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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독서와 복음 (주님은 복음 선포하라고 제자들을 파견하시다)
조회수 | 1,783
작성일 | 08.09.23
▥ 제1독서 :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 잠언 30장 5절-9절

5 하느님의 말씀은 모두 순수하고, 그분께서는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에게 방패가 되신다.
6 그분의 말씀에 아무것도 보태지 마라. 그랬다가는 그분께서 너를 꾸짖으시고, 너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7 저는 당신께 두 가지를 간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8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9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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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제자들을 보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9장 1절-6절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2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3 그들에게 이르셨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4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5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6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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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는 어려운 일입니다. 사막을 맨발로 걷는 일과도 같습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하십니다. 도움에 목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의 지원보다는 하느님의 이끄심에 기대를 걸라는 말씀입니다.

물질을 믿으면 실망이 돌아옵니다.
잡음이 생깁니다.
주님께 매달려야 안정과 평화가 함께합니다.

선교는 사람이 하지만 그 에너지는 주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힘’을 지녀야 올바른 선교가 됩니다. 사람들의 지원이 많아지면 그분의 지원은 줄어듭니다. 사람들의 격려를 찾다 보면 그분의 힘을 외면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하고 이르셨습니다.

사람들은 봄과 가을에만 꽃이 많이 피는 줄 압니다. 그러나 여건이 갖추어지면 언제라도 피어나는 것이 꽃입니다. 다만 봄가을에 피는 꽃이 유난히 아름다운 것은 겨울의 추위와 여름의 혹서를 견디어 냈기 때문입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족함 속에서 오히려 단단한 결실이 맺어집니다.

결과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기에 업적을 남기려 합니다. 발자취를 남기려 애를 씁니다. 곁에서 보기에 안타까운 선교의 모습입니다. 선교의 본질은 하느님을 전하는 것임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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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08년 9월 24일
  |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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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국토 순례를 하는 남상범 요한 형제를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올해로 팔순인데 혼자서 우리나라를 열한 번이나 순례했습니다. 그동안 그가 걸은 거리는 지구 한 바퀴에 해당될 것입니다. 지금쯤 그는 열두 번째 순례를 하며 우리 국토의 어디쯤 걷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도보 순례를 깨달음의 여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순례하면서 자신의 지난 모든 잘못을 뉘우치며 통회의 눈물을 흘렸고, 순례를 통해서 겸손을 배우며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누렸다고 합니다. 그는 이러한 순례를 위해서는 체력도 중요하지만 먹고 자는 문제가 가장 고달팠다고 합니다. 국토 순례에는 기본적인 경비도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 많은 경비를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으로 해결했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이 백 살에 얻은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주님께 바칠 번제물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 이사악에게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창세 22,8 참조) 하고 대답합니다.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신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지팡이나 보따리, 빵과 여벌 옷도 지니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여행을 하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물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반드시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러 떠나는 제자들이 하느님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갖기를 바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놓을 때 그에 합당한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주님의 일을 할 때 주님께서는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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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2년 9월 26일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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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산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안고 있는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구약 성경의 지혜 문학 속에서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의 경험을 담고 있는 교훈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래서 「잠언」은 많은 사람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동시에 친근감을 줍니다.

우리가 며칠 동안 제1독서에서 듣고 있는 「잠언」은 대표적인 지혜 문학에 속합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잠언」은 인간사에 관한 예지를 담고 있는 구전의 ‘민중 잠언’을 바탕으로 삼아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대한 매우 깊은 식견들이 넘쳐납니다. 인생살이에는 보편성이 있는 법이기에 이스라엘 밖에서 전해진 삶의 지혜도 넉넉히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잠언」은 이러한 다양한 인간사에 대한 삶의 지혜를 단순히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 선과 악에 대한 깊은 신학적 성찰을 통하여 새롭게 조명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지혜 문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혜와 하느님 지혜 사이의 긴장이 드러나 있고, 자신이 추구한 삶의 지혜를 하느님에 대한 지식에 통합시키려는 진지한 노력도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보는 기도는 참으로 쉬운 언어로 인간사의 원숙한 경륜이 어떻게 하느님에 대한 경외로 잘 여물어 갈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이러한 기도로써 잘 산다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을 저버리지 않고 그분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가운데 그분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라는 자신의 인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잘 살아가는 지혜에 눈을 뜨고자 한다면, 이처럼 주님을 올바로 경외하는 길을 찾고자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묵상할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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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4년 9월 24일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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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 곧 복음을 선포하도록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길을 떠나도록 당부하시지 않습니까? 여행하는 데 필수품이라 할 수 있는 지팡이나 여행 보따리, 빵이나 돈마저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시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 의도는 선교 활동 자체에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다른 것은 모두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는 능력이 부족한데, 나는 시간이 없는데…….” 이렇게 핑계를 대지 말고, 그저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열정을 가지고 행하라는 당부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아울러 오늘 생각하고 싶은 점은 복음 자체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과거 선교 활동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선교하려는 지역의 문화나 전통을 무시하고, 그저 그리스도교만 강요했던 것이 아닙니까? 그 결과 박해의 빌미를 주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뿌리내리려면, 그 전에 그 지역의 문화나 관습, 종교심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 복음처럼 선교사는 자신의 문화나 풍습, 언어 등 모든 것을 놓아두고 빈손으로 가야만 합니다. 선교 지역에서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새롭게 배우며, 그들의 전통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친교를 나누어야 하지요. 그 뒤 예수님 말씀을 그들의 문화와 전통에 맞게 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과거 선교사들이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고 말 것입니다. 이런 점을 오늘날 우리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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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8년 9월 26일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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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선포와 치유 능력은 쌍을 이루고 함께 나아갑니다. 말하자면 복음 선포는 인문학적 소양이나 객관적 지식의 함양과는 결을 달리하고, 동시에 우리 삶 곳곳에서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기쁨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걱정입니다. 대다수의 종교가 현실 도피적 위로의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기우이기를 바라나 많은 신앙인이 성당이나 교회에 와서는 세상사 잊고 그저 하느님 안에 조용히 위로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사는 것이 팍팍하고 때로는 내려놓고 싶다는 뜻이겠지요.

그럼에도 그리스도교는 세상에 파견되어 세상의 질병을 고쳐 주어야 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긴박히 돌아가는 세상에서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홀로 베드로 광장에서 강복하시는 장면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력함과, 그럼에도 세상을 향하여 무엇이든 해 주시려는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질병을 고쳐 주고 보듬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직접적인 기쁨, 가시적인 치유를 말하기 전에 오늘 복음 한 구절을 다시 묵상하려 합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말씀은 언뜻 보기에 무소유의 편안함을 의미하는 듯싶지만 실은 ‘현실주의’에 대한 과감한 저항입니다.

돈이 있어야 성공이든 행복이든 말할 수 있다는 현실에서 돈 한 푼 없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 현실을 우리는 내려놓고 비워 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은 치유됩니다. 더 쥐려고 경쟁하는 세상을 아무리 치유하고 위로한들 더 큰 질병이, 더 큰 바이러스가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질병의 고통은 가난한 이들에게 차곡차곡 쌓이고, 그로 말미암은 부는 사회 상층부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질병을 직접적이고 가시적으로 고쳐 주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가진 이들이 나눌 때 가능합니다. 복음 선포와 치유 능력은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실천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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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매일미사 2020년 9월 23일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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