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평일강론 (짝수해)

평일강론

홀 수 해

짝 수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521 78%
[수원/원주]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아 기쁨에 넘치신다
조회수 | 75
작성일 | 22.11.28
[수원] 예수께서 성령을 받아 기쁨에 넘치신다.

----------------------------------------

제자들의 전도사업의 보고를 들으시고 예수님 역시 기쁨으로 찬가를 부르신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21절).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이란 이방의 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점성사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말한다. 그들은 모두 세상의 비밀과 하느님의 뜻을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당신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말씀하신다. 즉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조상들로부터 전승을 물려받은데 반해 예수님은 하느님께 모든 계시를 전해 받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 아드님만이 서로를 알고 계시며, 또한 예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은 사람만이 하느님 아버지를 알 수 있다고 하신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택하신 제자들이 행복하다고 선언하신다.

바로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적을 보기 때문에 복되다는 것이다. 이미 예수님의 말씀과 업적으로 하느님 나라가 이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마태 13,16-17)라고 하신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인간의 생각과는 다르다. 그분은 겸손한 사람,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게 당신의 진리를 드러내신다. 이것이 복음서의 중심 사상이며 예수님의 본 모습이다. 스승님은 우리를 ‘철부지들’이라고 하신다. 이것은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고 하는 사람들보다 우리가 구원받을 준비가 더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리사이파 사람이나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여 죽음으로 몰고 갔다. 얄팍한 지식으로 신앙을 논하며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신앙의 자유를 이야기하면서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도 못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모습은 어쩌면 태양 앞에 등불을 켜 놓는 것이거나, 아니면 그 등불을 가지고 그냥 어둠 속으로 숨어버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결국은 그 빛을 거부하는 결과를 만들고 만다.

이제 우리는 그분의 신비를 알 수 있으니, 우리의 눈은, 또 그분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눈은 행복한 눈이다. 우리는 그분의 놀라운 가르침을 들었으니, 우리 삶의 참된 제물로 그분께 흠숭과 영광을 드려야 할 것이다.

--------------------------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2019년 12월 3일
521 78%
​[수원] 똑똑한 사람들은 악마와 거래한다

-----------------------------------------

1939년 8월 러시아의 이오시프 스탈린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비밀조약을 맺습니다. 이 조약의 핵심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 러시아는 폴란드의 등에 칼을 꽂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핀란드 침략 실패로 심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강력해진 독일과 협력하면 굳이 독일과도 싸울 필요가 없고 협력하여 얻은 소득도 챙길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히틀러도 제2차 세계대전을 시작할 힘을 얻는 조약이어서 좋았고, 또 전쟁을 할 때 동쪽과 서쪽의 두 개 전선을 다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기에 스탈린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히틀러의 계략은 러시아까지 집어삼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조약을 맺은 2년 뒤 히틀러는 러시아를 침공했고 수천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러시아 국민 중 절반은 나치 점령에 고통 받았으며, 러시아의 제조업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습니다. 스탈린이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악마와 거래한 끔찍한 대가였습니다.

세상은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고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하는 것이 현명한 삶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자기의 이익을 위하는 똑똑한 사람들은 악마와 거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타인에게 피해를 입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마는 결코 끝까지 그 사람의 편이 되어주지 않습니다. 한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그 다음엔 자신과 계약을 맺은 사람을 잡아먹습니다. 악마와 계약을 맺는다면 남는 것은 이웃은 물론이요 자기멸망뿐입니다. 악마는 ‘너 자신의 이익을 우선 생각하라.’고 속삭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기도하십니다. 여기서 철부지는 자신의 이익을 챙길 줄 모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어떤 철부지 어린이가 부모의 유산을 먼저 챙기려 하겠습니까? 철부지는 철부지라 욕심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 이전 내용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돌아와 예수님께 보고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철부지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돌아온 당신 제자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한 ‘복음’이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는 ‘이것’입니다. 복음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표징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바로 다음 내용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만이 강도만나 쓰러져있는 사람을 도와줍니다. 그러나 사제와 레위인은 도와주지 않습니다. 사제와 레위인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라는 사탄과 계약을 맺은 사람이고 착한 사마리아인은 비록 종교생활을 하고 있지 않을 지라도 복음을 믿는 철부지 어린이인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이가 쇼핑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휠체어를 탄 청년과 맞닥뜨렸습니다. 그는 두 다리가 없고 얼굴도 심한 화상을 입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청년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 저 사람 좀 봐."

어머니는 아이에게 장애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흉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말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 청년에게 다가서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와, 정말 멋진 모자네요."

철부지 아이들이 보는 것은 다릅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부유하게 하거나 높이지 않습니다. 오직 똑똑한 어른들만이 그렇게 합니다. 철부지들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상대의 행복을 먼저 봅니다.

자신을 먼저 챙기는 사람은 사탄과 계약을 맺은 사람이고 이웃의 행복을 먼저 챙기는 사람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사람입니다. 세상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사람들을 철부지라 부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영혼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똑똑한 악마가 될 것인지, 철부지 하느님이 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신부
2019년 12월 3일
  | 11.28
521 78%
너희는 성령으로만 기뻐하여라

----------------------

오늘 복음은 제자들이 복음 전파를 마치고 많은 성과를 내고 돌아와서 예수님께 보고하니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우리 기쁨의 원천이 성과가 아닌 성령이어야 함을 우리는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복음을 전하면서도 ‘업적 주의’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의 기쁨을 성과에 두는 것입니다. 이런 때의 특징은 1. 숫자에 집중한다, 2. 아랫사람을 다그친다, 3. 기도 시간이 줄어든다 로 들 수 있습니다.

한 대전의 개신교 목사님이 10년 동안 열심히 목회하였습니다. 하지만 성과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기도원에 들어가서 이렇게 기도 드렸습니다.

“예수님, 저는 실패한 목사입니다. 아무리 해도 신도가 늘지 않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실패한 것이다.”

목사님은 억울해 하며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제가 실패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만약 신도가 많이 늘었다면 너의 신도가 는 것이냐, 나의 신도가 는 것이냐?”

우리는 그저 그분의 종일 뿐입니다. 해야 할 일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문득 숫자를 세기 시작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가 끝나가면서 이전 신자들의 숫자를 회복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회복되지 않는 것을 볼 때는 마음이 조급해지고 우울해 집니다. 이렇게 숫자에 집중할 때 성령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소식을 듣고 ‘성령’으로 기뻐하셨습니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특별히 행복을 자녀에게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의 자유를 빼앗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재 발굴단'에서도 아이들은 어머니의 강요에 혼자 방에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이 나옵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 34회에서도 숨이 턱 막히는 엄마의 공부 강요와 꾸중 때문에 혼잣말을 계속해서 하는 금쪽이가 나왔습니다. 참으로 예쁜 아이인데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엄마는 다 자기를 위해 해 주는 관심인데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는 딸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결국엔 세상 것에서 기쁨을 찾으려다가는 공허함만이 남고 후회만이 남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어떤 기쁜 일이 있을까?’라며 우리는 여전히 기쁨의 원천을 밖에서 찾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면 기쁨의 원천을 성령께 두어야 합니다.

저도 새로 온 본당에서 사목 하며 신자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강요와 설득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자유는 건들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유는 자존감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빼앗기고 강요 받으면 자존감이 줄어듭니다. 신앙도 결국 하느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을 올려주는 것이기에 자유를 빼앗긴 상태에서는 어떤 성과도 교회적이지 못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의 공부를 위해 학원은 보내면서 미사는 빠져도 괜찮게 내버려 두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밥을 주는 동안에는 어느 정도는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이때 신앙을 먼저 가르치지 않으면 결국 부모는 자녀 때문에 우울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계명은 성령으로만 성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공부시켜봐야 결국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견 시키시고 무엇을 하셨을까요? 하.사.시.에 보면 제자들에게 힘을 주시기 위해 극기하시며 혼자 기도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그분은 그 기도 덕분으로 성령으로 가득 차서 기쁘신 것입니다. 따라서 저도 정해 놓은 기도 시간을 일 때문에 줄이지 않으려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기도 시간을 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기쁨임을 믿는다면 적어도 대죄는 짓지 않고 기쁨으로 살 수 있는 정도의 기도 시간은 내가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하면서 그 기도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면 나는 성령이 기쁨임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과 살 때 어떤 때가 제일 기뻤을까요? 부모님께서 하라고 가르치시는 대로 했는데 일이 잘되어 기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어른들에게 인사를 잘하라고 해서 잘하고 다녔는데 정말 인사성 밝다고 칭찬받았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것이 부모에게 오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말씀을 통해서도 받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노트 한 권 씩을 신자들에게 나누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하루를 살 말씀의 양식을 먼저 적게 할 것입니다. 한 문장이면 족합니다. 성경 말씀이면 좋고 하.사.시. 혹은 기도하다 떠오른 말이나 유튜브를 보다 느낀 말도 좋습니다. 그 한마디를 적고 하루 동안 되새기며 살면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기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부모님의 굳은살을 보았을 때입니다.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 때 행복합니다. 이것이 은총입니다. 그래서 한 말씀 쓴 다음 밑에다가는 감사일기를 쓰게 할 것입니다. 결국 은총은 감사를 낳기 때문입니다. 물론 강요할 마음은 없지만 잘하면 상을 주려고 합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성령으로 기쁨을 느끼며 살도록 해 주어야 하는 사제의 몫인 듯싶습니다. 모든 기쁨은 성령에게서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2022년 11월 29일
  | 11.29
521 78%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

산을 좋아하는데, 조심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버지니아에 있을 때는 세난도아 국립공원 숲에서 세 차례나 곰들을 만나서 긴장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 번 째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보았던 곰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산길을 따라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보니 앞에 있는 큰 나무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놀라서 몰랐고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새끼 곰 세 마리가 나무에 올라갔다가 급하게 내려오느라 발톱을 긁으며 내려오는 소리였어요. 그놈들도 놀라고 급했던 것 같아요. 어미 곰이 아래에서 서서 노려보는데, 그 표정이 그렇게 험악할 수가 없어요. 서로 꼼짝않고 서서 바라보고 있는데, 새끼 곰들이 숲속으로 들어가니까 그제야 어미 곰도 사라졌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굉장히 길게 느껴졌어요. 자칫 잘못하면 어미 곰에서 희생된다고 하더라고요.

오늘 이사야 예언자가 메시아의 평화시대에 대한 말이 새삼스럽습니다. ‘강육약식(强肉弱食)’이 자연이 이치라고 하지만 동물의 세계 탐구 프로를 보다 보면 가끔씩 맹수에게 잡혀 먹히는 초식동물들의 약한 모습을 봅니다. 특히 어미가 바라보는 가운데 사자나 하이나에게 잡혀 먹히는 새끼들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지요. 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서 오늘 예언자의 말이 더욱 희망으로 기다려집니다.

세상은 경쟁 사회라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평화보다는 대립과 심지어는 최악의 전쟁을 일으키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언자는 이사이의 그루터기‘라는 상징적인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다윗의 아버지의 이름이’‘이사이’이고 전에는 ‘이새’라고 번역을 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사야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틀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바빌론 유배로 왕국으로서의 역사는 접었지만 그들에게는 다윗의 왕국에 축복해준 하느님의 약속을 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탄 예언자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다윗 집안을 향해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2사무 7,16)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다 끝났다고 보이는 ‘그루터기’에서 새순이 나오는 희망을 전합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이사 11,1-2)

메시아 시대에는 정의로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고 평화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강식약육의 자연법칙이 없어지고 모두가 하느님께서 세우시는 때가 올 것을 예고합니다. 맹수와 초식동물들, 독사와 아이들이 서로 어울리며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끊긴 것 같던 유다 왕국이 일어서고 이사이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이스라엘로 찾아오고 영광스럽게 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시며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루카 10,21)라시며 또한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졌음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루카 10.22)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10.23)라고 하시며 제자들의 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많은 예언자들과 임금이 주님을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하고 듣고 싶어 했지만 듣지 못한 당신을 제자들은 바로 볼 수 있는 영광을 말씀하십니다.

평화와 사랑을 가르치시며 병자들과 마귀들린 이들을 치유해주시는 주님께서는 구약부터 예고되신 메시아이시며 죄와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도 주님을 뵙고 따를 수 있어서 제자들처럼 복된 사람들입니다.

----------------------

원주교구 정인준 신부
2022년 11월 29일
  | 11.29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1594   [수도회] 구원의 빛  [4] 469
1593   [부산/전주/광주/청주] 돌아봄의 눈은  [4] 570
1592   [수원/원주/대전] 시메온이 아기 예수를 알아봄  [3] 70
1591   [인천/서울] 그리스도를 평생 기다려왔던 한 분  [5] 502
1590   (백) 성탄 팔일 축제 내 제5일 독서와 복음 (예수님은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  [8] 2253
1589   [수도회]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67
1588   [광주/부산]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1] 542
1587   [수원] 이제 우리는 “높은 곳에서 온 별”을 맞이하게  62
1586   [인천/서울] 내 안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벽은  [2] 680
1585   (자) 대림 12월 24일 독서와 복음 (즈카르야의 노래)  [8] 2207
1584   [수도회] 같은 생각과 말과 행동  [3] 545
1583   [청주/전주/광주/부산] 아기의 이름은 요한  [4] 680
1582   [의정부/대전/수원] 그리스도인의 현실  [3] 61
1581   [서울/인천] 이제 곧 성탄입니다  [4] 641
1580   (자) 대림 12월 23일 독서와 복음 (세례자 요한의 탄생지는 '아인카렘'(포도밭의 샘)  [6] 2495
1579   [수도회] 심연(深淵)의 근저(根底)까지  [8] 116
1578   [광주/전주/부산/청주] 마리아의 노래가 현대 여성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4] 120
1577   [수원/의정부/대전] 마리아의 노래-하느님 찬미가  [3] 79
1576   [인천/서울] ‘성모찬송’(Magnificat : 찬미하다. 찬양하다)  [5] 118
1575   (자) 대림 12월 22일 독서와 복음 (마니피캇 ; 성모님의 노래)  [8] 141
1 [2][3][4][5][6][7][8][9][10]..[80]  다음
 

 

평일강론

홀 수 해

짝 수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3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