오시는 신부님을 환영할 것입니다. 사제의 인사이동이 기쁨과 박수를 받는 축제의 자리일 수도 있지만, 사제의 인사이동은 조금은 더 절박한 심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다짐으로, 주님께 받은 사명을 충실하게 전하려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은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신앙은 고통 중에서도, 절망 중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아갈 수 있는 이정표입니다.

▦ 서울대교구 조재형 신부 : 2018년 7월 13일
  |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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