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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원주/대전] 시메온이 아기 예수를 알아봄
조회수 | 160
작성일 | 22.12.28
시메온이 아기 예수를 알아봄 (루카 2,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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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과 요셉은 아기 예수를 성전에서 봉헌하신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성체를 받아 모시듯이 예수님께서는 할례를 받으시고 나서 제단으로 나가신다. 율법은 “씨를 받아”(레위 12,2 칠십인 역) 아이를 낳은 여인은 부정한 몸이 되었으므로,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낳은 자식과 함께 하느님께 희생제물을 바쳐야 깨끗해진다고 한다. 이 율법과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23절)는 율법을 따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가난하여 “일년생 어린양”도 아니고 “작은 집짐승 하나도 마련할 힘이 없는”(레위 5,7) 처지였기에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제물은 몸의 순결과 영의 은총,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진짜 제물이었다. 산비둘기는 순결을, 집비둘기는 은총을 나타낸다.

노인인 시므온과 한나는 깊은 신심을 고백하며 주님을 맞았다. 그들은 아직 아기인 그분을 보고서도, 위대한 신성을 지니신 분임을 알아보았다. 이 두 사람은 오랫동안 주님을 기다려 왔고 그분이 오시자마자 신심 깊은 행실이란 두 팔과 꾸밈없는 믿음인 목소리로 그분을 찬미할 준비가 되어있는 모든 남녀 백성들을 나타낸다.

의인 시므온은 그분을 마음으로 보고 아기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그리고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하느님의 아들을 품에 안고 기도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29-30절) 구원은 먼 훗날 죽은 다음이 아니라, 지금 현재임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모두 구원을 이렇게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아기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쓰러지게 하고 믿는 다른 민족들은 일어나게 하실 분이다.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34절) 십자가가 바로 그 반대를 받는 표징이다. 믿지 않는 자들이 그분을 십자가 앞에서 부인하고 조롱했기 때문이다. 구세주의 모든 것이 반대를 받고 있다. 처녀가 어머니라는 사실이 ‘반대를 받는 표징’이다. 그리스도는 여인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하는 마르키온파가 있으며 에비온파는 남녀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속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35절) 마리아의 영혼을 꿰찌르는 칼은 그의 슬픔을 가리킨다. 마리아는 당신의 평생 아드님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으셨다. 그리고 아드님께서 수난을 당하실 때 모두 겪으셨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아드님이 죄인으로 몰려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어머니의 가슴은 칼에 꿰찔리듯 아마 그 이상으로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드러낼 것이다. 그분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우리가 그 말씀을 실천할 때,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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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2020년 12월 29일
533 50%
왜 기다리게 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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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기도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신성을 보는 기도입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관상 기도에서 ‘거둠의 기도 – 고요의 기도 – 일치의 기도’라는 세 단계를 말합니다. 거둠의 기도는 마치 마리아 막달레나가 빈 무덤에서 다른 세상 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그분의 자취가 있는 곳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안에 예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지 않으면 거둠의 기도가 불가능합니다. 고요의 기도는 마치 성모님께서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잉태하시듯 그 기다림이 끝나는 단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는 성령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음을 깨닫고 인내롭게 기다리는 일입니다. 기다림이 정말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기다림의 대명사가 나옵니다. 바로 시메온 예언자입니다. 그가 기다릴 줄 알았던 이유는 약속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루카 2,25-26)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는데도 성령께서 그와 함께 계셨음에 집중해야 합니다. 기다림이 그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했던 것입니다.

관상 기도는 물론 묵상 기도에서도 기다림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가 나로부터의 정화를 이루는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울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해 본인 스스로 제사를 지내어 결국 그 이유로 왕권을 잃게 됩니다. 기다림은 시간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느님임을 알게 하여 주도권을 내가 아닌 하느님께 드리게 만듭니다.

기다림이 주제인 대표적인 작품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있습니다. 어느 한적한 시골 길,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이 서 있는 언덕 밑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방랑자가 고도라는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 그들의 기다림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 자신도 헤아릴 수 없는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고도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기다림의 장소와 시간이 확실한지조차 분명치 않습니다. 지칠 대로 지쳐 있는 그들은 이제는 습관이 되어 버린,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죽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 봅니다.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여전히 살아 있음을 실감하기 위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서로 질문하기, 되받기, 욕하기, 운동하기, 장난과 춤추기…. 지루함과 초조, 낭패감을 극복하기 위해 끝없이 지껄이는 그들의 광대놀음, 그 모든 노력은 고도가 오면 기다림이 끝난다는 희망 속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하루 해가 다 지날 무렵, 그들의 기다림에 한계가 왔을 때 나타난 것은 고도가 아니라 고도의 전갈을 알리는 소년입니다. 소년은 고도가 오늘도 오지 않을 것이란 전갈만 주고 갑니다.

그러던 중 포조와 럭키를 만납니다. 포조는 주인이고 럭키는 포조의 줄에 목이 메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노예입니다. 며칠 뒤에 눈이 먼 상태로 포조가 럭키를 끌고 갑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타라공은 고도를 기다리며 그 넘어진 주인 포조를 일으켜 세워주고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도 소년은 고도가 오지 않는다는 전갈을 남깁니다. 그렇게 연극은 막을 내립니다.

고도가 도대체 누구일까요? 작가도 고도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만약 알면 책에 썼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작품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타라공은 남을 도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고도가 오리라는 약속을 믿고 매일 기다립니다. 하지만 포조와 럭키는 내가 주도적이건, 혹은 끌려다니건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작가는 도대체 그렇게 살면 뭐가 좋냐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이 오기를 4천 년이나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들이 정화되었습니다. 시간의 주인이 하느님임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영성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놀이는 세가지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기다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기다릴 수 없으면 오래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기다릴 수 있는 능력은 어디서 올까요? 믿음에서 옵니다. 두 번째는 나 자신에게 기다려도 시간 내에 끝까지 갈 수 있다는 능력이 있음을 믿음입니다. 세 번째는 움직여야 할 때는 움직이는 결단입니다. 행위가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으면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시메온은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분명히 죽기 전에 메시아를 본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기다리는 것 뿐만 아니라 그분이 나타나면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준비를 하고 기다렸습니다. 분명 기도하고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느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데 어떻게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기도는 하느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놀이에서 놀이하는 사람은 술래의 목소리와 모습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에 대한 신뢰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은총을 받으려면 은총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준비란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은 나는 모른다는 믿음 때문에 생깁니다. 사울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기다릴 줄 모르는 게 문제였습니다. 기다릴 줄 몰랐던 이유는 교만하였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더 믿었기에 기도와 제물을 바침이 의미를 잃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기다릴 줄 알기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제물을 잘라놓고 하느님을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하느님은 그 기다림을 통해 아브라함을 정화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엔 제물을 불사르는 성령께서 그에게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관상 기도는 내 안의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집중하는 시간, 곧 ‘거둠의 기도’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다음에는 ‘고요의 기도’입니다. 고요의 기도는 평화가 오는 시간입니다. 기다리던 분이 오시는 시간입니다. 마치 마시멜로 실험처럼 기다림을 통해 성령에 성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평화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평화가 옵니다. 성령은 이렇게 기다릴 줄 아는 이에게 오십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에서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다음엔 ‘일치의 기도’입니다. 다시 그리스도께서 보이시지 않고 그분의 ‘뜻’이 남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복이 되어야 하는 소명이 주어졌고,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본 것을 증언하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 소명 안에서 계속 그리스도를 보는 것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그 뜻으로 나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셨을 때는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머무시고 당신이 아버지 안에 머무신다고 하셨습니다. 누군가의 안에 들어가면 ‘하나’가 되어 상대를 볼 수 없습니다. 볼 필요도 없습니다. 성모님은 태중의 예수님을 보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분의 뜻으로 엘리사벳을 방문합니다. 이것이 일치의 기도입니다.

관상 기도는 항상 이 세 단계를 거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집중해야 하는 것은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믿고, 주님께서 나에게 나타나 보여주심을 믿고, 그분의 현존에 집중하며 기다릴 줄 아는 능력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기다리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되심을 위해 가장 완전하신 분이셨습니다.

믿고 기다리고 기도함이 나를 온전히 정화했다면 그분이 분명 나를 사로잡을 고요의 기도로 올라가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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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2022년 12월 29일
  | 12.29
533 50%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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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서간 저자는 이어서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계명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온 그대로의 말씀인 것이라고 일러줍니다.

그렇지만 저자는 새 계명을 전하는데 그것은 ‘사랑의 계명’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들은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이고 빛 속에 사는 자.’이며 곧 ‘자신의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구약의 레위기에서 부정과 정결에 대한 가르침(11-15)이 있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못 먹는 것의 구분(11장), 산모의 정결례(12장), 악성 피부병과 정결례(13-14장), 성병과 정결례(15장)으로 나누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명’에 관련되어 있고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산모에 대한 규정은 출산한 남자 아이의 할례에 대한 설명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남자 아이의 생명과 관련된 건강을 위한 규정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증명하는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치는 것은 반대로 생명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루카복음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예수님의 부모가 성전에서 정결례를 지킨 것과 의인 시므온과 예언자 한나의 이야기를 이어서 전해 주고 있습니다.시므온은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자신이 죽기 전에 메시아를 만났으니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1,29-30)

루카에 의하면 그는 구원을 직접 눈으로 볼 때까지 그는 살아 있을 것이라고 성령께서 일러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시므온 아기와 어머니에 대한 예언을 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받아들인 사람은 치유와 함께 구원의 많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못 받아들이거나 더 나아가서 배타적인 사람은 결국 시메온의 예언대로 쓰러지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구원의 이야기 뒤에 주님의 모친이신 성모님께서는 칼에 찔리듯 고통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거룩한 무덤성당(ecclesia Sancti Sepulchri)이 있습니다. 약 325-326년경에 이방인의 신전이었던 곳에 성당 부지가 조성되었습니다. 333년경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친 성녀 헬레나의 요청과 함께 콘스탄티누스 황제명령으로 이곳에 성당이 건축되었고 그 후에 신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시내를 따라 무덤성당까지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이 이어집니다.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하는 장소가 무덤성당 내에 골고타 언덕에 있습니다. 그 장소는 프란치스코회에서 관리하는데 그곳에는 ‘슬픔의 성모’의 제대가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시신을 안으셨던 장소로 알려져 있는데. 성모님의 심장에 칼이 꽂힌 슬픈 모습의 조각상이 실제의 모습처럼 있습니다.

교회는 시므온의 에언처럼 성모님의 큰 고통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지요. 교회는 성모 신심과 함께 또한 전통적으로 ‘성모통고(聖母痛苦)’라고 했던 ‘성모칠고(聖母七苦)’에 대한 신심도 이어져 왔습니다.

다르게는 ‘성모칠고(聖母七痛)’고 표현하는데 성전에서 시므온의 예언(루카 2.35), 아기 예수님을 모시고 이집트로 피난 (마태 2,14), 성전에서 소년 예수님을 잃어버렸을 때(루카 2,44-50) 고통을 주제로 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남(루카 23,26-32) 십자가 아래에 계심(루카 23,44-46), 십자가에서 아드님 죽음(루카 23,53)을 지켜보시는 성모님의 고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시신을 무덤에 묻히셨을 때(루카 23,53) 성모님께서 겪으신 고통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교회와 함께 성모님 일생에서 겪으신 고통을 묵상하는 신심이 생긴 것입니다.성모님의 고통에 대한 신심은 음악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쟈코포네 다 토디 (Jacopone da Todi 1230-1306)의 ‘고통의 어머니께서 서 계시네 (Stabat Mater dolorosa)’라는 종교시가 1712년에 대표적으로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에 의해서 공연되었습니다.이 외에도 1767년에 하이든(Joseph Haydn ), 1831–42년에 로씨니(Rossini ), 1876–77년에 드보르작(Dvořák), 1896–97년에 베르디(Verdi), 등에 의해서도 ‘성모님의 고통’이 공연되었습니다.

미사전례 중에 함께 바치는 성모칠고 기념일의 ‘부속가’ 일부입니다.

아들예수 높이달린 십자곁에
성모서서 비통하게 우시네.
섧고설운 슬픔고통 성모성심
칼에찔려 참혹하게 뚫렸네.
독생성자 수난하니 여인중에
복된성모 애간장이 다녹네.
아들수난 보는성모 맘저미는
아픔속에 하염없이 우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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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정인준 신부
2022년 12월 29일
  |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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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걱정과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복음 2장 22-35절)

주님을 뜨겁게 사랑한 적 있는가?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고 하느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자격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자리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사랑으로 태어났고 다시 하느님 사랑으로 돌아갈 사람들입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묵상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한 번 살다 가는 인생길, 한 번쯤은 주님을 죽도록 사랑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 하지만 입으로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말로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자성사를 드리러 가면 하느님 나라로 돌아간다는 기쁨과 희망보다 걱정과 두려움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은 죄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보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았던 삶에 후회가 된다며, 하느님을 뵐 면목이 없다고 하십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온 몸과 마음 그리고 정성을 다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한 생을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뜨겁게 주님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크면 클수록 걱정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주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구원이 더 가까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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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이승현 대건 안드레아 신부
생활성서 2022년 12월 29일
  |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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