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평일강론 (짝수해)

평일강론

홀 수 해

짝 수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517 7.2%
[수원/의정부] 제자들의 선교 효과
조회수 | 254
작성일 | 22.09.21
[수원] 제자들의 선교 효과

-----------------------------------

어제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간단히 말씀해 주셨다. "길을 떠날 때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 지팡이나 식량자루나 빵이나 돈은 물론 여벌 내의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곳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희를 환영하지 않거든 그 동네를 떠나라. 떠날 때에는 그들에게 경고하는 표시로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려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보면, 제자들은 스승 예수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한 선교의 효과는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헤로데 왕의 동요가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침내 예언자 엘리야가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닌가? 혹은 신명 18,15에서 말하듯이 다른 위대한 예언자가 나타나지 않았는가 하는 여러 가지 소문이 나돌자 헤로데 왕은 가뜩이나 세례자 요한을 죽인 것에 대해 가책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하고 물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한번 만나고 싶어했다. 예수님께 대한 소문은 꽤나 영향이 컸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일을 제자들의 복음선포 활동에 연결 지어 볼 때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데 어떠한 자세로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하여 사심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 이다. 이 때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진리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길 것 이다.

주님 앞에 참 삶을 통하여 복음의 향기가 이웃으로 퍼져 나가도록 열심히 노력하자. 여기에 우리의 참 행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쁘고도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을 위하여 이 미사 중에 기도하자.

------------------------------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517 7.2%
죄인에게 죄를 고백해봐야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

-------------------------------

미국에 있는 어떤 교회에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했습니다.
큰 꿈을 안고 교회를 위해 불철주야 섬기던 목사님은 얼마 가지 않아서 몹시도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이 교회 일이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너무나도 무관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강단 밑에 엎드리어 주님께 울부짖으며 도와 달라고 청하는 도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그에게 한 가지 지혜를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모든 교인에게 편지를 쓰고서, 이와 아울러 그곳 지방 신문에 이러한 광고를 게재했습니다.

“다음 주일 오후에 ‘교회의 장례식’을 거행합니다!”
사람의 장례식은 몰라도 교회의 장례식이라는 광고는 역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기에 교인들은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많이 왔습니다. 드디어 교회를 장례 치르기 위한 예배순서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지막 차례로 교인들이 강단 앞에 놓여있는 관에 나와서 고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예식이 있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과연 관 속에 누가 누워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모두가 한 줄로 서서 자기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관속을 들여다보는 사람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가 심각하게 굳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관 안에는 거울이 들어있었습니다.
지각 있는 교인들은 금방 목사님의 뜻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죽었기 때문에 교회가 죽은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거울은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거울 안에는 자신이 흐트러진 모습을 가다듬어야 하는 모습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게 합니다. 거울이 없이는 자신을 다잡을 수 없습니다.
이런 역할을 하신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닮아야 할 거울입니다.
그분과 벗어난 모습을 보면 어색해서 견딜 수 없어야 그리스도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전 어느 신문에서 전과자들의 간담회를 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절도 전과자들은 자신의 경험담들을 털어놓았습니다.
이때 멈칫하게 하거나 절도를 포기하고 나오게 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한 명의 전과자가 말했습니다.

“주인이 코를 골고 자면 도둑질하기에 아주 편합니다. 코 고는 소리에 맞추어 한 발짝씩 떼어 놓으면 행진곡에 맞추어 입장하듯이 들킬 염려가 없습니다.
그런데 집이 너무 고요하면 그냥 포기하고 나오고 싶습니다.”

그런데 다른 전과자가 말했습니다.
“난 도둑질하러 들어갔을 때, 그 집 현관에 놓여있는 신발들이 가지런하면 긴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흐트러져 있으면 내 집같이 마음 놓고 들어갑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거든요.”

어떤 전과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도둑질하다가 뛰쳐나온 적이 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불쑥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칼을 빼 들었죠. 근데 그 괴한도 칼을 들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그 괴한이 저라는 것을. 그날은 도둑질할 수 없었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거울’입니다.
카지노에는 거울이 없다고 합니다.
자기가 죄에 빠져있을 때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도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본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자아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 본 모습이 드러나게 만드는 거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루카 9,9)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 소식만으로도 헤로데의 죄를 드러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헤로데가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있다고 보여주는 거울이셨습니다.

제가 오산 성당에 있을 때 정말 제 죄가 드러나게 하는 많은 분을 만났습니다.
특별히 할머니 신자분들이 많았습니다.
봉성체를 했던 한 할머니는 지금도 제 뇌리에 남아서 나이가 들어가는데 그분의 모습과 더 벗어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게 합니다.
그분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온화한 모습은 저에게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나이 들고 싶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저희 어머니도 고아로 남의 집에서 일만 하고 매도 맞으며 자라서 다 죽이고 자신도 죽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느님께 불평하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때 바다로 걸어오시는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촌으로 가시는 것을 보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깨달으셨습니다.
“나병 환자도 사는데 너는 왜 못 사냐?”

예수님은 당신이 안 해줘서가 아니라 자아가 불평 자체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다시 살 힘을 얻으셨습니다. 모든 죄의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보지 못하면
죄는 영원히 계속됩니다. 십자가를 보며 우리는 어떤 기도를 드립니까?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입니다.”

거룩한 이들은 너무도 깨끗해서 내 죄가 드러나게 합니다.
내 죄가 드러나는 것은 너무도 아픕니다.
그러나 살려면 그 거울들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역할을 하도록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한 이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거울의 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있으면 자신이 저지르는 죄가 보입니다.
헤로데처럼 자기 잘못을 고치기를 원하면 교회에 머무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교회 밖에 머무를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받을 이가 결정됩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 자체가 헤로데가 되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집회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기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는 이는 수치를 면하리라.”(집회 20,3)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야고 5,16)

결국 죄 없는 이들 앞에서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죄 있는 사람들 앞에서 고백해봐야
“우리도 다 죄짓는데?”라고 말할 것입니다. 죄를 안 지으면 오히려 그 공동체에 머물기 어려울 것입니다.

죄를 고백하는데 부끄럽지 않으면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내 죄를 고백하기 어려운 거룩한 공동체.
그리고 그 공동체에서 내 죄를 고백할 용기. 이것이 나의 육체와 영혼의 병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그러셨고 또 우리가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가 드러나게 하는 거울이시고 또 내 죄가 부끄러운 것임을 알게 하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교회 공동체가 이런 모습이어야 새로 들어오는 신자들을 죄에서 건져낼 수 있습니다.
같은 죄를 짓는 공동체에서 죄를 고백해봐야 부끄럽지 않아서 죄에서 돌아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거룩한 공동체를 형성합시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공동체입니다.
죄에서 벗어나려면 부끄럽지만 내 죄를 고백할 대상이나 공동체가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세상을 거룩하게 하도록 반드시 그러한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신부
2022년 9월 22일
  | 09.22
517 7.2%
삶 죽음 너머 삶

------------------

잘 살고 싶습니다. 곧게 살고 싶습니다.
바르게 살고 싶습니다. 깨끗하게 살고 싶습니다.

잘 죽고 싶기 때문입니다. 곧게 죽고 싶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죽고 싶기 때문입니다. 깨끗하게 죽고 싶기 때문입니다.

잘 죽고 싶습니다. 곧게 죽고 싶습니다.
바르게 죽고 싶습니다. 깨끗하게 죽고 싶습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죽음 너머 삶을 믿기 때문입니다.

--------------------

의정부교구 상지종 신부
2022년 9월 22일
  | 09.22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1571   [수도회] 꽃보다 아름다운  [6] 559
1570   [전주/부산/대구/청주] 간절히 간절히  [4] 640
1569   [수원] 지붕을 벗기고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4
1568   [인천/서울] 이제는 우리의 사고를 바꿀 필요가  [4] 509
1567   (자) 대림 제2주간 월요일 독서와 복음 (기와를 벗겨 내고 환자를 내려보냈다)  [6] 1958
1566   [수도회] 하느님의 연민(compassion)이 답이다  [3] 559
1565   [의정부/수원] 예수님의 사도로서 산다는 것은  [2] 664
1564   [청주] 수확할 것은 많은데  20
1563   [서울/인천]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매일의 생활  [2] 592
1562   (자) 대림 제1주간 토요일 독서와 복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5] 1771
1561   [수도회] 서로 다가가는 용기를  [5] 875
1560   [전주/청주] 예, 그리스도인입니다.  [3] 582
1559   [수원] 두 소경의 눈을 보게 하시다  [3] 19
1558   [인천/서울] “예, 주님!”  [4] 511
1557   (자) 대림 제1주간 금요일 독서와 복음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7] 2236
1556   [수도회] 그들이 있기에  [5] 488
1555   [부산/청주/전주]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3] 761
1554   [수원] 사람을 심판하면 믿으나 마나다.  [1] 34
1553   [인천/서울]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말  [4] 485
1552   (자) 대림 제1주간 목요일 독서와 복음 (아버지의 뜻을 실행, 하늘 나라에 간다)  [8] 2322
1 [2][3][4][5][6][7][8][9][10]..[79]  다음
 

 

평일강론

홀 수 해

짝 수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2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