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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원주] 조건 없는 용서
조회수 | 145
작성일 | 22.08.10
[수원] 조건 없는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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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하고 충만한 어떤 것을 암시하는 숫자이다. 베드로가 예수께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할지를 예수님께 물으면서 스스로는 속으로 일곱 번 용서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 랍비들은 "사람은 잘못한 이웃을 세 번까지 용서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마 베드로는 예수님께 말씀드리면서 칭찬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일 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시면서 일만 달란트 이야기를 하신다. 이 비유의 뜻은 잘못한 이웃을 용서함에 있어 한정이 없다는 뜻이다. 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의 차이는 육십 만 분의 일이다. 그 백 데나리온을 받으려고 동료를 탕감해주지 않은 종이 크게 벌을 받았다는 비유를 말씀하신다.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 용서받기 위해서는 이웃을 용서해야 한다는 이 가르침은 신약성서 전반에 걸쳐서 나오는 주님의 뜻이며 가르침이다. 즉 이웃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태 5,7에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하였고, 6,14-15에는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했다. 또 야고 2,13에는 "무자비한 사람은 무자비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하였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용서는 사람의 용서와 나란히 가는 것이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가슴을 치며 고백의 기도를 하고 `천주의 어린양`을 부르며 자비를 구하고, 서로 평화의 인사와 축복을 나누고 한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고 자신의 집과 일터로 나아간다. 그러나 진정 우리들 마음 안에는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하나의 지식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용서와 화해의 마음을 참으로 갖고 있는지, 형제와 이웃에 대하여 과거에 그에게 이런 잘못이 있었고 또 어떤 때는 저런 허물이 있었으니까 하면서 그것을 되새기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하고 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내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표지는 잘못한 이웃을 얼마만큼 마음속 깊이 용서하느냐 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용서`가 있는 곳에서만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며 용서가 없는 곳에는 미움과 증오 그리고 죽음만이 남는 것이다. "무자비한 종"의 모습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모든 인간 관계에서도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우리 또한 한 사람의 무자비한 종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께로부터 많은 죄를 용서받으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도 나의 이웃을 용서하며 함께 주님께 나아가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그러한 은총을 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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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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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주님께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까지 용서해 주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오 18장 22절) 일흔일곱이라는 말은 십자가에서 주어진 용서를 모든 세대가 다 받았다는 것이다.

일흔일곱 번이란 루카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그분의 족보를 역으로 기록하였다. 루카가 꼽은 세대는 바로 일흔일곱 세대이다(루카 3,23-38 참조). 하느님께서는 이 세대를 모두 용서하셨으니 우리도 그만큼 모두 용서해야 한다.

복음에서 한 임금이 자기 종들과 셈을 하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로 일만 탈렌트를 빚진 종이 끌려왔다.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마태오 18장 26절)

이는 종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아내와 자식을 판다는 것은 하느님의 기쁨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는 것을 말한다. 판다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종은 “제발 참아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마태오 18장 26절).

주인은 종이 청한 것보다 더 많이 베풀었다. 주인은 그 종이 이 일을 통해서 동료 종들에게 관대해지고, 또한 큰 망신을 당하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책임을 지도록 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용서를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

용서의 조건은 우리 동료들이 우리에게 잘못한 백 데나리온이란 사소한 잘못들을 용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종은 자기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우리도 같은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동료를 감옥에 가두고 자기에게 빚진 백 데나리온을 갚게 하였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마태오 18장 34절) 이는 그 종이 영원한 벌을 받게 되었다. 결코, 빚을 다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이 사랑을 본받지 않는 사람은 의로운 심판관으로부터 가혹한 벌을 받을 것이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하실 것이다.”(마태오 18장 35절) 주인이 종에게 자신과 가족을 팔라고 했을 때, 분노에 찬 말은 아니었다. 자비의 순간이었다. 그때 주인은 화를 내지 않았다. 지금 이 말은 분노와 처벌과 응징이 담긴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너희 아버지라고 하지 않으시고 내 아버지라고 하셨다. 사악하고 악독한 사람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만큼 우리도 우리 형제들에게 자비로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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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2022년 8월 11일
  | 08.10
513 12.8%
‘빚진 것을 갚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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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자 망령이다.’라는 말이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뒤집어 말하면 망령 들 때까지도 사람은 철들기가 힘들다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복음정신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지요. 그런데 나 자신과 이웃의 모습을 보면 ‘삶의 철이 드는 것’과 ‘사람이 바뀌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우치게 됩니다.

우리는 이웃에게 쉽게 비판도 하고 또 가르치는 태도를 가질 때가 있습니다. 옛날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시절에도 이미 ‘선생의 x은 개도 안 먹는다.’라는 말이 떠돌았습니다. 그 만큼 제자들을 가르치는 선생은 힘들고 또 이해 받기도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언자는 오만한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지쳐있고 실망도 큽니다. 그들은 아무리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도 변할 줄을 모르고 개선의 정도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아, 너는 반항의 집안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다.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기 때문이다.”(에제키엘 예언서 12,2)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의 멸망의 장면을 목격해야 했고 바빌론으로 유배를 떠나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몇 번이나 자신에게 죄를 지으면 용서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한질문을 들으시고 만 탈렌트 빚을 진과 백 데나리오 빚을 진 친구에 대한 비유를 들어설명하십니다.

임금에게 만 탈렌트라는 큰 돈을 빚을 진 종이 주인의 자지로 부채를 탕감받는 은혜를 입습니다. 그런데 그 종이 오다가 자기에게 작은 돈 백 데나리온은 빚을 진 친구를 만나지요. 그 종은 자기가 탕감받은 처지를 잊어 버리고 그 친구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자기에게 빚진 돈을 갚으라고 호통을 지고 그럴 능력이 없자 그를 감옥에 가둡니다.

이 장면을 본 동료들이 종의 주인에게 가서 인색한 태도를 일러바칩니다. 임금은 그 종에게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32-33절)라고 야단을 칩니다. 그리고 주인은 그 인정머리 없는 종에게 형벌을 내리지요.

이 비유 말씀을 마무리하 하시며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35절)

우리는 이웃에게 너그럽고 자기 잘못을 뉘우치면 그때마다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복음 말씀을 잘 알고 있고 또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그리고 고백의 기도를 바치며 세 번씩이나 ‘제 탓이요.’를 외우며 가슴을 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일상생활로 돌아오면 그 반대가 되기 쉽습니다.

너그러움보다는 날카로운 비판을 일삼고 언제 우리가 주님께 용서를 받았나 할 정도로 쉽게 엄격한 마음으로 돌아섭니다. 남에게 탓을 돌리며 미운 마음이 되고 반면에 자기 자신을 완전한 사람으로 내세우고 맙니다. 있는 대로의 자기 자신을 보고 그 탓을 고친다는 것은 이래서 힘든 것이지요.

신앙생활의 강조되는 말씀은 이웃에게 너그러우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죄인이고 부족한 점이 많은 지를 깨닫는 겸손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다람쥐 체 바퀴’ 돌리듯 늘 제 자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쌓은 덕 중에 이웃에게 너그러우라는 것이지요. 베풀고 이웃에게 인색하지 않고 베푸는 사람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한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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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정인준 신부
2022년 8월 11일
  |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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